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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버를 기억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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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디에디트의 객원필자 기즈모다. 오늘은 신제품 대신에 어느 브랜드를 하나 소개하려 한다. 아이리버(iRiver)다. 요즘도 아이리버를 알고 있는 사람이 꽤 있을 거다. 여전히 디지털 액세서리 등을 내놓고 있으니까. 그러나 지금의 아이리버는 아쉽게도 설레는 브랜드가 아니다. 내가 얘기하려는 아이리버는 지금이 아니라 약 20년 전 아이리버다. 사실 이 원고는 몇 번을 고쳐 쓰고 다시 썼다. 디에디트에서 아이리버의 케케묵은 과거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해야 공감을 할까 고민했다. 지금은 쇠락한 브랜드의 옛이야기가 재미있을 리는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아이리버가 만든 4개의 제품을 설명하며 아이리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볼까 한다. 그 시작은 2003년이다.


2003년
아이리버 iFP-300

이 제품은 아이리버가 2003년 4월에 출시했던 iFP-300이라는 MP3 플레이어다. ‘더 크래프트’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 제품이 기억나는 이유는 강렬한 디자인 때문이다. 전자 제품은 네모 형태라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스케이드보드를 닮은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 제품 이후로 MP3 플레이어는 단순히 음악을 듣는 제품이 아니라 패션 아이템처럼 소비됐다.


아이리버는 어떻게 슈퍼스타가 될 수 있었을까? 아이리버(설립 당시 이름은 레인콤)는 삼성전자 출신 ‘양덕준’ 대표가 1999년 설립한 회사다. 처음에는 해외 제품 OEM을 했지만 2002년 자사 첫 제품을 출시하며 인기를 끌었고 2003년 iFP-300을 기점으로 아이리버라는 브랜드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들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MP3 플레이어는 브랜드가 크게 중요치 않았다. 마치 조립 PC처럼 싸게 사서 음악만 듣는 기능성 제품이었다. 나도 아이리버 이전에 MP3 플레이어를 몇 개 산 적이 있지만 기억나는 제품은 하나도 없다. 치매는 아니다. 원래 MP3 플레이어는 그랬다.

[아이리버 첫 MP3 플레이어 IFP-100]

아이리버의 양덕준 대표는 패스트 프로덕트에 가까웠던 MP3 플레이어에 브랜드라는 생명을 불어 넣었다. 디자인과 품질을 중요시해 제대로 된 브랜드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제품 출시 후에는 펌웨어 업그레이드를 통해 지속적으로 제품의 기능 향상을 지원했다. 또 물정 모르는 외부 디자이너와 협업하고 그가 만든 디자인에 기능을 구겨 넣기 위해 온갖 힘을 다했다. 그 결과 젊은 세대는 아이리버에 열광했고 아이리버는 MP3 플레이어의 대명사가 됐다. 2000년대 학번 중에 아이리버를 구입하지 않은 사람을 찾기란 요즘 무선이어폰 구입하지 않은 사람 찾기보다 힘들었다. 아이리버의 전성기는 창업 5년만인 2004년으로 무려 4,500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우리나라 벤처 기업 역사상 전무후무한 실적을 기록했다. 심지어 당시 대학생들이 입사하고 싶은 회사 1위로 꼽힐 정도였다. 양덕준 대표는 한국의 스티브 잡스로 불리었다. 스티브 잡스와 다른 점이 있다면 스티브 잡스가 성격파탄자였던데 비해 그는 소탈하고 겸손하며 자신의 공을 남에게 돌리는 품성 정도다.


2005년
아이리버 H10

사실 이 제품은 제품 자체보다 광고가 더 유명하다. 한때 미국 전역에 사과를 씹어 먹는 아이리버의 광고가 걸렸다. H10 출시 기념 광고였다. 이 제품 광고가 굳이 사과를 씹어 먹은 이유는 애플을 타깃으로 한 제품이었기 때문이다. 2005년까지 플래시형 MP3 플레이어에 있어 전 세계 1위 점유율은 아이리버였다. 하지만 아이리버가 공략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하드형 MP3 플레이어다. 하드형 MP3 플레이어는 애플의 아이팟 시리즈가 부동의 1위였다. 세계 1위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애플을 뛰어넘어야 했다.

[미국 전역을 수 놓았던 아이리버 H10 광고]

양덕준 대표는 승부를 피하지 않았다. 아이리버는 아이팟을 뛰어넘을 제품을 만들기 위해 사활을 걸고 하드형 MP3 플레이어를 기획했다. 완성된 H10은 미국 전역을 공략하기 위해 엄청난 마케팅비와 재고 물량을 준비했다. 애플의 성공을 경계하던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아이리버의 H10을 손에 들고 미국에 소개하며 아이리버를 도왔다. 미국 전역 주요 도시에는 사과를 씹어 먹는 아이리버 H10을 광고가 걸렸다. 국내는 물론 해외 미디어에도 엄청난 화제가 될 정도로 아이리버의 도전은 미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했다. 설립 5년 남짓한 회사가 미국 본토에서 애플과 정면승부를 펼친 것이다.

[빌게이츠는 CES2005에서 아이리버 H10을 아이팟보다 훨씬 훌륭한 기기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수많은 아이팟 도전자와 마찬가지로 H10의 도전도 실패로 끝났다. 게다가 이번에는 애플의 반격이 시작됐다. 애플은 2005년 9월 자사 최초의 플래시 MP3 플레이어인 아이팟 나노를 발표했다. 아이팟 나노는 당시까지 난립하던 국내외 플래시 메모리형 MP3 플레이어 회사들을 집단 도산시킬 정도로 파괴적이었다.


