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

조회수 2020. 5. 2. 10: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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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과 솔직한 것은 다르다. 대부분 사람은 거짓말을 하기 싫어서 침묵을 택한다. 시골에 계신 어머니가 전화 너머로 “요즘 회사생활은 어때? 힘들지는 않고?”라 물으실 때 “진작 이 회사 안 들어온 게 얼마나 아쉬운지 몰라. 이사님이 엄청 잘해주셔”라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런데 “응? 아, 응……. 뭐 나름……” 이러면서 밝은 톤으로 시작했다가 끝을 얼버무리면 분명히 거짓말은 아니다.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안 했으니까. 또는 “공부는 잘돼가?”라는 어머니의 물음에 “참, 아빤 요즘도 술 많이 드셔?”라고 화제를 전환하는 것 역시 거짓말이 아니다. 다만 솔직하지 못한 것일 뿐.

우리는 보통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나의 고민을 꺼내 공유하며 상대에게 감당하게 하는 건 부담스럽다. 결국 아무렇지 않은 척, 아프지 않은 척, 힘들지 않은 척하기 위해 침묵한다. 얼버무린다. 화제를 돌린다.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서도 괜히 부담을 주지 않는 방법이라 여긴다. 어쩌면 “이쯤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어”라고 말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더 멀리, 더 높이 뛸 수 있다고 해서 어른은 아니다. 모처럼 찾아간 초등학교 운동장이 작아 보인다 해서 어른이 된 건 아니다. 모호하게 얼버무리고 ‘오늘도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라고 스스로 위안하는 것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솔직히 말할 수 있는 게 진짜 어른이다.

솔직히 말할 수 없는 건, 솔직히 말했을 때의 반응이 두렵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과 상대를 믿는다면 내 고민을 털어놓고 내려놓는 게 어렵지 않다. 두렵지 않다. 진짜 사랑만이 두려움을 쫓아낼 수 있다. 힘겹게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상대가 도리어 화를 내며 그걸 왜 이제야 말하느냐고, 왜 나한테 먼저 말해주지 않았느냐고 화를 내는 일도 있다. 진짜 운 좋은 사람만이 하는 경험이다. 이런 경험은 길 가다가 우연히 공룡 화석을 발견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만약 당신에게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주저하지 말자. 그에게 사랑한다고 100번을 말했었다면 사랑한다고 1,000번을 더 말해주자. 잊을 때쯤 만 번을 더 말해주자. 그런 사랑을 만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생각 없이 걷다가 공룡 화석을 만나는 것만큼 어렵다. 아니, 공룡 화석을 만나는 편이 오히려 더 쉽다. 허물을 감싸고 두려움을 쫓는 진짜 사랑을 만나기란 이토록 만만찮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앞자리 친구가 유난히 덩치가 커서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선생님이 모를 거라 생각한다. 졸거나, 만화책을 보거나, 학원 숙제를 하거나, 스마트폰을 보고 있어도 내가 워낙 감쪽같아서 선생님은 결코 모를 거라고 생각한다. 훗날 학부모가 되어 학교를 찾아가 교탁에 서 계신 담임 선생님께 인사를 드린 후 무심코 교실을 둘러보면 알 수 있다. ‘다 보인다’라는 걸. ‘한눈에 다 들어온다’라는 걸.

 

감쪽같은 학생은 없다. 모른 척해주시는 선생님만 있을 뿐이다. 작은 교실에서 우리는 다 컸다고 생각한다. 어른인 선생님보다 힘도 세고 피도 끓어오르며 더 많은 것을 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당시 선생님들이 우리에게 ‘솔직히’ 말씀하셨다면 아마도 이러셨을 거다. “선생 노릇 힘들어. 그리고 너에게 관심이 있다면 훈계하거나체벌해서라도 교정했겠지. 만화책 보고 수업 시간에 학원 숙제 하는 거 다 알고 있었어. 근데 너한테까지 잔소리할 힘이 없고, 사실  관심도 없었어. 하든 말든 나랑 관계없으니까.” 

요리사가 편하면 음식 맛이 떨어진다. 선생님이 편한 길만 찾으면 학생이 망가진다. 요리든 사람이든 사랑이든 일이든, 관심이 없고 애정이 없으면 몸은 편하되 서서히 무너진다. 애정이 있고 사랑이 있는 사람 눈에는 교탁에 선 선생님처럼 다 보이고 한눈에 들어온다. 정확히 알 수 없어도 사랑하는 당신이 요즘 힘들다는 걸 느낄 수 있고 알 수 있다. 그러니 언젠가 내게 말해주기를 기다린다. 누구보다 내게 먼저 말해주리라 기대한다.

그러니 다른 사람을 통해 사랑하는 이의 고민을 듣게 된다면 화나는 게 당연하다. 학생이 엎어져 자든 말든 깨우지 않는다면 학생이 감쪽같이 속여서가 아니라 선생님이 그 학생에게 관심도 없고 ‘아무 관계도 아니’기 때문이다. 학원에선 깨운다고? 학원에는 돈을 갖다주기 때문에 싫어도 돈값을 하는 거다.

만약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고민을 나누지 않고 어려움을 토해내지 않는다면, 그래 주기를 기다렸고 기대했는데 그러지 않는다면 상대는 당신에게 관심도 못 받고 아무 관계도 아니었나 싶어 화가 날 수밖에 없다. 역설적이게도 이럴 때 무섭게 화를 내는 만큼 그 사람은 당신을 사랑하는 거다. 상대가 너무 화내다가 한 대 쥐어박기라도 한다면 조용히 맞고 있자. 한 번 더 말하지만 그런 사랑 만나기보다 공룡 화석 찾기가 더 쉽다. 모든 일에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분노도 에너지다. 분노의 에너지는 사랑과 관심이다. 아무 관계가 아니라면 분노도 일지 않는다. 만사 귀찮을 뿐이다. 나랑 아무 상관도 없는데 뭘.

사랑하는 만큼 보인다. 당신은 자신의 고민을 감쪽같이 속인다고 생각하겠지만, 정말 사랑하는 사람 눈에 안 보일 리 없다. 보고도 모른 척 아무렇지 않다면, 당신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데 눈치가 빠른 것일 뿐. 모든 일이 그렇듯 솔직해지는 것 역시 어렵고 힘들다. 하지만 처음이 유독 힘들 뿐이다. 잊지 말자. 누군가는 알면서도 당신이 솔직해지기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솔직하게 말해주는 걸 기뻐하고 감사할지도 모른다. 솔직함, 사랑, 공룡 화석, 잊지 말자. 


덧 ,

어디에나 가짜가 있다. ‘난 솔직하니까’라고 합리화하며 무례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당신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만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다. 자기가 뱉은 말 때문에 당신 기분이 상하든 말든 일단 토해내야 자기가 시원하니까. 아 니, 정정하겠다. 자기 자신만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고 스스로 사랑하지 못해서다. 그래서 솔직함이라는 핑계로 음절 하나하나에 가시를 박아 날리는 거다.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워서 못 다가오도록, 가까이 다가오면 자신의 연약하고 볼품없는 영혼이 드러날까 봐 그렇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과 자신만을 사랑하는 사람은 무척 닮았다. 분명히 말하지만 솔직한 사람은 스스로 솔직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정직한 사람은 스스로 정직하다 말하지 않는다. 솔직, 정직은 스스로 말하지 않아도 주변에서 알아주는 것들이다. 없는 사람들만이 자신 에게 있다고 포장한다. 착한 어른들은 특히 조심하자. 매번 착한 사람들만 다치고 아픈 게 너무 싫다. 그러니까 당신, 아프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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