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메뉴 바로가기

댓글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뷰 본문

더 비비드

샤론스톤도 썼던 한국 화장품, 27억 부도 위기 이후 근황

49,406 읽음
댓글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중국 유학 후 여성 최초 카지노 마케터로 입사

해외 바이어 우연한 만남 계기로 화장품 업계 입문

가족의 27억원 횡령...아픔 딛고 재기 성공

케이뷰티의 기반을 다진 뉴코스 김은희 대표

출처뉴코스


한국 화장품은 효자 수출 품목이다. 2019년 화장품의 무역수지 흑자는 6조1503억원. 2012년부터 8년 연속 흑자다. 중국 사드로 인한 한한령과 코로나19 감염병 사태 속에서도 케이뷰티(K-beauty) 위상은 확고하다.


케이뷰티의 중심엔 한국의 중소 화장품 제조업체가 있다. 우리나라 중소 업체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유럽과 미국의 명품 화장품을 오랫동안 위탁생산 해왔다. 화장품별로 브랜드는 달라도 제조사는 ‘made in korea’였다. 이때 쌓은 기술력이 지금 케이뷰티 기반이 됐다.


김은희 뉴코스 대표는 케이뷰티를 이끈 주역 중 한 사람이다. 화장품을 기획·마케팅하고 해외 수출도 한다. 16년간 에스티로더, 메이크업포에버, 스틸라 등 50여개 명품 브랜드와 함께 180여개 제품을 개발했다. 화장품 업계의 대모로 불리는 김은희 대표를 만났다.


◇화장품 공장을 들썩이게 한 대학생

뉴코스는 과거 고급 화장품 브랜드 메이크업 포에버에도 제품을 납품했다.

출처뉴코스

블링글로우 바이 이슬의 블링 믹스매치 컨실러를 든 메이크업 아티스트 이슬


뉴코스는 규모는 작지만 독창적인 화장품 용기와 제형 덕분에 화려한 포트폴리오를 자랑한다. 한때 내로라하는 유명 명품 화장품 브랜드에 ODM(제조업체가 개발과 생산까지 해서 주문자에게 납품하는 방식)으로 공급했다. “세포라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 딱지가 붙은 색조 제품은 대부분 제가 론칭한 겁니다.” 세포라는 프랑스 명품 그룹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가 운영하는 화장품 전문 매장이다.


그동안 쌓은 기술력을 기반으로 최근 색조 화장품 브랜드 ‘블링글로우 바이 이슬’를 내놨다. 지난해 8월 출시한 ‘블링 믹스매치 컨실러’는 ‘코덕’(화장품 애호가)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 온라인몰 등에서 3만개 판매를 돌파했다.

김 대표의 어릴 적 꿈은 카지노 경영자였다.

출처뉴코스


김 대표의 꿈은 원래 카지노 경영자였다. 세계 무대를 누빌 실력을 쌓기 위해 20대 초반에 유학길에 올랐다.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1994년 중국 북경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어학연수 차 떠났는데 해외 생활이 잘 맞아서 중국인민대학교에 입학했어요. 그러다 아버지가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설상가상 IMF 외환금융위기까지 터졌어요. 해외 유학생들이 우르르 돌아오던 시절이었죠. 저도 3년 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귀국 후 세종대 호텔경영학과에 편입했다. 용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구했지만 기업이 줄도산한터라 마땅한 자리가 없었다. “유니텔로 밤새 인터넷만 했습니다. 당시 가장 큰 포털 사이트였던 야후를 구경하다 오늘의 바이어, 오늘의 셀러(today’s buyer, today’s seller)라는 웹페이지를 발견했어요. 한국의 옷, 차, 화장품 등을 팔고 싶다는 해외 바이어들의 글이 눈에 들어왔어요. 별천지 같았죠.”


그 중에서도 ‘한국의 립펜슬을 구한다’는 대만 바이어의 글에 호기심이 동했다. 파우치 속 립펜슬의 제조사를 알아보니 대부분이 메이드인 코리아, 그것도 한 회사였다. 저마다 브랜드는 다른데, 제조사는 동일했다. 색조화장으로 주름잡던 화성화학(현 화성코스메틱)이라는 곳이었다. 


