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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만 있으면 누구나 '내 게임' 만들 수 있는 곳이 목표

넥슨 독립 스튜디오 총괄 프로듀서 인터뷰 시리즈 ① 원스튜디오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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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이즈게임 작성일자2018.07.12. | 89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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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슨이 지난 4월 개발 조직에 대대적인 변화를 줬다. 중앙에서 개발을 통제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개발 조직을 7개 '독립 스튜디오'로 나눠 신작 개발과 게임 운영에 대한 자율권을 준 것이 핵심이다. 넥슨은 각 조직을 매출 외에도 게임성이나 의미 있는 도전 등 다각적인 기준으로 평가할 예정이다.


대신 넥슨이 스튜디오에 요구하는 것은 하나다. 각 스튜디오가 넥슨의 ○○가 아니라, 순수하게 '○○ 스튜디오'라 불릴 정도로 각 스튜디오만의 독자적인 색과 브랜드를 가지는 것. 기존 개발 조직을 성향 별로 스튜디오로 묶고, 스튜디오 총괄 프로듀서에게 상당한 자율권을 준 것도 이를 위한 투자다. 즉, '개발사' 넥슨의 기조와 미래를 각 독립 스튜디오 스튜디오에게 맡긴 셈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넥슨의 개발 기조를 책임지게 될 각 독립 스튜디오는 이 시스템 안에서 어떤 것을 시도하려 할까? 디스이즈게임은 넥슨의 체제 개편을 맞아, 각 독립 스튜디오의 총괄 프로듀서들을 만나 그들이 꿈꾸는 비전에 대해 들어봤다. 첫 이야기는 원스튜디오의 '김희재' 총괄 프로듀서다.

 

<택티컬 커맨더스>, <피파 온라인> 1·2편, <삼국지조조전 온라인>, 최근 <탱고파이브>까지. 원스튜디오 김희재 총괄 프로듀서가 20여 년 간 개발자로 살아오며 제작에 참여한 작품이다. 총괄 프로듀서가 이런 길을 걸었기 때문인지, 원스튜디오가 가지고 게임의 종류도 <삼국지조조전 온라인>(SRPG), <파이널판타지 XI 리부트>(모바일 MMO), <탱고파이브>(팀 대전) 등 다양하다.

 

원스튜디오의 이 다양한 라인업을 보고 의문이 떠올랐다. 이 다양한, 어떤 면에선 통일되지 않은 라인업을 통해 어떤 색과 브랜드를 추구하려는 걸까?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원스튜디오에 찾아가자 김희재 디렉터는 예상치 못한 말을 했다. "장르나 스타일로 브랜딩하지 않겠다." 대신 그는 개발 환경에 대한 얘길 했다.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마니아가 '내 게임' 만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 ▲ 개발자에게 '관리' 역량이 없다면 회사가 대신 감당하겠다 ▲ 경영진-개발팀 간 생기는 의심·갈등은 개발 초기부터 모은 '유저 피드백'을 기준으로 해결하겠다.

원스튜디오 김희재 총괄 프로듀서


디스이즈게임: <탱고파이브> 이후 오랜만에 인터뷰에 나왔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김희재: <탱고파이브> 하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대규모 개편 작업 때문에 기존 버전 서비스를 종료한 상태다. 지금은 이후 스팀에서 서비스 될 <탱고파이브> 개편 버전을 작업 중이다. 얼추 CBT 수준까진 만든 것 같다. 아마 원스튜디오가 만들고 있는 게임 중에선 가장 빨리 공개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의외다. 총괄 프로듀서가 된 이후엔 관리 쪽에 집중할 줄 알았는데….

 

이 작품은 내가 시작했으니 내가 끝까지 책임져야지. (웃음)

 

물론 메인은 관리 일이다. 나는 원스튜디오의 총괄 프로듀서니까. 다행히 <탱고파이브> 개편 버전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와, 이젠 내가 많이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 요 몇 달은 <탱고파이브> 팀의 디렉터가 아니라, '원스튜디오'의 총괄 프로듀서로 더 많이 일하고 있다. 스튜디오에 합류한 다른 팀들과도 얘기하고, 또 스튜디오의 방향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하고….

개편과 함께 스팀 버전을 준비 중인 <탱고파이브>


그렇지 않아도 그 방향이 궁금해 찾아왔다. 원스튜디오는 다른 스튜디오에 비해 다양한 장르의 게임을 가지고 있으니까. 밖에서 보기엔 다양성 말곤 스튜디오의 색을 못 찾겠더라.

 

현재 라인업만 보면 확실히 그런 의문이 들겠다. 아무래도 우리는 개발팀 하나가 확장된 것이 아니라, 여러 팀이 모인 스튜디오니까. 아마 라인업만 보면 우리 방향이 애매해 보일 것이다. 

 

이렇게 모인 조직인 만큼, 나는 위에서 특정 장르로 스튜디오의 색을 정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안에 있는 팀 모두 원스튜디오로 모이기 전부터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신들의 작품을 만들었으니까. 이런 조직에서 내가 '원스튜디오는 앞으로 ○○ 장르를 만들겠습니다, □□ 스타일 팀이 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겠지. 내가 모든 프로젝트에 참여할 것도 아니고….

