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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이즈게임

혼자 일본어 번역하고, 검수까지! 1인 게임 개발 도전기 ⑤

검수를 부탁할 사람이 없어 혼자 번역하고 검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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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는 사운드 에디팅 작업을 통해 한글 버전 게임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다뤘습니다. 게임 내 요소(스토리, 이미지, 사운드, GUI 등)가 모두 갖춰진 만큼, 만약 국내 발매를 목표로 했다면 개발 작업이 완료되는 순간이었겠네요.

 

하지만, 필자의 게임은 어디까지나 일본 동인 시장에 발매하는 것을 목표로 만들어졌습니다. 즉, 한글 버전으로 완성된 게임을 이제 일본어로 번역하는 일이 남은 것이죠.

 

 

# 일단은 혼자서 번역 개시!

 

번역 작업에 들어가면서 다행스러웠던 점은, 필자의 주특기가 일본어였다는 점이었습니다. JLPT N1급을 보유한 덕분에 평소 통번역 관련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고, 취미 생활로 일본 내 커뮤니티 활동을 해온 덕분에 나름 혼자서도 번역이 되겠다 예상했죠.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쓰는 일본어와 소설 같은 문어체 표현에는 다소 차이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작중 배경이 동양 판타지 세계관인지라 영어 등의 외래어를 쓸 수 없다는 제한사항도 있었고요. 누군가에게 내놓을 게임을 만드는 만큼, 평소라면 생각 없이 쓰던 말들도 이젠 문법을 민감하게 봐야 했습니다.

 

일단 네이버 일본어 사전과 야후재팬을 한쪽에 띄워놓고 번역 개시. 이 상황에서 이 한자를 쓰는 게 맞는지, 형용사나 동사 등을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맞는지 하나하나 따져보면서 작업에 들어가니 아무래도 평소보다 작업 속도가 더디게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필자는 바르다고 생각했던 표현이 실제로는 문법에 맞지 않는 경우도 있을 테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 수준까진 아니겠지만서도...​

번역 개시 직후 첫번째로 막힌 부분은 메인 히로인의 대사였습니다. 메인 히로인은 평생을 왕궁에서 자라오며 공주-여왕 테크를 탄 캐릭터인지라 궁중 어투를 사용해야 했는데, 이걸 일본어로 표현하려니 극존칭과 존경어, 고어(古語)의 파라다이스가 열렸죠. 사극에서 공주나 왕비가 사용하는 말투가 일상에서 쓰는 말들과 많이 다른 것처럼요.

 

일본에서는 학교 수업에서 고문(古文) 과목을 따로 배운다지만, 토종 한국인인 필자가 이걸 접할 일도 없었고... 아는 지식이라고는 사무라이 영화나 옛날 배경인 애니메이션에서 본 게 전부였죠. 그래서 일본어 고어 사전도 따로 샀더니 이건 단어집에 가까워 찾아보기도 어려웠고... 아니 뭐 단어를 알아야 찾아보든 말든!

 

그나마 고어 부분을 빼면 비즈니스 일본어가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어서 그쪽으로 살짝 노선 변경. 무리해서 잘 쓰이지도 않는 고어를 넣어봤자 유저들도 어려워하겠지 하는 생각도 들었네요. 실제 고어와 관련해서 일본 웹을 뒤져보니 "이게 대체 무슨 뜻이야~" 하고 멘붕하는 사람도 여럿 있었고요.​ 

평소엔 맨 왼쪽줄에 있는 '일반 표현'만 썼는데... 존경어에 겸양어에... 아아악!

