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인듯 아닌듯 힙한 서울 카페 3

조회수 2021. 4. 29. 12:5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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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언젠가 꼭 카페를 해보고 싶은 객원 필자 김정현이다. 나는 카페를 만드는 사람에게 관심이 많다. 누가 기획하고 운영하는지에 따라 카페의 정체성과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여기는 재야의 커피 고수 혹은 고독한 커피 외골수가 운영하는 곳일 것 같아…’, ‘저 카페는 딱 봐도 패션 업계 사람이 대표겠지?’, ‘도대체 무슨 일을 했길래 이런 독특한 공간을 연 거야?’


나와 비슷한 호기심을 가져본 적이 있다면 오늘 소개할 카페에 주목하자. 잔뼈 굵은 바리스타나 로스터, 커피 바이어가 아닌 커피와는 무관한 직업을 가진 이들이 만든 카페는 어떤 모습일까? 그들은 어떤 목적과 톤 앤 매너를 가지고 가게를 꾸려가고 있을까. 일러스트레이터, 바버, 라이프스타일 디자이너, 주인장의 개성이 녹아든 카페 3곳을 소개한다.


“일러스트레이터의 작업실”
컴바인스

컴바인스는 일러스트레이터 김상인(@illustrator_sanginkim)의 작업실이다. 작업실에는 작가 특유의 자유롭고 위트 있는 감성이 곳곳에 배어 있는데, 이곳을 드나들며 직접 이야기도 나눌 수 있다.

일반적인 카페와는 거리가 멀다. 인스타용 사진을 왕창 찍겠다거나 간만에 만난 친구들과 수다 파티를 열겠다는 계획은 내려놓는 게 좋다. 그냥 편하게 아티스트 작업실에 놀러 간다고 생각하자. 놀러 간 김에 맛있는 커피도 한 잔 마시고, 따땃한 햇빛을 쬐며 여유 부리다가, 작업이 풀리지 않는 작가와 수다 좀 떨고 오는 거지. 그거야말로 소소한 공간의 본질이니까. 운영 시간도, 메뉴 구성도, 인테리어 컨셉과 좌석 배치까지 모두 ‘일러스트레이터 김상인의 작업실’이란 정체성을 이해할 때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주인장 입장에서는 손님들이 오는 게 불편하지 않을까. 안 그래도 작업할 때는 예민해질 텐데 카페처럼 오픈하다니. 아예 수익성을 극대화하지 않을 거라면 어떻게 생각해도 손해 아닌가? 아니면 커피를 정말로 사랑하시는 걸까? 작가는 의외의 대답을 했다. “이 공간을 통해서 작가로서의 저, 그리고 제가 하는 작업들에 쉽게 다가와 줬으면 좋겠어요.”

그러고 보면 우리는 ‘아티스트’라는 사람들에게 괜한 거리감을 느끼지 않나. 전시장에서 마주쳤을 때 쉽게 말 걸지 못했던 경험 한 번쯤은 기억날 거다. 하지만 그의 작업실을 방문해 작업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면, 어떤 고민으로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지 충분히 대화할 수 있다면 어떨까. 커피라는 좋은 핑계 덕에 작가는 자신을 어필하고, 반대로 손님은 작가의 예술 세계를 풍부하게 느낄 수 있다. 결국 모두에게 윈윈인 거다.

작업실인 만큼 작가의 취향이 녹아든 구석구석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투박하고 따스하면서도 힙하고 자유분방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공간이다. 통창으로 쏟아지는 햇빛 아래, 세월의 흔적을 뿜어내는 빈티지 나무 가구와 유니크한 패턴의 레드 컬러 카펫이 무게를 잡아준다. 식물과 오디오, 미술 도구들은 나름의 톤 앤 매너를 지닌 채 자연스럽게 배치돼 있다.

가장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건 작가 본인의 작품들이다. 그의 일러스트가 벽, 에스프레소 머신, 법랑 컵, 반팔 티셔츠 등 소재와 형태를 가리지 않고 곳곳에 얹어 있다. 그의 작품은 그 자체로 공간의 아이덴티티이고, 공간에 통통 튀는 매력을 더한다.

‘이렇게 힙한 건 사야 돼…!’ 디에디트 독자들이라면 이쯤에서 소비 욕구가 끓어오르겠지? 그럴 땐 주저 없이 나무 서랍장으로 향하자. 스티커와 노트, 성냥 등 굿즈를 구매할 수 있다. 나는 티셔츠가 품절된 것을 통탄해하며 성냥과 노트만 샀다.