“곧장 경기도 부천에 있는 화성화학 공장에 찾아갔어요. 공장장님에게 대만에 제품을 수출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냐’ 물었죠. 그저 웃으셨어요. 무역하겠다는 사람이 하루 100명은 찾아오던 시절에 어린 대학생이 불쑥 찾아왔으니 진심으로 느껴지지 않았겠죠. 공장장님은 쇼핑백 두개에 온갖 화장품을 쓸어 담아주면서 저를 돌려보냈어요.”

김 대표는 대학생 때 우연한 기회로 화장품 업계에 뛰어들었다.

출처뉴코스


받은 제품 중 우드 립펜슬 다섯 색상을 대만 바이어에게 국제 특송으로 보냈다. 색상 별로 3000개씩, 총 1만5000개를 주문하겠다는 요청이 들어왔다. “이 사실을 화성화학에 전했더니 회사가 뒤집어졌어요. 별안간 나타난 학생이 제품을 가져간 지 2주만에 대량 주문을 받아 왔으니까요. 바이어에게는 선적방법, 주문서 작성법도 모르는 대학생이라고 토로했어요. 허허 웃으면 제게 맡겨보겠다 하더라고요. 곧바로 무역책부터 샀죠. 솔직함과 패기가 통했던 것 같아요.”


외환 보유고가 바닥났던 시절에 대학생 신분으로 달러를 벌어들였다. “학업과 무역일을 병행했습니다. 1년에 1000만~1500만원은 벌었어요. 학비도 제가 내고 용돈도 풍족했죠. 친구들에게 술도 많이 사줬고요. 하지만 호기심에 이 일을 시작했을 뿐 카지노 분야에 취업하겠다는 목표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여느 취업준비생처럼 열심히 구직 활동을 해서 2000년 제주도 카지노사의 마케팅 부서에 취직했습니다.”


◇여성 최초 카지노 마케터에서 화장품 회사 대표까지

김 대표는 28세에 화성화학 해외영업부의 팀장이 됐다.

출처뉴코스


여성 최초로 카지노에 딜러가 아닌 마케터로 입사했다. 꿈에 그리던 직장이었는데 예상과는 달랐다. “제주도에서 저는 ‘육지’ 사람이라 불리는 외지인이었고, 최초의 여성 마케터라는 수식어 때문에 항상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숨이 막혔죠. 게다가 카지노는 참가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고객이 이기면 하우스가 지고, 하우스가 지면 고객이 이기는 구조이거든요. 자괴감을 느꼈죠.”


입사 6개월만에 퇴사했다. 그 무렵 화성화학 사장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해외영업을 맡아 달라는 제안이었다. 2001년 28세에 화성화학 해외영업부의 팀장이 됐다. “새로 생긴 팀이라 팀원도 없고 해외 영업 기반도 전혀 없었어요. 매일 자정까지 일하며 웹사이트와 카탈로그를 제작하고 전시회 출품 준비를 했습니다. 바이어에게 보여줄 샘플이 필요하니까 항상 공장분들과 씨름했고요. ‘피곤한 계집애’라는 소리까지 들어가며 일했어요.”

김 대표는 전시회장에서 특유의 친화력을 발휘하며 바이어들과 두터운 친분을 쌓았다.

출처뉴코스


전시회장에선 관심 있게 찾아온 해외 바이어를 그냥 보내는 법이 없었다. 바이어들에게 직접 메이크업을 해줬다. "바이어들이 한국에 방문하면 명동에 데려가 도처에 널린 화성화학의 제품을 보여줬어요. 그만큼 제가 하는 일과 제품에 자신 있었어요."