혹시나 싶어 일본어 고어 사전도 샀는데... 이건 기본적으로 단어를 알아야 찾을 수 있는 물건.
아니, 뜻이 문제가 아니라 어떤 단어를 써야 하는지 모른다고!​

​히로인의 어투 외에도 한글로 시나리오를 쓸 때는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이 제법 걸림돌이 됐습니다. 한국어와 일본어가 표현이나 어순 등에서 공통점이 많다고는 해도, 엄연히 다른 나라의 언어인 만큼 차이점도 존재했거든요. 특히 한국에서는 일상적으로 쓰이는 표현이 일본에서는 전혀 쓰이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야후재팬에 검색해 봤을 때 걸러져 나왔습니다. '비상대기체제', '직위해제', '고슴도치가 되다' 등등. ('벌집이 되다'라는 표현은 다행히 일본에서도 똑같이 쓰이네요) 야후재팬에서 검색해 봤을 때 검색 결과가 한국 뉴스의 직역 문서밖에 없고, 일본인이 작성한 문서가 전혀 없다는 점을 보면 "아, 이건 한국에서만 쓰이는 표현이구나" 싶더라고요.​

'직위해제'라는 단어를 찾아봤더니 한국 뉴스기사의 직역 문서만 수두룩... 일본에선 안 쓰는 말이네요.

그나마 대체할 표현이 있는 경우는 다행이었는데... 아예 대체 용어 자체가 없어 멘붕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동질감을 느끼다'라는 표현이 대표적이죠. 저 사람은 나와 비슷한 존재였구나, 나와 비슷한 삶을 살아왔구나 등의 상황에서 느끼는 '동질감'이요.

일본에는 문화의 차이인지 이 동질감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었습니다. 애써 검색을 해봐도 한국어를 공부하는 일본인이 올린 "한국말에서 동질감이라는 게 대체 무슨 뜻의 단어예요?" 하는 멘붕글밖에 보이지 않네요.

  

그렇다고 이걸 일본에서 쓰이는 단어인 '유대감'이나 '연대감'으로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예 뜻 자체가 다르니까요. 최종적으로는 '동질감'의 표현을 살짝 돌려서 '거울에 비친 모습'이라는 식으로 문장을 수정하기도 했습니다.​

'동질감을 느끼다'라는 표현을 일본어에선 어떻게 쓰나 찾아봤더니... 이런 멘붕글만 튀어나오네요.
잠깐, 그쪽 나라엔 그런 표현 자체가 없는 거야? 자기랑 비슷한 사람 보면 뭐라고 해??​

번역 과정에서 힘들었던 것보다도 충격적이었던 건, 필자가 앞서 한국어로 작성한 시나리오 자체에서도 잘못된 용어 사용이 몇 개씩 발견된 점이었습니다. 원문의 표현을 일본어 사전으로 뒤져보다가 단어의 사전의미 자체가 틀려있던 걸 발견한 셈인데요. 나름 지난 몇 년간 기자 일을 하면서 문법에는 민감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일상적으로 쓰던 표현 중에 '원래 이 용도로 쓸 수 없는 표현'이 몇 개씩 튀어나와 적잖이 충격받았습니다.

 

그런 부분을 포함해 하나하나 고쳐가면서 약 두 달에 걸쳐 1차 번역이 끝났습니다. 글 쓰고 그림 그리고 개발하던 때엔 작업 자체가 재미있어서 게임도 취미 생활도 끊고 올인할 수 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번역에 매달렸던 기간이 제일 힘들었던 것 같네요. 스트레스도 엄청 받고!(끊었던 게임도 다시 하고)

 

 

# 번역물의 검수를 맡기고 싶은데 너무너무 비싸!

 

시작부터 엔딩까지 1차 번역은 완료됐지만, 이 번역물은 완전한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어디까지나 1차 번역일 뿐이고, 중간중간에 틀린 표현도 잔뜩 있을 테니까요. 사전을 찾아보면서 고민해 넣은 표현 중에도 긴가민가한 부분이 아직 많았습니다.

 

아무리 일본어가 특기고 자격증까지 갖고 있다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외국인으로서' 일본어를 할 줄 아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현지에서 일상적으로 일본어를 쓰거나, 전문적으로 공부해 일본어 관련 직업을 가진 사람에 비한다면 아직 어린이 수준에 불과하죠.

