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보다 면이 좋아? 서울숲 면맛집 3

조회수 2020. 11. 13. 12:2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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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글 쓰고 향 만드는 사람, 객원 필자 전아론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책 리뷰도 향 리뷰도 안 하고 맛집 콘텐츠만 열심히 만들고 있다^^? 먹는데 목숨 거는 사람이지만, 내가 모든 음식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나는 면은 별로 안 좋아한다. 이렇게 말하면 다들 경악하는 눈빛으로 나를 보던데. 종종 생각한다. 내가 사람을 안 좋아한다고 말했어도 그 정도로 경악하진 않을 것 같다고…. 인간 세상에서 면을 안 좋아하는 존재는 다소 죄인에 가깝다. “그럼 라면은? 우동은? 칼국수는?” 좋아하는 면 종류가 나올 때까지 계속 질문을 받아야 할 기세다.


하지만 면 메뉴를 파는 곳에 가면 내가 늘 하는 말은 “면 조금 주세요” 혹은 “면 반만 주세요”인 걸. “사실… 나는 탄수화물 자체를 안 좋아해. 그래서 밥도 빵도 별로야”라고 답하면 대부분 이해하기를 포기하기 때문에 대화가 쉬워진다. 하지만 최근 서울숲 아로 쇼룸에 출근하며 수도 없이 혼밥을 하다 보니, 이런 나조차도 ‘완식’하게 만드는 면 맛집들을 만났다. 면을 안 좋아하는 사람도 반할 정도라니, 면 좋아하는 사람들에는 과연 어떨까?


난포
제철 회 국수와 전복 들깨 국수

나에게 면 맛집 콘텐츠를 쓰고 싶게 만든 바로 그곳.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너무 맛있는 곳을 찾으면 ‘어머 이걸 모두에게 알려야 해’ 하는 내면의 목소리가 뻐렁친다. 맛있는 곳은 나만 알고 싶은 마음도 당연히 있지만, 10년 묵은 에디터의 피가 그 꼴을 못 본다.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곳은 무조건 잘 돼야 한다! 그러다 내가 못 가는 한이 있어도! (이러다 진짜 내가 못 가게 된 가게들도 많다)

난포는 바로 그런 마음이 들게 하는 곳이었다. 처음 먹어본 것은 ‘제철 회 국수’. 탄수화물을 안 좋아하는 대신 단백질, 특히 날 것의 단백질(회)을 좋아하는 내가 확 꽂혔던 메뉴다. 붉은 양념장 위에 다소곳이 제철 회가 올려져 나온다. 내가 먹었던 회는 도미였는데, 어떻게 숙성을 하신 건지 앞니로 슥 잘릴 정도로 부드러운 데다 감칠맛이 폭발이라 깜짝 놀랐다. 게다가 국수에 버무려진 빨간 양념의 맛은 완전 반칙. 너무 달지도 않고 너무 맵지도 않은, 고급스러운 양념장이라 또 깜짝 놀랐다. 먹는 속도가 꽤 느린 편인데 정말 순식간에 완식해버렸어… 다 먹고 난 후에야 얼큰하게(?) 올라오는 매운 향도 좋았다. 단점을 찾을 수 없는 메뉴이지만 굳이 찾자면 대식가들에게는 적을 것 같은 양? 하지만 나에겐 딱이었다.

다음에 찾아갔을 때는 전혀 다른 결의 국수를 도전해봤다. 바로 ‘전복 들깨 국수’. 평소라면 절대 안 시킬 것 같은 메뉴 이름이지만 난포를 믿고 주문해봤다. 결과는 대성공! 엄청나게 부들부들한 전복 아래 들깨 가루, 김, 그리고 참기름(혹은 들기름이나 들깨 기름이려나?)으로 버무려진 국수에서는 먹기도 전에 고소한 향이 풍겼다. 한 젓갈 한 젓갈 더해갈수록, 입안에 감도는 깨와 김의 향은 이 세상의 고소함이 아니었다. 그리고 얼핏얼핏 느껴지는 바다 내음은 먹는 사람의 정신을 혼미하게 해… 자칫 무겁게 느껴질 수도 있는 조합을 깻잎과 파로 잡아준 것도 눈에 띄는 한 수다. 먹다 보면 “내 국수 다 어디 갔지?”하는 기분을 느끼는 건 나뿐이 아닐 듯. 다만, 김과 깨는 입술, 치아, 잇몸 등등에 아주 잘 달라붙는 재료이기 때문에 소개팅에서는 절대 먹지 말 것. 잘 보여야 할 사람들(클라이언트라던가 사귄 지 얼마 안 된 애인이라던가) 앞에서 먹는 것도 추천하지 않는다. 부디 절친과 함께 드시기를. 뭐, 이미 절친 같아져 버린 오래된 애인이라면 오케이다.

항상 점심시간 시작하자마자 간 탓도 있겠지만, 아직 오픈한지 얼마 안 된 곳이라 갈 때마다 난포를 전세 내고 혼자만 맛난 음식들을 먹었다. 하지만 확신컨대 조만간 줄 서야만 들어갈 수 있는 맛집이 될 곳. 그리고 벽 한 면에 줄 세워진 커다란 병들은 술이 아니라 절임 반찬들이니 착각하지 마시길. (당연히 담금주인 줄 알았던 술쟁이는 바로 나.)


