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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때문에 '이것'이 주목받는 이유?

조회수 2020. 4. 27. 14:3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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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디에디트의 객원필자 김은아다. 바야흐로 대재택근무의 시대다. 처음 재택근무라는 미래지향적이고 하이브리드적인, 어쨌든 멋진 단어가 내게 와서 꽃이 되었을 때는 마치 불로소득자라도 된 듯 기뻤더랬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이내 매일마다 본질적이고도 준엄한 질문과 마주하게 되었다.

오늘, 뭐, 먹지?

자고로 현대 사회에서 노비(회사원이라고도 부르는) 생활을 경험해본 이라면 알겠지만 하루 중에서 두뇌 활동으로 열량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순간은 ‘오늘 점심 뭐 먹을까’에 대한 치열한 토론을 벌일 때 아니던가. 그 고민을 아침, 점심, 저녁으로 세 배 더 하게 된 셈이니, 비록 잠옷 차림으로 반쯤 누워 키보드를 한 손으로 겨우 뚱땅거림에도 출퇴근할 때 못지 않게 피곤한 것은 당연한 이치이리라. 그러다보면 매 끼를 어떻게 다르게 차려 먹을 것인지에 모든 역량을 쏟아붓는 <삼시세끼>가 얼마나 철학적인 예능이었는가, 집에서 세 끼를 모두 먹는 남편을 조금 낮추어 이르는 어르신들의 유우머가 얼마나 촌철살인었는지에 대해서도 자연스레 이해하게 되는 것이 재택근무가 준 뜻밖의 교훈인 것이다. 

어쨌거나 혼자 사는 자취생에게 있어 집밥의 꽃말은 곧 가사노동이고, 분식으로 가득한 천국으로 향하는 것도 하루이틀인지라 회의감에 휩싸일 즈음 눈에 띈 것이 바로 ‘밀키트’다. 말 그대로 간단한 조리만 거치면 음식을 완성할 수 있도록 구성된 요리 버전의 DIY 세트인 셈인데, 이미 조리된 상태로 포장되어 판매되는 레토르트 음식들과는 달리 손질만 끝난 상태의 재료들로 구성되어 좀 더 신선한 상태의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더군다나 밀키트 시장이 2018년부터 급격히 성장하기 시작해 지난해에는 400억 원 규모의 매출을 이룰 정도로 커졌다는데, 그래서인지 초록창에 슬쩍 검색만 해봐도 마라탕부터 크림새우, 스테이크까지 밀키트로 못 만드는 메뉴가 없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던 중 눈길을 끈 것은 메뉴가 아니라 브랜드였다. CJ의 쿡킷이나 롯데의 프레시지처럼 유통업체에서 만드는 밀키트가 아니라, 맛집으로 손꼽히는 몇몇 음식점에서 직접 밀키트를 판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한 것이다. 맛집 앞에 줄을 서서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고, 사회적 거리두기에 적극 동참하는 모범 시민의 지위를 잃지 않을 수도 있으니, 마스크 하나로 미세먼지와 코로나 19를 동시에 예방하는 KF94 못지 않은 일석이조 효과 아닌가.


첫 번째 요리,
소이연남
―태국 쌀국수

가장 처음 주문해본 밀키트는 마켓컬리에서 판매하는 소이연남의 태국 쌀국수. 지금은 한남동과 스타필드 등 여러 곳에 매장을 연 소이연남이지만, 한 때는 ‘쌀국수를 먹으러 연남동 간다’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붐을 일으켰던 집이다. 이곳에서는 정통 태국식 소고기국수를 판매하는데, 방콕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꼭 한 번쯤 들르는 카오산로드 뒷길의 유명 갈비국수집과 거의 같은 맛을 낼 정도로 현지의 느낌을 그대로 재현한다.

구성은 심플하다. 얼린 육수와 쌀국수면, 그리고 건조된 마늘 플레이크. 음, 아무리 ‘비법’ 육수여도 그렇지, 7500원이라는 가격치고는 너무 단출한 것 아닌지. 약간의 의구심을 품고 냄비에 언 육수를 넣고 불을 켠다. 그런데, 얼었던 육수가 녹기 시작하자마자 진한 냄새가 금세 집안을 채운다.

그와 동시에 문득 스쳐가는 장면은… 5년 전, 경의선 숲길이 완공되기 전이라 저렴한 월세로 첫 독립의 기쁨을 누렸던 작은 원룸과, 당시 집이 어디냐는 질문을 받으면 “소이연남 바로 뒤”라고 동네부심을 반쯤 섞어 대답했던 기억, 소이연남 앞의 줄이 길어질수록 월세도 끝없이 올라 3년 만에 결국 이사를 가야 했다는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을 그런 이야기… 실제로 당시 살았던 집은 소이연남과 2분 거리였는데, 아침 저녁으로 가게 앞을 지날 때면 공기를 타고 아련하게 실려오던 육수향이 바로 우리집 부엌의 냄비 안에서 풍겨나오는 바람에 이렇게 TMI를 방출하고 만 것이다.

높은 재현도는 냄새뿐만이 아니다. 5분도 걸리지 않는 조리를 끝내고 호로록 맛본 국물은 음식점에서 먹는 것과 거의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숙주와 채소 등의 고명도 비교적 풍성하고, 쌀국수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소고기 또한 질기지 않고 부들부들해서 냉동식품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대로도 충분히 맛있지만 숙주와 고수를 추가한다면 웬만한 어설픈 태국 음식점보다 완성도가 높지 않을까 싶었다.


