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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게임은 규제와 탄압의 대상이 되는가?

조회수 2017. 10. 30. 16:1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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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부터 게임까지, '청소년의 여가 활동' 그 수난의 역사

# 서론

 

왜 게임은 규제와 탄압의 대상이 되는 것일까?

 

이 글은 지난번에 썼던 '확률형 아이템은 도박인가?' (​참고 링크) 에 이어서 쓰는 글이다. 지난 글을 읽지 않아도 본 글을 읽는 데 지장은 없지만 될 수 있으면 앞뒤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전 글을 읽어보실 것을 권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  제 21조 ②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제 22조 ①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  제 37조 ①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 ②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데도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는 모든 문화콘텐츠가 '규제와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음반, 영화, 드라마, 출판, 애니메이션 등은 철저한 사전심의를 거친 후에야 대중들에게 공개될 수 있었고, 대체로 정권이 원하는 사상적 방향성에 맞춰야만 했다. 헌법이 규정하는 예술의 자유는 보장되지 못했다. 그런데도 정치적 사회적 메시지가 담기지 않은 3S(Sex, Sports, Screen) 코드의 산업인 경우 정책적인 비호 아래 80년대에 들어 도리어 발전하기도 했다.​

 

이 와중에 가장 극심한 타격을 받은 산업은 바로 '출판만화'와 '애니메이션'이었다. 특히 출판만화의 경우 거의 괴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는데, 심지어 ‘(불량)만화 불태우기 운동’ 같은 중국 문화대혁명 시절에나 볼 수 있었던 현대판 분서갱유를 무려 관변단체 주도로 시행했으며, 거기에 일반 시민들이 대거 동참하면서 만화는 사회악이 되었다.

 

다른 문화콘텐츠는 정치-사회적인 비판 메시지를 피하고, 성인들을 타깃으로 상업성을 띠게 되었다. 비록 표현의 자유는 없었지만 ‘낭만적 시대'나 '자극적 소재'를 바탕으로 제작기술은 발전해 나갔다. 이는 산업과 시장규모의 확산으로 이어졌는데, 만화의 경우 어둡고 음침한 만화방(대본소)용으로 소규모 출판될 정도로 몰락해 버렸고, 애니메이션의 경우 완벽하게 미국과 일본제작사들의 하청공장으로 전락해 버렸다. 80년대 디즈니와 일본의 유명한 애니메이션의 원화는 다 한국에서 그려졌다.

 

 

# 왜 하필 만화와 애니메이션만 몰락했을까?

 

왜 당시 모든 문화콘텐츠가 정부의 규제와 심의의 대상이었지만 유독 만화와 애니메이션만 산업 자체의 근간이 흔들릴 정도로 심하게 몰락했을까? 내 관점에서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고객)으로 하는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대한민국 부모들의 ‘자식 사랑’과 ‘교육열’은 전 세계 어느 국가보다 유별나게 높다. 먹고 살기 힘들었던 과거에도 '교육만이 가난을 탈피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 굳게 믿었고, 먹고 살만큼은 되지만 사는 것은 빡빡한 요즘 같은 시대에도 진정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역시 '교육을 통해 더 높은 삶의 질’을 획득해야 한다고 믿는다. 유감스럽지만 여기서 ‘교육이란 단지 명문대학에 합격하기 위한 입시 준비에 국한’되어 있다.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는 정치적 목적으로 문화콘텐츠에 대한 규제와 탄압이 전방위에 걸쳤는데, 하필 그중에서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경우 ‘유해하다’는 정부의 선전이 온 국민에게 제대로 통했다. 그 결과로 두 개의 산업은 회생불능의 타격을 입었다는 것이 과거 한국의 출판만화와 창작 애니메이션이 겪은 참담한 고통이다.

 

