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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진이 저평가 받는 결정적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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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시계 유튜버 김생활입니다. 2020년에 발간된 모건 스탠리의 스위스 시계 산업에 대한 보고서에 따르면, 론진은 스위스 브랜드 가운데 네 번째로 높은 매출(2019년 기준)을 올렸습니다.


같은 해 론진보다 높은 매출을 올린 브랜드는 롤렉스, 오메가, 까르띠에뿐입니다. 전 세계에서 고른 인기를 얻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권에서의 인지도도 매우 높습니다. 하지만 많은 시계 팬들은 론진이 저평가되어 있는 ‘안타까운’ 브랜드라고 말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위스 워치 브랜드 중 하나가 저평가되어 있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그 이유는 론진이 과거에 누렸던 명성이 워낙에 대단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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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로 상표를 등록한 시계 회사

론진은 1832년 스위스의 상티미에에서 설립됐습니다. 바쉐론 콘스탄틴(1755년)보다는 젊지만, 롤렉스(1905년)나 오메가(1848년)보다는 나이가 많습니다.


처음부터 론진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건 아닙니다. 원래는 창업자 어거스트 아가씨즈의 이름을 따 아가씨즈 앤 코(Agassiz & Co.)라는 사명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다 후대의 경영자 어니스트 프랑실론이 여러 공방에서 나눠서 이루어지던 시계 제조 과정을 효율적으로 합치려는 구상 아래 1867년 대규모 시계 공장을 짓게 됩니다. 공장이 위치한 장소의 지명이던 ‘레 론진(Les Longines, 기다란 풀밭이라는 뜻의 프랑스어)’이 곧 브랜드의 이름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어거스트 아가씨즈와 어니스트 프랑실론]

창립 초기 론진은 시대의 흐름을 빨리 읽고 변화를 주도하는 선구적인 회사였습니다. 론진은 브랜드의 정체성과 지적 재산권의 중요성을 미리 내다보고, 1893년 브랜드 로고와 상표를 지적 재산권 관련 기구에 등록한 세계 최초의 시계 회사가 됩니다.

론진을 상징하는 날개 달린 모래시계 로고는 롤렉스의 왕관 로고보다 일찍 사용됐습니다. 뿐만 아니라 19세기 중반에 이미 소규모 도제식 공방을 넘어선 대량 생산 설비를 갖추려 했고, 19세기 말에 이르면 자사 시계에 들어가는 모든 무브먼트를 한 지붕 아래에서 제작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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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 시계와 플라이백 크로노그래프로 빛났던 전성기

브랜드의 로고에 날개를 그려 넣어서 그런지 론진은 항공 시계의 역사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1919년에는 국제 항공 연맹(International Aeronautical Federation)의 공식 시계 공급 업체로 지정되기도 했고, 20세기 전반에 걸쳐 각국의 군 조종사들을 위한 파일럿 크로노그래프들을 만들어주기도 했습니다.


1920년대부터는 미국 해군 장교이자 발명가였던 필립 반 혼 윔스와 함께 항법용 항공 시계들을 개발하기도 합니다. 대서양을 무착륙 비행으로 횡단한 것으로 유명한 조종사 찰스 린드버그가 윔스의 항법용 시계를 좀 더 발전시켜 만든 시계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1931년의 ‘린드버그 아워 앵글’ 시계입니다. 이 시계는 GPS가 없던 시절 항법사가 비행기의 현 위치를 파악하는 절차를 획기적으로 단축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린드버그가 소장했던 아워 앵글 시계는 현재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1931년에 출시한 린드버그 아워 앵글]