2007년 화성화학의 해외 수출용 화장품 기획, 개발, 마케팅, 유통을 전담하는 회사 뉴코스가 설립됐다. "저는 팀장에서 한 법인의 대표가 됐죠. 1박 4일의 출장 일정을 소화했던 지난날의 고생이 보상받는 기분이었습니다.“


대표가 되자 추진력에 속도가 붙었다. 소장욕구를 불러 일으키는 신제품을 쏟아냈다. “사실 제가 생활은 게을러요. 그런데 예뻐 보이고는 싶죠. 하지만 화장은 부지런해야 해요. 전문 도구 없이 간단하게 화장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어요. 출장을 가면 꼭 현지 클럽의 화장실에 가서 여성들이 화장 고치는 모습을 관찰했고요.”

김 대표는 미국 유명인의 메이크업 아티스트 아나스타샤에게 세상에서 가장 얇은 아이브로우 펜슬을 납품했다.

출처뉴코스

김 대표가 개발해서 유명 브랜드에 론칭했던 대표작들. 색조 화장품과 어플리케이터를 결합한 2in1 제품과 가장 얇은 아이브로우, 삼격형 아이브로우 등이 인기였다.


화장 습관을 고려해 제품을 만들었더니 내놓는 족족 대박이 나면서 업계 미다스 손이 됐다. “오프라 윈프리, 샤론스톤, 미셸 오바마의 눈썹을 전담하는 아티스트 아나스타샤에게 세상에서 가장 얇은 아이브로우 펜슬을 납품했어요. 한해 600만개씩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갔죠. 삼각형 아이브로우 심지와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쿠션 틴트도 제가 최초로 개발했죠.”


◇정든 회사와 이별...가족의 배신

해외 바이어와 상담 중인 과거의 김 대표

출처뉴코스


2016년 화성화학과 결별 했다. 본사에서 새로운 해외사업 담당자에게 지금까지의 사업 내역을 인수인계 해달라는 요청을 해온 것이다. “섭섭했지만 지금의 저를 만들어준 인연이었기에 원망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참에 본격적으로 내 일을 해야겠다는 결심도 섰고요. 화장품 만드는 거 하나는 자신 있으니까요.”


‘섹시 포뮬라’라는 색조 브랜드를 론칭하고 붓으로 그리는 아이브로우 제품을 출시했다. 하지만 브랜딩과 마케팅이 만만치 않았다. "우리나라 화장품 산업이 부흥하고 있을 때라 홍보가 쉽지 않았어요. 제가 눈썹 그리는 영상을 찍어 페이스북 광고를 냈어요. 2주만에 1만개가 완판됐죠. 추가 주문을 받아야 하는데 공장 측 문제로 양산이 지연됐어요. 물 들어올 때 노 젓지 못하니까 관심이 확 사그라들더군요. 아쉬웠습니다.”

김 대표는 정든 화성화학과 결별한 직후 사촌동생의 자금횡령 사실을 알게되면서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다.

출처뉴코스


설상가상으로 13년간 옆에 두고 일했던 사촌동생이 회사 자금을 횡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총 27억원 규모의 금액이었다. “목돈이 필요해서 제 계좌를 확인했는데 돈이 한 푼도 없더라고요. 법인 계좌도 텅 비었고요. 해킹 당한 줄 알고 경찰서 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사촌동생이 진실을 털어놓았어요. 7년 간 회사자금을 빼돌렸다고요. 은행인 척 허위 거래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문자 전송 프로그램을 사용했대요.”


밀린 세금만 2억5000만원. 신사업에 집중할 겨를도 없이 지루한 법적공방에 들어갔다. “횡령 사실이 밝혀지고 직원이 모두 회사를 관뒀습니다. 명품 가방, 팔찌를 팔아가며 세금을 메꿨어요. 경찰서에서는 2010년부터 2017년까지의 모든 거래 내역을 1원도 빠트리지 말고 엑셀에 정리해달라고 하더군요. 남편은 다니던 회사까지 관두고 저를 도와줬어요. 판결까지 1년 넘게 걸렸는데 집행유예가 나왔습니다. 초범에 친인척 관계라는 이유였죠.”


