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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내추럴 와인이 뭔데?

조회수 2019. 10. 8. 23:4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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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아침저녁으로 술 마실 핑계를 찾아다니는 객원필자 김은아야. 나는 올해 초에 술을 마실 수 있는 아주 합리적인 핑계를 하나 찾았는데, 바로 와인전문가 라이선스를 따는 거였어. 공부를 위해서라는 좋은 명분으로 수업과 스터디 시간에 와인을 마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지. 덕분에 영어로 치면 알파벳이나 겨우 읽는 수준에서 ‘나, 원한다, 와인’ 같이 더듬더듬이나마 입을 떼어보나 했는데, 그 꿈은 또 한 발짝 멀어졌네. 무엇 때문에? 갑자기 불어온 내추럴 와인 바람 때문에!

펫낫? 오렌지 와인? 이게 다 뭐람. 사람 얼굴만 덩그러니 새겨져 있다거나 세 살 조카가 막 그린 듯한 난해한 그림이 그려진 당혹스러운 라벨은 또 뭐고.


*편집자주: 펫낫(Pét Nat)은 프랑스어로 자연발효한 스파클링 와인을 뜻한다.

혹시 나와 같은 질문을 던져본 사람이나 “내추럴 와인은 와인계의 비트코인 같은 존재다. 들어본 적도 있고 좋다는 것도 알고는 있는데 정확히 무엇인지 아무도 모르니까”라는 에디터M의 코멘트에 격하게 공감해본 사람이라면 주목하길 바라. 오늘은 내추럴 와인을 마셔본 적 없지만 너무나 궁금한 와인 병아리반을 위한 글을 써보려고 하거든.


그래서, 뭐가 ‘내추럴’하다는 건데?

우선 내추럴 와인의 정체부터 살펴보자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와인(와인 업계에서는 컨벤셔널 와인이라고도 해)이 만들어지는 과정부터 잠깐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어.


포도가 발효해 알코올이 들어간 즙으로 변하는 것이 바로 와인인데, 만들어지는 과정에는 여러 가지 화학 첨가물이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야. 해충으로부터 포도를 보호하기 위해 밭에 뿌리는 살충제, 발효 시간을 단축시키거나 특정 아로마(맛)를 더해주는 효모, 그리고 장기간 보존할 수 있도록 돕는 이산화황 등이 그것이지. 짐작했겠지만, 내추럴 와인은 이 모든 첨가물을 거부해. 혹은 보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아주 극소량의 이산화황만을 넣는 정도. 대신 화학물질이 했던 역할들을 포도밭의 흙과 포도 안의 미생물, 발효 과정에서 생기는 자연 효모에게 모두 맡기는 거야.

재미있는 건 과연 어디까지가 ‘내추럴’한 것인가에 대한 기준이 생산자마다 다르다는 거야. 절대적으로 자연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보수적인 생산자는 밭에 물을 공급하는 관개시설마저 제한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거든. 심지어 지금 디에디트가 있는 이탈리아에서는 내추럴 와인 정의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2013년에 국회 청문회를 열어서 논의를 시작했는데, 아직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고 해.


그래도 보편적인 정의를 찾아보자면, <내추럴 와인>이라는 책을 쓴 프랑스의 와인 전문가 이자벨 르쥬롱의 말을 빌릴 수 있을 것 같아. 그는 “최소한 유기농법을 사용하는 포도밭에서, 병입 과정에서 소량의 이산화황을 넣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첨가하거나 제거하지 않고 생산한 와인”이라고 말했어.


즉, 옛날 방식대로 자연스럽게 발효된 포도즙에 가까운 와인인 셈이지. 그래서인지 현미경으로 내추럴 와인을 들여다보면 살아서 움직이는 효모가 관찰된다고 해. 내추럴 와인에 대해 이야기할 때 ‘살아있다’는 뜻의 프랑스어 ‘비방(vivant)’을 사용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야.