두 번째 요리,
순대실록
―순대스테이크

그다음 선택한 밀키트는 혜화동의 맛집 순대실록의 것. 이곳은 그야말로 대학로 맛집계의 터줏대감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랜 시간동안 변함없이 영업을 이어오고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대학로의 원주민(?)이라고 할 수 있는 연극인들의 이곳을 향한 애정이 이를 증명한다. 극장가에 불이 꺼지는 열한시 넘어 이곳을 찾으면 술잔을 기울이는 공연계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밀키트로 주문한 것은 순대국보다 더 사랑받는 시그니처 메뉴인 순대 스테이크. 돌돌돌 말린 형태로 꽁꽁 얼어서 온 포장은 일반 포장 순대와는 큰 차이가 없어보였다. 조리법은 매우 간단하다. 해동할 필요 없이 포장만 벗겨서 에어프라이어에서 13분만 돌리면 끝. 이게 전부라고? 정확히 13분이 지나자, 무엇을 더할 것도 없이 노릇노릇 먹음직스러운 순대가 완성되었다.

에어프라이어를 통해 조리하는 경우 때때로 음식의 표면이 마르거나, 겉은 타고 속은 차가운 상태로 조리되는 경우도 있는데 순대 스테이크는 촉촉하고 익힘 상태가 좋아 밀키트를 개발할 때 일반 가정에서의 조리 과정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순대집들과 다르게 순대실록의 순대는 견과류와 흑미, 서리태, 녹두 등등 다양한 소를 넣어 풍부한 맛이 나는데, 이 역시 매장에서 먹는 것과는 큰 차이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완성도를 보였다. 겉바속촉, 그 사이에서 스르르 배어나오는 육즙. 고소한 끝맛까지. 도저히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 막걸리 한 병이요!”(직접 일어나 냉장고에서 꺼내오며).


세 번째 요리,
이순신수산
―통영 멍게

여러분은 이기셨나. 저는 졌다. 코로나와의 싸움 얘기도 아니고, 그저께 끝난 총선 이야기도 아니다. 한참이 지났음에도 패배의 슬픔을 완벽히 극복하지 못한 것은 바로 강원도의 ‘포켓팅’ 전쟁이다. 내 편일 줄만 알았던 손가락이 내 마음 같지 않았다니. 이 서글픈 기분을 달래준 곳이 있었으니 바로 ‘우체국쇼핑’이라는 신세계다. 강원도의 감자 판매 수익금이 농가에 직접 전달되듯이, 우체국쇼핑 또한 생산자가 직접 판매까지 맡아 소비자는 저렴한 가격에 좋은 품질의 상품을 구매하고 판매자는 수수료 없이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착한 쇼핑몰이다. 이곳에서 세 번째 밀키트, 정확히는 자가 제조형(?) 밀키트를 구매했다.


우체국쇼핑에도 흥하는 맛집과 아이템이 있는데, 최근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통영 ‘이순신수산’의 멍게다. 자취생이 멍게를 산다…? 해산물을 좋아하는 편이긴 하지만 어쩐지 선뜻 구입하기에는 망설여지는 메뉴인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싱싱하고 알이 크다는 찬양 일색의 1,000개가 넘는 후기에 마음이 슬쩍 움직이더니, 무엇보다 지금이 딱 제철이라 먹지 않으면 안된다(고 까지는 써있지 않았다… )는 말에 자동반사적으로 결제를 누르고 말았다. 가을에는 전어, 겨울에는 방어가 있는데 어쩐지 봄이 허전하더라니 생각하면서. 영덕의 20년 경력 요리사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만든다는 ‘홍영의 청어알 무침’도 함께. 

우체국쇼핑의 장점은 빠르다는 것이다. 생산자분들의 발송도 빠르고 우체국택배 기사분들의 배송은 더 빠르다. 오전에 주문한 두 제품이 각각 통영과 영덕에서 오후에 출발해 다음날 점심 시간이 되기도 전 서울 마포구에 도착했다. 고민할 것 없이 넓은 그릇을 꺼냈다. 꼼꼼히 밀봉된 봉지 귀퉁이를 살짝 뜯자마자 신선한 바다내음이 훅 퍼졌다. 아, 봄바다는 이런 향이겠구나.

지역을 벗어날 수 없는 코로나 시대의 고립감을 달래주기에 충분한 냄새였다. 따끈한 밥 위에 큼직하고 실한 멍게살을 한입 크기로 잘라 넣고, 청어알 무침도 반 숟갈 넣었다. 상추와 김을 조금 썰고, 깨소금도 톡톡, 멍게의 신선함을 가리지 않도록 간은 살짝만, 그리고 마지막으로 참기름 쪼로록.


한 숟갈 입에 넣는데, ‘맛있다’가 아니라 엉뚱한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계절을 느낄수 있다는 것이 사람의 마음에 얼마나 위안을 주는가, 하는 생각. 봄을 마음껏 맞이하고 싶은 마음을 애써 참아야 하는 지금, 벚꽃과 유채꽃을 부러 외면해야 하는 지금, 누구도 위험하지 않게 계절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어 참 다행이었다. 이렇게 밀키트와 함께 연남동의 추억도, 혜화동의 밤공기도, 그리고 봄의 향기도 집에 함께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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