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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사 M&A, 오너 일가 ‘탐욕’에 좌초되나

미운 오리새끼 전락한 두 항공사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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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국내 항공업계에선 드문 일이 벌어졌다. ‘HDC그룹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합병’ 등 굵직한 인수ㆍ합병(M&A) 이슈가 연달아 터졌기 때문이다. 각각의 기업들은 신성장동력 모색과 점유율 확대를 꾀하겠다는 청사진을 그렸다. 하지만 지금 두건의 M&A는 ‘미운 오리 새끼’ 취급을 받고 있다. 코로나19에 따른 경영난도 문제지만, 인수 의지를 꺾는 피인수기업 오너 일가의 행태도 심각하다. 

지난해 국내 항공업계 분위기는 어두웠다. 한일 무역분쟁, 요동치는 유가ㆍ환율 등이 주요 원인이었다. 그렇다고 미래 전망까지 캄캄한 건 아니었다. 업계 안팎에서 인수ㆍ합병(M&A)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됐기 때문이었다. 포문은 아시아나항공이 열었다.


지난해 11월 아시아나항공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된 HDC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은 ‘시너지 효과’를 장담했다. 특히 HDC그룹은 건설과 호텔에 이어 항공 산업까지 외연을 넓힐 기회를 얻었다. 


정몽규 HDC그룹 회장이 직접 “종합 모빌리티 그룹으로 도약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로부터 한달 뒤 빅딜이 또 터졌다. 애경그룹은 제주항공을 통해 이스타항공을 품기로 했다. 이스타항공을 인수하면 제주항공은 국제선 점유율(12.6%ㆍ지난해 기준)이 두자릿수를 넘는 대형 항공사로 변모하게 된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그간 국내 항공산업은 항공사 숫자는 많은데 갈 곳은 제한적이라 성장 한계에 봉착한 상황이었다”면서 “두건의 M&A는 국내 항공산업을 튼실한 구조로 재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설명했다. 

그로부터 7개월, 현실은 기대와 크게 다르다. M&A는 사실상 난맥에 빠졌다. 제주항공-이스타항공 합병은 ‘올스톱’ 상태다. 제주항공은 4월 28일 이스타항공의 주식 취득 예정일을 기약 없이 미뤘다. 베트남 항공당국의 기업결합 심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다. 6월 27일까지 거래를 끝내기로 했던 아시아나항공 인수 작업도 지연되고 있다. 제주항공-이스타항공 합병과 마찬가지로 거래 선행조건중 일부가 충족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속내는 좀 다르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하늘길이 막히고 여행심리가 얼어붙자 항공사들이 벼랑에 몰렸다. 아시아나항공의 올해 1분기 부채 비율은 6297. 8%로 치솟았다. HDC현산이 인수를 검토하던 지난해 3분기(659.5%)보다 10배가량 높아졌다. 이스타항공은 올해 1분기 자본총계가 -1042억원으로 ‘자본잠식’에 빠졌다. 


설상가상으로 전망도 불투명하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는 올해 세계 항공업계 적자가 840억 달러(약 100조7160억원)에 육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내년 적자도 16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면서, 일러야 2022년쯤 수익을 낼 것으로 분석했다.


뼈아픈 변수 코로나19 


이 때문에 재계에선 M&A가 불발에 그칠 거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영업도 못하는 기업을 삼켰다간 승자의 저주에 빠질 게 뻔해서다. 문제는 M&A가 무산되면 파장이 상당할 것이란 점이다. 아시아나항공은 대규모 구조조정, 이스타항공은 파산이 불가피하다. 대량실직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우여곡절을 거치겠지만 결국 거래가 완료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최근엔 이 전망마저 흔들리고 있다. 매각 대상 기업의 오너 일가가 인수 주체의 인수 의지를 꺾고 있어서다.


가령 제주항공-이스타항공 합병의 핵심변수는 체불임금 처리다. 이스타항공은 코로나19로 경영난이 악화하자 250억원에 이르는 직원들의 임금을 체불했는데, 쉽게 처리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인수자 제주항공과 피인수자 이스타홀딩스 모두 체불임금을 부담하지 않겠다며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타홀딩스는 창업주인 이상직 의원(더불어민주당)의 자녀가 100% 지분을 보유한 회사다. 체불임금의 책임론이 쏠리자 이 의원 일가는 강수를 뒀다. 기자회견을 통해 “이스타홀딩스를 통해 보유한 이스타항공 지분 38.6%(약 415억원어치)를 모두 이스타항공에 헌납한다”고 발표했다. 체불임금을 해결하는 대신 제주항공으로부터 받기로 한 매각대금 전부를 회사 측에 돌려주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결단 역시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이스타항공이 지분 헌납 관련 의견을 제주항공과 논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중요한 의사 결정을 우리와 교감 없이 발표한 데다 핵심 사안인 체불임금을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얘기는 빠졌다”면서 “아직 계약을 위한 선결 조건 이행이 완료되지 않은 셈”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오너 일가의 지분 헌납은 ‘책임 회피’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스타홀딩스가 보유한 지분은 합병이 성사되지 않으면 회사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합병이 성사되더라도 이스타항공이 손에 쥘 현금은 적다. 


이스타항공 조종사 노조 관계자는 “오너 일가의 지분을 팔아도 우발채무를 위한 전환사채 담보 제공, 세금, 부채상환 등을 제외하면 체불임금을 해결하기엔 턱없이 모자라다”면서 “지분을 털어내고 체불임금 책임론에서 벗어나기 위한 꼼수”라고 꼬집었다.


이 때문인지 제주항공은 최근 이스타항공에 “10영업일 이내에 선결 조건을 모두 이행하지 않으면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공문을 보냈다. 이스타항공이 사실상 파산 수순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얘기다.

HDC현산 역시 금호그룹 오너 일가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HDC현산은 지난 6월 채권단에 인수 조건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요청하면서 다음과 같은 입장문을 냈다. “수차례 공문을 보내 재무 상태 등과 관련한 자료를 요청했지만, 신뢰할 만한 공식 자료를 받지 못했다.”


HDC현산 측은 또 인수 주체인 자신들의 동의 없이 금호그룹 오너 일가가 독단경영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도 꼬집었다. “명시적인 부동의에도 아시아나항공이 추가자금 차입과 부실계열사에 대한 자금지원을 결정하고 관련된 정관 변경, 임시 주주총회 개최 등 후속절차를 강행하고 있다.”


유동성 위기 국면에서도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에게 막대한 퇴직금(20억7900만원)을 지급하고, 금호산업과의 상표권 계약(119억원 규모)을 연장하는 등의 부적절한 경영 결정도 HDC현산의 심기를 거슬렀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아시아나항공은 최근 상표권 계약 조건을 변경했다. “해지 또는 변경이 가능하다”는 모호한 조항을 “어느한쪽이 서면통지하면 1개월 후 해지할 수 있다”로 바꿨다. HDC현산 측에 더 유리한 조건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인수를 포기하기도 어렵지만 그렇다고 인수를 강행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면서 “무리하게 인수했다간 동반 부실에 빠질 가능성도 높아 인수 주체 기업의 뚜렷한 미래 청사진과 인수 의지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변수”라고 말했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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