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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 스피드마스터 - 우주로 간 시계

아이콘 -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제품들의 이야기와 의미를 파헤치는 연재입니다. 우리 시대의 아이콘들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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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기어 작성일자2016.07.22. | 32,826 읽음

지난 해 개봉한 영화 <마션>은 화성에 혼자 남게 된 과학자의 생존기다. 이 이야기에서 가장 감탄한 점은 꽤 많은 설정이 실제 연구 결과라는 점, 그리고 그 결과들을 일반인도 열람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었다. 인류는 우주에 대해 지식을 쌓은 결과 <마션>같은 현실적인 SF가 나왔다. 이 점은 생각해보면 좀 감동적이기도 하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확실히 진보하고 있는 것이다.


잠깐 시간을 뒤로 돌려 보자. <마션>이 나오기까지 인류는 꽤 많은 단계를 거쳐야 했다. '큐리오시티'와 '디스커버리'가 있었고 그 전에는 '아폴로 프로젝트'가 있었으며 그 전에는 '제미니 프로젝트'가 있었다. 비록 우주 개발이라는 게 냉전의 기싸움이었다 해도 인간은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수준의 기계로 잘도 우주까지 다녀온 것이었다. 그 과정을 함께 한 물건 중에서는 우리 같은 보통 사람도 살 수 있는 것이 몇 있다. 그 중 하나가 오메가 스피드마스터다.

스피드마스터는 스위스의 시계 회사 오메가에서 만든 크로노그래프 손목시계다. 크로노그래프는 경과 시간을 측정하고 기록하는 기계식 시계의 기능을 말한다. 흔히 스톱워치라고 하는 그 기능 맞다. 왜 스톱워치라고 하지 않고 크로노그래프처럼 폼 잡는 말을 쓰냐고 물으실 수도 있겠는데 물건이 비싸지다 보면 수식어도 달라져야 하는 게 모든 사치품 업계의 생리다. 


크로노그래프는 거창한 이름이 어울리는 진지한 정밀 계측기이기도 하다. 지금이야 핸드폰 기본 시계에도 스톱워치 기능이 있으니 잘 와닿지 않을 수도 있는데, 인간이 정밀한 단위의 경과 시간을 기록할 수 있는 기계를 갖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기계식 시계의 발달 과정은 소형화, 오차 감소, 경과시간 측정, 달력, 종치기 정도로 세분화된다. 경과 시간을 측정하는 튼튼한 소형 기계는 엄연한 첨단 기술이었다. 

시계 전문지 '크로노스'의 2009년 7월호에는 NASA에서 시계 구매를 담당한 '제임스 H. 레이건'의 인터뷰가 수록되어 있다. 그 인터뷰에 따르면 크로노그래프 시계는 위급 상황을 위한 일종의 백업 시스템이었고, 자체적으로 개발하기엔 너무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기 때문에 애초부터 외부 업체들의 시계를 구매하려 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후보를 찾는 일부터 시작했다. 시계 회사들의 크로노그래프 생산 라인을 확인하고 우주인들에게 손목시계 사용 경험을 물었다. 그때 개인적으로 롤렉스, 브라이틀링, 오메가 등의 시계를 차고 나간 우주인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정식으로 NASA 구매부를 통해 6~8개의 브랜드에게 테스트용 샘플을(확실한 용도는 아직 밝히지 않고) 요청했다. 요청에 응한 브랜드는 4곳이었다. 해밀턴, 롤렉스, 론진 비트나우어, 오메가. 


스피드마스터가 NASA의 우주 탐험 시계로 선정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이 시계가 시대의 아이콘이 되는 다큐멘터리다. 아폴로 전 세대인 머큐리 프로젝트 시대의 공식 시계는 우주선에 장착된 시계 뿐이었다고 한다. 우주까지 가는데 시계 하나라니 내가 보기에도 위험해 보인다. 그래서 레이건 씨는 보조기구 개념으로 우주인에게 지급될 기계식 손목시계를 찾기 시작했다. 각종 테스트에 통과한 최후의 시계 하나가 우주인의 기계 중 하나로 쓰이는 것이었다.