2007년
아이리버 엠플레이어(Mplayer)

이 제품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이가 많은 제품 중에 하나다. 영화 <아저씨>에 잠깐 등장해서 요즘 세대도 눈에 익숙한 사람들이 있을 거다. 디즈니사와 캐릭터 계약을 한 제품으로 미키마우스를 형상화한 디자인이다. 이 제품 전에 U10이나 전자사전 등 몇몇 제품이 소소하게 히트했지만 결국 애플과의 경쟁에서 진 아이리버의 경영상황은 점점 악화된다. 그리고 2007년 사모펀드에게 경영권을 내주며 양덕준 대표의 경영권은 크게 흔들린다. 그 와중에 아이리버의 마지막 아이코닉 모델이 탄생했다.

[엠플레이어는 다양한 색상으로 나오며 색깔 마케팅을 펼쳤다]

이 제품은 디스플레이가 없고 기능도 단순하다. 쥐의 귀를 비틀면 노래가 재생되고 볼륨 조절과 노래 스킵이 기능의 전부인 제품이다. 한때 가장 복잡한 MP3 플레이어를 만들던 아이리버가 초심으로 돌아가 아주 쉬운 제품을 만들었고 아이리버의 마지막 히트작이 됐다. 하지만 이 제품을 끝으로 양덕준 대표는 아이리버를 퇴사하게 되고 양덕준 대표의 신화는 끝이 난다. 이후에 아이리버는 SK텔레콤에 피인수됐고 ‘드림어스’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아이리버 사업부는 아직 남아 있어 아이리버 브랜드의 디지털 소품을 간간히 내놓는다.


2008년
민트패스 민트패드

[양덕준 대표의 마지막 제품, 민트패드]

이번에는 아이리버 얘기가 아니다. 민트패스라는 회사의 제품이다. 양덕준 대표는 아이리버의 경영권을 넘겨주고 깨끗하게 아이리버를 포기했다. 경영이나 정치에 관심이 없어 경영권 방어에 실패했지만 도전 정신으로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했다. 양덕준 대표는 민트패스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민트패드라는 커뮤니케이션 기기를 2008년 출시했다. 이 제품은 2.8인치의 작은 크기에 카메라와 스피커, 마이크가 달려있어 사진, 동영상 촬영이 가능하고 메모도 가능하며 외장 메모리를 통해 음악, 동영상, 사진 감상, 전자사전 이용 등이 가능한 제품이었다. 심지어 와이파이로 인터넷도 가능했고 게임을 설치하면 게임도 가능했다. 심플한 디자인에 무선 기능까지 포함되어 있어 민트패드 사용자끼리 채팅도 가능했다. 또 새로운 기능이 생기면 펌웨어식으로 다운받아 이용도 가능했다. 당시까지 나왔던 MP3 플레이어나 동영상 플레이어(PMP), PDA의 기능을 총망라한 제품이었다.


그러나 또 애플이 문제였다. 애플은 2007년 6월, IT 역사상 가장 파괴적이었던 아이폰의 첫 제품을 출시한다. 2008년 당시 아이폰은 국내에 출시하지 못했지만 거의 비슷한 기능에 통화기능만 빠진 아이팟 터치가 국내에 출시되며 민트패드의 존재감을 지워버렸다. 그리고 민트패드는 후속작에 대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끝내 사라져 버린다.


아이리버, 그리고 양덕준

사실 이 글을 쓴 이유는 지난 6월 9일 지병으로 별세한 양덕준 대표를 기리기 위함이다. 양덕준 대표는 민트패스를 설립한 지 약 1년 후인 2009년 뇌출혈로 쓰러졌다. 이후 10년이 넘는 투병 생활을 하며 재기를 꿈꿨지만 끝내 꿈을 이루지 못하고 생을 달리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양덕준 대표를 만나본 적이 없다. 아이리버와 협업도 하고 아이리버의 많은 관계자들, 현전직 직원을 알고 있지만 끝내 연이 닿지 못했다. 하지만 종종 그분에 대한 얘기를 지인을 통해 들어왔다. 항상 소년 같고 열정적이며 소탈했다고 한다. 경영권을 지키고 사익을 추구하기보다는 더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밤을 새워 공부하며 도전했다고 한다. 자신이 스타가 되기보다는 그를 도왔던 김영세, 최문규 같은 디자이너, 기획자에게 공을 돌렸으며 말단 직원에게도 인간적으로 대했던 점도 다른 기업인들과는 다른 부분이다.


흔히 우리나라에는 존경할 만한 기업인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양덕준 대표는 밑바닥부터 시작해 자신의 힘으로 회사를 일으켜 세웠으며 한때 플래시형 MP3 플레이어 세계 1위를 기록했던 위대했던 기업을 만든 기업인이다. 비록 애플과 삼성의 틈바구니에서 더 큰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기술을 사랑하고 제품을 사랑하며 인간을 사랑했던 그를 많은 사람들이 기억했으면 좋겠다. 지금은 아이리버라는 회사도 사라지고 브랜드만 겨우 남았지만 그가 우리에게 선사했던 기술과 추억은 죽는 날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이제는 ‘MP3 플레이어’라는 단어가 사라지고 있지만 나에게 MP3 플레이어는 아이팟이 아니라 아이리버였다. 아마 영원히 그렇게 기억할 것이다. 양덕준 대표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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