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사가 연애에 대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

조회수 2019. 11. 22. 15:5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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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사는 사실 '회피형'이었다?

'겨울왕국'(2013)을 해석하는 방법은 참 많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이 영화가 항상 회피형 애착을 가진 사람의 속마음을 탁월하게 그려낸 영화로 비쳤습니다. 오늘은 그 얘기를 좀 해 볼까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애착유형을 갖습니다. 애착유형이란 부모, 연인, 친구 등 타인과 정서를 교류하는 방식을 뜻해요. 대개 생후 12개월 안에 결정되며, 양육자와의 관계에 큰 영향을 받죠.


애착유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는데 바로 안정형, 불안형, 회피형입니다. 이 중 회피형은 연애할 때나 다른 친밀한 관계를 맺을 때 다른 사람과 지나치게 가까워지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거부하며, 자신만의 공간을 필요로 하는 유형입니다.


이 글을 읽고 나서 다시 한번 '겨울왕국'을 보면 문장이나 단어 하나하나에 얼마나 많은 의미가 깃들어 있는지 깨닫고 놀라게 되실 거예요. 또 어쩌면 여러분이 왜 자꾸만 연애에 실패하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될지도 모릅니다. 


* 아직 '겨울왕국'을 보지 않은 분은 본문에 결말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하세요!

마음은 하나가 아니다

사실 우리 내면에는 하나의 마음만 있는 게 아니죠. 예를 들어 ‘라면을 먹고 싶은 마음’과 ‘살을 빼고 싶은 마음’이 부딪히는 건 늘 있는 일입니다.


영화의 공간적 배경인 아렌델 왕국이 한 사람의 내면 세계라고 생각해 보세요. 국왕 부부, 엘사, 안나, 올라프 등은 우리 내면에 공존하는 서로 다른 욕망과 방어기제를 상징합니다. 마치 <인사이드아웃>에서 기쁨이, 슬픔이, 소심이 등이 서로 다른 감정을 상징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우리에게는 누군가를 가까이하며 깊이 사랑하고 또 사랑받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애착 욕구가 있습니다. 그런 반면 상처 입고 싶지 않아서 상대를 밀어내고 회피하려 하는 마음도 있죠.


'겨울왕국'에서 안나는 전자, 엘사는 후자의 상징입니다. 상처에 대한 두려움(엘사)이 강하게 발달해 자연스런 애착(안나)을 억누르는 방어기제가 된 것이 바로 회피형 애착유형이죠. 그래서 엘사의 강력한 마법을 중심에 두고 진행되는 이 이야기는 전형적인 회피형의 마음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거예요.


첫 번째 상처

우선 영화 첫머리부터 보죠. 엘사와 안나는 어릴 적 사이좋은 자매였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엘사는 모든 걸 얼어붙게 만드는 자신의 힘으로 안나를 다치게 하고 말았죠. 인생 최초로 친밀한 관계 속에서 마음의 상처를 입은(혹은 입힌) 경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린 회피형이 처음으로 ‘친밀감은 위험하다’고 느끼는 순간이죠.


안나를 치료한 지혜로운 트롤 족장은 엘사의 능력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 힘에는 아름다움이 있지만
또한 위험하기도 합니다.
두려움이 공주의 적이 될 것입니다.

엘사의 능력은 벽을 세우고 얼려 버리는 능력입니다. 타인을 배척하고 자신을 가두는 종류의 힘이죠. 고독하고 품위가 있기에 아름답지만, 결국은 마음을 고립시키는 탓에 위험하기도 한 것입니다.


엘사와 안나의 아버지인 국왕은 엘사가 힘을 통제할 수 있게 될 때까지 성문을 닫고, 두 자매가 외부인을 만나지 못하도록 합니다. 또한 엘사는 안나에게 능력을 숨기고 더 이상 방에서 나오지 않게 돼요. 회피형이 상처를 피하기 위해 마음을 닫고 아무도 들이지 않기로 결심하는 장면입니다.


회피형 애착을 가진 사람은 마음이 흔들리는 상황을 극구 피하려 합니다. 타인에게 감정적으로 휘둘려 자신이 통제력을 잃는 상황을 극도로 싫어하죠. 닫힌 문장갑은 그런 회피형이 사용하는 방어기제의 상징입니다. 엘사에게 장갑을 주면서 국왕은 이렇게 말하죠.

숨기고, 느끼지 마라.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마라.

정말이지 회피형의 좌우명처럼 보이는 대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마음은 닫힌 방

국왕 부부는 굳게 닫힌 성 안에 자매를 남겨두고 사고로 세상을 떠납니다. 이는 한번 자리를 잡은 회피형 방어기제가 사라지지 않고 계속 마음에 남아있는 상황을 뜻합니다.


텅 빈 성에서 안나는 외로워하며 몇 년이고 엘사의 방문을 두드리다 결국 포기하고 맙니다. 방어기제가 자연스러운 애착 욕구를 내면 깊숙이 억눌러 버리는 데 성공한 거죠.


