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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m 경리단길, 남은 자와 들어온 자

경리단길 다시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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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에 경리단길은 뜨는 동네에서 임대료 급상승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의 대명사가 됐다. 임대료를 낮추기 위해 나선 사람들도 있지만 별 성과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독특한 문화는 사라지고, 상업적인 공간은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최근 이곳에 프랜차이즈 토스트 가게가 둥지를 튼 건 대표적 사례다. 남은 자와 들어온 자, 그들은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경리단길은 또 어떻게 변해갈까. 

출처더스쿠프 포토

900m다. 오르막 때문에 더 길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경리단길은 사실 1㎞가 채 되지 않는다. 이태원 상권의 뒷길에 있던 이 짧은 길은 2000년대 후반 영화 속에서 ‘바이크 동호회’ 회원들이 모이는 특이한 장소였고, 2010년대 초에는 알음알음 ‘뜨는 곳’이 됐다. 


천편일률적인 번화가가 아니라 남다른 분위기를 찾는 사람들이 늘면서 경리단길에는 사람이 북적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경리단길은 어느샌가 젠트리피케이션의 대명사가 됐다.

과연 누가 떠나고 무엇이 남은 것일까. 녹사평역에서부터 경리단길로 내려가는 길. 한 동이 아예 텅 빈 건물이 눈에 띄었다. 카페로 운영되던 곳이었다. 경리단길 초입에 비어 있는 작은 가게에는 ‘인형 뽑기’ 간판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번엔 오르막. 부동산 유리창에는 23㎡(약 7평) 상점이 ‘무권리’ 점포로 나와 있었다. 보증금 3000만원, 월 임대료 150만원이었다.

서울시의 우리마을가게 상권 분석 시스템을 들여다봤다. 경리단길이 있는 이태원2동의 임대료는 그간 어떻게 변했을까. 경리단길이 처음 ‘핫플레이스’로 언론의 주목을 받은 것은 2011년이다. 


당시 기사 내용을 살펴보면 ‘지난해(2010년)까지만 해도 3.3㎡당 10만원이 되지 않았던 월 임대료가 15만원으로 뛰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2011년에 임대료가 꿈틀대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당연히 끝이 아니었다. 2015년 2분기부터 2019년 2분기까지 이태원2동의 임대료(3.3㎡·약 1평 기준)는 15만원에서 19만원 수준으로 더 올랐다. 


33㎡(약 10평) 매장이라고 가정할 경우 매달 190만원을 월 임대료로 내야 한다는 말이다. 가장 정점을 찍었던 2018년 2분기에는 22만5000원까지 치솟았다. 이때부터 젠트리피케이션 위기감이 고조됐다.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낮추지 않으면 몰락은 시간 문제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경고에도 큰 변화는 없었다. 이날 붙은 150만원의 임대료를 평당가로 계산하면 3.3㎡(약 1평)당 21만5000원에 달했다.

오르막을 걷다 보니 오래된 약국과 세탁소, 수선점이 눈에 띄었다. 젠트리피케이션의 원래 의미는 ‘원주민이 지가 상승을 버티지 못하고 나가는 현상’이지만 이태원2동의 주거지역은 상업화가 진행되지 않은 덕분인지 생활 밀접 업종이 여전히 영업 중이었다. 


빈 가게만 다시 살폈다. 1·2층이 술집과 레스토랑으로 운영되던 곳이다. 거주민이 자주 이용하기보다는 관광을 목적으로 한 고객이 주요 타깃이었을 것이다. 빈 가게에도 패턴이 있는 셈이다.

이태원2동의 업종별 개폐업률을 확인했다. 전체 업종의 개업률은 4.2%, 폐업률은 5.0%였다(2019년 2분기 기준). 이 중에서도 폐업 비중이 높았던 것은 외식업이다. 


2015년 2분기 10%대였던 외식업 개업률은 2019년 2분기 2.8%로 떨어졌다. 3.8%였던 폐업률은 8.9%대로 올랐다. 4년 만에 상황이 뒤집힌 셈이다. 모든 업종이 외식업과 같은 길을 걸은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출처더스쿠프 포토

업종별로 차이가 있었을까. 2017년과 비교해 올해 점포 수가 크게 줄어든 곳은 외식업·부동산 등이었다. 대신 슈퍼마켓과 의류점·가정용품·미용실 등은 늘었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업장이 줄고 부동산 거래가 줄어든 대신, 다른 생활 밀착 업종이 조금씩 늘어났다.


23㎡에 임대료 150만원


오후 4시 반이 되자 경리단길 언덕 중턱에 연기가 가득 찼다. 꼬치를 파는 트럭에서 나오는 연기였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트럭을 에워쌌다. 관광을 목적으로 한 사람들이 줄어들었을 뿐 거리는 여전히 북적댔다. 때맞춰 학생들이 하교하고 주민들은 마을버스에서 바쁘게 내렸다. 


이 일대를 더 자주 들여다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경리단길과 이태원을 잇는 녹사평에 있는 맥주펍 캐논볼은 문을 연 지 1년이 약간 넘은 새내기다. 곽지훈 대표는 송리단길로 불리는 석촌 호수 근처와 녹사평을 두고 마지막까지 고민하다 결국 녹사평에 자리를 잡았다.


✚ 녹사평을 고른 이유가 궁금합니다.

“분위기 때문이에요. 경리단길부터 이태원까지 이어지는 분위기는 다른 곳에서는 찾기 어렵잖아요.”


✚ 창업한 지 1년을 막 넘겼다고 했는데, 요새 분위기는 어떤가요?

“분위기는 안 변했는데, 다른 가게들이 많이 바뀌었어요. 다들 접고 많이 떠났죠. 임대료를 힘들어했습니다.”


✚ 경리단길과 이태원 상권이 몰락했다고 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원래 경리단길이 북적거릴 때만 해도 경리단길에서 녹사평을 거쳐 이태원으로 오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요새는 이 위로 넘어가지를 않죠.”

출처더스쿠프 포토

✚ 경리단길이 변했다고 생각하시나요?

“최근에 조금 놀란 건 프랜차이즈 토스트 매장이 생겼다는 거예요. 그 가게가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만 그런 건 있어요. 어디 가서든 보고 경험할 수 있는 가게들이 이렇게 둥지를 틀면 경리단길만의 이미지가 사라질 것 같아 걱정스럽긴 해요.”

✚ 장사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런 불안을 어떻게 해소하나요.

“우리는 일단 1년을 버텼어요. 비슷한 시기에 장사를 시작한 곳이 있는데, 거기도 1년이 약간 넘었어요. 그런데 거기는 최근 압구정에 2호점을 내기도 했어요. 없어진 곳도 많지만, 계속 찾아오는 사람들을 실망하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구체적인 계획이 있나요.

“이태원 문화가 가진 독특함이 있잖아요. 이태원, 녹사평, 경리단길에 올 때 기대를 하고 오는 특이한 요소들이요. 핼러윈 때 붐비는 분위기가 대표적이라고 생각해요. 여기 직접 찾아와서만 느낄 수 있는 경험을 드리고 싶어요.”


경리단길을 남기려면… 

맥주펍 캐논볼은 ‘프로젝션 매핑(Projecti on Mapping)’을 이용해 가게 안을 새로운 공간으로 만든다. 사람들이 직접 찾아온 만큼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것 대신, 경리단길과 녹사평, 이태원 문화가 품은 다양함을 보여주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이런 노력도 그곳에 누군가 남아 있어야만 가능하다. 떠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 필요다는 얘기다. 임대료를 견딜 수 있는 프랜차이즈만이 생존한다면 과연 경리단길에는 무엇이 남을까.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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