파일럿들을 위한 정밀한 시계들을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었던 론진은 정확한 시계가 필요한 수많은 대형 스포츠 이벤트에서도 단골로 등장하는 브랜드였습니다. 1926년 국제 승마 대회, 1933년 브라질 그랑프리를 포함한 수많은 승마, 경주 대회에서 공식 타임키퍼로 활약했고, 1896년 이래 다섯 차례의 하계 올림픽에서도 공식 타임키퍼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전성기의 론진은 수동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에 관한 한 최고의 제조사로 여겨졌습니다. 1936년에는 손목시계에 들어가는 플라이백 크로노그래프 특허를 확보하기도 합니다. 플라이백 크로노그래프는 구동 중인 크로노그래프를 멈추지 않고 리셋할 수 있는 크로노그래프를 말합니다. 이는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폭탄이나 식량을 투하하는 파일럿들이나, 매 바퀴마다 소요 시간을 새로 측정해야 하는 레이서들에게 특히 유용한 기능이었습니다. 플라이백 크로노그래프를 가장 먼저 개발한 회사는 브라이틀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특허권을 가져간 쪽은 론진이었습니다.

[13Z N 무브먼트ⓒHodinkee]

론진이 내놓은 플라이백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 중에서도 1936년에 등장한 13ZN 무브먼트는 시계의 역사를 통틀어서 가장 위대한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들 가운데 하나로 여겨집니다. 론진은 오토매틱 크로노그래프로 주도권이 넘어가기 전까지 이 무브먼트를 장착한 시계를 다양한 다이얼 디자인으로 내놓았습니다. 이 시계들은 모두 오늘날까지 빈티지 시계 수집가들에게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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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츠 위기부터 현재까지

론진은 20세기 중반까지는 후발 주자들을 압도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브랜드였습니다. 이 회사가 지나온 길은 수많은 ‘세계 최초’ 타이틀과 기술 특허, 수상 기록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위대한 회사도 쿼츠의 도입이 가져온 위기를 피하지는 못했습니다. 대다수의 스위스 시계 브랜드들과 마찬가지로 실적 악화와 경영난에 허덕이던 론진은 1971년 스와치그룹의 전신인 ASUAG에 인수되었고, 현재까지 스와치그룹의 계열사로 남아 있습니다.


오늘날의 론진은 더 이상 인하우스 무브먼트를 만들지도 않고, 세계 정상급의 하이엔드 시계를 만들지도 않습니다. 그룹 내 계열사들끼리는 경쟁을 하지 않는다는 스와치 그룹의 암묵적 방침에 따라, 론진은 이제 같은 그룹의 오메가보다는 살짝 낮은 가격대를 공략하는 일종의 ‘입문용’ 럭셔리 브랜드로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론진의 전성기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론진이 스와치그룹에서 수행하는 역할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볼지 모릅니다. 하지만 론진이 더 이상 왕년의 하이엔드 브랜드가 아니라는 사실이 꼭 나쁜 일인 것만은 아닙니다.


오늘날의 론진은 자신이 보유한 방대한 아카이브를 잘 활용해 전성기 시절의 시계들을 비교적 접근 가능한 가격대에 내놓고 있습니다. 주요 모델들이 100만원대에서 500만원대 사이에 포진해 있으니 여전히 저렴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하이엔드 브랜드가 만든 비슷한 디자인의 시계와 비교해본다면 론진의 시계들은 차라리 큰 선물처럼 느껴질 겁니다.

보고 들은 것은 많아서 눈은 높아질대로 높아졌는데 천만 원을 넘어가는 초고가의 하이엔드 시계들을 장만할 의지나 여력이 없는 시계 팬들이라면, 론진을 외면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4
헤리티지 클래식 크로노그래프 1946

헤리티지 클래식 크로노그래프 1946(이하 1946)은 론진이라는 브랜드의 부인할 수 없는 매력을 잘 보여줍니다. 론진의 방대한 라인업 중에서도 아카이브에서 직접 끌어내온 모델을 주축으로 하는 ‘헤리티지 컬렉션’에 속한 시계이니만큼, 이 시계 역시 고전적인 생김새를 자랑하는 1946년의 역사적인 모델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론진이 전성기 시절 크로노그래프로 이름이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무슨 까닭인지 현행의 헤리티지 라인업에는 크로노그래프 모델이 많지 않습니다. 작년에 등장한 1946이 특히 반가운 이유는 단순히 크로노그래프 모델이어서가 아니라, 무엇보다 론진이 가장 화려했던 시절의 크로노그래프 디자인을 재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조 모델은 앞서도 언급한 바 있는 론진의 전설적인 플라이백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인 13ZN을 장착한 시계였습니다.