하지만 곧 운명의 날이 찾아옵니다. 바로 엘사가 여왕으로 즉위하는 대관식 날입니다. 이날 엘사는 마침내 성문을 열고 안나와, 그리고 ‘진짜 살아 있는’ 사람들과 처음으로 마주합니다.


대관식은 이를테면 회피형의 첫 연애라고 생각해볼 수 있어요. 오랫동안 자신을 꽁꽁 가둬놓았지만 마침내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어보기로 한 거죠. 사랑을 원하는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처음으로 직시하는 때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처음으로 마음을 내주었으니 당연히 서툴고 경솔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에 목말라 있던 안나는 이날 초면인 왕자에게 순식간에 마음을 빼앗기고 청혼까지 받아들이고 맙니다.


왕자와 안나의 듀엣곡 제목인 '사랑은 열린 문'엘사의 닫힌 방과 대비됩니다. 여기서도 성문은 중요한 상징으로 드러나죠. 파티에서 안나는 엘사에게 “앞으로도 계속 오늘처럼 성문을 열어뒀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엘사는 “나도 그러고 싶지만 안 돼”라고 대답합니다.

왜? 왜 안 된다는 거야?
그냥 안 돼!

이것이 무의식의 방어기제들이 작동하는 방식이에요. 논리로 풀려고 해서는 도무지 들어먹질 않습니다.


엘사의 표정에 깃든 생생한 고통과 두려움을 알아볼 수 있으신가요? 결국 엘사는 사랑을 원하는 안나를 거부하고, 능력까지 들키고 맙니다. 마음을 열어보려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죠. 어릴 때 입은 첫 상처에 이은 두 번째 상처입니다.


Let It Go

엘사는 황급히 왕궁에서 달아납니다. 그러면서 뜻밖에도 아렌델 왕국에 끝나지 않는 겨울을 불러오게 돼요. 한때 풍요로웠던 아렌델 왕국은 이제 사철 눈이 내리는 얼어붙은 땅이 됩니다. 누구도 다치지 않게 하려 했던 엘사에게는 아무 나쁜 뜻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두려움 탓에 엘사는 자신의 모든 관계를 얼어붙게 만들고 말았던 거죠.


도망친 엘사는 더 이상 자기 능력을 억누르지 않아도 된다는 걸 깨닫고 장갑을 벗어던집니다. 그리고 감춰 왔던 자신의 힘을 마음껏 펼쳐보이기 시작하죠. 이때 나오는 노래가 바로 그 유명한 'Let It Go'예요.


무엇을 의미하는 장면일까요? 저에게는 성장한 회피형이 자신의 성향을 합리화하는 장면으로 보였습니다.


엘사의 미숙한 마법은 진정한 사랑과 반대되는 능력, 곧 사랑을 거부하는 능력입니다. 그 능력을 마음껏 해방하면 결과가 어떻게 되겠어요?


엘사는 화려한 얼음성을 세워서 자기 자신을 고립시켜 버립니다. 그렇게 하면 소중한 동생과 자신의 왕국이 안전할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말이죠. 타인과 가까워지면 어차피 상처만 입으니 아예 모든 사람에게 벽을 세우면 나쁜 일도 없어진다고 여기게 된 거죠. 아주 단단히 착각을 한 거예요.


이 생각이 착각인 이유는, 타인에게 벽을 세우는 방법으로는 상처를 입지 않을 수는 있어도 결코 행복해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세 애착유형 중 회피형의 관계 만족도와 행복 수준이 가장 낮은 것이 바로 그런 이유죠. 이 착각은 모든 회피형이 공유하는 것입니다. 아무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으면 절대로 불행해지지 않을 거라고 굳게 믿는 바로 그 사고방식이에요.


그러므로 사실 'Let It Go'는 흔히 생각하듯 자유로운 본래의 자신을 해방시키는 노래가 아닙니다. 모든 애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는 미성숙한 방어기제를 상징하는 노래죠.

그림자가 온다

엘사가 얼음성을 짓고 나서 미소 지으며 문을 쾅 닫아버린 것은 어릴 때의 성문 닫기, 즉 회피형 행동을 반복한 것입니다. 얼핏 멋있고 능동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성이 얼음성으로 바뀌고 드레스를 갈아입었을 뿐 똑같은 방어기제를 계속 사용하고 있는 거예요.


분석심리학에서는 마음의 한 부분을 외면하고 억압할수록 그 힘은 더욱 강해진다고 가르칩니다. 이때 억눌린 부분을 통틀어 ‘그림자’라고 부릅니다.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짙어지니 정말 지혜로운 비유라고 해야겠죠.


억눌러 놓은 애착 욕구, 즉 안나가 끝끝내 얼음성까지 찾아간 것은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엘사가 아무리 도망치려 해도 안나는 절대 포기하지 않아요. 그림자를 극복하는 방법은 애써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바른 방식으로 받아들이는입니다. 엘사는 그러지 못하고 있는 거죠.


고통스러운 깨달음

눈사람 올라프와 크리스토프의 도움으로 마침내 얼음성에 도달한 안나. 엘사는 안나에게 진실을 듣게 됩니다. 자신만 도망치면 아렌델 왕국은 평화로울 거라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온 땅이 얼어붙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예요.