 

스튜디오의 색은 구성원들이 만든 결과물로 나타난다. 뭘 만들지 고민하고 그것을 구현하는 것은 윗사람이 아니라 구성원이다. 그래서 내가 우리 색을 특정 장르나 스타일로 국한하고 싶지 않다. 심지어 팀원들이 넥슨에서 그동안 하지 않았던 콘솔 게임을 만들고 싶다고 해도, 가지고 있는 그림만 뚜렷하면 O.K다.

 

대신 요즘 고민은 게임을 만드는 방식과 과정 그 자체다. 개발자들이 어떻게 하면 개발을 쉽고 편하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개발자들의 아이디어를 보다 잘 끄집어 낼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원스튜디오의 브랜딩에 대해선 굉장히 길게 보고 있다. 스튜디오의 브랜드는 결국 게임이 만드는데, 그러려면 고민 중인 프로세스 적용되고 그 아래서 게임이 나와야 하니까. 아마 1~2년 안에 브랜딩은 힘들지 않을까?

 

 

넥슨보다 더 길게 보는 것 같은데…. (웃음)

 

약 20년 간 개발 실무를 했는데, 그간 느낀 아쉬움을 다 쏟아내려 한다. (웃음) 사실 나는 실무 경력이 대부분인 사람이라, '관리'가 중심인 총괄 프로듀서 직을 제안 받았을 때 많이 고민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게 떠올랐다. 나는 정말 운 좋게 좋은 사람들과 좋은 환경을 만나 개발을 했지만, 주변에는 그렇지 못해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지 못한 친구들이 많았다는 생각이.

 

이후 총괄 프로듀서 직을 수락했다. 그런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원스튜디오에선 해결하고 싶어서. 아마 이걸 제대로 할 수 있으면 기존과는 상당히 다른 시스템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원스튜디오의 신작 중 하나인 <파이널판타지 XI 리부트>


# 마니아가 좋은 게임을 만든다! 덕력 확실하면 '내 게임'을 만들 수 있는 회사


그럼 원스튜디오의 목표는 개발을 잘 할 수 있는 환경인가? 이건 모든 개발팀의 고민이 아닐까 하는데….

 

구체적으로 개발자가 구상한 게임을 실현하기까지 넘어야 하는 불필요한 '장벽'을 없애고 싶다.

 

개인적으로 가장 안타까웠던 경우가 입사 3~5년차 개발자가 게임을 만들고 싶어할 때다. 이 때가 보통 30대 초반인데, 개발자의 아이디어가 빛나는 시기다. 젊으니 트렌드도 알고 3~5년 실무 했으니 감각은 물 올랐고 고정관념도 적다. 물론 아이디어가 실제로 구현되려면 많이 가다듬어야 하고 시행착오도 거쳐야 하겠지만, 이 시기만큼 개발자의 아이디어가 빛나는 시기도 없다.

 

그런데 직접 게임 개발을 이끌기 위해선 많은 능력을 갖춰야 한다. 게임에 대한 아이디어와 비전은 기본이고, 조직 관리, 인재 채용, 자금 관리 등등 수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또 인정받아야 한다. 회사에서 내 게임을 만들기 위해선 개발자뿐만 아니라, 관리자의 역량까지 필요하다.

 

신선한 아이디어를 가진 개발자는 관리자 역량이 생기기 전까진 이걸 구현할 수 없다. 일부는 저 장벽을 넘기 힘들다고 생각해 포기한다. 일부는 밖에 나가 직접 하려고 했다가 방금 말한 역량이 없어 현실과 타협해 처음 생각한 것과 다른 게임을 만들기도 한다. 일부는 역량을 쌓다가 신선함이 바래거나 트렌드와 멀어지기도 하고. 나처럼 TV 보고 PC로 게임하던 사람이, PC는 켜지도 않고 휴대폰으로 게임하고 유튜브 보는 세대를 100% 이해하긴 힘들겠지.

 

이 쳇바퀴를 부수고 싶다. 신선한 아이디어를 가진 개발자들이, 개발 외에 다른 역량 없이도 게임을 만들게 하는 것이 우리 목표다. 그래야 좋은 아이디어가 많이 나오고, 그 아이디어가 묻히지 않고 좋은 게임으로 바뀔 수 있으니까.


답이 있을까? 말한 것처럼 개발자가 팀을 이끌려면 개발자로서의 역량 외에도, 조직을 관리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역량을 갖추려면 보통 시간이 필요하고. 결국 반복 아닌가?

 

디렉터가 모든 것을 다 할 필요 없다. 디렉터는 아이디어와 비전이 확실하고, 그걸 잘 구현할 수 있으면 된다. 디렉터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역량은 '비전'과 '개발'이다. 그게 가장 중요한 역할이고, 디렉터만의 일이니까. 

 

나머지는 회사가 대신 해주면 된다. 사람을 모집하는 것, 조직을 관리하는 것 등등. 디렉터는 디렉터만의 일만 잘 하면된다.

 

 

파격적이다. 아무리 회사가 도와준다고 해도, 디렉터의 아이디어만 보고 프로젝트를 승인한단 얘긴데….

 

그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으니까. 좋은 아이디어에서 좋은 게임이 나온다. 그런데 당장 좋은 아이디어를 찾는 것도 일이다. 

 

마니아 같이 한 분야에 정통한 사람이 아니면 그쪽에 먹힐 아이디어를 낼 수 없다. 미소녀 게임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떻게 '모에'를 이해하고 구현하겠는가? 

