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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택배기사의 눈물과 원인제공자들

누가 그들을 울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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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식사를 하는 데 걸리는 시간 12분, 그마저도 10명 중 4명은 끼니를 거르며 하는 일. 택배노동이다. 올해 들어 택배 노동자 15명이 목숨을 잃었다. ‘모르쇠’로 일관하던 택배사들은 그제야 사과문을 발표하고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대책이 얼마나 실효성을 거둘지는 미지수다. 택배사→대리점→택배기사로 이어지는 ‘사슬’에 빈틈이 숱해서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스러지는 택배 노동자와 원인제공자들을 취재했다. 

출처뉴시스

“3D 산업으로 인식되던 물류를 첨단 스마트 산업으로 변모시키겠다.” 택배 시장점유율 1위 CJ대한통운은 2016년 1200억원을 들여 전국 서브터미널에 ‘휠소터(Wheel Sorter)’를 설치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휠소터는 컨베이어 벨트 위를 지나는 택배 박스를 자동으로 인식하고 지역별로 분류해 해당 택배기사 앞으로 보내주는 설비다.

택배기사들이 박스에 붙은 송장을 직접 확인하고 분류하던 작업을 기계가 대신하게 된 셈이었다. 전국 180여개 서브터미널에 휠소터를 설치해온 CJ대한통운은 지난해 12월 “전국 서브터미널에 ‘혁신의 상징인’ 휠소터 설치를 완료했다”면서 “택배기사들의 아침이 달라졌다”고 홍보했다. [※참고 : CJ대한통운은 물량·입지 조건·부지 상황 등을 고려해 173개 서브터미널을 선정, 휠소터를 설치했다.]  

CJ대한통운이 밝힌 ‘휠소터 효과’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오전 7시부터 분류작업을 해오던 택배기사들은 오전 10시에 출근해 택배물량을 차에 싣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이렇게 놀라운 효과에 깜빡 취한 언론이 호응했다. “휠소터 덕분에 숨 돌릴 여유가 생겼다” “쉬어, 분류는 내가 해줄게” “효율·배송량 쑥쑥” 등등의 제목을 단 르포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그로부터 10개월이 흐른 지금, 택배기사의 아침은 정말 달라졌을까. 아침밥도 챙겨 먹고, 숨 돌릴 틈도 생겼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았다. 휠소터가 곳곳에 설치됐음에도 택배기사들의 삶은 악화일로를 걸었다.

올해 들어 CJ대한통운 택배기사를 포함한 15명이 목숨을 잃은 건 단적인 예다.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이하 택배노조) 측은 “택배업계의 고질적인 장시간 노동이 참사를 부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휠소터 설치에도 택배기사의 노동 시간은왜 줄어들지 않은 걸까. 무엇보다 휠소터 설치 이후 분류작업의 강도가 낮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분류작업 시간 자체가 줄어든 건 아니란 지적이 많다.

특히 코로나19 사태 이후 물량이 급증하면서 분류작업 시간은 되레 길어졌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일과건강’의 자료에 따르면 택배기사가 분류하는 일평균 택배 물량은 코로나19 이전 412.1개에서 이후 559.6개로 35.8%나 늘었다. 사실상 ‘무급노동’인 분류작업이 택배기사 업무의 42.8%를 차지했을 정도다.  

CJ대한통운 소속 택배기사 A씨는 “매일 새벽 4~5시에 일어나 출근해서 오전 7시부터 분류작업을 시작해도 낮 12시를 훌쩍 넘긴다”면서 “물량이 가파르게 늘면서 허브터미널에서 서브터미널로 오는 간선차(츄레라)가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대기시간까지 길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출처뉴시스

택배노조 관계자는 “배송물량이 급증했는데도 택배사가 간선차를 확대하지 않고, 쥐어짜고 있다”면서 “이 때문에 택배기사의 분류작업 시간은 길어지고 간선차 기사 역시 과로에 시달리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10월 20일 숨진 CJ대한통운 소속 30대 택배 노동자 역시 간선차를 운전하며 택배물량을 운반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고 택배물량이 급증한 것만이 택배기사의 삶이 악화한 배경은 아니다.

휠소터에도 크고 작은 문제가 숱했다. 대표적인 게 ‘오분류’다. 택배기사들은 “박스 크기가 제각각인 데다 택배 송장도 통일되지 않은 탓에 바코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숱했다”고 털어놨다. 더구나 휠소터 오분류 비용을 택배기사 수수료에서 차감하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벌어졌다.

