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바퀴'가 달리자 세상의 속도가 빨라졌다

조회수 2020. 5. 26. 17: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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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포드

올더스 헉슬리의 작품 <멋진 신세계>는 과학기술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인류의 어두운 미래를 그리는 소설이다. 조지 오웰의 <1984>,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자먀찐의 <우리들>과 함께 세계 3대 디스토피아 소설로 꼽힌다.

멋진 신세계가 그리는 미래에서는 놀랄만한 일이 있을 때 "오 마이 갓(Oh My God)" 대신에 "오 마이 포드(Oh My Ford)"라고 외친다. 포드는 우리가 아는 자동차와 헨리 포드(Henry Ford, 1863~1947)를 말한다. 예수가 태어난 해를 기준으로 기원전과 기원후를 나누듯 포드가 태어난 1863년을 기원년으로 삼고 전과 후를 나눈다. 소설의 배경은 포드가 태어난 이후인 AF(After Ford) 632년이다. 이 세계에서는 자동차를 개발하고 경영 혁신을 이룬 포드는 곧 신이다. 인류에 끼친 그의 공이 매우 크다는 것을 소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헨리 포드는 1863년 7월 31일 미국 미시간주 한 농촌에서 태어났다. 기계를 좋아했던 포드는 10대 초반 아버지로부터 회중시계를 선물 받으면서 시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친구와 가족들의 시계가 고장 나면 수리는 언제나 포드의 몫이었다. 수리에도 능숙했다.  


1876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는 포드가 기계보다는 농장에 관심을 가지고 일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포드는 농장 일에는 흥미가 없었다. 이후 자신이 잘하는 시계 수리공으로 본격적으로 일을 하게 된다. 생계에 어려움이 생겨 잠시 농사일을 하기도 했으나 시계 수리공 일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토마스 에디슨과 헨리 포드

1891년 회사 엔지니어로 근무하게 된다. 취업한 회사는 발명가 토마스 에디슨(Thomas Alva Edison, 1847~1931)이 설립한 에디슨 조명회사(Edison Illuminating Company)였다. 포드는 2년 뒤 수석 엔지니어로 승진했다.


그러다 갑자기 자동차 개발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잘 다니던 회사를 박차고 나온다. 회사를 다니면서 돈도 모았고 시간도 많아져 본격적으로 자동차를 연구한다. 


포드는 1903년 6월 16일 포드 자동차 회사(Ford Motor Company)를 설립하고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언제나 돈을 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자동차를 구입할 수 있는 저렴한 자동차 생산을 목표로 했다. 그래서 회사 설립 초창기부터 생산 공정을 간소화하고 규격화된 부품을 사용하는 등 자동차 생산 공장을 개선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출처: Wikipedia
모델A

그렇게 나온 첫 자동차의 이름은 '모델A(Model A)'였다. 알파벳 순서대로 모델B, 모델C라는 이름을 붙여 출시를 이어갔고 회사도 점점 성장해갔다. 자동차 가격을 낮게 책정하기 위해 단일 모델 생산을 고수했다. 그렇게 하면 작업자들의 숙련도는 높아졌고 자동차 조립에 소용되는 시간도 줄어들었다.


포드의 자동차가 거리를 활보했고 이를 본 사람들의 주문이 이어졌다. 직원도 늘어갔고 수익이 나면 새로운 공장을 세우며 회사의 규모를 확장했다. 


1908년 10월 1일 모델T가 세상에 소개된다. 모델T는 포드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히트 상품이자 자동차 대중화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기념비적인 모델이다. 모델T 가격은 825달러였다. 일시에 자동차 대금을 지불하기에는 부담이 되는 가격이기는 했다. 하지만 이제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구입할 수 있는 물건이 됐다. 모델T는 1908년부터 생산을 중단하는 1927년까지 약 1500만대가 생산된다.

출처: Wikipedia
모델T

1913년에는 드디어 컨베이어 벨트로 대표되는 조립 라인을 도입했다. 대량 생산이 가능해진 것이다.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이동한 작업물이 작업자 앞으로 전달되는 시스템이었다. 더는 작업자가 일을 찾아갈 필요가 없어졌다.


포드는 노동력을 낭비하지 않고 생산성을 최대한으로 끌어내는 방법을 연구해왔다. 작업 효율이 높은 시스템을 설계했고 이를 공장에 적용했다. 컨베이어 벨트의 높이에서부터 회전 속도까지 세밀한 부분까지 고려했다. 


대량 생산으로 자동차 생산 원가는 떨어졌다. 원가를 절감했기에 자동차를 더욱더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동차 가격이 더 내려가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났다. 모델T는 십 년이 넘도록 가격이 오르기는커녕 절반도 안 되는 가격으로 크게 떨어졌다.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한 생산 방식으로 모델T 자동차 생산량도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예전이면 모델T를 1대 생산할 시간에 4대를 생산하는 수준으로 올라갔다.

출처: Wikipedia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자동차를 조립하고 있다

자동차 생산 효율을 높이기 위해 직원들의 노동시간은 줄였고 다른 곳보다 높은 임금을 지급했다. 낮은 이직률로 직원의 기술 관련 업무 숙련도는 매우 뛰어났다. 자연스럽게 공장 생산성은 향상됐다.


포드가 자동차를 최초로 만든 사람은 아니다. 1889년 독일 고틀리프 다임러(Gottlieb Daimler, 1834~1900)가 최초로 바퀴 4개가 달린 자동차를 선보였다. 과학적인 경영 관리 방법을 누구보다 먼저 제시했던 것도 아니다. 스톱워치를 활용해 정확한 작업 시간을 계산하는 과학적 관리법은 1911년 경영학자 프레드릭 윈슬로 테일러(Frederick Winslow Taylor, 1856~1915)가 처음으로 주창했다. 그 대신 선구자들이 만든 기술과 방법을 잘 조화시켜 대량생산 신화를 만들어낸 최초의 인물이라고 소개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겠다. 


또한, 자동차를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게 만든 장본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자신부터 부유한 집안 출신이 아니다 보니 부유한 사람이 아니어도 살 수 있는 가격표를 붙어야 한다는 신념 같은 것이 있었고 이를 그대로 실천했다. 


포드 자동차 회사가 나타나기 전까지 자동차는 사치품이었다. 전혀 대중적인 물건이 아니었다. 자동차가 달릴 수 있는 도로조차 제대로 마련된 것이 아니었기에 실용성은 떨어졌다. 산업 초기 단계라 기술적인 완성도는 떨어졌고 쉽게 고장 났다. 포드는 이런 모든 것들을 뒤바꿔놓았다. 포드가 몰고 온 자동차 대중화는 미국을 가장 많은 자동차가 보급된 국가로 만든다. 


헨리 포드는 사람들에게 자동차 구매 못지 않게 혁신적인 제조 시스템 도입을 장려했다. 이미 우수함이 입증됐기에 전 세계는 포드의 방식을 채택하고 도입하기 위해 분주해진다. 대량 생산이라는 과학적 생산 관리법 도입은 미국은 경제대국으로 성장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다. 


테크플러스 에디터 나유권

tech-pl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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