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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나온 '천애명월도'가 2018년 한국 PC MMO 시장에서 가지는 의미

30대 아재 유저가 천애명월도를 하며 느낀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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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이즈게임 작성일자2018.02.12. | 278 읽음

이야기가 짜임새 있지도 않고 액션이 강렬하지도 않다. 그런데 재밌다. 계속 하게된다. 30대 직장인 아저씨(내 이야기다)가 PC MMORPG <천애명월도> OBT를 하며 느낀 감상이다.

<천애명월도>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게임은 PC MMORPG가 각광받지 못하는 시대, '중국에서 만든 무협 MMO'라는 색안경 끼고 보기 딱 좋은 태생을 가지고 한국에 출시됐다. 우려가 적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게임은 출시 2주 간 PC방 점유율 9~10위(PC MMORPG 중에선 1~2위)를 기록했고 평일에도 꾸준히 TOP 10 안에 모습을 보이는 등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미 시장에 자리잡고 있는 기존 강호들, 많은 플레이 타임이 필요한 게임 구조, 짧은 플레이 만으로도 재미를 충분히 주는 다른 장르의 강력한 적수들. <천애명월도>는 빡빡한 PC 온라인게임 시장, 제자리 걸음(어쩌면 뒷걸음) 중인 PC MMORPG 시장에서 어떻게 이런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을까?

고민 중에 떠오른 것은 요즘 우리 게임 환경에 너무도 적절한 게임이라는 생각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2012년 처음 공개되고 2015년 첫 서비스를 시작한 게임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 게임을 하며 느낀 점, 떠오른 점을 정리했다.



시작 전 얘기할 것 하나. 나는 <천애명월도>라는 게임을 높히 평가하지만, 냉정히 말해 이 게임이 한국 유저 누구에게나 인정받을 만한 '명작'은 아니다. 게임이 처음 서비스를 시작한 때는 2015년. 한국 유저들이 보기에 정서가 맞지 않는 부분도 존재하고, 일부 요소에선 국산 유명 MMORPG에 비해 부족해 보이는 면도 있다.

예를 들어 전투의 경우, 논타겟팅 전투를 기대한 이들에겐 허공을 베는 듯한 모션이나 적들의 담백한 피격 모션 때문에 타격감이 부족하다는 평를 듣는다. 


반대로 타겟팅 전투를 기대한 이들에겐 공격 중심의 스킬 구성 때문에 깊이가 아쉽다는 얘기를 듣는다. (천애명월도는 타겟팅·논타겟팅 조작을 모두 지원한다) 각각의 퀄리티가 낮진 않지만, 다양한 MMORPG가 서비스됐고 서비스 되고 있는 국내 기준에선 아쉬움이 보이는 것.

개인적으론 PVE에선 너무 담백하고, PVP 측면에선 딱 맞은 액션 구성이라고 느꼈다.

스토리 부분에선 전반적인 흐름이나 일부 시네마틱 컷인에선 정통 무협의 느낌을 잘 살렸지만, 대부분의 구간에선 2000년대 게임처럼 컷인을 그냥 플레이어블 캐릭터의 모션만 써 연출해 몰입을 깨트린다. 


인게임 리소스를 활용한 컷인이라 하더라도 따로 전용 표정과 모션을 보여주는 <월드오브워크래프트> <블레이드&소울>과 같은 기존 게임에 비교되는 부분. <천애명월도>는 겉모습과 초반 플레이만 보면 호불호 나뉘는, 마냥 호평하기 힘든 게임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천애명월도>를 호평하는 이유는 게임 곳곳에 녹아 있는 MMORPG에 대한 개발진의 고찰, 그리고 PC MMORPG의 미래에 대한 고민 때문이다.


사람들은 왜 PC MMORPG를 플레이하는가, 모바일게임 시대에 PC MMORPG에서 어떤 재미를 기대하는가? <천애명월도>는 이런 물음에 대해 최근 즐긴 PC MMORPG 중 가장 충실한 답을 준비해 온 작품이었다.

어지한간 퀘스트는 이렇게 인게임에서 가능한 모션으로만 진행된다. 그나마 서브 퀘스트에서도 이런 연출을 적극 활용한 것이 장점이라면 장점?

