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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이 아이팟을 만든 이유

조회수 2021. 3. 17. 12:2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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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IT 칼럼니스트 최호섭입니다. 오늘은 아이팟과 애플의 음악 생태계를 되짚어 볼까 합니다. 애플과 음악은 꽤 오랫동안 관계를 이어 왔습니다. 1980~90년대만 해도 애플의 매킨토시 컴퓨터는 전문가를 떠올리는 기기였습니다. 특히 그래픽과 음악에 대해서는 PC를 비롯한 여느 컴퓨터들과 다르다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삑삑거리는 PC에 비해 더 좋은 소리를 낼 수 있었고, 컴퓨터 음악을 만드는 도구로서도 맥은 훌륭했습니다. 이제는 거의 모든 음악이 당연히 컴퓨터로 만들어지지만 사실상 90년대부터 이어져 온 컴퓨터 음악의 인기에는 애플이 있었지요.

[이미지 출처 =imore.com]

애플과 음악의 본격적인 인연은 아이팟에서 시작합니다. 1997년 애플에 다시 돌아온 스티브 잡스는 아이맥과 함께 아이팟이라는 음악 기기를 내놓았죠. 그런데 사실 애플은 이 주크박스를 내놓기 전에 아이튠즈라는 음악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90년대 후반은 음악이 MP3라는 혁신적인 압축 기술과 인터넷을 통한 전송 기술을 앞세워 디지털 전환이 이뤄지던 시기였습니다. CD나 테이프가 아니라 컴퓨터와 파일로 음악을 듣는 새로운 경험이 시작된 것이죠.


애플도 2001년 사운드잼이라는 MP3 재생 앱을 인수해서 맥OS에 음악 관리 도구로 집어넣습니다. 파일을 재생하는 것뿐 아니라 CD에서 음악을 추출해서 파일로 만들어주는 게 주 역할이었습니다. 나만의 음악 라이브러리를 만드는 것이죠. 이게 바로 아이튠즈 뮤직스토어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해 가을, 스티브 잡스는 무려 4GB의 저장공간을 갖는 음악 재생기 아이팟을 내놓습니다. 당시의 음악 플레이어들이 대개 64MB, 128MB 정도를 쓸 때 애플은 하드디스크로 4GB의 음악을 담아낸 것이죠. 애플의 광고 문구도 ‘주머니 속의 1,000곡’이었습니다. Pod라는 단어는 사실 연료통, 용기 같은 의미로 쓰이는데, 애플은 음악을 담는 용기라는 의미를 심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팟’, 혹은 ‘포드’라는 단어는 애플의 한 브랜드가 됐죠.

저는 개인적으로 지난 20여 년간 애플의 가장 큰 전환점이 모두 이 아이튠즈 스토어에서 시작됐다고 생각합니다. 애플이 항상 강조하는 게 바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조화, 그리고 그 위에서 최적의 앱과 서비스를 누리도록 하는 제품을 만드는 것’입니다. 애플은 아이튠즈 스토어와 아이팟을 통해 바로 그 가능성을 일찌감치 깨달은 것입니다. 그 뒷이야기를 조금 더 해볼까요.


디지털, 그리고 혼돈의 음악 시장

[아이리버의 첫 플래시 메모리 MP3 플레이어 IFP-100]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세계적으로 음악 플레이어의 ‘짱’은 우리나라의 아이리버였습니다. 아이리버는 최고의 MP3를 만들어냈습니다. 디자인도, 아이디어도, 기술력도 뛰어나서 치열한 음악 재생기 시장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었죠. 우리는 소니의 ‘워크맨’을 쓰던 것처럼 아이리버의 ‘음악 플레이어’를 사서 썼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워크맨 자리를 아이리버가 꿰찬 거죠.


그럼 음악은 어떻게 들었을까요? 갖고 있는 CD를 한 장 한 장 정성스레 변환해서 듣기도 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죠. 네, 많이 부끄럽지만 적지 않은 곡들을 인터넷에서 구해 들었습니다. 불법 다운로드죠. 나중에는 멜론이나 벅스뮤직을 비롯한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들이 월 단위로 음악을 빌려 들을 수 있는 독자 보안 서비스를 제공해서 그걸 이용하기도 했지만 MP3 플레이어와 불법 음원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습니다.

