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열심히 모아서 장애우들을 위한 시설을 만들 거예요."

조회수 2020. 4. 17. 09:5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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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뉴그레이가 만난 마흔 두 번째 아빠의 이야기와 사진을 담았습니다.
박정환(52, 구직 중)

숱한 파도를 겪고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 많은 파도 속에서 그는 쓰러지지 않았다. 국가 보훈처 산하기관을 거쳐, 복권회사를 창업도 했었다. 사람 일은 한 치 앞도 모른다란 말이 있는데, 그의 삶이 그랬다. 하루아침이었다. 바닥까지 내려가는 데 걸린 시간. 사회복지사, 공공 근로, 장애인 활동보조원 등 온갖 일을 해왔고, 현재 그는 구직 중이다.

- 가족 얘기를 먼저 듣고 싶어요.

 

+ 내 가족이요? 안 끝날걸요. 작은 아이가 몸이 아파요. 태어날 때는 괜찮았는데, 돌 지나고 경기를 일으켰어요. 을지병원 응급실에 바로 데려갔는데 하필 전문의가 없었어요. 링거만 꽂으면 발작이 멈추는 상태였는데, 전문의가 없어서 그걸 못했어요. 그때부터 몸이 불편했어요. 지금도 휠체어에 안전벨트 하고 다녀요.

 

+ 그럼에도 밝고 유쾌하게 살았으면 좋겠는데, 아내는 그게 안 되나 봐요. 아이 때문에 아내가 많이 힘들어해요. 딱 하나 바래요. 애 하고 아내하고 잘 살았으면 좋겠고, 나랑 와이프랑 하늘로 가면, 딸아이 잘 돌봐줄 수 있는 사람.. 하나만 있었으면 좋겠어요.

 

+ 큰아이도 학창 시절엔 사춘기를 세게 겪었어요.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사고도 제법 쳤고.. 근데 다행히 사회복지사 선생님을 잘 만나서, 사회복지사가 되려고 전문 대학교에 갔어요. 이제는 큰 걱정이 없어요.

 

+ 나는 0점짜리 남편이에요. 딸아이가 아프기 전까지 정말 일만 했어요. 돈만 벌어다 주면 되잖아,라고 생각했던 거죠. 아내가 내 옷도 다 벗겨줬고. 그런데 딸아이가 그렇게 되고, 아내가 이혼도 하자고 했었어요. 3개월 정도 숙려 기간을 별거하면서 보내고, 큰 아이가 집으로 다시 돌아오고, 다시 한번 잘 살아보자 했어요.

 

- 지금 일은 어떤 일을 하고 계세요?

 

+ 지금 구직 중이에요. 젊었을 때는 국가 보훈처 산하기관에 한국 보훈 복지 의료공단에서 일을 했어요. 복권사업을 맡아서 했는데, 정부에서 그걸 못하게 했어요. 그래서 회사를 차렸는데, 그것도 이런저런 사정이 있어서 폐업을 하게 됐죠. 그 이후에는 안 해본 일이 없네요.

 

+ 요즘은 구직 관련 기관에서 취업교육을 받고 있어요. 청년 세대에 멘토링 해줄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싶어요. 그리고 우리 네 가족에 관련된 책을 써보고 싶어요. 그리고 돈을 열심히 모아서 장애인 시설을 만들고 싶어요.

딸 때문에 산다고 했다. 집에 들어가면 늘 환하게 웃어주는 딸 때문에. "쟤 때문에라도 살아야겠다.”라고 생각하고 늘 마음을 잡는다고. 나락으로 떨어진 것도 작은 아이 때문이지만, 그를 다시 살게 하는 것도 작은 아이라고.  

 

#남자는죽을때까지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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