케이스는 전반적으로 폴리쉬가 되어 있고, 각진 러그가 달린 케이스와 사각형의 푸셔는 원조의 것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케이스의 사이즈는 40mm로 살짝 키웠습니다. 원조가 당시 기준으로 상당히 큰 38mm의 시계였음을 감안한다면, 크게 불만을 가지기는 힘든 사이즈 변화입니다. 거기다 내부에 무반사 처리를 한 더블 돔 사파이어 크리스탈을 지붕 삼아 다이얼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이 시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살짝 은빛이 도는 깨끗한 오프화이트 다이얼입니다. 브레게 풍의 검은색 아라비아 숫자 인덱스와 나뭇잎 모양의 열처리 블루 핸즈가 필승의 조합이라는 걸 부정하는 시계 팬들은 없을 겁니다. 시분침의 형태가 원조와 달라지긴 했지만, 그래도 원조가 가진 분위기만큼은 충실히 따르고 있는 걸로 보입니다.

3시 방향의 스몰세컨드와 9시 방향의 30분 카운터는 정확한 비례와 대칭을 보여줍니다. 열 두시 방향에는 화려한 요즘의 로고 대신 단정한 예전의 프린트 로고를 사용했습니다. 전체적인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날짜 기능을 굳이 추가하려 하지 않은 것도 마음에 듭니다.

1946의 엔진으로 채택된 L895.5는 범용 쓰리핸즈 무브먼트인 ETA2892-2에다 크로노그래프 모듈을 올린 무브먼트입니다. 진동수는 25,200bph로 다소 낮춘 대신, 파워리저브를 52시간으로 늘렸습니다. 좀 더 긴 파워리저브는 반가운 일일 수 있겠지만, 솔직히 이 무브먼트는 원조에 들어간 13ZN만큼 흥미롭지는 않습니다. 플라이백 기능이 없는 일반적인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플라이백 기능은 안 그래도 저렴하지 않은 이 시계의 가격을 치솟게 만들었을 테니, 론진의 선택을 충분히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시계에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케이스의 두께였습니다. 돔형 시계 유리를 포함한 두께는 13.2mm입니다. 오토매틱 크로노그래프임을 감안하면 크게 두꺼운 건 아닙니다만 고전적이고 단순한 생김새의 케이스임을 감안할 때 유독 두께가 두드러집니다. 원조처럼 수동 무브먼트를 장착하면서 1-2mm만 더 얇게 만들 수 있었다면 훨씬 더 좋은 시계가 됐으리라 생각합니다.


1946의 리테일가는 400만 원입니다. 여전히 비싼 시계입니다만, 비슷한 디자인의 하이엔드 브랜드 제품들이나, 1930-40년대 빈티지 론진 크로노그래프의 가격을 생각하면 상대적으로 접근 가능한 가격입니다. 특히 후자는 대개 수명이 70년이 넘은 시계들이라 이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감안해야겠습니다. 이렇게 1940년대의 전설적인 크로노그래프를 현대적인 스펙과 비교적 접근가능한 가격에 만나게 해준다는 데, 오늘날 론진이라는 브랜드가 가진 미덕이 있습니다.


특별한 장점


  • 현대적인 스펙과 안정적인 만듦새로 만나는 론진의 전성기 디자인
  • 파워리저브가 긴 무브먼트(52시간)

특별한 단점


  • 다소 두꺼움


주요 스펙


  • 케이스 지름: 40mm
  • 러그 투 러그: 47.8mm
  • 두께(시계 유리 포함): 13.4mm
  • 러그 폭: 20mm
  • 무게(스트랩 포함): 83.7g
  • 방수성능: 30m
  • 케이스 소재: 스테인리스 스틸
  • 시계 유리: 내부 무반사 처리를 한 더블 돔 사파이어 크리스탈
  • 무브먼트: 론진 Cal. L895.5
  • 스트랩: 검은색 가죽


*편집자 주: 김생활 님의 유튜브 채널 <생활인의 시계>가 궁금해졌다면 여기를 방문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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