# MMO·RPG, 성장을 놓고 '관계'를 취하다

 

사람들은 왜 MMORPG를 할까? 성장의 재미? 다른 사람과의 교류? 거대한 세계를 살아가는 느낌을 얻기 위해? <천애명월도>를 하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과감하게 쳐 낸 '성장', 대신 게임 '초반'부터 쏟아지는 교류형 콘텐츠다. 

 

성장은 RPG 장르에서 가장 먼저 떠올리는 재미 요소다. 아무리 MMORPG가 많은 플레이 타임(≒ 성장 시간)을 요구해 인기가 떨어졌다곤 해도, 대부분의 유저들은 게임을 시작하면 '일단은' 최고 레벨부터 찍는 것을 목표로 한다. 성장, 정점이라는 목표는 유저들에게 이 정도로 강한 몰입을 선사한다.

 

하지만 <천애명월도>는 이 무기를 과감히 버렸다. 유저는 게임을 시작한 지 불과 5~6시간 만에 캐릭터가 가진 대부분의 스킬을 얻을 수 있다. 하루도 되지 않아 캐릭터의 액션이 사실상 완성된다.


물론 이후에도 최고 레벨 달성이나 신규 장비 등의 성장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스킬과 액션이라는 가장 큰 성장 체감 요소는 게임 시작 5~6 시간 만에 끝난다. 

 

게임은 여기에 추가로 30레벨(5~6시간하면 도달하는 지점) 이후부터 레벨 업의 어려움이라는 것 자체를 아예 풀어 버린다. 유저는 게임 초기에 자기 문파 사부 앞에서 좌선 하는 것 만으로 레벨이 2~3씩 오르고, 소탕 임무를 하는 것 만으로 하루에 레벨이 10 가까이 오른다.


물론 뒤로 갈수록 레벨업 속도가 떨어져 나중엔 정상적인(?) 수준이 되긴 하지만, 사냥 등 성장에 필수적인 노동(?)이 크게 줄었다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대신 <천애명월도>는 이렇게 성장의 비중을 줄인 자리에 유저 간의 자연스러운 '관계'를 채워 넣었다.

낚시, 보물찾기, 표행, 경마, 기연 등 게임 내 대부분의 콘텐츠가 다른 유저와 만날 기회를 자연스럽게 만들어 준다.

유저는 <천애명월도>를 시작한 지 불과 5~6시간 만에 다른 게임에선 최고 레벨에나 접할 법한 다양한 협동·경쟁 콘텐츠를 만난다.

 

예를 들어 30레벨에 표사(일종의 화물 호위무사) 신분을 선택한 유저는 다른 유저들과 파티를 짜 화물을 호위해 돈을 벌 수 있다. 호위무사니 만큼 화물을 NPC와 다른 유저들로부터 지켜야 한다.


화물을 약탈한 유저가 강하면 살수(자객) 신분의 유저에게 암살을 의뢰해 복수할 수 있다. 돈을 벌기 위해 살인죄를 범한 살수 유저는 반대로 포쾌(경찰) 신분 유저에게 쫓긴다. 게임은 이렇게 신분(일종의 제 2 직업) 만으로도 물고 물리는 협동·경쟁을 촘촘하게 연출한다.

 

<천애명월도>는 이외에도 다른 유저와 파티를 맺고 보물 찾기를 한다거나, 방파(길드)원들과 저녁마다 모여 연회를 열거나, 갑자기 경마·퀴즈 대회가 열리는 등 곳곳에서 유저들이 '함께' 즐길 것을 늘어 놓는다. 던전이나 필드 보스, 결투(무협 식으로 말하면 논검) 같은 MMORPG의 전통적인 협동·경쟁 콘텐츠는 기본이다.

 

플레이 하루도 안 돼 다른 게임 최고 레벨 볼륨의 협동·경쟁 콘텐츠가 풀리는 셈. 최소한 다른 사람들과 제대로(?) 어울리기 위해 며칠을 투자해야 할 일은 없다.