 

<삼국지조조전 온라인>을 만들 때 가장 먼저 한 일이 '삼국지' 마니아, <삼국지 조조전> 마니아, SRPG 마니아를 찾은 거였다. 개발자가 이 장르에 '빠삭'하지 않으면, 그 게임은 장르 팬들에게 외면 받으니까. 개발자들이 목표로 하는 유저들은 모두 그 장르의 '전문가'들이다. 우리가 하는 일은 그 전문가들의 입맛에 맞는 게임을 진상하는 것이고. 이들에게 인정받으려면 개발자부터 전문가여야 한다. 

 

그런데 마니아 개발자가 개발 외에 관리 역량까지 가지고 있을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삼국지 조조전 온라인> 메인 아트


그렇다면 원스튜디오의 총괄 프로듀서가 생각하는 좋은 아이디어, 비전의 기준이 뭔가?

 

내 첫 기준은 제안자, 즉 프로젝트를 이끌 사람이 그 프로젝트의 마지막 모습을 얼마나 명확하게 잘 그리고 있느냐다. 단순 아이디어를 넘어, 실제로 게임이 구현될 수 있도록 비전까지 가지고 있는 것. 디렉터가 될 사람이 게임이 완성됐을 때의 모습까지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게임이 잘 될 것인가는 그 다음 문제다.

 

아, 물론 특정 장르의 마니아라면 마지막 모습까지 구체적이지 않더라도 더 기회를 줄 순 있겠지. 한 장르의 팬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장르의 공식과 장르 팬들이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그런 개발자들은 인사이트가 있다. 그런 개발자가 유저들에게 어떤 경험을 줄지 명확히 떠올리면, 스튜디오가 그 구현을 도와주는 것은 어렵지 않다.

 

반대로 평소 그 장르는 거들떠 보지도 않던 개발자가 그 장르가 유행한다고 '우리 이거 만들게요' 하는 것은 경계한다.

 

 

마니아 같이 특정 분야에 정통한 개발자, 비전이 확실한 개발자라면 회사가 관리 부분을 대신 해서라도 게임을 내게 만들겠단 얘기다.

 

맞다. 많은 개발자들이 한 조직을 이끌어야 한다는 것을 어려워해 아이디어를 포기한다. 그런데 세상에 게임도 좋아하고 개발도 잘하고 사람 보는 눈도 좋고 조직도 잘 이끌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나는 개발 외적인 스트레스는 회사가 최대한 줄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더 많은 아이디어가 나오고, 그것이 자라날 수 있으니까.

 

내 목표는, 조금 과장 보태서 원스튜디오 개발자들이 회사 안에서 '공짜로 창업했다'라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 게임만 잘 만들어라, '관리' 같은 개발 외적인 문제는 회사가 다 감당하겠다


그렇다면 개발 외에, 좋은 개발자를 끌어온다거나 조직을 잘 굴러가게 하는 것 등 다른 업무는 회사가 어떻게 도와줄까? 총괄 프로듀서가 전부 감독?

 

일단은 나와 시스템이. 하지만 안정된 다음엔 시스템 만으로 돌아가야겠지. 나도 게임을 만들고 싶어 개발자를 하는 것이니. (웃음) 

 

한 개발자가 A란 아이디어를 가져와 승인됐는데 그 친구가 팀 세팅이나 조직 관리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러면 회사가 안팎에서 그 프로젝트에 참가하고 싶은 사람 찾아 매칭해주고, 팀이 세팅되면 나와 시스템이 조직 관리를 돕는 방식이다. 개발이 시작되면 회사가 가진 자원으로 개발 툴이나 리소스를 보강해 주고….

 

단, 게임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아이디어를 처음 낸 개발자(아마 이 시점에선 디렉터겠지?)다. 나는 적합한 사람을 끌어오거나 조직이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게만 돕는 식이다. 

 

아마 신규 프로젝트가 탄생할 때쯤이면 이 프로젝트를 지원할 시스템이 갖춰졌을 것이다. 개발 방법이나 파이프라인, 일정 산출 등에 대한 것에 대한 교육도 돼 있을 것이고. 인트라넷 등에 구인 툴이나 주요 리소스, 개발 툴, 개발 노하우 등도 업데이트 돼 있을 것이다. 고참들이 도와줄 수도 있고. 기획자 2~3명만 있어도 어느 정도 플레이 가능한 코어 빌드 낼 수 있을 정도까지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일종의 '디렉터 양성소' 같은 느낌이다.

 

비슷하다. 보통 개발 일이 기획·프로그래밍·아트 등으로 나눠져 있는데, 나는 그 중 '기획'은 궁극적으로 모든 개발자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다들 게임을 좋아하고 꿈꾸는 게임이 있어 이 일을 시작하니까. 물론 각자의 전문 영역은 필요하지만, 언젠가 기획 영역에 닿아야 자기가 좋아하는 게임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최근엔 '스튜디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직책을 신설해, 구성원들이 기획 역량을 키우려 하고 있다. 지속적으로 주요 게임 트렌드나 성공한 작품의 포스트모템을 알려주고, 필요하면 운영비를 써서라도 주요 타이틀을 구매해 직원들이 플레이하게 안내하는 일이다. PD만이 아니라, 게임을 좋아하고 만들고 싶은 게임에 대한 확실한 비전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비전을 구현할 수 있는 스튜디오를 만들고 싶다.