그래서 커피는 어떻냐. 맛있었다. 산미가 강하고 독특한 향이 나기보다는 묵직하고 진한 편에 속한다. 꿀꺽꿀꺽 먹기 좋다. 메뉴 구성은 무척 간결하다. 에스프레소, 아메리카노, 라떼, 아포카토 그리고 커피를 못 마시는 이들을 위한 분다버그 병음료까지. 아티스트의 작업실에서 마시는 음료로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컴바인스


  • 주소_ 서울 서대문구 송죽길 30
  • 영업시간_ 11:30 오픈 (월 휴무 / 영업시간 매우 유동적)
  • 인스타그램_ @combines_fip

‘이발소 옆 커피숍’
어셈블리

여대 근처에 있는 바버샵 그리고 바버샵과 나란히 붙어 있는 카페? 어쩐지 그림이 잘 안 그려진다. 하지만 일단 한 번 가보면 특유의 매력에 빠지게 될 거다. 바버들이 운영하는 카페 어셈블리는 성신여대입구역 부근에 있다. 번화한 역 주변을 1-2분쯤 걷다 보면 조용한 골목에 접어들고, 이내 보이는 고즈넉한 한옥 건물 맞은 편에서 바버샵의 간판을 볼 수 있다.

‘디아우트로 바버샵’은 전통적인 바버샵 문화를 계승하고 전파하는 바버샵이다. 2014년부터 7년간 바버샵을 운영하던 디아우트로 바버샵의 이발사들은 새로운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고객과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는 ‘어떤’ 공간이.


오랜 고민을 거쳐 지난해 가을 오픈한 공간이 카페 어셈블리다. 카페라는 공간이 가진 기능이 바버샵에 필요했다는데 좋은 선택인 것 같다. 어셈블리는 바버들의 아지트뿐만 아니라 체험과 공유의 가능성을 품은 연결고리로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으니까.

일단 자연스럽게 관심을 유도한다.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다 보면 창 너머로 바버샵 내부가 보인다.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공유되는 공간. 프레임의 영향인지 바버샵이 전시 공간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냥 카페로만 알고 온 손님에게도 독특한 이미지를 남길 수 있다.


반대로 바버샵 이용 고객들에게는 커피 쿠폰을 준다. ‘머리 자르고 수염도 다듬으며 기분 전환했으니 여유롭게 커피도 한 잔 하고 가세요’라는 메시지다. ‘기분 전환’이라는 표현에 딱 들어맞는 스무스한 동선이다.

“근데 전 바버샵에는 1도 관심이 없는데요?” 걱정 말자. 카페를 좋아하고 커피가 궁금한 분들에게도 충분히 흥미로운 공간이니까. 특히 감각적이고 세련된 분위기와 밝고 쾌적한 환경이 공존하는 카페를 찾는다면 정말 만족스러울 거다.

기본적으로 깔끔하고 심플한 인상이다. 바 뒷편의 메뉴판과 한쪽 벽면을 장식한 디스플레이 선반, 최대 10명이 앉을 수 있는 길다란 나무 테이블은 하얀 배경과 어우러져 편안한 무드를 잡아준다.

작은 골목이 내다 보이는 큰 창 덕에 답답함도 없다. 빈티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경쾌한 훵크 음악과 힙한 스타일의 직원도 매력을 더하는 요소. 그러고 보면 전반적인 느낌이 왠지 도쿄의 어느 힙한 카페를 연상시킨다. 사실 가보지는 않았는데 일본에 잠시 살다온 친구가 도쿄 나카메구로 감성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아, 중요한 걸 빼먹었다. 이곳엔 콘센트 플러그까지 넉넉하게 구비돼 있다. 언제나 공부하고 작업할 곳이 필요한 성신여대 학생들에게 이보다 더 멋지고 쾌적한 단골 카페가 어디 있을까.

커피 역시 훌륭하다. 사실 좀 의외였다. 아무래도 커피 경력이 있는 분들이 운영하는 카페는 아니니까. 그래서 더더욱 퀄리티를 놓치지 않기 위해 오픈 전부터 전문가 고객으로부터 많은 도움과 교육을 받으며 신경을 썼다고 한다.


에스프레소 베이스의 경우 부산의 베르크 로스터스로부터, 브루잉 커피는 서울의 폰트 커피로부터 원두를 받아쓴다. 요즘 웬만하면 브루잉 커피를 마시는 나는 싱글 오리진 ‘에티오피아 시다모 벤사 하마쇼 워시드’를 마셨다. 부드러운 질감과 상큼한 맛이 좋았고 함께 먹은 바스크 치즈 케이크와도 잘 어울렸다. 프라나 차이 밀크티 역시 풍부한 향미를 자랑하니 논커피 메뉴를 찾는 분들께 적극 추천한다.