 

때문에 완성된 번역물의 검수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 스스로의 번역 실력이 아직 부족하다는 점은 1차 번역 과정에서 뼈저리게 느꼈으니, 이번에야말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일본인에게 돈 받고 팔 게임을 만드는 건데,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스토리가 번역이 엉망이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일단 번역 외주를 받는 사람을 물색해 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프리랜서 번역가는 '번역 비용'만 산정하고 검수 의뢰는 따로 받지 않는 경우가 많네요. 번역 전문 업체의 경우 검수 의뢰도 받긴 하지만, 판타지 소설(전문분야)인 데다 분량도 많아(A4 기준 542페이지)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들었고요. 단순히 페이지당 만 원만 쳐도 이게 대체 얼마... 으아악.​ 

전문가에게 의뢰할 수 있는 길은 언제나 열려있습니다. 돈만 있으면요.(눈물)

이럴 줄 알았으면 학교 졸업한 뒤에도 고등학교 때 일본어 선생님께 스승의날에 좀 찾아뵙기도 하고 그럴걸... 하는 살짝 비겁한(?) 후회도 잠깐 해보고, 결국 자체 검수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돈 없는 1인 개발이 이래서 힘들어요. 투덜투덜.

 

다시 번역물을 처음부터 읽어보니 번역 할 당시에는 눈에 띄지 않았던 부분이 차례로 보여옵니다. '쓰는 입장'과 '읽는 입장'이 이렇게 다르네요. 일상적으로 쓰던 표현들도 번역 할 때엔 머리가 복잡해서 전혀 떠오르지 않았는데, 시간 여유를 갖고 다시 읽으니 그땐 생각나지 않던 표현들도 차례로 떠올랐고요.

 

같은 발음인데 한자를 잘못 쓴 경우, 오탈자가 있는 경우, 표현이 이상한 경우 등 수정할 부분이 참 많이도 나왔습니다. 다시 사전과 일본 웹을 찾아보면서 수정하는 데에 한세월. 그나마 번역 작업에 비하면 읽다가 이상한 거 수정하는 작업이라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네요.​ 

그래도 자체 검수를 하면서 '읽는 입장'이 되니 나름 많은 부분이 보이긴 했습니다.


# 일본어 클라이언트를 만들자! 근데 아직도 번역 틀린 부분이...!

 

텍스트 문서 상태로 번역과 검수를 마쳤으니 이제는 이걸 게임으로 옮길 차례였습니다.

 

우선 일본어 기반의 클라이언트가 필요했습니다. 앞서 작업한 게임 스크립트는 한글을 기반으로 만든 클라이언트였거든요. 렌파이에서 언어 설정을 바꾸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일본어 폰트를 프로젝트에 넣고 옵션 스크립트의 유니코드 설정을 바꾸는 방법. 그리고 또 하나는 렌파이 툴의 언어설정을 일본어로 바꾸고 새 프로젝트를 생성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전자의 경우 그동안 세팅했던 GUI나 여타 스크립트를 크게 건드리지 않고 폰트와 언어설정만 바꾸면 된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대신 렌파이의 버전이 바뀔 때마다 그 언어설정 방법도 계속 바뀌다 보니 현재 버전에 맞는 걸 찾기 어렵다는 단점도 있었죠. 가이드나 강좌 등이 대부분 옛날 버전이기도 했고요.

 

후자의 경우 언어 설정을 따로 할 필요가 없고 시스템 메시지나 기타 스토리 외 텍스트 부분도 처음부터 일본어로 세팅된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대신 프로젝트를 새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스토리 진행 스크립트, GUI 세팅 등은 앞서 작업한 한글판 게임에서 복사해와야 한다는 점이 약간 번거로웠습니다.

