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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어서도 평생 상처가 되는 부모의 말

조회수 2023. 6. 22. 15:4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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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선아, 가게에 가서
카스테라 3개만 사와라"

출처: 만화 '검정고무신'의 한 장면

부모는 나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주었지만 오십이 되어서도 잊히지 않은 서운한 것이 있다. 어렸을 적 어머니는 가게에 가서 카스텔라를 사오라는 심부름을 자주 시키셨다. 매번 3개를 사오지만 단 한 번도 나에게 카스텔라를 주지 않으셨다. 그것이 내내 서운했다.

왜 나에겐 한 번도 카스텔라를 주지 않으셨을까? 이제 막 성인이 되었을 무렵 그 일들을 어머니에게 말했지만 돌아오는 건 ‘어, 그랬냐?’라는 서운한 말뿐이었다. 그때 이후로 한참 동안 서운한 것을 계속 가슴에 안고 살았다.

사람을 행동하게 만드는 ‘감정에 대한 감정’을 보통 ‘초감정metaemotion’이라고 한다. 나는 초감정을 ‘뿌리 감정’이라고 부른다. 뿌리 감정은 슬픔이나 기쁨, 놀라움, 분노 등 어떤 감정의 기초를 맡고 있는 감정이다.

어떤 사건이나 사물을 마주쳤을 때 자신이 살아오면서 경험한 것들, 사건 등이 뒤섞여 나타나는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사람마다 뿌리 감정도 다르다. ‘가족’을 생각할 때 어떤 이는 ‘슬픔’을 느끼고, 어떤 이는 ‘기쁨’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뿌리 감정은 육아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다. 가령 아이가 장난감이 망가져 울고 있다면, 장난감에 대한 아이의 뿌리 감정은 ‘슬픔’이나 ‘상실감’으로 굳어진다.

이때 부모의 감정을 표현하면 아이에게는 장난감이 망가져 우는 행동이 다른 경험으로 자리 잡는다. ‘울면 엄마가 짜증을 내’ 혹은 ‘장난감 망가뜨리면 큰일 나’처럼. 이런 경험이 반복되고 학습되면 자녀는 감정을 억누를 수도, 왜곡된 감정을 가질 수도 있다.

내가 ‘카스텔라’에 느끼는 뿌리 감정은 ‘슬픔’과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었다. 한번은 용기를 얻어 어머니와 다시 이야기를 해보기로 했다.

“엄마, 옛날에 제일상회라고 도매상회가 있었는데, 기억하세요? 동생이 어릴 때 밥을 잘 안 먹는다고 엄마가 밥 대신 카스텔라를 자주 주셨잖아요. 제가 아홉 살이었는데 진짜 열심히 카스텔라 심부름을 다녔었죠. 그런데 그때 저도 좀 주시지 그랬어요. 세 개나 샀는데 저도 좀 주셨으면 됐을 텐데요.”

"그게 얼마나 먹고 싶었고
서러웠는지 오십이 넘었는데도
자꾸 생각이 나요."

어머니는 가만히 생각을 더듬으시다가 ‘내가 왜 그랬지? 어, 지금 생각하니 정말 미안하네’하며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그때 나는 눈물이 콱 터지고 말았다. 내게 카스텔라는 단순한 빵이 아니었다. 어머니에게 받고 싶었던 사랑이었다. 삼남매에서 중간에 낀 나도 소중한 아이라고 늘 확인받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카스텔라에 많은 감정을 가진 나는 빵집에 가면 무엇을 집을까? 어렸을 때 그토록 먹고 싶었던 카스텔라? 아니다. 나는 단팥빵을 산다. 그 이유는 아버지가 생각나기 때문이다.

6학년 때 어머니가 몸살을 앓으실 적, 그때 나는 어머니를 돕는다고 집안일을 했었다. 그날 아버지는 집에 들어오시면서 ‘경선아’하고 까만 비닐봉지를 건네주셨다. 그리고 그 속에는 먹음직스런 단팥빵이 들어 있었다.

그 빵은 어설퍼도 나에게 주는 격려였고, 관심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때의 단팥빵을 ‘사랑빵’이라고 부른다. 카스텔라는 ‘섭섭빵’이라고 부른다.

아이에게 사랑빵을 많이 주고받아야 한다. 내 가슴속에 남아 있는 카스텔라 같은 섭섭빵이 있다면 솔직하게 꺼내어 이야기하고 위로와 사과를 주고받아야 한다. 그리고 사랑빵의 시작은 나 자신의 뿌리 감정을 솔직하게 마주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런 뿌리 감정을 마주하게 되면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부부 사이에서도 서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정말 어렵게 가족에게 꺼낸 이야기인데, 무심한 반응이 돌아오면 실망하고 때로 분노하기도 한다. 그래서 뿌리 감정은 나 자신과의 대화, 나 자신과의 화해를 먼저 시도해야 한다.

상대방과 이야기하지 않아도 괜찮을 만큼 충분히 자신을 위로해야 한다. 그래야 상대방의 무덤덤한 반응에도 상처받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테니.

지금 당신의
'사랑빵'과 '섭섭빵'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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