그런데 아무리 게임 회사가 보통 한국 사회에 비해 자유로운 분위기라고 해도, 젊은 디렉터가 총괄 프로듀서나 고참 개발자들을 잘 리딩 할 수 있을까? 역량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디렉터의 업력은 상관 없다고 생각한다. 업력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업력이 안되니까 넌 디렉터하면 안돼'가 있어선 안 된단 얘기다.

 

프로젝트가 통과됐다는 것 자체가 디렉터의 구상이 확실하고 회사가 그걸 인정했다는 말과 같다. 그럼 그 구상을 따라야 한다. 게임의 방향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다. 게임에 대해선 이 사람이 최종 의사 결정을 내리는 것이 당연하다. 설사 나나 고참 개발자들과 생각하는 것이 다르더라도, 디렉터 의견에 따르는 것이 맞다. 

 

물론 틀릴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건, 설사 그런 우려가 들어도 그게 명확히 확인되기 전에 힘 있는 사람이 방향을 틀어선 안 된다. 그러면 이도 저도 아닌 결과가 나온다. 디렉터도 못 크고, 게임도 십중팔구는 망한다. 이 사람의 비전, 저 사람의 비전이 섞이면 누구도 만족할 수 없는 게임이 나온다. 그런 게임으론 유저들의 눈을 맞출 수 없다.

 

나는 그렇게 망하느니, 차라리 디렉터의 비전으로 쭉 밀고 나가 확인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공대도 레이드할 때 최소 3번은 트라이하는데, 뭐…. 그러면 최소한 디렉터와 같은 성향의 유저들에겐 인정 받을 수 있으니까. 설사 실패해도 디렉터가 왜 실패했는지는 알 수 있을 테니까.


문화적으론? 요즘엔 많이 달라졌다고 해도, 여전히 '나이'가 권위를 가지는 유교 문화가 남아 있지 않은가?

 

신작에 대한 아이디어와 비전이 확실한 개발자라는 것은, 그 장르나 게임에 대해선 확실한 '인사이트'를 가지고 있다는 말과 같다. 인사이트만 확실하다면 리딩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물론 우리도 지속적으로 그런 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노력할거고.

 

오히려 내 걱정은 너무 스타트가 늦게 끊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이렇게 개발자를 믿으려면 아이디어와 비전이 그만큼 뚜렷해야 한다. 내 질문에도 구멍 없이 답해야 하고. 이런 내공을 가지려면 어느 정도 업력도 있어야겠지. 아마 초반에는 추진력 있는 4~5년차들이 출발선을 끊을 수 있지 않을까?

 

혹시 참고 사례가 필요할지 몰라, 시니어들과 첫 신규 프로젝트로 뭘 하면 좋을지 고민 중이다. 이걸로 작게 필드 테스트를 해보고 본격적으로 시스템이 도입되겠지.

 

 

넥슨이 스튜디오 체제로 개편하기 전에 시행한 '인큐베이팅' 시스템을 원스튜디오 내부에서 업그레이드해 시행한다고 봐도 될까?

 

비슷하다. 기존 시스템이 잘못됐다는 얘긴 아니고, 내가 개발자로 살아오며 느낀 아쉬움 등을 반영해 발전시켰다에 가깝다. 게임 하나 만드는 것도 어려운데, 거기에 위도 설득해야 하고 좋은 사람도 끌어와야 하고 조직도 잘 굴러가게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겠는가. (웃음) 이런 역할을 세분화 해 회사가 일부 대신하는 것이다. 개발팀은 개발만 잘 하면 된다.

 

 

# 서로 못 믿는 회사-개발팀? '유저'에게 프로토 단계부터 평가 받겠다


그런데 회사를 책임지는 사람과 게임을 책임지는 사람이 서로 100% 믿을 수 있을까? 아무리 비전이 좋아도 위에선 '개발은 잘 되나' 의심하고, 밑에선 '갑자기 관여하진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 보통 아닌가. 프로젝트 책임자에게 많은 역량이 요구되는 것도 한편으론 이런 의심 때문이고.

 

중요한 지적이다. 난 회사를 총괄하게 된 지 얼마 안됐지만, 솔직히 당장 내가 누군가에게 인원 몇 명 주고 프로젝트를 맡기면 계속 불안할 것이다. 게임은 나오기 전까지 결과를 알 수 없으니 믿어주는 것이 답인데, 사람 마음이 그렇지 않으니까. 한 달마다, 3개월마다 끊임 없이 확인하고 훈수 두려 하기 쉽겠지. 더군다나 게임 개발은 일정대로 딱딱 끝나는 일이 드무니 더더욱.

 

반대로 개발했을 때의 기억을 살려보면, 일선에선 개발하다가 뭔가 어려움이 생기거나 의문이 들어도 위에서 개입하는 것이 무서워 자꾸 숨기고 감추게 된다. 그럼 고민도 팀 안에서만 돌고, 그러다 같이 고민하면 해결할 일도 감추다 키우기도 한다. 이렇듯 회사와 개발팀은 같은 목적으로 달리지만, 서로의 입장 차이 때문에 자꾸 트러블을 만든다.

 

그래서 이 프로세스를 구상할 때 같이 고민했던 게 회사를 책임지는 사람과 게임을 책임지는 사람 사이의 모호함과 물음표를 최대한 줄이는 방법이다. 아직 구체화까진 못해 내부 공표는 안했는데, 일단은 양측 모두 합리적이라 생각할 수 있는 기준을 정하고자 한다. 