테스트는 혹독했다. 11개의 테스트 항목 중에는 71°C에서 48시간 버티고 93°C에서 30분 견디기, 95% 습도에서 250시간 테스트, 최소 8.8g 중력에서 최대 2000Hz의 진동 측정 등이 있었다. 오메가 스피드마스터의 영문 위키피디아 항목에 그 세부 요소가 나와 있다. 


이쯤 되면 웬만한 시계들이 떨어져나간다 해도 부끄러울 일이 아니다. 롤렉스는 습기 테스트에서 탈락하고 열 테스트에서는 바늘이 녹았고, 론진은 여러 차례 글라스가 녹았다는데 테스트가 저러면 당연한 것 아닐까 싶다. 해밀턴은 처음부터 회중시계를 보내와서 바로 제외되었다고 한다. 오메가는 저렇게 엄청난 테스트를 거치고도 살아남은 최후의 시계가 되었다. NASA는 오메가에게 화환을 보낸 건 아니었지만 정식으로 스피드마스터를 대량 구매하기 시작했다. 


스피드마스터는 달 표면에 두 번째로 도착한 버즈 올드린의 시계로 알려져 있다. 첫발을 딛은 닐 암스트롱은 혹시나 해서 탐사선에 시계를 두고 나왔기 때문에 닐 뒤로 나온 버즈 올드린의 스피드마스터가 처음으로 달 표면을 겪은 손목시계다. 하지만 그 전에도 스피드마스터는 미국 최초의 우주 기록과 함께 했다. 1965년 6월 5일 미국은 자국 최초로 우주 유영에 성공했는데, 그 주인공인 에드 화이트는 스피드마스터를 차고 있었다. 

기계식 시계의 강자들은 이런 식의 그리스 신화같은 이야기를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어디 깊은 물 속에 갔고 누가 어디 갈때 찼고 어디에 뭘 달아서 바닷속으로 내려보냈다는 등, 요약하면 '우리 시계가 이렇게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은 전통이 있다'는 주제다. 비싼 물건은 단순히 비싼 소재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비싼 물건을 산다는 행위 뒤에는 사람들의 납득과 동의가 필요하다. 납득과 동의를 하려면 브랜드 이미지나 인지도 혹은 중고 시세같은 변수가 많을 수록 좋다. 남자 물건의 튼튼함과 물건의 신화 역시 그 변수 중 하나다. 내가 달에 가기는커녕 추석 아니면 달도 안 보면서 살아도 튼튼한 시계에는 남자의 마음을 자극하는 구석이 있다. 그러므로 질문이 남는다. 에피소드를 가진 시계가 많다면 그 중에서도 스피드마스터가 특별한 부분이 무엇일까? 


오메가가 달에 간 시계가 되기 위해 특별히 한 게 없다는 것이 스피드마스터의 가장 특별한 부분이다. 시계 회사들이 만들어낸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성능을 증명하는 에피소드를 만들어낸 주체가 사실은 시계 회사인 경우가 많다. 마케팅 이벤트 개념으로 극한 상황을 만들고 거기에 성공한 후 그 자료를 일반에 배포하는 것이다. 오메가의 경우는 완전히 반대다. 오메가는 NASA로부터의 정식 요청을 받기 전까지는 자기 시계가 어디 가는지도 몰랐다. 고급 시계 업계에서 달에 갔다 왔다는 명찰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아주 귀한 트로피다. 그 타이틀을 얻기 위해 오메가가 한 것이라고는 아주 튼튼한 시계를 만든 것 뿐이다. 아주 튼튼한 시계를 만든 덕분에 스피드마스터는 여섯 번의 아폴로 미션에 참여했다. 

