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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와 취향을 나누는 새로운 방법

조회수 2019. 12. 24. 18:2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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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고 뭘 할지, 주말엔 또 뭘 할지 반복되는 고민을 해결해줄 취미 생활 플랫폼을 소개한다.
남의집 프로젝트
남의집 보이차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남의 집에 모여서 논다고? 집주인의 취향을 나누는 거실 여행, ‘남의집 프로젝트’가 인기라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집주인이 호스트가 되어 특정 주제의 모임을 개설하면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시간을 보낸다고.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신청한 모임은 ‘남의집 보이차’. 차회와 저녁 식사까지 남의 집에서 장장 5시간을 노는 모임이었다. 

홈페이지에서 방문 신청서를 쓴 후 신용카드 번호를 등록하고 호스트의 승인을 기다렸다. 승인과 동시에 카톡으로 집 주소가 전달됐다. 똑똑, N서울타워가 보이는 남산 자락 아래 연립의 문을 두드리니 호스트가 환한 얼굴로 문을 열고 반겼다. 차방에 들어서자 선반을 가득 채운 차와 찻잔과 자사호 그리고 10인용 식탁이 남다른 오라를 뿜어냈다. 호스트는 10년째 보이차를 마셔온 이선영 씨인데 작년 4월에 남의집 프로젝트를 시작해 이번이 벌써 11번째 모임이란다. 낯선 사람들이 하나둘 긴 테이블에 둘러앉자 모임이 시작됐다.

 “오늘은 숙차 3가지, 생차 1가지를 마실 거예요. 보이차를 마실 때 주의점은 3가지입니다. 손이 뜨겁지 않게 잔을 잡고, 따뜻할 때, 입이 데지 않도록 후루룩 마시는 거죠. 그 외 불필요한 예절은 없어요.” 호스트의 소탈한 설명에 어렵게 여겨졌던 보이차가 친근하게 다가왔다. 차회의 시작을 알리듯 전기 주전자는 물 끓는 소리를 냈다. 호스트는 노련한 손길로 찻잎을 자사호에 넣고 물을 붓고 뚜껑을 덮은 후 다시 자사호에 물을 끼얹었다. 차가 우러나는 동안 자사호에선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첫 잔은 잔을 헹구는 용도이고 두 번째 잔부터 마신다고. 여러 번 우려 마시다 보니 참가자들끼리 자연스레 서로 차를 따라주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술자리도 아닌데 사람들의 얼굴이 점점 발그레해졌다. 잔을 비울수록 차방을 채운 공기가 부드러워졌다.

‘2003만전숙병’, ‘97녹인철병’ 등 흡사 암호 같은 보이차 이름을 어떻게 읽는지도 배웠다. ‘87대엽숙전’을 따라주며 호스트가 말했다. “1987년의 공기와 바람을 담은 맛을 느껴보세요. 이 차는 얼마나 많은 장소를 거쳐 여기까지 왔을까요. 보이차는 시간을 마시는 차예요.” 호로록, 차가 품은 세월을 입안에 머금었다. 몸은 따뜻해지고 머리는 맑아지는 듯했다. <효리네 민박>에서 이효리가 마셔 화제를 모았다는 ‘97난창강대청’을 마지막으로 차회는 끝났지만, 수다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조미영 씨는 “낯가림이 심한데, 취향이 분명한 주인장과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낯설지가 않다”고 했고, 류소임 씨는 “집주인이 내공이 있어서 더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게 된다”고 했다. 그사이 호스트는 저녁 식사 준비로 분주했다. 정성껏 지은 밥과 요리로 모임의 열기는 한층 고조됐다. 남의 집에서 처음 만나 같은 차를 마시고 같은 밥을 나눠 먹은 사람들은 결국 밤 11시가 넘어서야 차향 그윽한 남의 집을 나섰다. 그러고는 삼삼오오 짝을 지어 밤의 해방촌 거리를 걸었다. 

프립
못 그려도 괜찮아

남의집 프로젝트가 집을 베이스로 취향이 통하는 사람끼리 모이는 모임이라면, 프립Frip은 나의 취향은 무엇인지 탐색하기 좋은 플랫폼이다. 자그마치 7960개의 여가 활동 중 취향과 일정에 맞는 활동을 골라 참가하면 된다. 한 달 이상 꾸준히 하기는 어렵지만, 하루쯤 시간을 투자해 나와 잘 맞는지 알아보기엔 부담이 없다. 카테고리는 액티비티, 배움, 건강 & 뷰티, 모임, 여행으로 나뉜다. 프로그램마다 다르지만 활동 참가자는 4~20명, 1회 참가비는 평균 3만원 선이다.

프립 회원 가입 후, 평소 관심 있었던 그림 그리기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눈에 들어온 프로그램은 ‘못 그려도 괜찮아’. 고단한 일상이 끝난 저녁 와인 한잔과 함께 나만의 작품을 만들어보는 건 어떠냐는 문구도 마음에 와 닿았다. 술을 못하면 커피나 주스를 마셔도 된다고 했다. 최대 참가 인원은 4명. 소수 정예로 모여 아크릴화나 한번 그려볼까 하는 마음으로 을지로의 한 작업실로 향했다. ‘못 그려도 괜찮아’를 진행하는 트라이앵글 스페이스는 원래 같은 대학을 졸업한 친구 둘이 함께 쓰는 작업실이다. 두 친구 중 프리랜서로 일하는 이의진 씨가 프립의 한 프로그램에 참여한 후 ‘나도 한번 호스트가 되어볼까?’ 하는 마음에 작업실에서 아크릴화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아담한 작업실에 들어서자 호스트가 음료부터 권했다. 참가자들은 누군가는 와인을, 누군가는 따뜻한 커피를 손에 쥐고 인사를 나눴다. 그러곤 저마다 그리고 싶은 사진을 꺼내 호스트에게 보여줬다. 윤민주 씨는 여름휴가에 다녀온 포르투의 야경을 그리겠다고 했고, 권현아 씨는 언니에게 선물할 고양이 그림을 그리겠다고 했다. 나는 호스트에게 벨기에에서 산 그림엽서를 따라 그리고 싶다고 했더니, 그림자 부분이 난도가 높겠지만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용기를 북돋아줬다. 앞치마와 팔 토시를 착용하고 각자 이젤 앞에 앉았다. 호스트는 1 : 1로 아크릴화는 어떻게 그리는지 조곤조곤 설명해줬다. 윤민주 씨는 ‘못 그려도 괜찮아’에 참가한 것이 벌써 네 번째라며 “실수해도 그 위에 다시 색을 칠해서 덮을 수 있는 것이 아크릴화의 매력”이라고 했다.

몰입의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흘렀다. 여러 물감을 짜서 섞으며 색을 만들다 보니 시간이 후딱 지났고, 그 색을 캔버스에 칠하다 보니 또 시간이 훌쩍 흘렀다. 이렇게 칠해도 되나 멈칫할 때면 귀신같이 호스트가 다가와 “지금 어디쯤 하고 계세요?”라고 물었다. “여긴 어떻게 할까요?” 고민을 토로하면 지금 잘하고 있으니 이 부분을 조금만 어떻게 해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런 질문과 답이 반복되는 사이 그림은 조금씩 완성돼갔다. 호스트는 사람들의 그림에 붓을 최대한 대지 않고 스스로 그릴 수 있게 리드했다. 3시간이 지난 후 참가자들은 거짓말처럼 아크릴화를 완성했다. 작업실을 나서는데, 왠지 또 다른 그림을 그리러 이곳을 다시 찾게 될 것 같았다.

에디터 여하연 

포토그래퍼 전재호, 강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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