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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개그맨의 인생2막, 그리고 자영업

개그맨 신동수씨 “개미지옥서 희망꽃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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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신동수(41)씨는 나이 앞자리가 ‘4’로 바뀌니 덜컥 걱정이 앞섰다. 인기가 떨어져 TV에서 멀어진 탓에 먹고살 게 걱정이었다. 친구들과의 모임에도 화제는 늘 ‘앞으로 뭐 해 먹고살지’였다. 그가 선택한 건 뜻밖에도 개미지옥이라 불리는 자영업 시장이었다. 임대료, 고꾸라진 경기…. 경고의 시그널이 울리는 그곳에서 신씨는 인생 2막을 열었다. 생각보다 훨씬 쉽지 않았다. 

출처오상민 작가

세상일에 갈팡질팡하지 않고,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어진다는 나이 ‘불혹不惑’. 하지만 한국의 많은 40대가 불혹이란 말이 무색할 만큼 불안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몸담은 회사에서 자리를 내줘야 한다는 ‘퇴사 압박감’에 시달리지만 퇴사 이후의 삶은 막막하기만 하다.

지난해 마흔 고개를 넘긴 개그맨 신동수(41)씨도 마찬가지였다.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과 모인 자리에서도 주제는 한결 같았다. “앞으로 뭐해 먹고살지….”

신씨는 한때 이름을 날렸던 개그맨이다. ‘천생 개그맨’이 꿈이었던 그는 스물여섯이던 2004년 MBC 공채로 데뷔했다. 어려서부터 분위기를 띄우는 건 1등이었다. 학예회나 학교 축제 때마다 무대에 올라 친구들을 웃게 하는 게 그의 기쁨이었다. 일찌감치 군대를 제대하고, 곧장 대학로 소극장으로 달려간 것도 개그맨이 되고 싶어서였다.

그렇게 들어선 개그맨의 길은 쉽지 않았다. 그를 기다린 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무명시절이었다. 배고픈 무명 생활의 종지부를 찍은 건 2009년 “뭔 말인지 알지”라는 유행어가 빵 터지면서다. 방송 출연과 행사 섭외가 물밀 듯 들어왔다. 잔고가 텅 비었던 통장엔 눈이 휘둥그레질 액수가 찍혔다. 

하지만 치솟았던 인기가 꺼지는 건 순간이었다. 불러주는 곳은 점차 줄었고, 고집스러운 성격에 방송국 PD들과 얼굴을 붉히는 일도 잦았다.

“남들처럼 잘 못하는 것도 하겠다고 하면 되는데, 고집을 부렸죠. 리포터 섭외가 들어와도, 연기를 해야 하면 부담되더라고요. 거절이 반복되니 당연히 방송국에서 불러주는 일도 줄었죠.” 그렇게 점차 방송국과 멀어지고, 크고 작은 행사를 뛰었다. 먹고살 만하긴 했지만 나이의 앞자리가 ‘3’에서 ‘4’로 바뀌니 압박감이 커졌다.

있으나 마나 한 정년 


이런 곡절曲折은 신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프리랜서 직장인뿐만 아니라 정규직 직장인도 요즘 고용 불안에 시달리긴 마찬가지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직장인 61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2019년)를 진행한 결과, 70.6%가 “고용상태에 불안을 느낀다”고 답했다. 전 연령대 중 40대(83.3%)가 고용 불안을 가장 많이 느꼈다.

신씨와 같은 연령대다. 그만큼 신씨의 마음도 급했다. ‘다음’을 준비해야 했던 그는 자영업을 택했다. “사실 30대 초반에 처음 자영업 시장을 경험했어요. 사람 만나는 걸 워낙 좋아하니까 장사도 자신 있었죠. 정말 기세등등하게 시작했어요.” 

그는 2010년 강남 역삼동에 대형 고깃집을 열었다. 월세만 900만원에 이르는 큰 가게였다. 주방도 유명한 사람을 비싼 몸값을 주고 스카우트해 맡겼다. “고기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어요. 그래도 주방장이 솜씨가 좋고, 가게만 멋들어지면 잘 될 줄 알았죠.”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자영업 시장은 만만하지 않았다.