그 무렵, 만화는 ‘만화방’에서만 볼 수 있고 애니메이션은 투철한 반공 선전용인 ‘똘이장군 시리즈’나 보던 그 시절에 ‘게임’이 처음 대한민국에 등장한다. <인베이더>, <갤러그>, <제비우스> 같은 일본에서 히트한 슈팅 게임들이 아케이드용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하필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인기를 끌게 된 지라 곧 만화와 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게임을 하던 장소인 ‘오락장’도 만화를 보던 ‘만화방’처럼 '청소년에게 해로운 장소'로 낙인 찍힌 것이다. 당시 정부와 모든 국민학교(초등학교)에서는 ‘만화방’ ‘오락장’ ‘불량식품’을 ‘3대 악’으로 규정하는 캠페인을 활발하게 전개했는데, 대다수 부모는 ‘행여 내 자식에게 해가 될까 봐 두려워서’ 그 캠페인을 자발적으로 충실하게 실행했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만화방’을 가고 ‘오락장’에 가는 청소년들은 부모의 관심을 잃은 속칭 ‘불량학생들’만이 가는 곳이 되어 버렸다. 어둡고, 칙칙하고 담배 연기 자욱한, 음침한 곳이 되어 버렸다. 암흑기는 오랫동안 지속되었고, 만화와 게임에 대한 국민의 생각은 ‘내 자식들에게 해로운 몹시 나쁜 것’이라고 인식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만화의 경우는 그러한 탄압과 규제의 와중에도 허영만, 이현세 같은 걸출한 작가들이 등장해서 청소년을 넘어 성인들까지 독자로 끌어들이는 저변확대에 성공했다. 또한, 어린이, 청소년 잡지창간과 다양한 신인 작가들의 연재가 이뤄지면서 점차 부정적 관점에서 긍정적 관점으로 변화해 나갔다. 그리고 ‘웹툰 시대’를 맞이하면서 진정한 산업으로서의 잠재력도 터졌고, 영화나 드라마 등의 소재로도 활발하게 사용되면서부터 부정적 인식을 상당 부분 거둬낼 수 있었다.

 

하지만 게임의 경우 ‘오락실’에서 'PC 패키지게임' 시대로 넘어가고 (마니아들을 위한 콘솔 게임이 있지만 이건 100% 수입품이니 논외로 치자) '온라인게임' 시대를 거쳐 작금의 '모바일게임'으로 오는 동안에도 여전히 ‘해로운 것’이라는 근본적인 인식이 바뀌지 않았다. 그 이유는 2000년대 이후 청소년들의 여가문화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게임이기 때문이다.

 

 

# 게임혐오의 근본적인 원인

입시제도는 날로 복잡해지고, 청소년들은 과거처럼 그냥 학교 공부만 충실한 것만으로는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없는 현실에 살고 있다. 따라서 요즘 청소년들은 거의 하루의 대부분을 공부에만 할애해야 하는 불쌍한 입장이 되어 버렸다. 반면 부모 입장에서는 (사)교육비가 가계에 부담스러운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내 자식의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데 '게임을 하는 내 애를 보면 속이 터져 버리는 현실'에 직면한다는 것이 근본적인 '게임혐오'의 원인이다. 

 

즉, ‘저 나쁜 게임 때문에 내 아들이 공부를 하지 않고 성적도 나쁜 것이다’라는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게임은 계속 ‘내 자녀의 공부를 방해하는 주범’이자 '원망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 과거 독재정권 시절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정치적인 이유로 게임은 규제와 탄압의 대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 마디로 ‘게임은 육성보다는 탄압하는 편’이 유권자들의 표심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좀 오버해서 말하면 ‘종교인 과세’나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폐지’를 쉽사리 정치인들이 손댈 수 없는 것처럼 ‘게임에 대한 규제’는 계속하는 것이 선거 때 선출직 정치인들에게 유리하다.

 

총기사고가 시시때때로 일어나는 미국에서도 ‘총 쏘는 게임(FPS)이 총기사고와는 무관하다'고 유권해석하고 같은, 그야말로 '게이머가 범죄자가 되어 온 도시를 헤집고 다니는 과격한 게임'도 범죄의 원인이라고 몰아붙이지 않는다. 도리어 '게임은 두뇌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가 활발하게 나오는데 오직 한국만이 게임이 '청소년에게 유해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모 방송 뉴스에서 게임의 폭력성을 실험한답시고 피시방에서 한참 게임 중인 애들에게 예고 없이 전원을 통째로 내렸다. (당연히) 욕하는 애들을 보여주며 ‘게임 때문에 애들이 폭력적으로 변했다’는 과학적(?) 실험결과라고 내보내는 현실이다. 

 

고스톱 화투판이나 바둑판을 누군가 예고 없이 발로 차면 욕하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그런데도 그런 황당한 방송의 이유는 ‘게임 때문에 내 자식이 공부하지 않고 그래서 성적이 나쁘다’는 모든 부모의 굳건한 믿음(사실은 책임 전가)을 깰 수가 없기 때문이다. 믿고 싶은 것을 더 굳건하게 믿도록 던져준 셈이다.

