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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울터미널 재건축과 상인들의 눈물 “시키는 대로 했는데 우리 자린 없었다”

깜깜이 재건축의 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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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만 무성했던 동서울터미널 재건축은 2017년 본격화했다. 내부적으로 협상만 하던 서울시와 한진중공업은 공개적으로 사전협상을 시작했다. 30여년 터미널에서 장사를 했던 상인들은 재건축이 시작된다면 목소리를 낼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순진한 생각이었다. 그들도 모르게 ‘기회’는 사라지고 없었다.  

출처더스쿠프 포토

1990년. 서울 광진구 구의동 매립지는 동서울터미널이 됐다. 당시만 해도 난지도 같은 곳이었던 구의동 매립지는 한때 ‘쓰레기 가스 폭발’의 위험이 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지만 별 탈 없이 교통 요충지 역할을 해냈다. 


사고 없이 시간이 흘렀고 터미널은 사람으로 치면 30대 청년이 됐다. 사람이 서른 즈음이면 한창때지만 건물의 수명은 다르다. 대기실과 상점들, 한진중공업 사무실이 있던 동서울터미널은 재건축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동서울터미널의 재건축 과정이 시끄럽다. 나갈 때 나가더라도 새 건물에서 또 장사를 할 수 있길 바라는 세입자(상인)와 법적으로 문제 없다며 강제집행을 하겠다고 밀어붙이는 건물주(한진중공업) 사이의 갈등 때문이다. 


법적으로 상인들에게 유리한 판은 아니다. 30년간 묵은 관행에 법을 제대로 모르는 상인들에겐 어려운 싸움일 수밖에 없다.

■ 시키는 대로 했는데 = 동서울터미널 재건축 계획은 최근 몇년간 상가 임차계약서에 늘 오르는 내용이었다. 


동서울터미널의 상인들은 “최근 계약서를 갱신할 때마다 ‘재건축’ 관련 조항이 눈에 들어와 의아했다”며 “2018년 마지막 임대차 계약서를 쓸 때도 ‘재건축 조항’이 있길래 그러려니 했다”고 말했다. 


상인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길 만도 했다. 매번 계약서에 재건축 이야기가 있었지만 구체화한 적은 없었다. 그래서 상인들에게는 ‘정말 재건축이 시작된다면 다른 안내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상인들이 재건축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덴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2016년 동서울터미널 상인들은 건물주인 한진중공업의 요구에 따라 각자 수천만원을 들여 가게마다 리모델링을 단행했다. 


설비 투자를 한 셈이다. 일반적으로 건물에 문제가 있거나 건물주가 필요해 리모델링을 해야한다면 비용은 건물주의 몫이다. 상인들은 리모델링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지만 한진중공업의 요구에 따랐다.

출처더스쿠프 포토

그런데 한진중공업 측은 리모델링 이듬해인 2017년 서울시와 재건축을 위한 협상에 들어갔다. 서울시는 2017년 8월 17일을 한진중공업과의 ‘동서울터미널 현대화 사업’의 사전 협상일로 공지했다. 


당연히 그 이전부터 서울시와 한진중공업은 재건축 협상을 내부적으로 진행했지만 이런 사실을 상인들에게 공지하지 않았다. 


상인들은 “이렇게 빨리 재건축이 이뤄진다는 것을 알았다면 누가 수천만원을 들여 리모델링했겠는가”라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 이상한 재건축 과정=
2017년 시작된 서울시와 건물주 한진중공업의 사전협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구체적인 플랜도 나오지 않았다. 


서울시 관계자는 “교통영향평가 방식이나 시기, 건물용도 등 결정해야 할 부분이 아직 남아있다”며 “사업자 측에서 계획을 수정하고 있어 언제쯤 확정이 될지는 우리도 모른다”고 말했다. 기약 없는 재건축이란 말이다.

그럼에도 한진중공업은 ‘2019년 12월에 공사를 진행하겠다’는 내용을 2018년 임차계약서에 명시했다. 더불어 한진중공업 측은 이 계약서와 함께 ‘제소 전 화해조서의 작성을 변호사에게 위임한다’는 서류를 첨부했다. 
상인들은 영문도 모른 채 제소 전 화해에 동의한 셈이 됐다.

[※참고 : 제소 전 화해조서는 재판의 확정판결이나 다름없다. 판결 없이 판사 앞에서 서로 합의한 내용을 조서(문서)로 남기면 그 내용에 따라야 한다. 한쪽에 유리한 내용으로 조서가 작성돼 부당한 결과가 나오더라도 건물주든 세입자든 번복하기가 어렵다.]

출처더스쿠프 포토

사실 상인들은 계약서에 있던 ‘제소 전 화해조서’ 조항도 예민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30년 전 첫 계약을 맺을 때부터, ‘제소 전 화해’는 언제나 계약서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제28조. ‘갑’은 본 계약의 이행을 위하여 ‘갑’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때 ‘을’에게 제소 전 화해를 요구하면 ‘을’은 즉시 응하여야 한다.”