 

그 다음은 그 기준에 맞춰 프로세스를 정비하고, 프로젝트를 그 프로세스 안에서 구성원 모두가 볼 수 있게 투명하게 진행하는 것. 그래야 관리자도, 담당자도, 다른 구성원도 납득할 수 있으니까.


결국 어떤 것을 기준으로 하느냐가 가장 중요할 것 같다. 혹시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있나?

 

가장 좋은 기준은 그 게임이 실제로 타겟팅하는 유저의 평을 받는 것이 아닐까? CBT, OBT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테스트 시스템은 진짜 테스트라기 보단 마케팅에 많이 가까워졌으니까. 그러다 보니 게임을 거의 다 만들어 놓고 테스트(?)할 수 밖에 없고, 그러다 '이 산이 아닌가 봐' 하면 모두 멘탈 깨진다. 그냥 가면 망하고, 뒤집으려면 다 뒤집어야 하니까.

 

그래서 요즘 생각하고 있는 것이 스팀 '얼리액세스', 혹은 그보다 더 빠른 형태의 테스트다. 예를 들어 내가 SRPG를 만든다면, 정말 핵심 시스템만 구현된 초창기 코어 빌드부터 SRPG 마니아들에게 의견을 묻는 것이다. 게임을 서비스한다는 것은 결국 재미를 팔겠다는 얘긴데, 그럼 개발 초기부터 재미를 검증해야 하지 않겠는가?

 

기존처럼 다리 중간쯤 건넌 뒤에야 돌다리 두드리지 말고, 두세 걸음 걸었으면 두드리자는 말이다. 다행히 최근엔 유저들 사이에서도 이 얼리액세스 개념이 많이 확산돼 큰 난관은 없을 것 같다. 이제는 프로토타입 수준의 빌드로 테스트를 해도 유저들이 받아들이고 의견을 줄 준비가 됐다고 생각한다.

 

 

만약 스팀에서 얼리액세스를 한다면 외부에 공개되는 게임사는 넥슨일까, 원스튜디오일까?

 

만약 스팀에서 허가만 해준다면, 나는 원스튜디오 이름으로 테스트를 하고 싶다. 이미 스팀에 넥슨으로 등록된 것이 있어 어떻게 될진 모르겠지만.

 

개편에 대해 회사(넥슨) 경영진과 얘기할 때 논의했던 것 중 하나가 게임을 공개하고 론칭할 때 최대한 '스튜디오'의 이름과 브랜딩을 강조하자는 것이었다. 이정헌 대표도 미팅에서 스튜디오 브랜드를 우선해 달라고 강조했다. 나는 이게 필요하면 넥슨이란 이름을 뒤에 놔도 좋다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때문에 만약 스팀에서 우리 게임을 얼리액세스 서비스 한다면, 가능하면 우리 이름으로 내고 싶다.

 

참, 얼리액세스라고 해서 꼭 스팀에서만 테스트를 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스팀이 아니어도 그런 형태로 테스트하는 방법은 많이 있다. 예를 들어 모바일게임은 FGT를 더 공격적으로 한다거나, 아니면 우리가 자체적으로 얼리액세스 인원을 모집할 수도 있고. 기존처럼 어느 정도 완성한 뒤가 아니라, 진짜(?) 프로토타입 단계부터.


유저들에게 얼리액세스 형태로 테스트를 한다면, 그 과정이나 결과도 스튜디오에 퍼질 수 밖에 없겠다.

 

맞다. 일선에서 개발하다 보면, 개발하는 사람도 자기가 만들고 있는 게임이 재미있을지, 없을지 확신이 안 서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 고민을 팀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공유하기 쉽지 않다. 팀에 불이익이 갈지도 모르니까. 그런데 그렇게 안에서 끙끙 앓기만 하다가 정작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시기를 놓쳐 버릴 때도 많다.

 

그래서 아예 개발과 테스트 프로세스 자체를 개방된 형태로 하고 싶다. 잘 되면 스튜디오에 활기를 가져다 줄 것이고, 문제가 생겨도 팀이 아니라 스튜디오 딴에서 그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으니까. 또 이렇게 열린 형태면 만에 하나 위에서 부조리한 결정을 내리려 할 때도, 스튜디오 전체의 의견을 신경 쓸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만약 성공하는 작품이 나와 인센티브를 받게 된다면 어떤 방식이 될까? 기본적으로 넥슨 방식을 따라가려나?

 

스튜디오 체제에서는 어떤 식으로 인센티브를 배분할 지 정할 수 있다. 넥슨 시스템은 해당 팀에게 인센티브가 주어지는 방식이었는데, 우리는 일단 인센티브 대부분을 해당 팀에게 주고 일부는 스튜디오 전체에 '○○ 덕에 나온 인센티브다'라고 말하며 주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이상적인 얘기가 많았는데, 일을 하다 보면 프로젝트 폐기를 결정해야 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결정은 누가 내리는가? 예를 들어 지금 넥슨과 비슷한 체제인 슈퍼셀에선 각 셀(개발팀)에서 그 결정을 내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마지막까지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다. 과연 우리가 슈퍼셀처럼 움직일 수 있을까 하고. 슈퍼셀은 우리와 달리 인원도 적고, 시작부터 엘리트 집단이었으니까. 위에선 구성원들을 신뢰하고 구성원들은 자기보다 팀과 조직을 먼저 생각한다. 굉장히 이상적인 조직이다. 심지어 개발 조직이 회사가 아니라 팀을 위해 움직이려고 하면 팀원이 다른 팀으로 떠난다는 얘기까지 있을 정도니…. 