성장 과정 중 이런 협동·경쟁 콘텐츠가 풀린다고 유저들이 성장에 바빠 이를 외면하는 것도 아니다. 30레벨이 사실상(?) 만렙이라고 느껴질 정도의 빠른 캐릭터 완성, 그리고 하루에 십수 분 투자로 몇 레벨을 순식같에 올릴 수 있는 파격적인 시스템이 만든 가벼운 성장 밸런스 덕이다. 

 

내 레벨이 너무(?) 높아 메인 퀘스트나 다른 협동 콘텐츠와 맞지 않아도 상관 없다. 이런 콘텐츠의 보상은 장비가 아니라, 능력치를 올릴 수 있는 영약, 스킬을 연마하는데 쓰이는 수양, 무공 비급 조각, 다른 유저와 거래할 때 쓰이는 화폐 등 언제든 쓸모가 있는 것이기에. 

 

덕분에 유저들은 성장에 대한 스트레스 없이, 자기가 좋아하거나 자신에게 득이 되는 협동·경쟁 콘텐츠를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유저 간의 소소한 커뮤니케이션이 발생하고, 이는 곧 성장 이상으로 유저가 게임을 계속 할 동기를 만들어 준다.

 

RPG의 가장 큰 무기인 성장을 과감히 쳐낸 대신, MMO의 강점인 '사람과의 관계'를 더 폭 넓게, 빨리 가져온 것. 그리고 이것은 성장의 재미는 모바일 RPG 등 다른 장르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게 된, 반면 MMO가 주는 관계의 재미를 느끼기엔 긴 플레이 타임이 부담스러운 '지금'의 PC MMORPG 유저에게 어필했다. 적어도 나같이 회사 다니느라 게임할 시간이 적은 아저씨(?) 유저들에겐. 

# 모바일식 성장 공식이 만든 부담 없고 자유로운 '핵심 경험'

 

물론 <천애명월도>가 아무리 관계에 집중했다고 해도, MMORPG의 플레이 타임 대부분은 '솔로' 플레이이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게임은 다른 작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벼운 성장의 재미로, 어떻게 플레이 타임의 대부분을 차지할 '솔로잉' 부분을 잡아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천애명월도>는 가벼운 성장을 역이용해 유저에게 자유와 선택지를 내밀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그런 '느낌'을 선사했다.

 

<천애명월도>는 다른 유명 MMORPG에 비해 메인 퀘스트의 배치도 성기고 그 수도 많지 않다. 보통 MMORPG에서 메인 퀘스트와 함께 수행하는 '서브 퀘스트'도 그 수가 다른 게임에 비해 압도적으로 적고, 메인 퀘스트의 흐름과는 동선이 많은 경우도 대부분이다. 다른 PC MMORPG에선 단점으로 지적될 부분이다. 

 

하지만 <천애명월도>에선 오히려 이게 장점으로 승화된다. 앞서 말했던 부담 없는 성장 덕이다.

<천애명월도>는 다른 MMORPG보다 성장에 대한 부담이 극도로 적고, 하루에 할 수 있는 레벨 업의 대부분을 게임을 켠지 한 시간도 안 돼 모두 이룰 수 있는 작품이다. (심지어 게임 내에서 살 수 있는 아이템을 사용하면 5분도 안 돼 하루치 성장 대부분이 끝난다)

 

RPG의 지상 과제(?)인 레벨 업이 부담 없고 금방 끝나니 오히려 유저에겐 자유가 주어진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면 메인 스토리를 따라가면 되고, 장비를 얻고 싶으면 던전만 뺑뺑 돌아도 된다.


곳곳에 숨어 있는 서브 퀘스트를 해도 되고, 경치 좋은 곳에 숨겨져 있는 비역에서 기연을 얻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콘텐츠를 즐기면 '언제 얻어도' 유저에게 득이 되는 보상이 주어진다.

 

유저의 동선이 꼬여 플레이가 난잡해 질 수 있다는 위험도 군더더기를 때고 '핵심'만 남기는 식으로 해결했다. 메인 퀘스트라면 복잡한 동선 없이 일반 몬스터 사냥이나 아이템 수집은 5분도 안 돼 끝나게 만들어 놓고, 대신 보스전만 PVP를 연상시킬 정도로 힘을 줬다.