1990년부터 30년간 동서울터미널의 임차계약서에는 이런 내용이 빠지지 않았다. 더구나 상인들은 화해조서를 작성했다는 변호사를 만난 적도 없었다.


임차계약서의 독소조항 때문에 30여년간 만들어지지 못했던 상인회는 재건축을 앞둔 2019년에야 비상대책위원회의 형태로 꾸려졌다. [※참고 : 1990년 한진중공업과 상인들이 체결한 계약서(제24조)엔 이런 조항이 있다. “을(상인)은 여하한 명목의 상인의 단체나 조직을 구성할 수 없으며 일체의 집단행위를 하지 못한다.”]

고희동 동서울터미널 임차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자신들의 동의 없이 제소 전 화해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30년간 매년 말이 되면 관리사무소에 가서 계약서를 썼다. 읽을 시간도 없이 도장을 찍었다. 2018년 11월 마지막 임대차 계약을 할 때도 그랬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서류 중 하나가 ‘제소 전 화해조서 작성을 변호사에게 모두 맡긴다’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변호사 얼굴도 몰랐다. 연락을 한 적도 없다. 우리와 의논도 안 하고 어떻게 조서를 썼냐고 따졌더니 변호사는 ‘모든 건 이미 끝났다’고 말했다.”

2019년 3월 건물명도 소송이 시작됐지만, 상인들은 알지 못했다. 상인들로부터 권리를 위임받은 변호사가 이런 일을 알려주지 않았다. 


고희동 위원장은 “그 변호사는 우리가 선임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수임료도 한진중공업으로부터 받았다”면서 “우리는 아무것도 모를 수밖에 없었다”고 한탄했다.


■도와달라 했지만… = 상인들은 뒤늦게 제소 전 화해가 이뤄졌다는 것을 알고 지자체에 도움을 요청했다. 광진구청은 물론이고 서울시와 국회의원들도 찾아다녔다. 


하지만 그들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서울시 측은 “동서울터미널 세입자와의 문제는 전적으로 건물주인 한진중공업이 해결할 문제”라며 “상가임대차위원회가 있는데 서울시가 모든 문제에 개입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공공성이 큰 시설을 재건축한다고 해도 세입자와의 상생 방안은 어디까지나 재건축 사업자의 몫이라는 거다.

서울시 관계자는 노량진 시장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노량진 수산시장 문제도 서울시가 해결한 건 없다. 수협이 임차계약을 승계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사업자가 나서지 않는다면 서울시도 방법이 없다. 우리는 권한이 없다. 상가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가 할 일이다.” 


서울시의 말처럼 법에는 문제가 없다. 얼굴도 본 적 없는 변호사가 대신 화해조서를 쓴다고 해도 위조된 문서가 아니라면 위법이 아닐 수 있다. 이를 두고 누군가는 상인들의 무지를 꼬집을 게 뻔하다. “계약서를 제대로 읽지 않았으면서 왜 이제 와서 푸념이냐”고 말이다. 

출처더스쿠프 포토

맞는 말이지만 상인들은 억울할 수밖에 없다. 지난 30여년 건물주인 갑(한진중공업)이 하자는 대로 했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으라고 하면 찍었고, 리모델링하라고 하면 리모델링했다. 그게 을에겐 법이었고,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도장을 찍으라고 해서 찍었는데, 알고 보니 ‘덫’이었다. 이래도 상인들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길 수 있겠는가.

박동진 변호사(법률사무소 열매)는 “화해조서의 내용과 작성 시기, 작성 여부조차 세입자들은 몰랐다”면서 “2018년 임차계약서는 세입자의 이익에 배치되는 내용이 수두룩하다”고 꼬집었다. 이어 “서울시 인허가 심의 과정에서 입주민 퇴거를 위한 상생 방안을 마련하라는 (서울시의) 권고조차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상인들이 할 수 있는 건 사실상 없었다”고 지적했다.

[※참고 : 상가건물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는 최근 “동서울터미널 임대차 계약 승계 문제는 새로운 사업자가 할 일”이라고 결론지었다. 상인들의 문제는 알 수 없는 제 3자에게 다시 넘어갔다.]


언제나 약자가 피해를 본다. 그런 그들을 보면서 우리는 가슴을 치곤 한다. ‘왜 저걸 모르느냐’고 말이다. 하지만 이런 일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되고, 또 다른 희생자를 만들어낸다. 2020년 새로운 동서울터미널 상가가 생긴다. 이 멋들어진 상가엔 새 상인들이 들어올 거다.

그들은 알까. 30년 후 이상한 계약서에 자신의 도장이 찍혀 있고, 아무도 그들을 도와주지 않을 것이라는 걸…. 동서울터미널에서 울려 퍼지는 상인들의 한숨을 외면해선 안 되는 이유다. 우리도 언젠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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