 

그나마 쉬운 방법은 후자였기 때문에 새롭게 일본어 기반 프로젝트를 생성하고, 한글판 프로젝트에서 각종 스크립트를 복사해 하나씩 붙여넣었습니다.​

렌파이 프로그램 자체의 언어설정을 일본어로 바꾼 뒤, 새 프로젝트를 만들었습니다.

다음은 번역 및 검수를 마친 시나리오를 한 줄씩 한글로 된 스크립트에 바꿔넣을 차례. 어라? 그런데 스크립트에 일본어를 넣고 저장 버튼을 누르니 몇몇 한자가 깨져버립니다. 저장 과정에서 일본식 한자가 날아가 버리는 문제가 생기네요.

 

아무래도 스크립트 편집기도 메모장처럼 윈도우 언어설정에 영향을 받는 것 같았습니다. 메모장에서도 일본식 한자가 들어간 문서는 저장 과정에서 유니코드 문제로 글씨가 깨지거든요.

 

그렇다면 제어판에서 윈도우의 시스템 로캘 설정을 아예 일본어로 변경. 흔히들 말하는 '일본어 윈도우'입니다. 아마 여러분 중에도 몇몇 독자분들은 이 기능을 사용해본 기억이 있을텐데요. 언제 왜 사용했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겠습니다. 젊을 땐 다 그런 거죠. 아하하.

 

어찌됐든, 시스템 로캘을 일본어로 변경하고 나니 이제 스크립트 편집기에서도 일본어가 정상적으로 저장됩니다. 이 상태로 한 줄씩 번역물을 옮기고, 동시에 재차 검수를 진행했습니다. 1차 검수에서 발견하지 못한 실수를 찾아내려면 두 번 세 번 다시 읽어보는 게 필수였으니까요.

시스템 로캘을 일본어로 변경해야만 메모장이나 스크립트 편집기에서 일본어로 저장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은 번역된 대사들을 스크립트에 한줄한줄 붙여넣기!
이 과정에서 혹시 틀린 표현이 없는지 다시 검수를 진행했습니다.​

그렇게 며칠에 걸쳐 2차 검수 및 스크립트 옮기기도 완료. 텍스트를 한줄 한줄 옮기는 과정에서도 여전히 번역 오류가 눈에 띄긴 했지만, 이제 얼추 완성품의 형태가 갖춰져 갔습니다.

 

스크립트를 전부 옮겼으니 이번엔 다시 게임 화면으로 처음 부분부터 테스트 플레이 겸 3차 검수. 엔딩까지 보고 나서 다시 처음부터 플레이 겸 4차 검수.

 

...세상에, 검수를 4번이나 하는데도 아직도 오탈자나 어색한 표현이 보이네요. 스스로 특기라고 생각했던 일본어 능력이 이렇게나 엉망이었다니, 반성 또 반성.

 

그래도 여러 번 반복해서 검수한 끝에 최종 수정본이 완성됐습니다. 끝으로 프로젝트 내의 이미지나 음원도 전용 포맷으로 아카이브화 하고, 윈도우용 게임 클라이언트로 출력 완료! 처음 스토리 작성에 들어가고부터 약 6개월에 걸친 기나긴 싸움 끝에 드디어 '판매 가능한 상태의 일본어 비주얼 노벨 게임'이 완성된 것이었습니다.​

오랜 여정 끝에 일본에 출시할 수 있는 상태의 비주얼노벨 게임이 드디어 완성!

잠깐 감격의 눈물 좀 흘리고, 한 이틀 정도만 그동안 하고 싶었던 게임도 좀 하고. 게임 제작에 관한 파트는 이걸로 일단락됐으니, 다음은 이 게임을 어떻게 세상에 내보내야 할지를 고민할 차례였습니다.

 

그리고 그 시점까지는 차마 몰랐습니다. 신병교육대 훈련 끝났다고 군 생활이 끝나는 게 아닌 것처럼, 진짜 생지옥은 이때부터 시작이었다는 것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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