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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생산된 TV를 판다고?

조회수 2020. 8. 31. 12:0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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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디에디트에서 종종 공간을 소개하는 에디터B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맛집이나 분위기 좋은 카페, 어느 곳도 소개하기 힘들어졌다. 편집부 내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던 도중 사회적 거리 두기에 최적화된 빈티지 샵을 발견했다. 안국역 부근의 ‘레몬 서울’이다.

레몬 서울은 빈티지 턴테이블, TV, 카세트 플레이어, CD 플레이어 등 주로 세월의 때가 묻은 음향기기를 판매하는 곳이다. 오직 예약제로 한 팀씩만 입장하기 때문에 비교적 안심할 수 있다. 왼쪽에 택배 박스가 가득 쌓여있는 곳이 바로 레몬 서울이다. 나 역시 일주일 전에 예약하고 방문했다.

당연히 코로나 때문에 예약제 시스템을 시작한 건 줄 알았는데, B.C(Before Corona)부터 쭉 해오던 거라고 한다. 이유를 물어보니 음악 감상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아무래도 여러 손님이 한꺼번에 입장하면 서로의 음악이 섞여서 방해되기 때문이다.

매장에 들어가면 바로 정면에 턴테이블이 보일 거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일종의 포토스팟이 된 곳이다. 창밖으로는 창덕궁이 한눈에 보이는 ‘궁뷰’다. 좋은 포토스팟이면서 동시에 좋은 음악 감상 공간이기도 하다. 저 자리에 서서 반드시 음악 감상까지 해보는 걸 추천한다. 사진만 찍기엔 아까운 공간이다. 듣고 싶은 노래가 있다고 다 틀어주는 건 아니고 노래 취향을 말하면 LP를 추천해주는 방식이라고 한다. LP도 판매하고 있다.

매장이 그렇게 넓은 편은 아니다(굳이 넓을 필요가 없지). 신기하고도 매력적인 기기가 집약적으로 디스플레이되어 있었는데, 지금부터 인상 깊었던 아이템을 하나씩 소개해보려고 한다.

우선 매장 중앙에 주인공처럼 당당히 자리를 잡고 있는 TV부터 보자. 사진으로 봐서는 티가 잘 안 날 텐데, 상태가 굉장히 좋은 물건들이다. 30년이 넘었다는 생각을 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가장 신기했던 건 바로 이거다. 리플렉터라는 제품인데 원래는 과학 시간에 쓰도록 만들어진 물건이라고 한다. 별자리나 바닷속 풍경 영상을 USB에 넣어서 연결하는 식으로 사용했다고.


다른 제품들에 비해 그렇게 오래되지는 않았고, 90년대 후반이나 2000년대 초반에 발매된 제품이다. 사진 속 영상은 아마 <독수리 오형제>인 것 같은데, 블랙핑크 뮤직비디오 같은 걸 틀어두어도 이색적이고 멋있을 것 같다. 가격은 35만 원. 구매 의사가 있다면 일단 줄을 서야 한다. 위에 제품은 이미 팔려서 픽업 대기 중이고, 그 뒤로도 8명이 예약을 해놓은 상태니까. 줄이 길다. 플레이 궁금하면 여기로.

그 옆에는 정말 작은 TV가 있다. 예전에 포장마차에서 이런 TV를 보는 아주머니를 본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오른쪽은 소니 트리니트론이라는 제품이고 원래는 차량용 내비게이션으로 출시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GPS로 길을 찾지만 옛날에는 CD를 내비게이션에 넣어서 작동시켰다고 한다. 그래서 소니 트리니트론처럼 TV와 CD플레이어의 기능이 같이 탑재된 특이한 모델이 나왔다는 설명을 들었다. 여기서 플레이 영상을 볼 수 있다.

이 TV는 내셔널의 제품이다. 사실 나는 내셔널이라는 브랜드를 이날 처음 들어봤다. 88년생인데 내셔널을 모르면 당연한 건지 아닌지는 독자의 판단에 맡긴다. 아무튼 처음 들어봤다. 내셔널은 파나소닉의 전신이고 이 제품은 일본 프로야구단 한신 타이거즈와 콜라보레이션을 한 제품이라 옆에 타이거즈 로고와 함께 스트라이프 무늬가 들어가 있다. 옛날에는 회사의 높으신 분들이 업무용 TV로 이런 작은 것을 옆에 두곤 썼다고 한다.

왼쪽에 보이는 로봇은 매장에서 가장 고가 제품이다. 이름은 옴니봇2000. 재생하면 눈에 불이 들어오고 손도 무언가를 잡을 수 있게 움직이고, 바퀴가 달려 있어서 리모컨으로 조종할 수도 있다. 굉장히 구하기 힘든 모델인데, 한 손님에게 들은 바로는 똑같은 제품이 시애틀의 박물관에서 전시되어있는 걸 본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박물관에서 전시될 정도의 귀한 물건이 레몬 서울에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고. 가격은 300만 원.


이런 물건을 언제, 어떻게 다 모았는지 대표님께 물었다. 전에는 디자이너 일을 했는데 출장이나 여행 갔을 때 많이 샀다고 하더라. 레몬 서울은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곳이고 두 분 다 빈티지 제품을 모으는 취미가 있다 보니 계속 모으고 모으다 보니 이렇게 많이 모였다고. 물론 힘들게 수집한 거라 막상 팔려면 아쉽다는 생각도 당연히 든다고 한다. 하지만 박스에 들어간 상태로 먼지만 쌓여가는 게 더 아까워서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같이 보자는 생각으로 레몬 서울을 오픈하게 된 거라고 설명을 들었다.