특히 음식점업은 ‘개미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종사자 수가 70만명을 훌쩍 넘어선 탓에 출혈경쟁이 난무했고, 5년 내 폐업하는 가게도 숱했다. [※참고: 음식점업의 5년 생존율은 18.8%로, 전체 자영업 평균(27.9%)에 훨씬 못 미친다.]

신씨 역시 가게를 차린 지 1년여 만에 포기했다. 매월 커지는 적자를 감당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신씨는 그후 “다시는 장사를 하지 않겠노라” 마음먹었다. 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었다. 40대를 앞두고 일감이 부쩍 줄자, 장사밖에 할 일이 없었다. 지금까지 모아둔 돈을 모두 걸고, 자영업 시장에 다시 뛰어들었다. 물러설 곳은 없었다.

당연히 신씨의 발걸음은 과거와 달랐다. 상권을 분석하기 위해 직접 발품을 팔았다. “목동 · 양재동 · 구월동(인천) 등 서울 곳곳을 다녔어요. 일주일 내내, 상권을 하루 종일 지켜본 날도 많았죠. 유동 인구가 얼마나 되는지, 상인들에게 매출이 어떤지 묻고 다녔어요. 주말에도 장사가 될지 꼼꼼하게 따져봤습니다.” 

독립창업이 아닌 프랜차이즈를 택한 것도 달라진 점이었다. “과거 주먹구구식으로 장사했다가 실패했던 우愚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어요. 이제는 그럴 만한 자금적 여유도, 시간적 겨를도 없었죠. 대출을 받아 창업했기 때문이죠.”

준비기간만 1년이 넘게 걸렸다. 그렇게 신씨는 올 1월 목동역 앞에 99㎡(약 30평 · 테이블 15개) 규모의 가게(차돌박이 전문점 이차돌 목동로데오점)를 열었다.

오픈한 지 5개월이 흐른 지금, 그의 가게는 안정적인 매출액(월 9000만~9500만원)을 올리고 있다. 시스템이 갖춰진 프랜차이즈이다 보니, 메뉴개발, 식자재 유통, 직원관리 면에서 효율성이 좋았다. 

직접 꼼꼼히 상권 분석 


최근엔 점심장사도 시작했다. 일주일 내내 쉬는 날 없이 일한다. 단골고객도 늘었다. 아직 수익의 대부분을 대출 상환에 쓰고 있지만, 지금처럼만 매출이 유지된다면, 2년 안에 갚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신씨의 기대다.

“요즘 경기가 워낙 안 좋은데, 운이 좋게도 입지를 잘 잡았어요. 오픈 효과가 끝나면 매출액이 떨어질까 걱정했지만 유지되고 있어 다행입니다.” 

그렇다고 신씨에게 걱정이 없는 건 아니다. 얼마 전 신씨의 점포 바로 앞에 대형 고기전문점이 문을 열었다. 단골고객은 꾸준히 찾아와주지만 긴장이 되는 건 사실이다.

“언제 또 경쟁업체가 제 가게 주변에 둥지를 틀지 몰라요. 자영업, 특히 음식업계에 뛰어드는 분들이 정말 많거든요.”

볼멘소리가 아니다. 한국의 자영업자 비율은 25.4%(이하 2017년 기준)로, OECD 평균(37개국 · 17.0%) 대비 높은 수준이다. 마땅히 갈 곳이 없는 은퇴자들이 자영업계에 뛰어든 결과다. 게다가 특별한 기술 없이 창업할 수 있는 음식업은 은퇴자들의 ‘요람’이라고 할 수 있다.  


“개그맨으로 성공하기도 어렵지만, 자영업 시장은 그보다 더한 전쟁터예요. 직장 힘드니까 장사나 해볼까라는 마인드로 뛰어들어선 성공하기 어렵죠. 저도 아직 그래요. 웃고는 있지만 다리는 발버둥을 치고 있죠(웃음).”

비단 신씨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언젠가 내 얘기가 될지도 모른다. 40대 개그맨이 말하는 자영업, 그건 사선死線이었다.

글=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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