 

서로 시작점이 다르고 문화가 달랐던 만큼, 바로 따라가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아마 스튜디오 총괄이니만큼 마지막 결정은 내가 내리는 형태가 될 것이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결정을 내리는 근거가 내 판단이냐, 아니면 최대한 많은 인원의 의견과 피드백을 모아 도출한 값이냐 이다. 또 뭔가 답이 나오기 애매한 상황이라면 처음 그 프로젝트의 아이디어를 낸 디렉터의 의견과 비전도 중요하겠지.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계속 고민 중이다.

 

 

이 건은 원스튜디오의 방식일까, 아니면 넥슨까지 포함되는 방식일까?

 

일차적으로는 원스튜디오 한정이다. 다만 스튜디오 체제 개편 이후, 총괄 프로듀서끼리 정기적으로 모여서 서로 의견을 나누는 자리가 있는데, 모델이 어느 정도 확정되면 이 내용을 공유하려 한다. 만약 다른 스튜디오에서도 이 모델이 좋아 보이면 적용하는 곳이 있을지도 모르지.


# '재도전' 할 수 있는 회사, 장인이 있는 회사가 목표


이런 시스템이 정착되려면 스튜디오 구성원들의 역량이 많이 좋아야겠다. 조직 문화도 다른 게임사와는 다른 형태여야 할 것 같고.

 

맞다. 앞으로 원스튜디오가 가야 할 길은 각 프로젝트가 각자 도생하는 것이 아니라, 원스튜디오라는 큰 개발자 풀 안에서 개발자들이 끊임없이 서로 교류하고 뭉치며 화학 반응을 만들어 내는 모델이다.

 

그런 만큼 지금은 신규 인원을 굉장히 조심스럽게 채용하고 있다. 단순히 특정 프로젝트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겠다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이 우리 스튜디오의 (앞으로 탄생할 것까지 포함해) 다른 프로젝트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까지 고려하고 있다. 아니면 그 분야의 전문가여서 특정 장르나 분야에 정통한지를 보거나.

 

많은 회사가 프로젝트 단위로 인원을 관리한다. 그 프로젝트에서만 쓸 수 있으면 사람을 뽑고, 역할이 없어지면 자리를 없애거나 잘 해야 '전환배치' 한다. 욕심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조직에 들어온 사람이 프로젝트 때문에 근무 상태 바뀌는 것을 겪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가 프로젝트 단위로 쪼개진 조직이 아니라, 프로젝트와 무관하게 개발자들이 자유롭게 교류하며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곳이 되길 원한다.

 

어려운 일이다. 누구 하나가 잘 한다고 가능한 게 아니라, 그런 조직 문화도 만들어야 하고 구성원들의 역량도 뛰어나야 하니까. 그래서 사람을 뽑을 때부터 더 책임감 있게 뽑으려고 한다. 뽑은 이후엔 더 많은 기회를 주려 하고.

 

 

환경이 바뀌는 만큼, 기존 구성원들의 성장도 중요할 것 같다. 

 

시니어 그룹의 어깨가 무겁다. 앞서 얘기한 스튜디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외에도, 스튜디오 아트 디렉터, 스튜디오 테크니컬 디렉터 등의 직책을 만들어, 시스템을 정비하고 구성원들의 역량을 높이려고 하고 있다. 일단 기본적으로 다들 담당 분야 팀원들과 커피 타임을 갖거나 간단한 포스트모템을 하는 식으로 교류하고 있다. 그리고 추가로 직무 별로 특화된 시스템을 정비하는 식이다. 

 

예를 들어 스튜디오 테크니컬 디렉터라면 인프라를 정비해 팀마다 다른 기술 역량을 상향 평준화하고, 나아가 기존 리소스를 활용해 간단한 공용 엔진이나 개발 툴을 만들어 개발자들이 아이디어를 더 쉽게 구현할 수 있게 하는 식이다. 스튜디오 아트 디렉터라면 AD들의 강점을 정리해, 새로운 프로젝트에서 아티스트 찾을 때 매칭이 잘 되게 돕고. 

 

나는 스튜디오로 꼬실 사람 없나 돌아다니고 사람 만나고…. 아무래도 원스튜디오는 다른 회사와 방향이 많이 달라, 사람들을 만나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을 많이 하고 있다. 아, 그와 별개로 우리 시니어들과 만나 잔소리하기도 하고 잔소리 듣기도 하고. 얼마 전에 스튜디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게 해야할 게임 전달 받았는데, 스팀 세일 때 사고 계산해보니 40만원쯤 하더라. 이건 또 언제 다 공부하지…. (웃음)


디렉팅과 관련된 얘기가 많았는데, 반대로 경력 있는 개발자가 관리자가 되지 않고 계속 일선에서 머무르는 것도 가능할까? 한국에선 일정 경력, 나이 이상이면 관리자가 돼야 한다는 관행 같은 것이 있지 않나?