🏠난포

📍서울시 성동구 서울숲4길 18-8 지층


꾸아
분짜와 왕갈비 쌀국수

쌀국수 가게는 에머이밖에 모르는 바보라, 혼자서 쌀국수 가게를 찾아가 본 적이 없다. 그랬던 내가 꾸아를 제 발로 찾아가게 된 건 순전히 나의 착각 때문이었다. 어쩐지 점심을 가볍게 먹고 싶은 기분이 들었던 어느 날, 고민 끝에 떠올린 메뉴가 분짜였다. 앞서 말했듯이 내가 아는 건 에머이의 분짜뿐이라, “면 조금 야채 많이 주세요”하면 얼추 샐러드 같은 느낌으로 먹을 수 있었거든.

하지만 꾸아에서 내 앞에 놓인 분짜는… 절대 가벼운 메뉴가 아니었다. 아니, 삼겹살을 숯불에 구워주신 거죠 지금!? 넴(베트남식 튀김 만두)은 또 왜 이렇게 크고 두툼해? 에머이 넴은 엄청 말랐는데? (에머이 미안.) 게다가 분짜 소스가 따뜻하게 나오는 것도, 소스 안에 미트볼 같은 고기가 또 들어 있는 것도 당황스러웠다. 완전 고기 파티네? 그런데 웬걸. 고기의 숯불 향과 소스에서 살짝 풍기는 새콤달달한 냄새가 식욕을 한껏 자극해서 군침이 꼴깍 넘어갔다. 가볍게 먹긴 뭘 가볍게 먹어. 태어나서 처음으로 쌀국수를 그렇게 있는 힘껏 먹어본 것 같다. 그날 이후로 자꾸 꾸아의 분짜가 생각난다. 또다시 혼자 먹을 엄두는 안 나는데 누구라도 좀 같이 가줘요.

그렇게 벼르다 누군가와 함께 방문한 꾸아에서 또다시 놀라운 메뉴를 만났다. ‘왕갈비 쌀국수’라는 이름답게 정말로 커다란 왕갈비가 올려진 쌀국수. 보통 쌀국수에 들어가기 마련인 숙주도 야채도 없이, 진하게 우려낸 고기 육수와 왕갈비의 고기로만 가득 채워진 메뉴였다. 게다가 왕갈비는 왜 이렇게 커다랗죠? 꾸아 사장님 고기에 너무 진심이신 것 아닌가요? 그런데도 너무 맛있어서 헛웃음이 나왔네. 고기를 먹어도 먹어도 도무지 끝이 안 보인다니… 이날도 또 있는 힘껏 쌀국수를 먹어야 했다.

그래서 꾸아는 내게 ‘가기 무섭지만 너무 가고 싶은’ 맛집이 되어버렸다. 이 모순적인 감정을 어찌할꼬. 근데 여기서 제일 유명한 메뉴는 분짜도 왕갈비 쌀국수도 아닌 반쎄오라던데. 검색해보니 무려 3단으로 나오는 반쎄오 비주얼이 장난이 아니다. 하, 저랑 같이 있는 힘껏 먹어주실 파티원 구합니다.


🏠꾸아

📍서울시 성동구 서울숲4길 26-24


멘야코노하
해장 라멘과 마제소바

누군가 제안을 했을 때, 그나마 불만 없이 따라가는 면 메뉴는 ‘라멘’이다. 그렇다고 혼자 라멘집에 찾아가는 정도는 절대 아니다. 아니었다. 도쿄의 무기토 올리브를 제외하고 멘야코노하는 처음으로 내가 혼자 찾아가는 라멘집이 되었다. 특히 이 집의 해장 라멘은 매주 먹으러 갈 정도로 좋아한다. (매주 해장이 필요한 위기에 직면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적당한 무게감의 돈코츠 국물을 얼큰하게 만들었다니, 나뿐만 아니라 누가 먹어도 엄지척할만한 메뉴다. 토치로 한번 구운 차슈 덕분에 은은한 불향이 나는 것도 매력. 맵찔이인 나는 라멘 위에 올라가는 크러쉬드 페퍼는 빼 달라고 요청하지만 매운 걸 좋아한다면 본 메뉴 그대로 먹는 걸 추천한다. 매일 먹어도 부담스럽지 않은 라멘인데, 멘야코노하 왜 우리 집 앞에 있지 않아…?

하지만 멘야코노하에 빠지게 된 메뉴는 따로 있다. 바로 마제 소바다. 한 번도 마제 소바를 먹어본 적 없는 주제에, 그날따라 왜 그 메뉴가 당겼을까. 아마 나의 내면 깊숙이 숨겨진 맛집 레이더 덕분이겠지? (아님.) 그리고 눈앞에 놓인 마제 소바를 보고 직감했다. 이건 무조건 맛있다! 마제 소바는 국물 없는 비빔 라멘의 일종으로, 다진 고기로 만들어진 ‘민찌’를 중심으로 다양한 고명이 올려진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일본식 메뉴이지만 정작 개발한 건 대만 요리사라는 재미있는 비하인드스토리도 있다. 계란 노른자, 양념이 잘 된 다진 고기, 파와 김가루까지. 쓱쓱 비비니 양념이 면에 촤르륵 코팅돼서 식욕을 자극했다. 약간 매콤하고 짭짤한 양념이 자꾸 다음 젓가락을 부르는 맛이랄까. 마지막에 무료로 제공되는 밥을 비벼 먹으라고 안내되어 있었지만, 배가 빵빵해져서 도전해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의외로 성수에 라멘집이 많지 않아서, 멘야코노하 앞에는 평일이든 주말이든 점심시간만 되면 줄이 길게 늘어선다. 기다리는 게 싫다면 오픈 시간을 노리자! 늘 오픈 시간을 노리는 나와 마주치게 될지도 모른다.


🏠멘야코노하 성수

📍서울시 성동구 왕십리로4길 10-1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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