음악 업계는 불법 다운로드와의 전쟁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이전에도 길거리에서 인기곡들을 모아서 테이프에 담은 불법 음반이 활개를 쳤지만 이는 ‘길보드 차트’처럼 인기곡들의 척도가 되기도 했고, 방송이 아니라 실제 시장에서 신곡을 알리고 인기곡을 만들어내는 하나의 생태계 요소처럼 작용했습니다. 무엇보다 복제품의 음질은 분명 한계가 있었고, 정식 음반의 판매량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습니다. 그 정도의 복제는 음악 시장의 일부였지요. 그런데 디지털은 조금 다릅니다. MP3가 기술적으로 음질이 떨어지는 압축 방식이라고 해도 CD 못지않은 소리를 낼 뿐 아니라 아무리 복사해도 그 질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아주 빠르고 간단하게 복제가 됐죠.

당시에 파일 공유는 소리바다가, 스트리밍은 벅스뮤직이 이슈가 됐습니다. 복제를 막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당시 음악 업계는 변화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고, 디지털 음원의 정착을 막는 접근을 시작했습니다. 반대로 보자면 적절한 협상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지요. 그 사이에 소비자들은 디지털의 편리함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고, 적절한 판매창구가 마련되지 않으면서 불법 음원이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옛날 이야기이고, 지난 역사지만 초기에 기존 음반 소비를 대신할 수 있는, 혹은 음반과 디지털이 병행해서 활용될 수 있는 서비스가 있었다면 이렇게 먼 길을 돌아오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스포티파이 등과 비교도 할 수 없이 일찍 시작했던 스트리밍 서비스들에 대한 가능성도 아쉬운 부분이고요.


불법 복제 방지책과 편리함 사이의 차이

다시 미국으로 넘어가 봅시다. 우리나라에서 저작권 때문에 소리바다가 진통을 겪는 동안 미국은 냅스터(Napster)라는 사이트가 음원 제작자들과 엄청난 충돌을 빚습니다. 막대한 소송전이 이어졌지만 그동안에도 음원들은 인터넷을 퍼져 나갔습니다. 이를 끊어낸 것은 법과 규제도 있지만 무엇보다 적절한 서비스의 역할이 컸습니다. 바로 아이튠즈 뮤직스토어입니다.


한 마디로 제대로 된 음악 유통 창구를 만들어낸 겁니다. 음원을 살 수 있게 된 것이죠. 한 곡에 0.99달러로 가격도 싸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이튠즈는 음악을 구입해서 소비하는 일련의 경험을 만들어냈습니다. 한 곳에서 구입하고, 듣고, 또 아이팟에 넣어 외부에서 들을 수도 있었지요.

[이미지 출처=tapscape.com]

애플의 아이팟이 진짜 의미를 갖게 된 것은 단순히 ‘용량이 큰 MP3’ 플레이어가 아니었습니다. 2003년 애플은 아이튠즈에 음악을 살 수 있는 다운로드 마켓을 엽니다. 디지털로 음악을 살 수 있는 제대로 된 환경이 만들어지는 겁니다. 저는 이 아이튠즈 스토어의 핵심은 편리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원을 보기 좋게 진열하고, 원하는 음원을 최적의 음질로 만들어서 아주 쉽게 구입하도록 했죠. 듣는 것도 간단했습니다.

애플은 복잡한 복제 방지 시스템을 두지 않았는데 그 덕분에 구입한 음원을 듣는 데에 제약이 없었습니다. 복제 방지 전용 파일 시스템 때문에 인증받은 특정 기기에서만 음악을 들을 수 있어서 불편을 겪었던 우리 환경과는 좀 달랐죠. 이 역시 결과론적이지만 편리함과 복제 방지에 대한 트레이드 오프가 만들어내는 차이를 생각해볼 수 있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음반 대신 디지털로 듣고 싶은 음악을 한두 곡씩 사서 듣기 시작했고, 그 모든 구매 내역은 아이튠즈 라이브러리에 담겼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자기만의 라이브러리를 갖게 됐지요. 지금도 많은 분들이 아이튠즈의 ID 태그 기반 음악 관리를 어려워하시죠. 우리나라는 초기 디지털 음악 관리를 ID 태그보다 폴더에 담긴 음반 단위로 저장하는 경우가 많았고, 리어카에서 팔던 히트곡 모음 위주의 소비가 디지털로 넘어왔기 때문에 그게 ID 태그 기반으로 섞이면 라이브러리가 엉망진창이 되기도 했죠. 하지만 음원을 구입해서 보관하고, 듣는다면 이 구조가 훨씬 낫습니다.