 

 

# 게임산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게임물관리위원회

 

게임을 심의하는 게임물관리위원회는 2006년도에 생겨났는데, 2년의 임기를 가진 위원회의 구성원은 지금까지 수십 명이 넘게 거쳐 갔다. 놀랍게도 내 기준에서 ‘이 사람은 게임업계 종사자’라고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대신 ‘청소년 보호’, ‘아동심리 관련 종사자’, ‘경찰’들은 유독 많이 보이더라. 심의위원 중에 단 한 명도 게임 콘텐츠를 직접 제작해 보거나 혹은 유통해 본 현업출신 전문가는 내 눈에는 안 보였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정권은 바뀌었어도 ‘정부가 게임을 어떤 관점에서 보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라 생각된다. 오직 규제의 대상으로만 보고 있는 군사정권 시절과 여전히 인식의 차이가 별다른 바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게임산업에 대한 기본적인 애정이 없는 (사실은 규제의 대상으로 보는) 사람들이 주로 게임물을 관리하다 보니 현 여명숙 위원장의 경우 <큐라레: 마법도서관> 같은 게임을 ‘벗기기 게임’이라고 지칭한 것이고, 국감에 나와 ‘게임판 농단이 심각하다’는 본인이 담당 책임자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제3의 관찰자적인 화법을 구사하는 것이다. 그 어떤 영화인도 아무리 완성도가 떨어지는 영화일망정 ‘쓰레기 영화’라고 비하하지는 않는다. 

 

여명숙 위원장의 '벗기기 게임' 발언은 그녀의 게임에 대한 혐오인식을 여과 없이 보여준 하나의 사례라 생각한다. 현 위원장의 잔여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다음번에는 정말 게임산업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이 있는 사람이 취임하게 되기를 바란다.

 

 

# 왜 청소년들은 게임을 많이 하게 된 것일까?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청소년들이 게임을 많이 하는 이유는 그들에게 다른 여가문화로서의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과거처럼 동네에서 친구들과 함께 뛰노는 환경도 아니고, 먹고 살기 바쁜 부모들이 ‘아이와 함께 하는 여가생활’은 극도로 부족한 가운데 일찍부터 우리 아이들은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통해 ‘혼자 노는 것’에 익숙하고 단지 그 속에서 ‘게임’을 일찍부터 가장 많이 하게 되었을 뿐이다.

 

만약 부모가 아이가 게임을 하는 것이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함께 할 수 있는 가족 여가문화로서의 대안’을 찾아서 내 아이와 함께하면 된다. 혹은 아이가 게임을 하지 못하도록 제대로 된 통제를 하면 된다. 하지만 둘 다 하지 않는다. 둘 다 귀찮고 피곤한 일이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해결해야 할 그 귀찮은 일을 국가가 대신해 주기를 바란다. 나는 내 아이와 함께 막장 드라마나 야구 중계를 보기를 원하지만, 아이가 싫어하니 함께 할 수 없고 혹은 '게임을 하지 말라'는 것을 잔소리로 듣는 아이를 합리적으로 설득할 자신이 없으니 그 귀찮음을 오롯이 정부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봐라, 게임은 해로운 것이라고 국가에서 말하고 뉴스에서 나오지 않니. 그러니 이제 게임은 그만하고, 공부나 하렴.’ 혹은 ‘각종 규제 때문에 게임회사들이 다 망해 버리면 더는 게임이 시장에 나오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우리 애가 할 게임이 없어질 것이다. 그러면 우리 애는 공부할 거야’라는 이상한 삼단논법의 결론이 완성되는 것이다. 

 

억측 같은가? 대다수 게임규제를 찬성하는 학부모들의 보편적인 생각이다. 그리고 좀 더 정치색을 담아서 이야기하자면 여성가족부와 관련된 사람들의 생각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부모들에게 묻고 싶다. 미풍양속을 무너뜨리는 ‘막장 드라마’는 괜찮고 내 아이가 하는 ‘사행성 게임’은 나쁜 것인지… '게임중독'과 '알코올중독' 중에서 어떤 것이 우리 사회와 내 가족에게 더 심각한 문제인지 말이다.

 

 

# 마치며 

규제라는 것은 모든 일에 가장 손쉬운 해결방법이다. 하지만 충분한 논의와 수렴과정 없는 규제는 비민주적일뿐더러 헌법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아기공룡 둘리'가 불량만화로 몰렸던 과거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적어도 현 정부와 집권당은 민주적 의견수렴과 절차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고 생각하고 있기에 그 어떤 규제도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이룬 후에야 결론 내릴 것을 희망한다. 지금 장문의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고 손혜원 의원을 포함한 ‘게임의 유해성’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정치인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내용이기도 하다. 이 문제에 관련한 그 어떤 토론도 언제든 환영한다.

 

다음번에는 ‘업계 자신의 변화’를 주제로 글을 쓸 생각이다. 결국은 업계 내부의 반성과 성찰이 우선이고 그래야 건전한 콘텐츠로서의 창작과 산업으로서의 발전을 동시에 가능케 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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