 

당연히 가능하다.  일선에서 20년 가까이 프로그래밍을 하던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이 연차 때문에 관리자가 돼 프로그래밍 할 일이 줄어든다면 얼마나 큰 낭비인가? 본인이 그것을 원하고 관리자로서도 잘 할 수 있으면 상관 없는데, 관행에 떠밀려 관리지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피파 온라인> 시리즈 만들 때 EA 캐나다에 간 적이 있다. 그 때가 2005년이었는데, 환갑의 DB 엔지니어를 만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우리와 실무 얘기를 하는데, 그 사람이 게임, 프로그래밍의 역사가 절절하게 체감되더라. 나는 그 사람을 보고 내가 늙어서도 게임을 만들 수 있겠구나라는 확신이 들었고, 한국에서도 그런 개발자들이 일선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스튜디오에도 이런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일단 지금은 직책자(ex: 스튜디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이 시니어 그룹과 교류하며 서로 노하우를 공유하고 정리하고 있긴 한데, 만약 그런 장인이 늘어난다면 이 일이 더 잘 되겠지.

 

 

만약 구상하는 시스템이 정착되면 어떤 모습이 나올 것 같은가?

 

프로토타입이 끊임 없이 시도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시스템 안에선 시도도 많이 할 수 있고, 중간 중간 의사결정도 빨리 될테니까.

 

괜찮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수면 위로 드러나고, 회사와 직책자들이 하고 싶은 사람들 매칭해주고…. 그러다가 모인 사람들 궁합이 맞으면 그 팀에서 계속 좋아하는 장르 시도해 일종의 브랜드를 만들고. 아, 마지막은 내 희망사항이다. (웃음) 아무튼, 느끼한 말이지만 개발자가 가진 판타지를 (개발 외에 다른) 제약 없이 게임으로 만들 수 있는 회사가 됐으면 좋겠다. 

 

이게 잘 된다면 스튜디오 안에 있는 각 팀이 만드는 작품 하나하나가 코어 유저들에게 인정받고, 그런 것이 쌓여 우리 원스튜디오의 브랜드가 되지 않을까? 궁극적인 목표는 '원스튜디오에서는 나오는 작품도 많은데, 하나하나 다 마니아 마음에 든다'라는 평을 받는 것이다.  


그러려면 '재도전' 기회가 계속 주어져야 한다. 아무리 아이디어가 빛나는 개발자라고 하도, 첫 도전부터 좋은 게임을 만들 순 없지 않은가?

 

당연한 얘기다. 최소한 3번은 재도전할 수 있어야지. 레이드 할 때도 3번은 트라이하는데…. (웃음) 

 

스팀에서 게임을 하다 보면 부러운 사례가 몇몇 있다. 작은 팀이 꾸준히 어떤 영역을 시도해 끝내 유저들에게 인정 받고 성공하는 것. 개발자가 보기엔 그 시도와 도전 모두 눈부시다. 하지만 솔직히 큰 조직에선 그런 시도 자체를 하기 힘들다. 덩치가 크면 실패했을 때의 피해도 크고, 그럼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지니까. 그래서 나중엔 조금 여력이 있어도 그 위험과 부담 때문에 발을 내딛기 힘들어진다. 

 

그런데 재도전 기회 걱정하지 않고, 우리 구성원들이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도전해줬으면 좋겠다. 어떤 비전을 가지고 시작했으면 실패했어도 다시 그 길을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넘어져도 다음에는, 혹은 그 다음에는 더 빠르고 튼튼하게 작품을 만들 수 있으니까. 앞으로는 비교적 부담 없이 시도할 수 있으니 더 많이. 물론 우리가 <오버워치> 같은 작품을 뚝딱 만들어 낼 순 없겠지. 

 

하지만 나는 이런 시도와 시도가 계속 쌓여 빅 히트까진 아니어도, 마니아들에겐 인정받을 수 있는 작품을 탄생시킬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이것이 계속되면 그 팀과 우리 스튜디오의 자산이 될 것이라는 것도.

 

 

제대로 구현된다면, 기존 체계와는 상당히 다른 시스템이 될 것 같다. 바꾸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많을 것 같은데 ….

 

이 프로세스와 문화가 정착되는 것 자체가 도전이겠지. 솔직히 힘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무리 의지를 가지고 밀어 붙인다고 하더라도, 구성원들이 이 방향에 공감해주지 않으면 안되니….  

 

반대로 나는 이 둘만 제대로 정착되면 그 뒤부터는 시간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 때는 나도 다시 <탱고파이브> 말고 다른 게임에 손 댈 수 있겠지. 개인적으로 이 프로세스가 성공적으로 자리 잡으면 회사 구석에서 스토리 요소 강한 게임 좀 만들고 싶은데, 그게 잘 될진 모르겠다. (웃음) 아무래도 이런 게임은 한국에서 맥이 끊긴 지 오래여서. 반면 요즘 유저들 만족시키려면 퀄리티도 높아야 하고.

<오버워치>를 만든 팀은 이전에 <타이탄>이라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실패했던 사람들이었다.


# 부끄럽지 않은 타이틀 만드는 회사가 되겠다


그런데 이 꿈을 이루려면 결과물이 나오기 전까지 잘 살아 남아야 한다.