조금 과장해서 이야기하자면 많은 음원 기업들이 음악이 담긴 ‘파일’을 팔 때 애플은 ‘음악’을 팔고 있었습니다. 아이튠즈는 인터넷과 디지털 음악 유통의 경험을 중심에 두고, 편리하게 좋은 음원을 듣게 해 주면서 자연스럽게 기존의 소비를 끌어온 셈입니다. 그리고 그 음원의 구매 내역은 이후 애플 하드웨어의 가장 큰 무기가 됩니다.


애플에게 아이팟이란?

애플은 하드웨어를 파는 회사입니다. 아이튠즈 뮤직스토어도 결국에는 하드웨어 경험을 높이기 위한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경험인 것이지요. 애플은 2001년 아이튠즈를 내놓고 반년 만에 아이팟이라는 음악 플레이어를 발표합니다. 두 가지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한 가지는 ‘컴퓨터 만드는 애플이 왜 음악 플레이어를 내놓았나’였고 다른 하나는 5GB나 되는 저장공간을 가졌다는 점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이 두 가지가 별개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애플의 전략이 반영된 기기였습니다.

애플의 원래 이름은 ‘애플컴퓨터’였습니다. 컴퓨터회사였죠. 애플은 디지털로 전환되는 콘텐츠의 중요성을 일찍 깨달았고 소비와 유통 환경이 결국 인터넷에 접속되는 기기, 즉 컴퓨터에서 시작된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앞서 이야기한 대로 아이튠즈 서비스를 준비한 것이지요. 그리고 음악의 경험은 결국 들고 다니면서 듣는 것으로 완성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튠즈 뮤직스토어 플랫폼의 완성을 위해서는 휴대용 기기가 필요했고, 그게 바로 아이팟인 셈이죠. 단순해 보이지만 이전까지의 음악 플레이어와는 접근 방식 자체가 완전히 다릅니다. 생태계의 접근을 고민한 기기인 것이지요.

애플은 아이튠즈 뮤직스토어에 세상의 모든 음악을 담고자 했습니다. 사람들이 구입한 음악을 어디에서나 똑같이 들을 수 있어야 했는데, 당시의 기기 조건은 비싼 플래시메모리 때문에 수십 곡 정도밖에 담아내지 못했지요. 아이팟은 아이튠즈의 ‘테이크 아웃’ 기기였고, 아이팟은 아이튠즈를 그대로 담아내야 했습니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는 여기에 1.8인치 하드디스크를 넣었습니다. 5GB, 음악을 약 1천 곡이나 담아낼 수 있었죠. ‘주머니 속의 1천 곡’이라는 메시지는 마케팅적인 의미로도 꽤 충격적이었지요.

1천 곡의 방대한 용량은 이용자들에게 아이튠즈에서 음악을 사고 아이팟으로 음악을 듣는 것이 최고의 음악 환경이라는 인식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기기를 가득 채우고자 하는 디지털 시대의 소유욕을 자극하기도 했지요. 당시에 인터넷에서 음악 장르별로, 또는 연도별로 아이팟을 나누어 음악을 보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너무나 부러워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이리버를 비롯한 파일 단위의 MP3 플레이어를 쓰던 우리는 피부로 잘 와닿지 않겠지만 아이팟과 아이튠즈는 분명 다른 경험을 주었고, 실제로 시장에서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저는 비행기에서 승무원이 이륙 전에 전자 기기를 끄라는 안내를 하면서 MP3와 아이팟을 나누어서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놀랐는데, 다른 기기라는 인식이 잘 드러나는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애플은 아이팟과 함께 모토로라의 로커(Rokr)폰을 소개하기도 했는데, 이 제품은 아이폰 이전의 아이튠즈 폰으로 알려지기도 했지요. 아이튠즈에서 산 음악을 휴대폰에서 들을 수 있도록 연동한 건데, 애플이 음악을 생각하는 중심이 아이팟이 아니라 아이튠즈에 있고, 아이팟을 비롯한 하드웨어는 음악을 소비할 수 있는 단말기 역할로 봤다는 걸 알 수 있어요.


