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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메디톡신 조작 논란, 식약처는 왜 속기만 할까

의약품 조작 논란과 식약처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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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1호 보톡스 ‘메디톡신’의 시험성적서 조작 혐의, 국내 최초 골관절염 유전자치료제 ‘인보사’ 성분조작 사태, 한 의료기기 업체의 무허가 스텐트(혈관에 주입하는 의료기기) 불법 유통….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에 달갑지 않은 이슈가 잇따라 불거지고 있다. 불법행위를 저지른 기업만 탓하기엔 국내 의약품 관리ㆍ감독 시스템이 너무나 취약해 보인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감시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출처연합뉴스

의약품 조작 논란이 또 터졌다. 코오롱생명과학의 골관절염 유전자치료제 인보사가 성분조작 논란을 빚은 게 지난해 4월께. 그로부터 고작 1년여 만이다. 이번엔 국내 바이오의약품 제조업체 메디톡스의 보툴리눔 톡신 제제(일명 보톡스) ‘메디톡신’이 문제가 됐다. 


조작 논란의 핵심은 이렇다. “의약품을 제조하려면 안전성을 검증한 시험성적서를 제출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메디톡스는 메디톡신의 원액 정보와 시험 결과를 조작해 승인을 받았다.”


메디톡스 전前 직원이 지난해 7월 이같은 내용을 국민권익위원회에 제보했고, 수사를 통해 사실을 확인한 청주지방검찰청은 지난 4월 17일 메디톡스와 관련자들을 기소했다. 


청주지검에 따르면 메디톡스는 2012년 10월부터 2015년 6월까지 총 83회 시험성적서를 조작해 메디톡신을 제조했다. 이 기간 생산된 메디톡신은 39만4274바이알(주사용 유리용기)에 이른다.


이쯤 되면 의문이 하나 생긴다. 왜 식약처는 미리 알아채지 못하고 매번 뒷북만 두드리느냐는 점이다. 인보사 성분이 바뀌었다는 사실은 2017년 품목허가를 하고 2년 뒤에야 확인했다. 메디톡신이 허가받지 않은 원액을 사용했다는 걸 알아차리는 데는 7년이나 걸렸다.


더구나 인보사와 메디톡신의 조작 이슈를 찾아낸 것도 식약처가 아니다. 미국 임상시험에서 인보사의 성분 변경 사실을 확인하지 못했거나 메디톡스 전 직원의 제보가 없었으면 조작 이슈는 여전히 수면 아래에 잠겨 있었을지 모른다.

물론 의약품 조작의 1차 잘못은 기업에 있다. 하지만 조작을 밝혀내고 걸러내지 못한 식약처의 잘못도 작지 않다. 의약품의 제조ㆍ유통 과정을 규제하고 관리ㆍ감독할 의무가 있는 식약처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인보사 성분조작 사태 때도 식약처는 졸속심사 문제로 여러 차례 지적을 받았다. 인보사의 성분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유전학적 계통검사ㆍSTR)이 있었지만 자료를 요구하지 않았고, 인보사가 품목허가를 받는 과정에서도 미심쩍은 부분이 많았다. 


품목허가 여부를 결정하는 중앙약사심의위원회 회의는 단적인 예다. 1차 회의에서 7명의 위원 중 6명이 반대했음에도 구성원을 바꾼 채 2차 회의를 강행, 인보사의 품목허가를 승인했다. 이 과정에서 인보사의 문제점을 예견한 의견이 있었지만 보기 좋게 묵살됐다.  


이번에 식약처가 메디톡스의 시험성적서 조작을 막지 못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만큼 식약처의 관리ㆍ감독 시스템은 허술했다. 메디톡스가 조작한 시험성적서는 제약바이오 업체들이 일정 단위(로트ㆍlot)의 의약품을 제조할 때마다 식약처에 제출하는 자료다. 의약품의 품질에 이상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식약처는 기업이 요약한 자료만 본다. 이상 우려가 있는 물질을 체크하거나 원본 데이터를 확인하는 일이 거의 없다. 기업이 요약본의 정보를 바꿔도 식약처가 모를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사전에 차단하지 못해도 사후에라도 발견하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실제로 식약처엔 유통 중인 의약품을 수거해 검사하는 시스템이 있다.