◇청담동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손잡고 재기

블링글로우의 글리터 라이너(왼쪽)과 크림 파우더 섀도우 홍보 이미지. 메이크업 아티스트 이슬 실장 본인이 모델이다.


모든 아픔을 딛고 재기할 아이템을 찾아 나섰다. 청담동 메이크업숍 우아프(OOAF)의 이슬 실장을 발견했다. “인스타그램에서 이 분의 메이크업 영상을 즐겨봤습니다. 메이크업을 화사하고 깔끔하게 잘 하는 분이거든요. 이슬님에게 메시지를 보냈어요. 같이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고요. 메이크업 이해도가 높은 전문가와 함께하면 시너지가 날 것 같았습니다.”


7개월 간의 논의 끝에 2019년 3월 블링글로우 바이 이슬 브랜드를 론칭했다. 1호 제품은 스틱형 글리터 섀도우였다. “브랜드 이름처럼 얼굴을 화사하게 만들어주는 아이템을 개발하자고 합의했어요. 간단한 터치만으로 극적인 연출을 가능하게 하는 게 관건이었죠. 첫 제품인 크림파우더 섀도우가 선방했습니다. 지금까지 2만개 나갔어요. 가루 날림이 심한 기존의 팔레트형 글리터 새도우의 단점을 보완한 덕입니다.”

블링글로우의 립 크레용(왼쪽)과 리퀴드 크림 블러셔(오른쪽). 블러셔는 다른 색상끼리 섞어 쓸 수 있다.


차곡차곡 준비한 차기작을 내놓으려 할 때 코로나19가 터졌다. 모든 사람이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는 시대가 온 것이다. 색조 화장품 업계에 악재 중 악재였다. 경쟁사가 신제품 출시를 꺼릴 때 김 대표는 강행했다. “‘더 잃을 것도 없다’는 배짱이었어요. 지난해 5월 글리터 라이너를 시작으로 한 달에 하나 꼴로 온라인으로 신제품을 냈어요.”


신제품을 기획할 때부터 기존 불편함을 개선하는 데 주력했다. 다크서클과 잡티커버에 특화된 믹스매치 컨실러는 기존 컨실러 제품의 단점을 없앤 덕분에 가장 인기가 좋다. “보통 팔레트 제품은 한 두가지 색상에만 손이 갑니다. 그게 늘 아쉬웠어요. 모든 색상에 손이 많이 가는 제품을 만들고 싶었죠. 잡티용에는 커버력이 강한 제형을, 다크서클용은 많이 발라도 주름 지지 않게 촉촉한 제형을 사용했습니다. 기존의 다크 서클 커버 제품은 녹색이 강한데 잘못 바르면 더 칙칙해 보입니다. 자연스러우면서도 화사한 연출을 위해 오렌지색을 넣었어요.”

김 대표의 목표는 블링글로우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우는 것이다.

출처뉴코스


김 대표는 질곡을 버틴 비결로 ‘신의’를 꼽았다. “바보 같은 소리로 들릴 수도 믿음과 의리 빼면 시체예요. 바이어들을 상대할 땐 잠을 포기해가며 일했습니다. 그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죠. 지금은 사랑하는 가족과 제 자신의 믿음을 위해 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쓸 수 있는 간편한 화장품을 만들겠다고 스스로 약속했거든요. 돈을 좇은 적은 없습니다. 열정을 좇다 보면 돈은 따라오더라고요.”


블링글로우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우는 게 목표다. “중국, 홍콩, 대만에 전 제품을 수출 중입니다. 중국에서는 글리터 라이너가 가장 잘 팔리고 대만에서는 컨실러 팔레트의 인기가 좋아요.


궁극적으로는 전세계 20~30대 소비자에게 ‘나도 예뻐질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을 주는 브랜드로 성장하고 싶어요. 모든 여성은 이미 아름답지만 블링글로우를 통해 더욱 반짝이게 해드리는 게 제 소망입니다.”


/진은혜 에디터

작성자 정보

더 비비드

    실시간 인기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잠시 후 다시 시도해 주세요 Please try again in a mo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