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남매 중 막내로 자랐어요"

조회수 2020. 6. 29. 09:1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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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뉴그레이가 만난 쉰 다섯 번째 아빠의 이야기와 사진을 담았습니다.
정규병(63, 은퇴 후 운송업)

그는 그의 결혼식에서도 머리 한 번 손질해 본 적 없다고 했다. 친구가 빗으로 빗어준 머리로 결혼식을 했다고. 돌아보면 무계획하고 준비 없는 삶을 살았던 것 같다고 했다. 후회한다기보다는 되돌아보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그는 9남매의 막내로 태어나서 결혼을 하고 가장이 되어 하나의 가정을 꾸렸다. 투박하긴 했을지언정 무계획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 9남매의 막내로 자라는 건 어땠어요?
 
+ 막내들이 대게 그래요. 이기적이죠. 살면서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았어요. 갖고 싶은 건 다 가져야 했고. 그게 가장이 되어서도 남아있었던 것 같아요. 애들 어릴 때 가족을 챙기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게 지금도 아쉬워요.
 
+ 호적으로는 내가 3살이 어려요. 그래서 학교도 늦게 들어갔고… 옛날에는, 그러니까 나 때는 호적 신고를 여러 형제를 모아서 했어요. 내 위로 셋이서 3살씩 줄었어요. 당시에 우리 아버지가 농사를 지으셨거든요. 일손이 필요하니 자식을 많이 낳아야겠다 해서 많이 낳으셨더라고요.
 
- 사랑 많이 받고 자라셨겠어요.
 
+ 어머니가 늘 하던 말씀이, “막내야, 집 가까운 데 있어라.” 였어요. 객지 생활이 힘드니까, 그래서 대우 조선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는데 83년도에 거제로 갔죠. 서울에서 작은누나랑 6년 정도 살았던 시절을 제외하고 처음으로 혼자 살았어요. 그러다 고향에 형과 조카가 다니던 회사에 이직을 하고 30년을 다녔어요.
 
+ 서울에서 살던 작은누나 동네 이웃이 지금의 집사람의 이모였어요. 나한테 소개를 시켜준 거지. 1년 정도 연애를 하다가 결혼을 했어요. 연애할 때 제가 거제도에 있을 때라, 자주 만나지는 못했어요. 그래서 편지를 주고
받으며 연애를 했어요. 내가 그랬어요. “내가 마음에 들면 사진과 함께 답장을 주고, 그게 아니면 마음이 없는 거라 생각하겠다.”라고. 근데 그 답장이 반 뒤에야 왔어요. 지나고 보니 장모님이 서두르셨더라고. 객지에 있는 사람 기다리게 하지 말라고 집사람을 볶았대요.
 
+ 처음에 집사람을 만날 때엔, 내가 여자 하나 구제해야겠단 마음으로 만났어요. 그런데 지나고 보니 내가 그 사람에게 구제받고 있더라고요. 내가 도움을 참 많이 받았어요. 내가 일을 벌여 놓으면 뒤처리는 늘 집사람이 했어요. 우리 애들도 어릴 때 장모님이 봐주시고. 우리가 맞벌이였거든. 그래서 같이 못 놀아준 게 항상 늘 마음에 걸려요. 애들이 대학을 둘 다 서울로 가서 그 이후로는 쭉 떨어져서 살았죠.
 
+ 애들이 참 할머니 손에서 잘 커줬어요. 정말로 장모님께 감사하죠. 어버이날이니, 결혼기념일이니 우리도 잊고 사는데, 늘 잊지 않고 먼저 챙겨요. 저로서는 굉장히 뿌듯하죠.

그는 60이 넘어가는 지금에 와서 그렇게 크고 거창한 목표나 꿈은 없다고 했다. 그렇지만 나름의 버킷리스트는 있다고. 더 늙기 전에 스페인 성지순례를 다녀오고 싶다고 했다. 그 성지순례를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싶다고 했다.  

#아빠에게 

 

규병 씨❤️ 드디어 막내인 내가, 아빠가 처음 ‘아빠’가 된 나이가 되었네. 내가 느끼는 지금의 나는 이렇게 미성숙하고 부족한 게 많은데 아빠는 어떻게 지금 내 나이에 많은 걸 책임지고 살아왔을까. 어떻게 ‘나’ 보다 ‘우리’를 생각하고 우선할 수 있었을까.  

 

젊은 시절에, 그리고 지금(물론 지금도 젊어! 100세 시대니까!) 아빠는 무슨 꿈을 꿨고, 또 꾸고 있을까? 20년을 같이 살았고, 10년을 나와 살았고, 도합 30년이 되었지만 나는 아직도 아빠에 대해 모르는 게 참 많은 것 같아서 미안해.  

 

30년간 아빠가 나를 굳세게 지지해 줬던 것처럼, 나도 아빠의 선택과 꿈을 지지할 수 있는 멋진 딸이고 싶어. 지금까지 정말 고생 많았고, 앞으로의 아빠를 응원할게! 사랑해 규병 씨! 보임 씨랑 상희랑 앞으로도 행복하자❤️❤️  

 

#남자는죽을때까지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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