하지만 여기에도 빈틈이 있다. 모든 의약품이 검사 대상인 건 아니다. 업계 관계자는 “의약품 종류가 무수히 많아 일일이 검사하긴 어렵다”면서 “가령, 메디톡스가 메디톡신을 1년에 100회(1회당 약 2만5000바이알) 생산한다고 가정하면 그중 1회 생산분 정도가 검사될까 말까라고 보면 되는데 이마저도 매해 검사하는 게 아니다”고 지적했다.


식약처에도 속사정이 있다. ‘인력’이 부족해 어쩔 수 없다는 거다. 식약처 관계자는 “모든 제약사의 원본 데이터를 검토하거나, 현장에 찾아가면 조작 여부를 가려낼 수 있겠지만 그만큼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식약처의 ‘진짜 문제’는 다른 데 있다고 꼬집는다. 식약처의 애매한 정체성이 가장 큰 문제다.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처장은 “식약처는 규제부처지만 사실상 산업부처나 다름없다”면서 쓴소리를 했다.


“식약처는 규제부처이면서 동시에 산업 진흥에 힘쓰는 산업부처다. 불량식품을 근절하겠다는 이유로 식약처로 승격됐지만 사실상 규제 완화와 바이오산업 육성이 목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규제부처는 힘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규제부처를 독립시키지 않으면 시스템을 개선할 수 없다. 중요한 건 인력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인력 부족을 토로하는 식약처의 진정성이 의심된다는 지적도 많다. 이전부터 식약처 내부에선 전문인력 충원에 의지가 없다는 말이 나돌았다. 


특히 식약처에서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가 임상 결과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평가하는 건데, 해당 부서 인력의 업무 과부하가 이상하리만큼 심각하다.


전진한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적은 인력으로 업무를 하다 보니 과부하가 생기고 능률이 떨어지게 마련”이라면서 “국민 안전과 직결된 일이라 윤리적으로 감당이 안 돼서 그만두는 사람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만두면 그 자리를 채워줘야 하는데 그러지 않는 데다, 불만을 제기하면 되레 불이익을 받는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지난해 강윤희 식약처 임상심사위원은 임상시험의 위험성과 안전관리 문제를 지적하고 허가ㆍ심사 업무의 전문성을 강화하자고 식약처에 요구했다가 보복성 징계를 받았다. 인력이 부족해 관리ㆍ감독이 부실할 수밖에 없다는 식약처의 주장이 공허한 변명으로 들리는 이유다.

출처연합뉴스

더 심각한 문제는 식약처 시스템에 뚫린 구멍을 메워야 할 정부와 국회마저도 규제 완화에 힘을 싣고 있다는 점이다. 규제가 완화되면 필연적으로 의약품 관리ㆍ감독이 소홀해질 가능성이 높다.


보건의료 시민단체와 전문가들 사이에서 “인보사와 메디톡신 문제만 부각돼서 그렇지 드러나지 않은 문제가 숱하다”면서 “규제가 완화될수록 이같은 문제는 비일비재하게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의약품을 철저히 관리ㆍ감독하는 건 국민의 건강권과 직결된 문제다. 국민의 건강권을 지키는 건 식약처가 해야 할 일이다. “인력이 부족했다” “우리도 속았다”는 말로 어물쩍 넘어가선 안 되는 이유다.


피해는 환자와 국민의 몫이다. 국민은 허가 도장이나 찍어주라고 식약처에 권리를 위임한 게 아니다. 식약처의 무너진 시스템을 바로 세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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