심하게 절망한 엘사는 안나에게 어서 자신을 남겨두고 떠나라고 종용합니다. 사실 그런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으면서도 말이죠. 자기가 왜 그러는지도 모른 채 고장난 기계처럼 평소에 쓰던 방어기제를 필사적으로 반복하는 거예요.


이때 잠시 통제를 벗어난 엘사의 힘이 안나의 심장을 얼려버리고 맙니다. 엘사는 그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이번엔 거대한 눈 괴물을 불러내어 안나 일행을 쫓아냅니다.


이 눈 괴물은 사랑을 원하는 자기 자신의 마음을 때려눕히는 행동을 의미합니다. 회피형은 사랑받고 싶어하는 마음이 제대로 모습을 드러내기도 전에 그 마음을 두들겨 패고 내쫓고 외면하고 ‘문을 잠가’ 버리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래야만 마음이 다치지 않을 거라 여기기에 하는 일이지만, 사실 마음은 우리가 그렇게 가혹하게 굴 때 더 심하게 다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올라프가 알려주는 것

'겨울왕국'에서 인간이 아닌 캐릭터들, 즉 올라프(눈사람), 트롤 족장, 스벤(순록) 등은 비슷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바로 스승이자 안내자의 역할입니다. 제작진의 메시지를 전해주는 대변자이기도 하죠. 그래서 이들의 말을 잘 들어보면, 따스한 아렌델 왕국을 되찾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선 올라프는 ‘여름을 좋아하고 따뜻한 포옹을 원하는 눈사람’이라는 아이러니한 설정입니다. 또 엘사와 안나의 관계가 단절되기 전엔 어릴 때 같이 놀면서 만든 눈사람이기도 합니다


이 대사는 올라프가 음양의 두 성질을 한 몸에 가진, 좀 어려운 말로 ‘대극의 합일’을 상징하는 존재라는 점을 알려줍니다. 여름과 겨울, 안나와 엘사, 이 두 극단을 이어주고 섞어주고 조화시켜 주는 존재가 올라프인 거죠.


조화로운 왕국(마음)을 되찾으려면 양극의 균형을 추구해야 하고, 여름을 되찾고 싶다는 이유로 겨울을 없애려 들어서는 안 됩니다.엘사가 너무 강해져도 곤란하지만 우리 마음에는 꼭 엘사가 필요해요. 타인과 경계를 긋지 못하는 사람, 마음에 아무 장벽도 없는 사람 역시 마음의 병을 앓는 환자이기 때문이죠.


이처럼 관계를 냉각하는 방어기제 자체를 악마화하는 것도 옳지 않은 길이라는 걸 영화는 또렷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진정한 사랑의 행동

그럼 올라프에 이어서 이번엔 숲속의 지혜로운 종족 트롤들의 말을 들어볼까요?


안나 일행은 ‘진정한 사랑’이라는 말을 듣고는 왕자의 키스를 받아야 한다면서 급히 성으로 돌아갑니다. 만약 <겨울왕국>이 전통적인 동화 서사를 그대로 재현하는 야심 없는 영화였다면 아렌델은 왕자와 안나의 사랑 덕분에 정상적인 계절을 되찾았겠죠. 하지만 성에 있던 왕자는 사실 악당이었음이 드러납니다.


그러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진정한 사랑의 행동은 무엇일까요? 영화 후반에서 올라프가 간단한 한마디로 가르쳐줍니다.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을 위해 내 몸이 녹더라도
그럴 가치가 있는 거야.
(Some people are worth melting for.)


바로 이게 영화 <겨울왕국>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기꺼이 자신이 다칠 위험을 감수하는 것, 이것이 회피형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열쇠라는 거예요. 회피형 방어기제를 상징하는 엘사는 상처를 피하기 위해 도망치고 또 도망쳤지만, 사실 우리 마음은 상처 입을 위험을 수용했을 때 진정한 관계 속의 풍요로움을 맞아들일 수 있습니다.


풍요로운 왕국

'겨울왕국'은 회피형의 내면에서 활동하는 두 가지 마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애착과 친밀감을 원하던 안나는 상처를 두려워하던 엘사가 사랑의 힘을 깨닫도록 이끕니다. 덕분에 왕국, 즉 회피형의 내면 세계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구원을 얻게 되죠.


이렇게 애착 욕구가 해소되자 억눌려 있던 심리 에너지는 건강한 방향으로 발산되기 시작합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엘사는 왕성 한가운데서 힘을 발휘해 모두가 즐겁게 놀 수 있는 스케이트장을 만들어냅니다. 한때는 자신을 고립시키는 데 사용했던 힘으로 이제는 사람들에게 행복과 웃음을 주고 있는 거예요.


그렇게 저주가 축복으로 전환되면서 '겨울왕국'은 해피 엔딩으로 끝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마음이 얼어붙은 채 10년, 20년을 보내고서야 회복의 계기를 찾거나, 혹은 평생을 관계에 실패하며 보내는 일도 드물지 않아요. 만일 그런 비극이 여러분 자신의 이야기 같다면, <겨울왕국>이 던지는 메시지가 해결의 실마리가 되어줄지도 모릅니다.


P.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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