어셈블리


  • 주소_ 서울 성북구 동소문로 93-9 1F
  • 영업 시간_ 매일 11:00-20:00
  • 인스타그램_ @asm_project

“동네 카페에서 만나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TRVR

카페 TRVR을 찾아가는 길은 힘들다. 이태원의 번잡한 거리를 지나 높게 경사진 길을 한참 걸어 올라가야 한다. 바로 앞에 내리는 버스도 없다. 하지만 그만큼 조용하고 평화롭다. 털레털레 걸어가는 할머니와 여기저기 냄새를 맡으며 산책의 기쁨을 숨기지 못하는 강아지, 심드렁한 표정으로 학원에 가는 듯한 고등학생과 트레이닝 복에 슬리퍼를 신고 커피를 마시러 온 아저씨까지. 핫플을 찾아 모여든 이들이 아닌 동네 주민들만 내내 만날 수 있는 한적한 주택가 한 켠, ‘LIFE NEEDS COFFEE’라고 쓰인 커다란 창이 눈길을 붙든다.

카페 내부 역시 차분하고 평온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평일 오전에 방문해서 더 그랬겠지만. 창가 자리에 앉아 책을 읽는 중년 부부와 맥북을 노려보며 작업에 매진하던 외국인 손님은 내가 들어오든 말든 각자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연주곡과 진한 커피 향이 천천히 공간을 채웠고, 주문하고 자리에 앉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중얼거렸다. ‘이 동네 살았으면 진짜 자주 왔겠네.’

전반적인 톤 앤 매너를 잡는 브라운 컬러의 나무와 가죽 소재, 널찍한 바 테이블과 적당한 간격을 두고 떨어진 2인용 테이블, 건물 계단으로 이어지는 문틀 등의 나무가 따뜻한 느낌을 전해준다. 푹신하면서도 밀도감 있는 가죽으로 제작된 소파는 일자로 기다랗게 뻗어 포인트가 된다. 거기에 깔끔한 하얀색 육각 타일 바닥과 진회색으로 덮인 노출 콘크리트 천장, 모던한 디자인의 빈티지 조명까지. 공간을 채우는 다채로운 요소들이 튀지 않고 조화롭게 이뤄져 세련되면서도 편안한 무드를 자아낸다.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무드가 느껴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곳은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TRVR을 이끄는 정승민 디렉터가 운영하는 카페다. TRVR은 오랜 시간 일상 속에서 꾸준히 함께할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 제품과 굿즈를 제작하는 브랜드다. 브랜드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소개할 수 있는 매개체이자 편하게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는 일상의 공간으로 카페를 열었다고 한다.

가죽을 비롯해 오래 지속되는 좋은 재료를 사용해 제품을 제작하고, 일상 속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을 강조하는 브랜드의 특성과 이미지를 전달하는 공간이 카페 TRVR인 셈이다. 같은 건물 2층에 쇼룸도 있으니 편하게 커피를 마시러 왔다가 자연스레 브랜드 제품까지 경험해보고 갈 수 있는 것. 카페 공간에서 직접적으로 브랜드 제품을 보여주거나 판매하는 건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어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브랜딩의 한 요소로 생각해도 좋겠다(참고로 정승민 디렉터는 배우 장윤주의 남편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커피 역시 무난하게 마시기 좋다. 인도, 코스타리카, 콜롬비아 원두를 적절하게 섞은 블렌드 원두 ’트래블러’를 사용하는데 특정한 맛에 치우치지 않은 적당한 밸런스가 돋보인다. 크게 호불호 갈리지 않을 맛으로, 주로 따뜻한 커피를 즐기는 나도 아이스로 맛있게 마셨다.

초콜릿 칩 쿠키와 살구 마카다미아 쿠키를 비롯한 디저트 종류도 마련돼 있다. 쇼케이스를 본 순간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주문한 초콜릿 칩 쿠키. 엄청 두툼한데 초콜릿 칩과 조각난 호두도 아낌없이 들어갔다. 커피만 마시기엔 어딘가 허전하고 당도 좀 채우고 싶다면 딱이다. 대신 먹다 보면 배부를 수 있으니 식사 전에는 자제하자.


cafe TRVR


  • 주소_ 서울 용산구 회나무로44가길 45
  • 영업 시간_ 화-금 09:00-20:30 토-일 10:00-20:30 (월 휴무)
  • 인스타그램_ @cafe_trv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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