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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죽기로 결심한 그날, 나는...

늦었지만 아빠에게 용서를 빌 기회가 생긴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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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 년 넘게 살면서 저는 아빠에 대해서 너무 몰랐습니다. 아빠가 무슨 색을 좋아하는지,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 어떤 꿈을 갖고 사는지, 어릴 때 꿈은 뭐였는지, 어떨 때 가장 기쁜지, 어떤 상황에서 죽고 싶은 기분을 느끼는지, 전혀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아빠가 죽기로 결심한 그날도, 저는 아빠가 그런 생각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곤 감히 상상도 못 했습니다. 힘든 일 같은 건 내색도 안 하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시시껄렁한 유머에도 허허 웃는, 한없이 긍정적인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 우리 아빠가 유서 한 장 남기지 않은 채 외롭고 쓸쓸히 죽음이라는 길을 혼자서 걸어갈 사람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무작정 고향으로 내려가자 눈앞에 펼쳐진 상갓집의 풍경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저기 사진 속 아빠의 얼굴이 너무 낯설었습니다. 어릴 때 보았던 그 미소는 온데간데없고 알 수 없는 뭔가에 짓눌려 굳어버린 표정이었습니다. 

왜 이제 왔어. 아빠가 너 많이 보고 싶어 했는데...

아빠의 친구 분이 엉엉 울면서 저에게 말했습니다. 없는 살림에 어떻게든 커준 딸이 아빠에게는 얼마나 큰 자랑이었는지, 제 밥벌이 하고 사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대견하게 여겼는지 이야기해주셨습니다.

저는 쥐어짜도 더는 눈물이 나오지 않는 마른 행주처럼 상주 자리에 가만히 앉아만 있었습니다. 아빠가 나를 많이 보고 싶어 했고, 힘들 때 나를 필요로 했다는 것조차 몰랐습니다.

아빠가 죽음을 결심했을 그때 내가 연락이라도 한 통 했다면. 아빠는 죽지 않았을까?

후회가 물밀 듯이 쏟아졌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라는 존재의 쓸모가 하나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그 누구에게 힘이 되어주지 못하고, 스스로 가치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깨진 컵 같아요. 남에게 상처를 주고, 이제 아무것도 담지 못하는 그런 존재 같아요.

박성우 시인에게 툭 털어놓듯이 이야기하자, 별다른 위로의 말은 없었고 대신 원고를 써보겠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저처럼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잃어버린 이들에게 어떠한 대답을 글로써 하고 싶으셨는지도 모르죠.

그로부터 1년이 훌쩍 넘어 제 손에 들어온 원고는 ‘컵 이야기’라는 단순한 제목을 하고 있었습니다. 동화 형식의, 버려진 컵이 자신의 쓸모와 가치를 찾아가는 이야기였습니다. 


개미와 나비, 나팔꽃과 도마뱀... 잊고 살았던 미물들과 어우러져 컵은 있는 그대로의 가치를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말갛고 순수한 글의 말미에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습니다.

세상에 완벽한 존재는 없다. 그렇다고 쓸모없는 존재도 없다. _에필로그 중

한없이 늦었지만, 아빠도 저와 같은 기분을 느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쓸모없게 느껴지고, 세상에게 존재를 부정당한 것만 같을 때. 아빠에게 필요한 말이 뭐였을까, 생각했습니다.

아빠, 밥은 드시고 일해요? 밥 챙겨 드세요.
아빠. 아빠는 저에게 정말 소중한 존재예요.
아빠, 고마워요. 그리고 사랑해요.

깨지고 금 간 컵처럼,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라고 느낄 때 힘이 되는 말은 아주 단순합니다. 그 단순한 말 한마디 하는 게 얼마나 힘이 들길래 저는 그 말을 하지 못했던 걸까요? 후회하고 자책하느라 긴긴 시간이 흘렀습니다. 


극단적인 생각으로 고민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열심히 살아서, 아주 나중에 아빠를 만나서, 늦었지만 아빠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을 만들어야겠다 결심했습니다.

아빠처럼, 그리고 저처럼. 세상에게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컵 이야기』는 그런 마음을 모아서 만든 책입니다. 

『컵 이야기』는 소풍 나왔다 버려져 쓸모를 잃어버린 컵 하나가 자신의 쓸모와 가치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버려진 그 자리에 붙박인 채로, 비가 오면 빗물을 담고 햇살이 쏟아지면 그 안에 씨앗을 담아 틔우는 컵의 놀라운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금이 가고 깨지더라도 나는 나대로 오롯이 살아가려 해.

세상에 전하고 싶은 한 구절을 띠지에 적으며, 저 자신의 마음도 힘껏 다잡았습니다. 어렸을 적 아빠가 소리 내 읽어주셨던 동화책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듯, 단순하고 깨끗한 이야기가 지금의 위기를 돌파해낼 가장 날카로운 송곳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아이었을 때 읽었던 동화를 어른이 되어 다시 읽으니, 잊고 살았던 삶의 단순한 진리가 눈을 통해 몸 안으로 들어와 가슴을 쾅 때렸습니다.

삶의 소외된 곳에 있더라도 나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와 쓸모가 있다.

있는 그대로의 가치를 긍정하는 이 이야기가 지금 이 세상에는 한없이 순해서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더 멋지게 살아내고, 위대한 결과를 이룩하는 이야기가 당신에게 더 도움이 될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누군가에게는 『컵 이야기』라는 책 한 권이 세상을 살아갈 용기를 주기를 희망합니다.

늦었지만 아빠에게 용서를 빌 기회가 저에게 생긴다면, 아주 나중에 시간이 많이 흘러서,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이 책 한 권을 꼭 선물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날이 온다면 지금의 움츠러든 어깨가 조금은 반듯해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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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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