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이거 없으면 자취 불가능..

조회수 2018. 9. 12. 13:4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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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러라면 꼭! 필템 3종

안녕, 김리뷰다. 가방 하나 메고 서울로 올라와 홀로 살아남은 지 어언 6년째. 그동안 나와 나를 둘러싼 상황, 그리고 라이프스타일은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반지하에서 지상층으로, 지상층에서 오피스텔로, 빌라로, 그리고 쫄딱 망한 뒤 다시 반지하로 왔다. 똑같은 반지하지만 외로움은 좀 덜 느끼게 됐다. 농구도 더 잘하게 됐다. 바깥을 쏘다니다 파김치로 돌아와 쓰러지는 건 똑같다.


돌고 돌아 결국 제자리로 온듯하지만 별 수 없이 바뀐 것들이 있다. 요 ‘바뀐 것들’을 끊임없이 미분하고 나면, 그 자리에는 아이템들이 있었다. 누군가는 물질 지향적 삶이라 하겠으나 어쩔 수 없다. 자취방은 본디 좁아터진 공간이고, 크고 작은 물건 하나하나가 미치는 영향은 곧 삶의 변화로 이어진다.

[좋은 자취방은 방이 좋아야 한다. 사진은 남의집…]

좋은 자취방에는 무엇이 있어야하는가? 사실 정답은 없다. 좋음의 기준이라는 건 사람마다 다르다. 내가 할 수 있는 얘기는 예나 지금이나 내 얘기뿐이니까. 요컨대 나는 귀찮은 인간이다. 동시에 귀찮아하는 인간이기도 하다. 난 빨래가 귀찮았고, 설거지가 귀찮았고, 방바닥과 화장실 청소가 귀찮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하는 면도를 미루다가 간신수염이 됐고, 고장난 키보드로 계속 게임을 하다가 화가 나서 컴퓨터를 발로 찼더니 메인보드가 박살났다. 내게는 아이템이 필요했다. 벽을 긁는 고양이에게 스크래처가 필요하듯이. 고양이는 벽 긁는 습관을 고치지도 않고 딱히 고칠 의지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리즈에서 소개하는 아이템들은 ‘세련된 리뷰어가 사용하는 희대의 개꿀템’ 보다는, ‘긁는 습관을 고치기 싫어서 구매한 좋은 스크래처들’에 가깝다. 허접한 스크래처는 소모도 금방 되고, 별로 긁고 싶은 마음도 안 든다. 기왕지사 돈은 써야하고, 어차피 써야한다면 좋은데 쓰는 것이 사회정의 아닌가. 물론 처음부터 잘 되진 않았다. 닥치는 대로 샀다가 낭패를 본 일도 있고, 포장 다 뜯고 환불하려다 실패한 뒤 질질 짜며 그냥 쓴 적도 있었다. 그래도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겪다보니 나름의 기준이 생기긴 했다.


1. 공간이 제한돼있기에 극한의 미니멀리즘을 추구해야 한다. 주위 인테리어에 조화롭게 스며들 수 있는 디자인이 좋다. 2. 잔망스러운 용도가 있어야한다. 손님에게 적당히 자랑할 수 있을 정도로. 3. 반드시 실용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갖고 싶어지면 결국 지르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좋은 옵션이 있는지는 시간을 들여 찾아봐야 한다. ‘사고 보니 더 싸고 좋은 게 있었잖아?!’는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라서.


‘니가 그래도 리뷰어면 아이템 소개 같은 걸 해주세요’라는 디에디트의 요청에 따라 부득불 시작한 시리즈지만, 아무쪼록 많은 분들에게 흥미로운 글이 되도록 힘써보겠다. 지금 생각해보니 쓰라고 해서 쓰는 거라고 시작했으면 됐을 텐데. 괜히 그럴듯한 서론이 필요할 것 같은 기분에 A4 한 쪽 분량이나 써버렸다. 다음부턴 사무적으로 아이템만 딱딱 소개하고 끝내든가 해야지. 분명 글인데 투머치토커 같잖아 이거.


*편집자주 : 지금부터 김리뷰의 아스트랄한 사진 세계가 펼쳐진다.