스피드마스터는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1970년의 아폴로 13호 미션에서다. 이 일은 영화화된 것처럼 탐사선의 산소 탱크가 폭발하며 공포의 서바이벌 게임으로 변했다. 여기 타고 있던 잭 스와이거트는 궤도를 수정하기 위해 정확한 시간을 알아야 했는데 그때 의지해야 하는 시간 계측기가 스피드마스터였다. 스와이거트의 시계가 시간을 정확히 표시한 덕분에 궤도 수정은 성공했고, 그런 인간의 기지와 기계의 안정성이 쌓여 아폴로 13호는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NASA는 이때의 공을 인정해 오메가에게 '스누피 어워드'를 줬다. 우주 개발에 공헌한 업체와 개인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오메가가 한 번씩 스누피 그림을 새긴 한정판 스피드마스터를 출시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오메가의 스피드마스터 라인업은 김밥천국 메뉴처럼 많다. 하지만 지금도 오리지널 문 워치를, 그 희대의 명기를 살 수 있다. 이름부터 프로페셔널 문 워치. 사양도 그때의 것과 비슷하다. 그때 것과 비슷하다는 건 지금 것과는 다르다는 뜻이기도 하다. 차이점은 크게 셋이다. 사파이어 크리스털 글라스 대신 옛날 손목시계에 쓰던 플렉시글라스를 썼다. 자동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 말고 수동 크로노그래프를 넣었다. 케이스 뒤를 유리로 처리해 무브먼트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요즘 경향과는 달리 쇠로 뒷면을 막았다. 다 각자의 이유와 장단점이 있다. 플렉시글라스는 경도가 약한 대신 충격을 받아도 금이 갈 뿐 산산조각나지는 않는다. 수동 크로노그래프는 오토매틱 모듈이 없는 개념이어서 기계 구조가 간단해지고 두께가 줄어든다. 시계 뒤를 유리로 처리하면 보기엔 좋지만 내구성이 약해질 일을 굳이 할 필요는 없다. 이건 프로페셔널 문 워치니까.

무엇보다 오메가 스피드마스터는 멋진 시계다. 지금은 찾기 힘든 20세기 디자인 특유의 담백함이 살아 있다. 지름 42mm 케이스는 출시 당시 기준으로는 꽤 큰 것이었지만 지금은 적당하다. 다이얼과 베젤에 촘촘하게 새긴 눈금과 돔 형태로 조금 솟아오른 플렉시글라스도 귀여운 느낌이 난다. 시침과 분침 역시 요즘 오메가가 쓰는 브로드애로우 형태가 아닌 얇은 1자형이다. 이때는 시계가 비싼 물건이기 전에 정교한 시간 계측기였다. 지금의 거의 모든 시계에서 볼 수 있는 과잉이 드러나지 않는 것도 스피드마스터가 장신구이기 이전에 정밀기기였기 때문이다. 만약 달에 갔다는 트로피가 없었다면 스피드마스터는 진작 단종되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중고로만 구할 수 있는 수많은 20세기의 날씬한 시계들처럼.

오메가 스피드마스터는 '아이콘'이라는 이 기획의 제목에 가장 잘 어울리는 물건 중 하나일 것 같기도 하다. 우직하게 좋은 시계를 만든 덕분에 스피드마스터는 20세기를 통틀어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의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더이상은 사람이 달에 가지 않지만 오메가는 축제가 끝나도 음악을 끄지 않는 가게처럼 별의별 문워치 에디션을 계속 출시한다. 올해도 '스누피 어워드 40주년 기념' 한정판 스피드마스터가 나왔다. 하지만 현실이 하나인 것처럼 진짜도 하나 뿐, 문워치라 할 만한 건 아직까지 거의 흡사한 사양으로 나오는 옛날 버전 뿐이다. 올해는 미국과 소련이 인류 최초로 우주 유영에 성공한 지 50주년 되는 해이기도 하다. 스피드마스터는 그때도 에드 화이트의 우주복에 둘둘 감겨 있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스피드마스터는 인류가 내딛은 큰 한 걸음의 현장에 함께 있던 시계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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