레몬 서울에는 음향기기가 대부분이었지만, 선풍기 같은 것도 있었다. 기능적으로는 특별한 게 없고, 선풍기와는 색감이 달라서 매력적이었다. 이런 컬러에 이런 디자인이라면 요즘 출시해도 잘 팔릴 것 같지 않나.

왼편으로 이동하니 붐박스가 있었다. 붐박스는 영화에서나 봤지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다. 88년생이 붐박스를 처음 본 게 정상인지 아닌지 역시 독자의 판단에 맡긴다. 아무튼 처음 봤다.

붐박스의 기능과 디자인을 보면서 그 시대의 라이프스타일을 알 수 있어서 재미있었는데, 예를 들어 위에 붐박스를 보면 밑에 피아노 건반이 달려있다. 대표님에게 붐박스의 쓰임새를 들으니 그 이유가 짐작된다. 힙합을 사랑하는 청년들이 모여서 누구 붐박스 소리가 더 크냐 따위로 자랑을 하던 문화가 있었으니 피아노 하나 더 달린 것도 이상하지는 않다. 온갖 기능이 다 들어간 거대한 제품이지만 붐박스는 기본적으로 포터블이라는 것도 놀라운 사실이다. 그래서 배터리가 들어간다. 위에 모델은 카시오 제품이다.

대부분 일본 브랜드의 제품인데 일본 경제 호황기에 만들어진 제품들이 디자인이나 퀄리티가 좋고 기발한 아이디가 반영된 것들도 많다고 한다. 위의 것은 산요 제품이다.

홀맨을 닮은 이 제품은 다른 녀석들과 디자인이 많이 다른데, 마찬가지로 디자인이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1969년에 닐 암스트롱이 달 착륙에 성공하고 우주에 대한 동경이 커질 때쯤 등장한 디자인이다. 마찬가지로 웰트론이라는 일본 브랜드의 제품인데, 특히 이 회사에서 우주복을 닮은 둥근 디자인의 제품을 많이 출시했다고 한다. 카세트 플레이어 하나와 스피커 두 개로 구성되어있다. 밑에 제품도 같은 스타일의 디자인이다.

이건 흑백TV다. 아까 위에서 봤던 리플렉터처럼 화면이 둥글게 왜곡되어 보이는 건 아니고, 일반 모니터처럼 네모난 화면의 제품이다. 가까이서 잘 보면 네모난 화면이 보인다. 사진에서는 안 보이겠지만. 당연히 이걸 TV 시청하려고 사는 사람은 없고, 주로 예술 작가들이 산다고 한다. 가격은 100만 원대로 이미 판매가 완료되었다.

다른 쪽을 보면 유리 진열대가 있는데 안에는 카세트 플레이어, CD플레이어, 게임기 같은 소형 제품들이 전시되어있다.

이건 손목 시계다. 시계긴 시계인데 굉장히 특이한 제품이다. 시계를 독에 거치하면 컴퓨터처럼 사용할 수 있다. 시계 화면이 모니터가 되고 독이 입력장치가 되는 거다. 최초의 스마트워치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까? 세이코에서 만들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서 스타로드가 애용하는 헤드폰도 있었는데, 이미지 파일이 실종되어서 첨부하지 못했다(아마 안 찍은 듯). 위에 검은색 워크맨은 옛날에 방송국 기자들이 녹음할 때 많이 사용했던 모델이라고 한다. 음질이 좋기로 유명해서 워크맨 라인업 중에서도 레전드로 손에 꼽히는 모델이라고. 진열장 밖에도 워크맨이 더 있었다. 닌텐도 것이라 엄밀히 말하면 워크맨은 아니지만.

지난 겨울 <나 혼자 산다>에서 영화배우 박정민이 이것과 비슷한 카세트 플레이어를 쓰는 걸 보고 잠깐 구매욕이 일었는데, 나랑 비슷한 사람이 꽤 있었나 보다. 작년 12월쯤에 갑자기 방문 손님이 늘었다고 하더라. 박정민이 쓰던 제품은 파나소닉의 카세트 플레이어이고, 이건 닌텐도의 데이터 레코더다(닌텐도가 이런 것도 만들었다). 음악 재생도 가능하지만 본래 용도는 데이터 저장 장치다. 좋은 음질을 기대하기는 힘들기 때문에 음악보다는 소장용으로 사길 권했다. 예쁘긴 예쁘다. 플레이 영상은 여기.

자 이제 마지막이다. 나는 턴테이블이라고 하면 진중한 느낌의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여기 턴테이블은 귀엽고 아기자기한 것도 많았다. 귀여운 것들은 대부분 ‘포터블 턴테이블’이었다. 휴대용 턴테이블은 대부분 아기자기한 디자인이 많다는 설명을 들었다.

위에 턴테이블은 팬더 한쪽 귀가 마이크다. 노래를 듣다가 갑자기 신이 나면 마이크를 뽑아서(귀를 뽑아서) 노래를 부르면 된다. 나와는 달리 흥이 많은 사람들을 위한 턴테이블인 듯. 근데 이건 약과다. 다른 포터블 턴테이블에는 키보드가 달려 있는 것도 있다. ‘옛날 사람들은 음악 없이 못 사는 사람들이었나’라고 말하려다가, 에어팟을 달고 사는 요즘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아서 말을 삼켰다.

예약제이기 때문에 무턱대고 찾아가서는 피차 곤란해질 수 있다. 반드시 예약을 하고, 시간을 잡고 방문하길 바란다. 외출조차 조심스러운 시기이지만, 괜찮아지는 날이 머지않아 다시 올 테니까, 투 고 리스트에 넣어두는 것을 추천한다.


🏠 레몬 서울

📍 종로구 율곡로 84 가든타워 12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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