1. 플러스마이너스제로 무선청소기

[노력왕 김리뷰의 리뷰 사진]

자취방 청소란 먼지, 그리고 털과의 전쟁이다. 자취를 시작한 지 얼마지 않아 나는 경악했다. 사흘만 지나도 바닥에 듬성듬성 떨어져 있는 머리카락과 체모들… 사람이란 게 이렇게 털이 많이 빠지는 동물이었나?


처음에는 빗자루로 쓸었다.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다. 그래서 유선 청소기를 샀다. 사만 원 정도 준 것 같다. 빗자루보단 훨씬 편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사고 나서 딱 한 달쯤 열심히 청소했던 것 같다. 한 달 뒤에야 깨달았다. 내가 청소가 필요할 때마다 유선 청소기를 꺼내서 연결선을 풀고 콘센트에 꽂고, 밀고, 다시 콘센트 빼고 선 정리하고 집어넣는 일련의 과정조차 귀찮아하는 인간이라는 걸. 점차 약해지는 흡입력 역시 청소에 대한 동기를 앗아갔다. 아, 이 얼마나 글러먹은 인간이란 말인가?


이쯤 되면 질문. 그렇게 치우는 게 귀찮으면 안 치우면 될 것 아니냐? 조금 더러운 걸 받아들이면서 살면 인생이 참 편안해질 텐데. 돈 쓸 일도 없고 말이다. 그러나 여러분이 아셔야 할 사실은, 더러운 인간도 더러운 걸 좋아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더러운 사람도 더러운 것보단 깔끔하고 정돈된 환경을 훨씬 좋아한다. 사람이라면 좀 당연한 것 아닌가. 위생적인 문제도 있고. 더러운 사람이 더러운 이유는 깔끔한 건 좋아해도 깔끔해지기 위한 노력은 싫어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이슨을 사지 못한 김리뷰를 위한 자료 사진]

원래는 다이슨을 사고 싶었다. 다이슨은 생긴 게 멋있고, 선도 없다. 모름지기 충전해서 쓰는 무선 청소기에는 흡입력에 대한 의구심이 들기 마련인데, 다이슨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이렇게 생겨먹은 게 흡입력이 약할 리 없지 않은가? 그리고 어디 가서 다이슨 쓴다고 하면 청소 좀 한다(사실은 아니지만)는 소리도 들을 것 같다. 그러나 큰 문제가 두 개 있었다. 분명 멋있긴 한데 내 방에는 어울리지 않는 아이템이라는 것, 그리고 너무 비싸다는 것이었다. 비슷한 가격대로는 로봇청소기도 살 수 있다. 물론 로봇청소기는 옵션에 있지도 않았다. 난 로봇을 믿지 않기 때문에.

[김리뷰가 안 찍은 사진, 출처 시코몰]

그래서 꼼지락꼼지락, 한 달 동안 찾다가 내린 결론이 ‘플러스마이너스제로’였다. 무선에 아담한 사이즈, 가격은 다이슨의 절반. 무게도 가볍고, 흡입력에 대해서도 호평일색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결정적인 것은 디자인. 애플이 가전제품 회사였다면 이 제품보다 딱 십 퍼센트 더 예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충전은 USB-C 같은 걸로나 하겠지.

[김리뷰가 안 찍은 사진, 핸디형으로 쓸 수도 있다! 출처 시코몰]

흡입강도는 3단계로 조절이 된다. 1단계로도 웬만한 유선청소기 만큼의 출력이 나오지만, 스트레스 받을 땐 3단계로 와장창 쓸어 담으며 쾌감을 느껴도 좋다. 배터리는 네 시간 충전에 한 시간을 쓸 수 있다. 여기서 한 시간은 1단계 기준이다. 1시간 밖에 못 돌린다고 하면 괜히 짧은 것 같지만, 자취방은 원래 넓을 수 없는 공간이다. 하루에 한 번, 서너 분 씩 쓴다고 하면 일주일은 넉넉히 쓸 수 있다. 충전이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고, 가만히 놔둔다고 방전이 되는 것도 아니다. 배터리 잔량이 적다고 흡입력이 낮아지는 현상도 거의 없다. 끝까지 불태우다 죽는다. 인상적이다.

