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그리기 아주 쉬워요, 준비물은 애플펜슬과 프레스코?

조회수 2019. 8. 28. 11:5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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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시절에는 그때만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대체로 충실하게 경험해보았다. 학사경고, 캠퍼스 커플, 학생회, 장학금… 이 모든 경험치를 습득한 사람이라면 결국 같은 선택을 하게 된다. 바로 휴학. 나의 경우엔 휴학의 사유가 있었다. 웹툰 작가가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반년 동안 집에 틀어박혀서 그림만 그렸다. 와콤에서 제일 저렴한 타블렛을 구입해서 슥삭슥삭. 그때 포토샵을 배우고, 코렐 페인터라는 프로그램도 배웠다. 프로그램이 무거워서 컴퓨터는 버벅이고, 일주일간 작업한 그림을 날리는 일이 허다했지만 정말 정말 즐거웠다. 아날로그의 드로잉 경험을 디지털 화면에서 구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설레는 일이었으니까.


만화가가 되고 싶다는 얄궂은 꿈은 휴학 생활 1년에서 맛본 좌절로 막을 내린다. 하지만 여전히 새로운 드로잉 앱이나 스타일러스를 써보는 일에 몰두하곤 한다. 어떤 일들은 취미로 남아서 더 좋은 법이니까.

오늘 소개할 앱은 어도비의 새로운 드로잉 앱 ‘프레스코(Fresco)’. 작년 가을에 ‘프로젝트 제미니’라는 이름으로 공개했던 드로잉 앱의 정식 버전이다. 프레스코는 이탈리아어로 신선하다라는 뜻인데, 흔히 회화 기법을 일컫는다. 벽이나 천장에 회반죽을 바른 다음 마르기 전에 안료와 물을 섞어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다. 반드시 회반죽이 마르기 전에 작업을 마쳐야 한다. 마르지 않은 회반죽과 안료가 만나 발생하는 화학반응이 있어야 컬러가 천장 표면으로 자연스레 스며들기 때문이다.

아직 물기가 가시지 않은 동안만 그릴 수 있는 그림. 그게 프레스코다. 그렇다면 어도비가 만든 프레스코는 어떤 앱일까. 이름처럼 언제 어디서나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아주 쉽고, 간단하게.


사실 어도비의 새로운 앱이라고 해서 포토샵 풀버전을 기대했다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프레스코는 다양한 편집 기능을 제공하는 앱은 아니다. 사실적인 드로잉에 초점을 맞춰 간단한 편집 기능을 제공하는 앱이라고 설명하는 게 옳다. 그림 그리기라는 뚜렷한 목적이 없다면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정도다.

가장 핵심적인 기능은 ‘라이브 브러시’다. 어도비 센세이라 부르는 인공 지능을 기반으로 진짜 물감이 퍼지고 섞이는 화학 작용을 표현한다. 수채 물감의 느낌을 브러시로 표현한 드로잉 앱은 다른 것도 여럿 사용해봤지만, 프레스코는 펜 끝에서 나타나는 반응이 남다르다. 정말 물 잔뜩 먹은 캔버스 위로 속수무책으로 색이 퍼져나가는 느낌이 그대로 구현됐다. 정말 이름처럼 브러시가 살아있는 것 같달까. 색을 겹칠 때마다 물감이 섞여 다른 색이 표현되고, 번지는 모양이 달라진다.

물의 양을 추가하면 물감이 희석되어 더 투명한 느낌을 만들 수도 있다. 생각보다 브러시가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처음엔 원하는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적응이 필요하다. 겁먹지 말고 시도해보시길. 진짜 물감이 아니라, 디지털 화면 속의 아주 진짜 같은 가짜 물감이니까.

수채화만 있는 게 아니라 유화 라이브 브러시도 있는데, 이것도 참 재밌다. 유화 물감을 덧칠할 때마다 붓 자국이 그대로 남는다. 두툼하게 한 번 더 칠하면 실제 유화처럼 입체감이 살아난다. 이 라이브 브러시를 표현하기 위해 모든 인력을 투자했나 싶을 정도. 설명으로 해선 아무리 말해도 전달이 되지 않을 것 같고, 애플펜슬 한번 그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크으.

솔직히 말하면 그 외의 기능들은 새로움에 “우와~”싶은 것은 없다. 오히려 어도비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기능을 아주 엄격한 기준으로 걸러냈다는 느낌이다. 나쁘게 말하면 기능이 부족한 것이고, 좋게 말하면 직관적이다. 이 앱을 쓰기 위해 공부를 하거나 적응할 필요 없이 즉시 드로잉을 시작할 수 있을 정도다. 간결한 사용성이 매력적이면서도 깊게 파다 보면 몇 가지 아쉬운 부분이 눈에 띄긴 한다.

브러시는 앞서 언급한 라이브 브러시 위에도 포토샵에서 많이 봤던 일반 픽셀 브러시와 벡터 브러시를 모두 사용할 수 있다. 레이어 기능이나 마스크 기능, 선택 툴 등은 포토샵과 거의 동일하게 이용 가능하다. 터치 인터페이스를 활용한 조작법 역시 짜임새가 좋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장점은 어도비의 앱이라는 것이다. 아이패드에서 프로크리에이트 같은 유명 드로잉앱을 사용할 땐, 드로잉 이후의 편집 과정을 위해 PSD 파일로 저장해 내보내고, PC에서 파일을 내려받아서 다시 작업을 이어가는 바통터치 과정이 필요했다. 하지만 어도비가 만든 앱이기 때문에 클라우드 기반으로 물 흐르듯 파일을 넘겨받을 수가 있다. 아이패드에서 손쉽게 스케치를 하고 이후의 작업들은 포토샵에서 바로 이어갈 수 있는 유기성이 있다는 얘기다. 작업 시간과 스트레스를 크게 줄여줄 수 있는 요소이기도 하다. 어도비의 노예라면 여기서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쿵!

어도비 프레스코는 현재 베타 버전으로 서비스 중이다. 정식 출시 일정은 올해 하반기. 아이패드용이 먼저 출시되며 마이크로소프트 서피스나 와콤 모바일 스튜디오 프로는 추후 지원 예정이라고. 이 앱 역시 월정액 구독 형태로 출시된다는데, 구독료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기존에 쓰던 드로잉 앱들은 한 번 결제후 추가 과금이 없는 형태였기 때문에 약간 망설여지긴 한다. 어떤 느낌으로 그려지는지 궁금하다면 에디터H와 인턴 여진쓰가 쿵짝쿵짝 떠드는 영상을 구경가시길. 프레스코를 자꾸 프로세코(화이트 와인의 일종)라고 잘못 부르는 나는 아무래도 술을 한 잔 마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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