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어 입력폼

대통령 훈장까지 받았지만..쉰 넘어 대학 다시 갔습니다

조회수 2020. 6. 9. 08:57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34년 육군 원사로 전역 후 ‘인생 2막’ 고민

폴리텍대학 다니며 1년만에 자격증 3개 취득

국립춘천병원 시설관리 담당으로 재취업 성공


50대 이상 퇴직자의 절반 이상이 재취업이나 창업 전선에 뛰어든다. 60~75세가 신중년이라고 불리는 ‘100세 시대’. 마냥 놀면서 노후를 대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쉰이 넘은 나이에 새 일자리를 구하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34년 직업군인 생활을 마치고 국립 병원의 시설관리직으로 재취업한 이이철(55)씨를 만났다.


◇육군 공병 부사관으로 34년 복무


이씨는 육군 공병 부사관으로 34년 동안 군에서 복무했다. 해외에 두 차례 파병을 다녀오는 등 다양한 경력을 쌓았다. 1996년엔 아프리카 앙골라에 한국 공병부대 제2진으로 소속돼 6개월을 일했다. 2004년엔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돼 활주로 공사와 기지 시설물 보수 등을 맡았다. 총을 들고 싸우진 않았지만 목숨을 건 작업이 대부분이었다.

출처: 본인
여단 주임원사 임명식의 이이철씨(위)와 앙골라 파병 시절 건설에 참여한 다리


“앙골라에선 파괴된 교량과 도로 복구공사를 하면서 각종 대민 지원 활동 등 평화 유지 임무도 수행했습니다. 교량 건설 작업 땐 곳곳에 지뢰가 깔려 있어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았습니다. 인도군이 포기했던 작업인데 한국군이 결국 해내서 보람이 컸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 있을 땐 기지 안으로 박격포가 날아와 몸을 피해야 하는 일이 수시로 벌어졌습니다.”


국내로 복귀해선 ‘부사관의 별’이라는 주임원사를 오랫동안 맡았다. 주임원사는 지휘관을 보좌해 부대를 전반적으로 관리하는 역할이다. 사병들 사이에선 ‘어머니 같은 존재’라고도 불린다.


“4년 전쯤 40대 중반의 남자가 저를 수소문해서 찾아온 적이 있어요. 얼굴을 보니 20년 전쯤 제가 데리고 있던 병사였어요. 허리가 안 좋은 병사였는데, 제가 챙겨주면서 의가사제대도 시켜줬죠. 그 친구가 병사들 사이에 따돌림도 당하면서 몸과 마음 모두 힘들어 했었는데, 제가 잘 챙겨줘서 무사히 제대해 잘 살게 됐다며 정말 고맙다고 하더라고요. 맛있는 한정식을 대접받았는데, 정말 뿌듯했습니다.”

출처: 본인
주임원사 교육 수료식 기념사진을 찍는 이이철씨


병사들 사이 존경받는 간부였던 그는 작년 3월 제2공병여단 주임원사를 마지막으로 명예 전역을 했다. “정년까지 1년이 남아 있었지만, 인생 2막을 하루라도 빨리 준비하기 위해 제대를 앞당겼습니다.”


◇군 경력만으론 취업 힘들어 폴리텍 진학


재취업은 쉽지 않았다. 34년 베테랑 공병 부사관의 경력은 군대 밖에선 통하지 않았다. “부대 시설 관리 업무를 오래 했으니 그 분야에선 일자리를 어렵지 않게 구할 거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었어요. 공병 부대에서 오래 근무했을 뿐, 관련 자격증 취득 같은 준비가 돼 있지 않아서 군 경력만으론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웠습니다.”

출처: 본인
이이철씨


제대군인지원센터의 도움을 얻어 서울 도봉구 창동에 있는 전기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집이 있는 강원도 춘천에는 산업설비와 관련된 학원이 거의 없었어요. 결국 먼 서울까지 다니면서 기술을 배워야 했죠. 그런데 기차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춘천과 서울을 공부하려니 시간 소모도 많고 너무 비효율적이더라고요.”


그러다 한국폴리텍대학을 알게 됐다. “제대군인지원센터 교육 과정에 폴리텍대학 설명회가 포함돼 있었어요. 취업에 중점을 두고 현장에서 필요한 기술 교육을 해준다는 얘기를 들으니 나쁘지 않겠다 싶었죠. 특히 춘천에 캠퍼스가 있어서 기술 배우러 멀리 서울까지 다니지 않아도 돼서 좋았습니다.”

출처: 본인
제대하면서 받은 훈장증과 마라톤을 하는 이이철씨


작년 3월 폴리텍대학 춘천캠퍼스에 입학했다. 전공은 공병과 가장 밀접한 산업설비과로 정했다. “동기들 가운데 나이가 가장 많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60대도 2명이 있어 위안이 됐습니다. 교수님들이 나이 많은 제자들을 꺼리는 게 아닌가 걱정도 있었는데요. 5060 학생들이 면학 분위기를 주도한다고 오히려 좋아하셨습니다. 시니어끼리 전공이나 자격증 공부하는 모임을 조직해서 정보 교류도 하면서 잘 지냈거든요.”


주임원사 시절 병사들과 스스럼없이 지낸 것처럼, 아들뻘인 대학 동기들과도 잘 지냈다. “자주 밥 사주고, 야유회에도 적극 참여했습니다. 삼겹살 파티도 하고 같이 김장 김치도 만들어 나눠 먹고. 즐겁게 어울렸죠. 시니어들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면서, 저희 다음 기수에 5060세대가 더 많이 입학했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출처: 본인
폴리텍대 시절 아들뻘 동기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린 이이철씨


◇자격증 3개 취득 후 국립병원 취업 “환자 도움 주는 일, 보람 느껴” 


1년을 다니면서 전기기능사, 에너지기능사, 가스기능사 등 3개 자격증을 땄다. 발판 삼아 올해 국립춘천병원 시설관리직 취업에 성공했다. 국립춘천병원은 정신질환과 약물중독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320병상 규모의 특수병원이다. 이곳에서 각종 시설물 유지·보수하는 일을 맡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제게 ‘군인 연금받는데 왜 굳이 나와서 일하느냐’고 해요. 보람있는 일을 하는 게 좋습니다. 아픈 환자들이 좀 더 쾌적한 환경에서 지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계속 즐겁게 일하겠습니다.”

출처: 본인
국립춘천병원 시설 관리를 하는 이이철씨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요.

“춘천병원에서 제 정년은 60세까지라 앞으로 5년이 남았어요. 특별한 계획이 있다기보단 당장 제가 맡은 일을 충실하게 하면서 하루하루 보내려 합니다. 사고 없이 잘 지내야죠. 그렇게 해서 아직 미혼인 서른 살, 스물여덟 살 두 아들에게 모범을 보이는 아버지가 되고 싶습니다.


특히 큰 아들이 저와 닮은 점이 많아요. 21살 때부터 7년 간 육군 부사관으로 복무했고 남수단에 파병되어 현지 시설물 관리를 전담하기도 했어요. 저의 추천으로 아들이 올해 같은 과 후배로 입학했어요. 1년 후 아들과 함께 일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더욱 힘을 내고 있습니다.”


/김승재 에디터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