[김리뷰가 찍은 사진… 디에디트에 발가락을 찍어서 보내다니…]

결론은 상당히 괜찮은 선택이었다. 다이슨 부럽지 않다가 아니라 생각도 안 난다. 가볍고, 편하고, 강하다. 괜히 빗자루질 하느라, 콘센트 찾아 꽂고 빼느라 허리 낭비할 필요 없다. 허리는 좀 더 멋지고 가치 있는 곳에 써야 하니까… 아무튼 난 더러운 건 싫고, 최소한의 귀찮음으로 방을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삶의 만족도는 상승, 여가시간과 체력도 상승, 행복도 상승, 만사가 행복하고 평양냉면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일석오백육십조의 효과. ‘청잘샀’이다.


*편집자주 : 청잘샀 뭘까… 내가 모르는 유행어인가. 뺄까말까 살벌하게 고민했지만 디에디트는 모든 필자를 존중한다.


2. 샤오미 전동면도기

[노력왕 김리뷰가 사진에 멋을 부렸다]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 나는 수염이 안 나는 인간인 줄 알았다. 그러나 살다 보니 윗입술의 위쪽으로 거뭇거뭇 김가루가 자라기 시작했다. 아. 이게 수염이구나. 오늘 하루도 한층 더 남자가 돼버렸군(웃음). 약간 설레는 마음으로 편의점에 가서 일회용 면도기를 샀다. 크림이 없어서 비누거품을 낸 뒤에 수염을 밀었다. 그리고 다음날, 면도한 부위가 시뻘겋게 부어오르는 걸 보고 느꼈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걸. 물론 내가 서툴렀던 것도 있었겠지만, 그 땐 그렇게 생각했다.


난 일회용보다 조금 더 비싼 면도기를 샀다. 좀 큰 마트에 가면 파는 일이만 원 짜리 면도기. 어느 순간부터 깔끔하게 밀리질 않는 기분. 자세히 보니 면도날에 녹이 슬어 있었다. 세상에, 이게 뭐람? 하고 밀던 거 마저 밀었다. 한 번 밀어서 안 되면 두 번 세 번 밀지 뭐.

[김리뷰가 안 찍은 사진]

그 순간 생각했다. 전동 면도기를 사야겠다고. 전동면도기라고 날이 무뎌지는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면도 할 때마다 크림 비슷한 걸 치덕치덕 발라대는 것도 귀찮았던 참이었다. 별 수 없이 구매한 네 개 들이 면도날을 다 쓰는 데는 반 년 정도가 걸렸다. 찾아볼 시간은 충분했다. 비싼 건 또 오지게 비쌀 수 있는 물건이라 검색을 많이 했는데, 마침 샤오미에서 물건이 나왔다. 가격이고 나발이고 너무 예쁘잖아? 솔직히 필립스 같은 데서 나온 건 누가 봐도 아저씨들 아이템 같다. 반면 샤오미는 굵은 막대기에 헤드만 달아놓은 단순한 디자인. 역시 심플 이즈 베스트다. 아마 삼사만원 쯤 더 받았어도 샀을 것 같다. 그쯤 되면 샤오미는 면도기에 레이저발사 기능을 추가해놨을 것이다.

[김리뷰가 안 찍은 사진]

그래서 면도기로서의 성능은 어떠냐? 면도할 때 뭐 바를 필요도 없고, 갖다 대면 수염이 없어지는 게 재미있기도 하고, 뭣보다 덜 귀찮아졌다. 입가를 만졌을 때 까칠한 경우도 거의 없다. 자기관리 잘하는 남자가 됐(다는 기분이 든)다. 뭐? 그런 건 다른 전동면도기도 다 그렇다고? 별 수 없다. 난 이게 첫 전동면도기라서. 일회용 면도기보다 좋은 것은 확실하다. 그거 외에는, 아, 몸체의 매트한 재질이 좋다. 생각 없이 만질 때도 꽤 있다.

[노력왕 김리뷰가 찍은 면도기 시체 사진]

수염도 잘 밀리고, 충전도 잘 되고, 촉감도 좋지만 아쉬운 점이 영 없는 것은 아니다. 블루투스 연동을 통해 내 수염의 최대 굵기나 한 달 동안 밀어낸 수염의 총 길이 같은 통계를 보여줬으면 좋겠는데. 가격대가 저렴해서인지 기능은 딱 면도 뿐인 모양이다. 흠.


3. 엑스박스 원 게임패드

[분노!!!]

