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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에 버리지 않으면 후회하는 것 3가지

조회수 2021. 3. 15. 14:1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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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이 되면 누구나 지혜로워질 줄 알았다. 일을 구하고 사랑을 알고 살 곳을 정하고 후세를 만나는 고된 시기를 넘었으니 미끈하고 노련해질 거라고도 생각했을 것이다. 정치, 경제에 대한 독해력이 생길 줄 알았고, 무엇보다 불필요한 경쟁의 늪에서 벗어나 안정과 번영의 강가를 걷고 있을 거라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대로 되는 일은 없고 삶은 여전히 치열하고 정치와 경제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고 세상의 변화는 어찌나 빠른지 눈이 돌아갈 지경이다.

영글었던 몸은 퍽퍽해졌고 몸의 기관들도 앞다투어 이상 신호를 보낸다. 주름은 늘어나고 뼈는 휘고 이유 없이 아프고 서럽다. 자꾸 뒤를 돌아보고 주춤하게 된다. 그리고 비로소 먹고사는 일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어느 설문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은 55세를 중년의 시작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노년은 62세부터. 한국인의 평균 수명이 83.3세이니 노년은 무려 20년이 넘는 셈이다.

전속력으로 달리던 30대, 40대를 지나 이제 겨우 숨 고르기를 하고 있는데, 20년, 아니 그보다 더 길지도 모를 세월을 준비해야 한다니…. 숨이 찰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삶을 재정비해야 하는 시기다. 세상과 인생을 조금 알고 적당히 모르는 지금이야말로 ‘자기 주도적’ 삶을 살아갈 적기일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오십부터는
어떻게 살아야 후회가 없을까?

1. ‘척’을 버려라

‘센 척’, ‘착한 척’, ‘똑똑한 척’, ‘너그러운 척’, ‘고상한 척’, ‘현명한 척’ 등 다양한 종류의 ‘척’들을 버리자. ‘난 그런 데 관심 없어’, ‘그딴 거 하나도 안 부러워’ 같은 ‘안 그런 척’과 같은 위선과 거짓을 양분으로 삼다가는 정신과 마음을 피곤하게 만들고 또 자신의 민낯을 들킬 염려에 대한 불안을 만들 뿐이다.

젊은 시절을 그렇게 위장하고 살다가 나이를 먹는 순간, 진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게 될 수도 있다.

2. 나잇값을 버려라

폭풍 같은 시절을 갈무리하고 한숨 돌리다가 오십이 되면 낯선 단어 '꼰대'가 가슴팍에 붙는다. 물론 나쁜 의도로 꼰대라 불리는 행동들을 하는 이유는 아닐 것이다.

삶의 굴곡을 먼저 경험한 사람으로서, 꼭 가야 할 길이 아니면 돌아가라 이른 것이고, 청춘의 힘겨움을 맞들려는 순수한 의도였고 이런 세상밖에 물려줄 수 없는 기성세대의 미안함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단지 전달 방법이 세련되지 못해서일 뿐일 것이다.

하지만 요즘 세상은 빠르게 기술이 발전하고 사회의 풍경도 하루가 달라지기에 이젠 젊은 사람들에겐 기성세대가 경험치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어른’이 아니라 ‘꼰대’가 된 것은 젊은이들의 공경심이나 어른들의 간섭이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 사회적 발달 속의 자연스런 현상인 것이다.

감정 통제와 공감 기능을 수행하는 전두엽이 가장 늦게 성장하고 가장 먼저 노화한다고 한다. 기성세대는 청춘들의 ‘경험’을 조용히 지켜보며, 공감하고 응원해주다 보면 청춘들과 나잇값 받는 일로 섭섭한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3. 지나친 희생을 버려라

간혹 병원에선 이런 모습들이 자주 연출된다. 진료를 기다리는데 노모를 모시고 온 아들이 짜증을 내는 것이다. “아, 기다리라니까 왜 들어와 있어. 말 되게 안 듣네.” 노모는 숙제 검사받는 학생처럼 눈치를 보고 아들은 벼슬한 사람처럼 거들먹거린다. 아들의 유세는 계속되고, 어머니는 대꾸도 못하고 앉아 있다. 남이 보면 분노할 이 일은 사실 따지고 보면 별스러운 장면도 아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자식들은 대개 부모가 무슨 큰 죄라도 지은 것처럼, 큰 유세를 떨고 부모는 자연스레 죄인이 된다. 이처럼 부모는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존재다.

늘 자신의 안위는 뒷전이다. 자식을 키워놓고 편히 쉬겠다고, 또 돈 좀 벌어놓고 건강에 신경쓰겠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처럼 하나를 이룬 다음 다른 하나를 이루는 식의 직선적인 방식으로 살아간다.

이제부턴 ‘몰아서 한꺼번에’, ‘이것만 끝나면’이 아니라 동시다발적으로 ‘병렬 처리’ 하면서 살아보자. 내 몸과 마음부터 건강히 지켜내야 자식의 힘겨움도, 노부모님의 처량함도 챙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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