서브 퀘스트는 이야기 자체는 짧지만, 전부 무의미한 반복이 아니라 저마다 사연이 있는 '이야기'다. 설사 유저의 동선이 흐트러져도 '하늘을 나는' 경공 덕에 큰 불편은 없다.

하늘을 날고 탈 것보다 빠른 경공 덕에 '동선' 때문에 오는 불편함은 거의 없었다. 빼어난 세계 묘사와 경공 자체의 호쾌한 연출 덕에 이동 자체가 지루하지 않았다는 점도 플러스 요소.

유저가 성장에 부담을 느끼지 않기에, 그리고 어디서든 '의미 있는' 보상을 얻을 수 있기에 자유롭게 세계를 누빌 수 있는 셈이다. 유저는 게임에 접속했을 때, 하루치 성장에 쓸 잠깐의 시간 이후엔 '자유롭게' 콘텐츠를 즐기며 성장한 것을 체감하면 된다.

 

정해진 동선 내에서 정교하게 연출된 경험을 하는 대부분의 PC MMORPG와는 다른 방식이다. 오히려 유저가 성장을 위해 '직접' 투자해야 시간은 적고 '실제' 플레이에선 성장한 것만 체감하면 되는 모바일 RPG의 성장 공식과 더 유사하다. 이게 전통적인 MMORPG 경험을 원하는 이들에겐 어떨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이 긴 플레이 타임이 부담스러운 유저, 혹은 생업에 바쁜 유저들에게 먹혔다.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도 사람들이 PC MMORPG에 기대하는 다른 유저와의 교류, 여행과 탐험, 성장이라는 재미는 어떤 식으로든 선보였다.


유저 간의 교류는 '신분'이나 '월드 이벤트' 등 촘촘한 시스템과 파격적인 성장 난이도로, 성장의 재미는 하루치 플레이 타임 초기에 화끈하게 숫자 인플레를 주고 나머지 시간엔 이 결과만 누리게 하는 방식으로. 기존 PC MMORPG와는 다소 다른 문법으로 MMORPG의 재미를 구현한 셈.

좌선, 소탕 등 레벨을 빨리 올릴 기회가 많아 오히려 성장에 대한 부담이 적다.

# 마치며


한국 PC MMORPG의 주류인 '테마파크'형 문법이 대중화 된 것이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이다. 옛날부터 PC MMORPG를 즐겼던 이들에겐 이 문법이 너무 많이 반복됐고, PC MMORPG를 잘 하지 않는 유저들에겐 이 문법 위에 정립된 유무형의 노하우가 부담으로 다가왔다.


시장에는 성장 같은 별다른 준비 없이 바로 핵심 재미로 다가갈 수 있는 게임들이 점점 늘어난 반면, MMORPG는 RPG라는 장르의 원류 때문인지 크든 작든 간에 성장이라는 준비를 요했다. 


때문에 나 같은 게임할 시간이 없어 회사에서 모바일 RPG 돌리고, 집에선 1~2시간만 게임하는 사람에겐 PC MMORPG가 점점 멀어졌다. (천애명월도의 성적을 보면 나 같은 유저가 소수는 아닌 것 같다)


<천애명월도>를 요즘 게임 환경에 너무도 잘 어울리는 게임이라고 평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옛 감성으로 보면 구멍도 있고 짜임새도 헐겁지만, 내가 '당장' 게임에서 '만렙같은'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장점 앞에선 이것이 별 의미 없어졌다.


어찌 보면 느릿하고 허술해 보이는 초식 속에 필살검이 숨겨진 고수의 칼놀림 같은 게임이고, 어찌 보면 차근차근 단단하게 기반을 다져가는 이야기보다 임펙트 있는 장면들로 이뤄진 이야기가 더 먹히는 최근 트렌드의 반영이다.


<천애명월도>가 낸 답이 왕도인지, 편법일진 알 수 없다. 다만 생업에 종사하는 30대 유저, 앞으로 계속 PC MMORPG를 하고 싶은 유저로서, <천애명월도>의 답이 정석까진 아니어도 화두는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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