게임, 특히 온라인 게임을 하다보면 견딜 수 없는 시점이 온다. 내게는 몇 년 전 일이었다. 난 피파온라인이라는 게임을 하다가, 내가 정성껏 빚어낸 영혼의 코트디부아르 대표팀이 웬 시정잡배 같은 첼시에게 능욕 당하는 걸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빡친 나머지 본체를 발로 차버렸다. 얼마나 세게 찼는지 케이스가 찌그러지고, 메인보드를 비롯한 여러 부품들이 작살났다. 난 머저리였다.

[또 분노!!!]

수십만 원을 들여 컴퓨터를 수리했다. 수리라고 했지만 사실상 새로 산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래, 이제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본체는 때리지 말자. 예전부터 난 꼭 한 번은 고통받아야 깨달음을 얻는 인간이었다. 그래서 본체는 부수지 않았고, 키보드를 부숴먹었다. 나름 큰맘 먹고 산 기계식 키보드였는데. 아무리 그래도 심혈을 기울여 구성한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표팀이 오대떡으로 발리는 광경을 그냥 지켜볼 순 없었다. 그때 느꼈다. 멍청한 사람은 똑똑한 사람보다 돈을 더 많이 쓰면서 살 수 밖에 없다는 걸.

[노력왕 김리뷰가 같은 장소에서 찍은 사진…]

내가 내린 해결책은 두 가지였다. 피파온라인 말고 다른 축구게임을 찾는 것, 그리고 키보드 대신 좀 떨어져서 게임할 수 있는 도구를 찾는 것. 그래서 게임패드를 쓰기 시작했다. 어, 근데 게임패드는 원래 콘솔에만 쓰는 것 아니었나? 내 생각도 그랬다. 근데 그건 무선일 때 얘기고. 유선으로 연결하면 퍼스널컴퓨터에서도 잘만 굴러간다. 컴퓨터 살 때 사은품으로 받았던 엑스박스360 게임패드가 계기가 됐다. 게임도 피파온라인에서 위닝 그리고 피파 정규시리즈로 옮겼다. 이 결정을 전후해 내 인생은 한결 더 아름다워졌다.

간혹 키보드 조작이 게임패드보다 편하고, 그래서 게임패드가 필요 없다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겜알못이다. 민감한 시점 조작이 필요한 FPS, AOS같은 장르라면 모르겠는데, 다른 게임들에서는 게임패드가 월등하게 좋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위닝과 피파, NBA2K를 비롯한 스포츠 게임에서는 비교할 수 없는 조작감이 나온다. 예컨대 키보드 조작으로 사선 이동(↘같은)을 많이 하게 되면 얼마 안 가 손가락 관절이 결린다. 여러 키를 동시에 눌러야하기 때문이다. 반면 게임패드는 몇 시간을 해도 문제없다. 원래 키보드는 게임하라고 개발된 것도 아니지 않나? 결국 경험과 적응력의 차이라고 본다.


결정적으로,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본체나 키보드를 부술 일이 없게 된다. 기껏해야 패드를 냅다 던지는 정도인데, 엑스박스에서 출시한 게임패드는 게임콘솔 자체보다도 좋은 평가를 받는 제품이다. 몇 번 던진다고 쉽게 부숴 지지 않는다. 내부 장치가 좀 나가더라도 정상작동 한다. 그렇게 쭉 쓰다 보니 어느 순간 L스틱이 위쪽으로 올라가질 않았다. 박살난 쪼가리가 꼈는지 어쨌는지… 그래서 새로 산 것이 엑스박스 원 패드였다.

[김리뷰가 안 찍은 사진]

게임을 패드로 즐기는 재미에 빠진 뒤로, 나는 여러 종류의 게임패드를 경험해봤다. 엑스박스, 듀얼쇼크, 스팀 컨트롤러, 최근에는 닌텐도 프로 컨트롤러까지. 그런데 정말 단언하건대 엑스박스 원 패드만큼 찰진 제품은 없었다. 쌔끈하고 깔끔한 디자인, 군더더기 없는 버튼배치. 그리고 가장 치명적인 것은 L/R 트리거의 촉감이다. 꾹 눌렀을 때. 내 중지와 검지를 차분히 트래핑하는 그 감각! 평생 키보드로만 게임을 하다가 이제 막 게임패드를 써볼 참이라면, 엑스박스 원 패드는 확실히 추천할 것이 못된다. 처음 접한 것이 엑박 패드라면, 앞으로 만나는 다른 패드로부터 느낄 거라곤 이 퍼센트의 부족함과 실망감뿐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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