하드디스크 넣은 MP3 플레이어라고?

[iPod Classic 6세대]

이제 아이팟은 거의 역사 속의 이름이 되긴 했지만 20년 동안 강렬한 인상을 남기면서 꾸준히 우리 곁을 지켜오고 있습니다. 애플은 여러 가지 아이팟 시리즈를 내놓았는데, 그 과정은 지금 애플이 아이폰과 아이패드 등 휴대용 기기를 경험에 따라서 브랜드를 나누는 것과 매우 닮아 있습니다.

기본은 1.8인치 하드디스크를 쓴 풀사이즈 아이팟입니다.


 이 기기는 플래그십이자 아이팟의 중심이었지요. 꾸준히 세대를 이어가서 컬러 디스플레이와 최대 160GB의 음악을 담아내는 6세대 클래식으로 2014년까지 명맥을 이어 왔습니다. 6세대는 2007년에 처음 등장했는데 무려 7년 동안 자리를 지키다가 하드디스크가 생산되지 않아 아쉽게 단종이 됐지요.

[iPod mini]

이와 함께 크기를 줄이는 시도도 이어졌습니다. 2004년에는 하드디스크보다 더 작은 마이크로드라이브를 넣어 1천 곡의 저장 공간은 그대로 두면서 크기를 줄인 아이팟 미니를 내놓았는데 이를 통해 아이팟의 진입장벽을 낮출 수 있었습니다. 대신 본래 아이팟은 더 큰 화면과 더 큰 저장공간으로 수월하게 고급화할 수 있었지요.

[iPod nano 2세대]

아이팟 미니는 두 세대를 거치고 단종됐는데, 그 자리는 바로 아이팟 나노가 차지했습니다. 아이팟 나노는 아이팟 시리즈 중에서 최고의 히트작이었죠. 플래시 메모리의 용량이 커지고 가격이 내려가면서 아이팟에도 하드디스크 대신 플래시 메모리 시대가 열린 거죠. 하드디스크만큼은 아니지만 1GB라는 상징적인 용량도 지켜냈습니다.


특히 스티브 잡스가 청바지의 동전 주머니에서 자그마한 아이팟 나노를 꺼내 드는 장면은 전 세계에 큰 충격을 남겼습니다. 사실 이때만 해도 작은 MP3 플레이어는 많았는데 왜 놀라움을 주었을까요? 디자인이 예뻐서요? 그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바로 아이팟이 MP3 플레이어가 아니라는 인식이 어느 정도 우리의 머릿속에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이팟이 작아진 것’이라는 접근이 이뤄진 것이지요.

[iPod touch 7세대]

이제 아이팟은 거의 명목만 남아 있습니다. 지금 살 수 있는 아이팟은 2019년 발표된 7세대 아이팟 터치가 전부입니다. 아이폰에서 전화기 기능을 떼어낸 것이죠. 아이팟 터치는 아이폰이 대중화되기 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바로 아이튠즈 뮤직스토어에서 ‘뮤직’이라는 글자를 떼어내면서 아이튠즈를 앱을 유통하는 플랫폼으로 받아들이게 한 것이지요.


물론 주 목표는 아이폰에 있지만 아이팟 터치와 아이튠즈 앱스토어의 등장은 ‘아이팟에서 접근할 수 있는 콘텐츠가 음악에서 앱으로, 또 게임으로 확장된다’는 인식을 자연스럽게 주는 계기가 됐습니다. 전화기로서 커다란 아이폰에 대한 낯섦, 그리고 ‘담달폰’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출시가 계속해서 미뤄졌던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아이팟 터치 시리즈는 큰 역할을 했지요.


