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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 택배기사 A씨의 한탄, 탁상공론에 두번 웁니다

택배업계 달라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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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세상이 멈춰도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곳이 있다. 택배업계다. 끝없이 밀려드는 택배 물량에 택배 노동자들은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난해에만 16명의 택배 노동자가 과로사 등으로 목숨을 잃었을 정도다. 숱한 목숨이 희생된 후에야 택배사, 국회, 정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난해 10월 택배 3사(CJ대한통운·한진택배·롯데택배)는 택배기사의 고강도 · 장시간 노동의 원인으로 꼽히는 ‘분류작업’에 인력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12월엔 노 · 사 · 정이 참여한 ‘택배 종사자 과로대책 사회적 합의기구’가 출범했다. 택배 노동자의 숙원사업이던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도 올해 1월 국회 문턱을 넘었다.

그렇다면 택배 노동자의 처우는 정말 달라졌을까. 어찌 된 일인지 택배업계에선 여전히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이유가 뭘까. 더스쿠프(The SCOOP)가 CJ대한통운 택배기사 A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출처뉴시스

✚ 최근 “택배가 너무 늦게 배송된다”고 말하는 소비자들이 부쩍 늘었다. 물량이 더 많아졌기 때문인가.
“그렇다. 지난해 코로나19 사태 이후 늘어난 택배 물량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하루 평균 350개를 배송하는데, 1톤(t) 탑차에 다 싣지 못할 만큼 물량이 많다. 특히 부피가 크고 무거운 물건도 늘어서 100개 정도는 싣지 못하고 출발하는 경우도 많다.”

✚ 특히 명절 전후는 택배 극성수기다. 이번 설은 어떤가.
“지난 추석과 별반 다르지 않다. 많게는 하루에 530씩 배송하고 있다.”

✚ 업무 강도가 어느 정도인가.
“새벽 4시에 일어나서 터미널로 출근하면 6시쯤 된다. 그때부터 간선차에서 내리는 택배를 배송지별로 분류하는 작업을 시작한다. 분류작업을 마치면 낮 12시~1시 30분 정도 되는데 그때부터 배송을 시작한다. 밤 11시까지 배송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면 자정이다. 그제야 저녁을 먹고 1시쯤 눈을 붙이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A씨의 주장에서 보듯 택배기사들은 ‘무급노동’인 분류작업에 매일 5~6시간 이상을 써야 한다. 택배기사들이 택배사들에 ‘분류작업을 해주는 인원을 지원해 달라’고 줄기차게 요구해온 이유다.

지난해 10월 택배 3사(CJ대한통운 · 한진택배 · 롯데택배)는 이 요구를 받아들여 “분류작업 인력 총 6000명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한발 더 나아가 ‘택배종사자 과로대책 사회적 합의기구’는 1월 21일 분류작업을 택배사 책임으로 명시한 ‘1차 사회적 합의문’도 발표했다.

문제는 그 이후에도 달라진 게 거의 없다는 점이다. 택배사는 분류작업 인원이 제대로 지원하지 않았다. 1월말 ‘택배 총파업’ 위기가 수면 위로 떠올랐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참고 : 전국택배연대노조(이하 택배노조)는 “‘분류작업 인력 6000명을 모두 (현장에) 투입한다’는 약속을 지키겠다”는 택배사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파업을 철회했다.]

✚ CJ대한통운은 지난해부터 순차적으로 분류작업 인원을 지원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다.”

✚ 그런데도 그동안 인력을 제대로 지원하지 않았는가.

“(우리)터미널의 경우 그동안 분류작업 인원이 한번도 파견된 적 없다. 분류작업은 여전히 택배기사의 몫이었다. 크기가 작은 행랑성 택배를 실은 간선차까지 기다려 분류작업을 마치면 오후 3~4시가 될 정도다. 그러니 택배기사로선 ‘인력을 지원하겠다’는 택배사의 주장을 ‘대기업의 공수표’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 사측에 인력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하지 않았나.
“터미널을 관리하는 회사(CJ대한통운) 지사장에게 몇번이나 말했다. 되돌아오는 건 ‘지켜봅시다’는 말뿐이었다.”