택배기사 A씨의 한탄을 들어보자. “휠소터를 작동하려면 오분류 작업 인원이 필요한데, 그 비용을 택배기사 수수료에서 차감했다. 그렇지 않으면 택배기사들이 번갈아 오분류 작업을 해야 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모르쇠 일관하던 택배사, 이제야…

결국 늘어난 비용도 추가업무도 택배기사의 몫이었던 셈이다. 택배기사들이 “분류작업 인원을 지원해 달라”고 호소해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참고 : 택배사들은 택배기사를 직접 고용하지 않고 대리점을 통해 지입제라는 기형적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지입제 택배기사들은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택배기사 처우가 열악한 근본적 이유다.] 

상황이 심상치 않자 ‘모르쇠’로 일관하던 택배사(CJ대한통운·롯데택배·한진택배)들은 택배 노동자 15명이 스러진 후에야 대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CJ대한통운은 4000명(기존 인력 1000명+추가 투입 3000명), 롯데택배와 한진택배는 각각 1000명의 분류지원인력을 순차적으로 투입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알찬 성과를 내놓을 만한 대책인지는 지켜봐야 한다. 택배사들이 투입하겠다고 밝힌 인력만으론 원활한 분류작업이 어려울 가능성이 높아서다.  

일례로 CJ대한통운에 속한 택배기사는 1만8000여명이다. 단순계산으로 택배기사 4~5명당 1명의 분류지원인력이 투입된다는 건데, 분류작업시간을 줄이는 데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할 확률이 높다. 

롯데택배와 한진택배는 더 심각하다. 두 택배사의 택배기사는 각각 1만여명, 9000여명. 택배기사 9~10명에 1명꼴로 분류지원인력이 배치되는 셈이다. 더구나 택배사들이 분류지원인력의 고용 비용을 택배기사에게 전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앞서 언급했듯 휠소터 설치 과정에서 일부 대리점이 택배기사에게 비용을 떠넘긴 전례가 있어서다. 롯데택배와 한진택배 측은 “본사에서 관련 비용을 100% 부담한다”고 밝혔지만, 대리점들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는 알 수 없다. 

특히 분류지원인력 고용 비용을 본사가 부담한다고 명시하지 않은 CJ대한통운의 행보는 예측하기 어렵다. 택배노조 관계자는 “‘을’의 입장인 택배기사는 다양한 ‘명목’으로 수수료를 차감당하고 있다”면서 “원청의 관리·감독이 없는 상황에선 대리점의 갑질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라고 토로했다.

과로사 방지 대책 효과 볼까  


우려스러운 건 이뿐만이 아니다. 택배사들이 택배기사 과로방지를 위해 내놓은 대책이 되레 부작용만 부추길 여지가 크다. 한진택배가 내놓은 ‘심야배송 중단’ 대책은 단적인 예다. 한진택배 측은 “화·수요일에 집중되는 물량을 다른 날로 분산해 근로강도를 줄이면서도 수입은 줄어들지 않는다”고 설명했지만 택배기사들의 말은 다르다.  

택배기사 B씨는 “밤늦게까지 배송하는 건 화·수를 제외한 다른 요일도 마찬가지”라면서 “심야배송을 중단하면 다음날로 밀리는 물량이 계속해서 늘어날 수밖에 없는 데다, 택배기사의 수입도 줄어들 게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CJ대한통운이 꺼내든 ‘초과물량공유제’나 롯데택배의 ‘물량조절제’ 역시 심야배송 중단 대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  


택배기사들이 요구하는 건 어려운 게 아니다. ‘분류작업 시간을 줄여 충분한 배송시간을 확보해달라’는 거다. 이 간단한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는 건 택배업계에 자리 잡은 구조적 문제 때문이다. 

무엇보다 분류작업이 택배기사의 몫인지 아닌지 법적으로 구분해야 한다. 처음부터 표준계약서를 작성해 분류작업의 책임 소재를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는 건데, 이런 개선요구를 담은 ‘생활물류법’이 좀처럼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택배사(본사)→대리점→택배기사로 이어지는 위탁구조도 택배기사들의 처우가 쉽게 개선되지 않는 근본적 이유다. 택배사가 택배기사를 직접 고용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택배사의 책임 소재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극단적인 예로 대리점이 택배기사의 수수료를 깎고 근로강도를 높여도 택배사에서 “우린 그런 적 없다”고 하면 그만이다. 실제로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택배 노동자 사망사건의 배후엔 너무나 많은 원인제공자들이 자리 잡고 있다. 택배사, 대리점, 국회의원, 그리고 사회…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이지원·고준영·심지영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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