서비스 흐름의 전환, 아이팟의 흔적

[iPod touch 1세대]

한편으로 스마트폰으로 넘어오면서 아이팟과 터치스크린의 조합이 얼마나 적절하게 이뤄졌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휠 인터페이스와 대용량 주크박스가 아이팟을 설명하는 단어였다면 요즘의 음악 환경은 검색과 추천, 그리고 스트리밍이 포인트입니다. 여전히 아이팟과 애플뮤직의 연결고리는 아이튠즈에 있지만 아이팟이라는 브랜드가 주는 느낌과 애플뮤직이 추구하는 음악 경험은 분명 다릅니다. 아이팟의 터치스크린이 ‘틀렸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지만 브랜드가 주는 기대와 시대의 흐름이 다른 것이지요.

그래서 애플의 애플뮤직은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애플의 음악 생태계는 애초에 서비스에서 시작했고, 애플은 시대에 맞는 기술을 더한 하드웨어를 내놓고 있습니다. 이제 음악의 중요한 재생 매개체는 대용량 저장장치가 아니라 네트워크에 있고, 보관보다 이용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소화하는 최적의 하드웨어는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스마트폰입니다.

애플이 안드로이드에 애플뮤직 앱을 내놓은 것도 이와 연결해서 읽어볼 수 있습니다. 애플은 안드로이드에 앱을 내지 않습니다. 데이터를 옮기는 앱과 애플뮤직이 전부입니다. 애플은 음악을 특정 기기로 제한하기보다 다양한 기기로 유통하는 서비스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아이폰의 한 서비스가 아니라 애플뮤직 자체가 다음 세대의 아이팟이고,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하드웨어만 갖고 있다면 누구나 월정액 요금으로 시작할 수 있는 상품인 것이지요.

스마트폰으로 편리하게 듣는 음악에 익숙해지고 있지만 여전히 음악 재생을 중심으로 한 전문 플레이어로서의 아이팟을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중고 시장에서 탄탄하게 유지되는 가격이 그 증거겠지요. 그렇다고 새로운 아이팟을 내놓지 않는 애플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콘텐츠 소비의 흐름은 이미 바뀌었고, 추억과 감성만으로 지금 스마트폰 이상의 경험을 줄 수 있는 음악 전용 기기를 기대하기도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아이튠즈에서 출발한 디지털 음악의 진화 과정을 경험하고 있으니까 말이지요.


마지막으로 제가 소장하고 있는 추억의 제품들을 보여드릴까 합니다.

아이팟 미니 2세대 – 2005년, 조금 더 가벼운 아이팟이 필요해서 구입했던 제품입니다. 4GB 마이크로드라이브를 넣어서 크기와 용량을 줄였지만 그래도 아이팟이라는 특성을 충분히 살렸습니다. 흑백이지만 은은하게 들어오는 백라이트는 지금 봐도 멋집니다.

7세대 아이팟 나노 – 사실 플래시 메모리를 쓴 아이팟 나노의 역사적인 모델은 1세대 제품이죠. 아이팟 나노는 참 다양한 디자인 변화를 거쳤는데, 터치 스크린과 영상 콘텐츠를 모두 녹여낸 마지막 아이팟 나노는 2012년 마지막 제품과 함께 막을 내렸죠.

아이팟 클래식, 6세대 아이팟입니다. 2007년에 샀던 제품인데, 실버와 블랙 두 가지를 사서 갖고 있는 CD를 다 변환해서 넣었습니다. 곡 따라서 기기를 구분하면 왠지 멋있을 것 같은 허세였죠. 80GB를 어떻게 채우나 했는데, 지금 제가 쓰는 아이폰 용량이 512GB입니다.

왼쪽부터 아이팟 나노 7세대(2012), 아이팟 터치 5세대(2012), 아이팟 터치 2세대(2008)입니다. 터치가 대세가 된 이후의 아이팟들이지요. 특히 아이팟 터치 2세대는 처음에는 블루투스가 안 됐는데 운영체제 업데이트로 봉인이 풀려서 시끌시끌했던 기억이 있네요.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아이팟 클래식(2007), 아이팟 미니 2세대(2005), 아이팟 나노 3세대(2007)입니다. 이전에는 휠과 버튼이 구분되어 있었는데 2004년부터 싱글 휠로 바뀌면서 반발도 많았지만 지금도 이 매끄럽게 움직이는 터치휠이 그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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