 

맞다. 그래서 지금 서비스 중인 <삼국지조조전 온라인>, 개발 중인 <파이널판타지 XI 리부트> 같은 신작들이 중요하다.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준비 중인 프로세스에 대한 얘기가 길었다. 그런데 그 외에도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게임과 준비 중인 게임도 열심히 다듬고 있다. 현재가 있어야 미래가 있으니까. (웃음) 당기 목표는 각 프로젝트들의 방향과 목표가 잘 유지될 수 있게 지원하는 방향이다. 또 이젠 각 팀이 원스튜디오란 이름으로 합쳐진 만큼, 부족한 점이 있으면 서로 도울 수 있는 프로세스도 만들고 있고.

 

 

<삼국지조조전 온라인>이 현재 유일한 라이브 타이틀이다. 요즘 현황이 궁금하다. 

 

2016년 나온 작품인데, 다행히 모바일게임치고는 오래, 잘 서비스되고 있다. (웃음) 얼마 전에는 개발 인원도 확충했고, 아직도 계속 채용 중이다.

 

좋은 게임을 만드는 것 못지 않게, 게임을 잘 서비스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개발진과 유저는 모두 게임을 좋아하지만, 서로 처한 입장이 달라 서로를 100% 이해하기 힘들다. 나는 그런 만큼 개발진과 유저가 많이 소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내가 유저더라도 평소 개발자가 벽을 쌓으며 어떤 마인드로 게임 만드는지 감추고 있다가, 갑자기 이상한(?) 업데이트를 한다면 화가 날 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서비스하는 게임은 유저들에게 개발팀이 생각하는 장기 비전, 중기 비전 등을 꾸준히 알려주려고 한다. 예전에 <탱고파이브> 모바일 버전 서비스할 때 개발자 노트도 적극적으로 쓰고 유저들이 방송할 때 개발자가 난입도 하고 그랬는데, 개인적으론 만족스러웠다고 생각한다. 이 정도까진 아니어도, 지금보다는 유저와의 소통을 늘리는 방향으로 하고 싶다.


<파이널판타지 XI 리부트> 등 가지고 있는 작품이 많다. 이 작품들은 언제 볼 수 있을까?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것은 <탱고파이브> 스팀 버전이 아닐까? (웃음) 일단 CBT 빌드 수준까진 왔다. 단순히 플랫폼만 스팀으로 옮긴 것이 아니라, 행동마다 있는 '쿨타임'을 삭제하고 이동 거리 제한도 없애고 캐릭터 보유 스킬도 기존 2개에서 4개로 확장한 상당히 다른 <탱고파이브>다. 전투 규모도 4:4로 바뀌었고 리스폰 개념도 생겼다. 이 버전은 머지 않은 시일 내에 공개할 수 있을 것 같다.

 

<파이널판타지 XI 리부트>는 제목처럼 원작의 이야기와 세계를 충실히 살리는 방향으로 개발 중이다. IP 활용 작품인 만큼, 당장 더 자세한 정보를 공개할 수 없는 것을 양해해 달라.

 

NDC 2018에서 <라쿤>이라는 이름으로 공개된 게임도 준비 중이다. 본래는 스튜디오 체제로 개편되기 전에, 소규모로 진행되던 방치형 프로젝트다. 그런데 게임이 마음에 들어 개편할 때 우리 쪽으로 꼬셨다. (웃음) 기존 버전은 작은 인원으로 아이디어만 살려 빠르게 내는 것이 목표였는데, 아트쪽 인력만 더 보강해 빨리 내려 한다.

 

마지막으로 미공개 신작 RPG 프로젝트가 하나 있는데, 이건 아직 외부에 공개할 만큼 프로젝트가 진척된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있다가 공개하도록 하겠다.

NDC 2018에서 처음 이미지가 공개된 <프로젝트 라쿤>


앞으로 각오가 있다면?

 

앞서 잠깐 얘기했지만, 이 자리를 처음 제안 받았을 때 정말 고민을 많이 했다. 나는 직접 게임 만드는 것이 좋아 남아있는 사람이었으니까. 솔직히 관리자 성향하곤 거리가 있다.

 

그런데 지금 각 스튜디오들에게 주어진 독립권이 속된 말로 '사장님이 미쳤어요' 수준이다. 아마 현실적으로 각 스튜디오에 이 이상 독립권을 줄 수 없을 것이다. 프로젝트 권한까지 줬으니까. 이거 진짜냐고 몇 번을 물어봤는지 모른다.

 

이걸 알고 나서야 총괄 프로듀서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자리가 단순히 관리자가 아니라, 내가 개발하며 느낀 아쉬움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고 나서. 개발하는 환경과 방식을 바꿀 기회라는 생각이 들고 나서. 이렇게 환경과 방법을 개선하면 더 좋은 게임도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방법이 아니어도 좋은 게임은 나오겠지. 하지만 좋은 게임을 지속적으로 만들 수 있다면 이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유롭게 아이디어가 나오고, 빠르고 투명하게 검증되고, 유저들을 만족시킬 게임이 나오고, 잘 서비스 해 다음 타이틀이 나올 토양을 만들고…. 

 

실제론 톱니바퀴가 얼마나 잘 맞아 떨어질진 모르겠지만, 그 방향으로 계속 시도하면 설사 타협을 해도 지금보단 나은 그림을 그릴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다행히 우리 리더 그룹은 이 방향성을 공감하고 적극 도와주고 있다. 첫 발자국을 잘 띈 만큼, 앞으로도 급히 가지 않고 차근차근 좋은 프로세스를 만들겠다. 개발자와 유저 모두에게 부끄럽지 않은 타이틀을 만드는 회사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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