✚ 회사에 불신이 쌓였을 것 같다.
“당연하다. 회사가 하는 ‘약속’들은 ‘그때 가봐야 알지’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출처뉴시스

✚ 지난해 간선차 도착이 지연돼 분류작업이 더 오래 걸린다는 지적도 나왔었다.

“달라진 게 없다. 여전히 지연되고 늦는다. 간선차를 늘려서 빠르게 회전된다면 분류작업 시간도 줄어들 거다. 회사 측에 번번이 말해왔지만 ‘위쪽’에선 신경 안 쓴다.”


✚ 그래도 지난해보다 진일보한 게 사실이다. 사회적 합의기구가 출범했고 지난 1월 ‘과로사 대책 1차 합의문’도 발표하지 않았나.

“택배기사들로선 일단 반기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합의문에 허점도 많다.”

✚ 어떤 점인가.
“합의문에 ‘택배기사 적정 작업조건’이 게재돼 있다. 하루 최대 12시간, 주 최대 60시간 일해야 한다는 건데, 전형적인 탁상공론이다.”

✚ 장시간 노동을 줄여야 하지 않나.
“업무 시간을 줄일 수 있는 환경을 먼저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합의문 발표 이후 내려진 첫 번째 조치가 뭔지 아는가.”

✚ 그게 뭔가.
“택배기사들이 사용하는 앱의 접속을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차단하는 거였다.”

✚ 그 앱은 뭔가.

“택배기사는 물건을 차에 싣거나 배송을 시작할 때 앱을 통해 관련 내용을 등록한다. 그러면 전산에 공유되고 고객에게 알림문자가 전송된다. 고객이 물건을 받지 못한 경우에도 택배기사가 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중요한 앱 아닌가.

“당연하다.”


✚ 그 앱을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차단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오후 9시30분께 차를 타고 택배를 배송하고 있다고 치자. 30분 후면 앱에 접속하지 못한다. 그럼 고객에겐 알림문자가 전달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배송할 물건을 미리 ‘배송완료’ 등록한다. 일은 하는데, 일은 하지 않는 것처럼 되는 거다. 이게 탁상공론이 아니고 뭔가.”

✚ 불편함만 커졌겠다.
“당연하다. 심야배송을 안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오늘 물량을 다 쳐내지 못하면 내일 감당이 안 된다. 앱을 계속 사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회사 측에 항의했지만 묵묵부답이다.”

✚ 빨리 배송해야 하는 물건도 많지 않나.
“냉장·냉동식품, 신선식품은 들어오는 즉시 당일 배송해야 한다. 회사 측은 아무런 대책도 세워놓지 않고 앱 접속만 막아버린 셈이다. 배송이 늦어지거나 상품에 문제가 생기면 결국 보상은 택배기사의 몫이다.”

출처뉴시스

✚ 어떻게 해야 개선될 수 있을까.

“과로사 대책이 제대로 이뤄지는지 관리·감독해야 한다. 앞서 지난해 11월 진보당과 택배노조가 ‘대책 이행 점검단’을 꾸렸다. 택배사들이 내놓은 과로사 대책이 제대로 이행되는지 살피겠다는 거였다. 문제는 택배 현장을 방문하려고 해도 회사 측이 제대로 응하지 않는다는 거다. 현장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는데 어떻게 제대로 된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겠나. 정부가 나서 관리·감독을 철저히 해주길 바란다.”

✚ 택배요금 인상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택배요금이 오르면 택배기사의 처우도 나아질 수 있을까.
“지금으로선 기대할 수 있을까 싶다. 택배요금을 인상해야 한다는 데 소비자들도 공감하고 있다고 느낀다. 문제는 택배기사에게 돌아오는 수수료가 달라지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점이다.”

✚ 현재 수수료는 얼마 정도인가.
“배달 건당 수수료 700~800원 중에서 각종 비용을 제외하면 680원 안팎이다. 그동안 몇차례 택배요금이 인상됐지만 택배기사 수수료는 10년 넘게 그대로였다.”

택배사들은 ‘불신’을 씻어내고 택배기사의 ‘파트너’로 거듭날 수 있을까. 노 · 사 · 정이 손을 맞잡은 사회적 합의기구는 ‘약속’들을 지켜나갈 수 있을까. 지켜볼 일이지만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봄꿈만 붙잡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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