잠깐 대형 마트의 신선 코너를 떠올려볼까. 무농약으로 재배한 채소는 가격은 더 비싼데도 모양새로만 보면 볼품이 없잖아. 곤충이 기미상궁처럼 야무지게 떼어먹은 자국이 있기도 하니까. 하물며 재배부터 발효, 보존까지 모든 과정을 오로지 자연에 맡기는 내추럴 와인을 만들기란 더더욱 까다롭겠지. 일반 와인과 비교할 수 없이 적은 양을 생산할 수밖에 없는 것, 그래서 가격이 다소 높을 수밖에 없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야. 그렇다면 굳이 이 어려운 길을 가는 이유는 뭘까?


와인에 오롯이 자연의 기운을 담아내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지구와 환경의 보존을 위해서이기도 해. 그러니까 내추럴 와인은 다시 말해 생산자들의 가치가 담긴 꽤나 철학적인 술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 덧붙여서 술꾼들을 위한 반가운 이야기 하나 해줄까? 술에 들어가는 화학 첨가물이 숙취를 유발의 원인이라는데, 다시 말하면 내추럴 와인은 숙취가 발생할 확률이 낮다는 것!

그렇다면 맛은 어떨까? 아마 와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떼루아’라는 말을 한 번쯤 들어봤을 거야. 이건 와인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여기에 내추럴 와인의 묘미가 있어. 같은 지역에서 같은 품종으로 만든 와인이라고 해도 생산자와 재배 환경에 따라서 정말 천차만별의 개성을 자랑하거든.


때문에 일반화해서 말하기는 어렵지만, 일반 와인보다는 좀 더 시큼하면서도 정제되지 않은, 본연의 맛이라고 할까. 내추럴 와인만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한 바틀숍의 오너는 어떤 내추럴 와인의 맛을 ‘맑은 액젓, 재래 국간장‘으로 표현하기도 했는데, 보통 와인 맛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단어들이 청사과, 바닐라, 버터 등이라는 것만 떠올려 봐도 얼마나 상반된 느낌을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있겠지?

개념도 알고 의미도 알겠는데 맛은 감이 안 잡힌다고? 맞아, 술은 눈도 귀도 아니고 입으로 맛보는 것인데 이야기가 길었네. 일단 마셔봐야지. 그럼 어떤 와인으로 내추럴 와인의 첫발을 떼면 좋을까. 한국에서 내추럴 와인계를 꽉 잡고 있다는(?) 내추럴 와인 전문가들의 조언으로 고른 내추럴 와인 초보자들을 위한 와인을 만나보자.


1.라디콘 오슬라비예
(Radikon Oslavje)

[사진 출처: 내추럴 와인 전문 수입사 뱅베 제공]

라디콘은 오랫동안 포도 껍질을 와인에 담그는 방식으로 ‘오렌지 와인’이라 불리는 양조 기법을 만들어낸 생산자야. 여타 와인보다 작은 병이 특징인데, 이는 와인의 완벽한 품질을 위해 750ml가 아닌 500ml의 병을 특수 제작해 사용하기 때문이지. 샤르도네와 쇼비뇽 블랑 품종을 블렌딩한 와인으로, 오렌지 마멀레이드, 홍차, 살구의 화려한 향이 인상적인 와인.


2.호비노 녹턴
(Jean Pierre Robinot, Nocturne)

[사진 출처: 내추럴 와인 전문 수입사 뱅베 제공]

호비노는 내추럴 와인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생산자로 내추럴 와인을 경험하기를 원하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 시도해 볼만 해. 병입 때까지 어떤 첨가물도 넣지 않기 때문에 오롯한 포도의 맛을 즐길 수 있는 와인이지. 스위트한 와인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즐길 수 있는 은근한 단맛의 여운이 특징이야.


3.레 카프리야드 피에쥬 아 피유
(Les Capriades Piege a Filles)

[사진 출처: 내추럴 와인 전문 수입사 뱅베 제공]

특유의 산미와 미네랄리티를 가진 다양한 펫낫을 생산하는 와인메이커 Les Capriades의 펫낫. 와인 이름인 ‘Piege a Filles’는 ‘여자의 덫’이라는 뜻으로 매혹적인 붉은 빛, 산딸기와 체리 등 베리 계열 특유의 향과 산미가 전하는 상큼함은 우리를 벗어날 수 없는 내추럴 와인의 늪으로 인도하는 덫 같아. 어렵지 않고 편안하게 꿀꺽꿀꺽 마시기에도 좋은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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