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이 적중시킨 기막힌 예언들

조회수 2020. 5. 25. 17: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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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임영균
백남준

국내에서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한 예술가 백남준. 그는 비디오 아티스트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예술 하면 회화나 조각만을 떠올리던 고정관념을 창의적인 방법으로 과감하게 깨뜨렸다.


백남준은 대학에서 현대 음악과 서양철학을 전공했다. 음악가의 길을 걷고자 했던 와중 작곡가 존 케이지의 연주를 눈앞에서 직접 보고는 큰 감명을 받는다. 존 케이지를 만나기 전과 후로 인생이 바뀌었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닐 정도로 인상 깊은 순간이었다.


존 케이지는 4분 33초 동안 피아노 앞에서 건반 뚜껑을 닫고 악보만 넘기는 '연주하지 않는 연주'를 선보이는 파격적인 행동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소음 또한 음악이 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을 가져온 인물이다. 그의 전위 예술에서 영감을 얻은 백남준은 예술영역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예술가의 길을 걸어가기로 마음먹는다. 


예나 지금이나 텔레비전은 '바보상자'라 불린다.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시청자는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화려한 영상을 실시간으로 소비한다. 입은 닫혀 있고 눈과 귀는 텔레비전에 미혹된다. 백남준은 이렇게 이뤄지는 텔레비전 고유의 전달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텔레비전을 쓸모없는 물건으로 치부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대신 텔레비전과도 충분히 대화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후 텔레비전을 통해 무언가 보여줘야겠다고 결심한 듯 텔레비전을 이용한 작품들에 천착하기 시작한다. '콜라주 기법이 유화를 대체했듯이 브라운관(cathode ray tube)이 캔버스를 대체할 것'이라는 선언을 하면서 텔레비전과 모니터를 예술의 영역으로 가져와 활용했다. 지금이야 텔레비전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지만 다양한 기기로 이식되고 변주됐을 뿐 영상을 재생한다는 텔레비전의 원초적인 개념은 오히려 더욱 확장됐다.


비디오 예술이라는 장르를 사람들에게 각인시킨 1963년 첫 개인전을 열고 난 뒤 백남준은 인상적인 작품들을 쏟아내며 예술가로 성장해간다. 다양한 예술 활동을 하면서도 '예술가의 역할은 미래를 사유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품었다. 


그래서였을까. 많은 작품들에서 말하고자 했던 것들이 현재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그가 영험한 예언가는 아니지만 앞서 내다본 미래의 모습은 신기하리만큼 잘 들어맞았다. 백남준이 그린 미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의 생각과 작품을 다시 살펴보도록 하자.




<전자초고속도로(Electronic Super Highway)>

1. 인터넷


1974년 백남준은 <전자초고속도로(Electronic Super Highway)>라는 작품을 선보였다. 가로 12m, 세로 4.5m 크기의 작품인데 네온 조명으로 미국 지도 윤곽을 잡고 텔레비전으로 가득 채운 모습을 전시했다. 텔레비전은 주마다 다른 영상들이 재생되고 있으며 전국이 연결된 것처럼 보인다. 그는 위성, 케이블, 광섬유를 이용해 멀리 떨어진 도시들이 서로 연결될 수 있어 물리적인 거리가 더는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작품은 전통적인 경계를 뛰어넘어 서로 소통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묘사했다. 연결을 도와주는 것은 기술이었다. 넓은 땅은 고속도로를 통해 연결해 있지만 이제는 교통이 아닌 전자통신을 통해 연결되고 통합된다는 것을 암시했고 텔레비전만 있으면 다른 장소에서도 동일한 내용과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을 표현했다. 이때는 '인터넷'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하던 때였다.

아르파넷의 발전 (1969~1982년)

인터넷은 1969년 미국 국방부 산하 고등연구계획국(Advanced Research Project Agency)에서 스탠퍼드대학교와 캘리포니아대학교 로스앤젤레스캠퍼스(UCLA) 등 미국 4개 대학에 있는 컴퓨터를 네트워크로 연결한 '아르파넷(ARPAnet)' 시스템에서 출발했다. 국방 사업체와 연구 기관에서 정보 공유를 위한 연구용으로 구축된 시스템이었지만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지면서 이에 참여하겠다는 기관이 늘었고 결국 망을 넓혀가며 규모는 확장된다.


현대적인 인터넷의 개념과 민간용 네트워크가 구축되는 시기가 1980년대부터이니 지금과 같은 형태의 네트워크망이 구축되지 않았을 때 백남준은 몇 년은 앞서 인터넷 시대가 올 것을 예상했던 것으로 보인다.

1992년 말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빌 클린턴과 앨 고어는 정보혁명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선거공약을 제시하면서 '정보초고속도로(the information Superhighway)'라는 개념을 내세웠다. 어디서 많이 듣던 개념이다. 이듬해 백남준은 빌 클린턴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훔치고 이를 선거에 활용했다며 비난했다. 1998년 백악관 만찬 자리에서 둘은 만났고 백남준은 자신만의 퍼포먼스를 선사하기도 했다.




출처: 널 위한 문화예술
백남준은 텔레비전이 손안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믿었다

2. 스마트폰


1974년 백남준이 록펠러 재단에 응모한 프로젝트 초안에서 전자초고속도로를 통해 세계는 연결될 것이고 모든 사람의 손바닥 안에서 풍부한 정보를 접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몸집이 큰 텔레비전이 손에 들어갈 정도로 작아지는 미래를 상상했던 것이다. 애플이 아이폰 1세대를 출시했을 당시만 해도 언론과 대중의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을 당시 백남준이 아이폰을 봤다면 "바로 저거다"했을 것이다.


앞으로 TV는 소형화될 것이고 자기 손에 텔레비전를 들고 다니면서 서로가 소통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놀랍게도 "컬러 비디오 전화를 통해 서로 다른 장소에 있는 사람 간 회의가 상업적으로 실현될 것"이라고도 예측했다. 화상전화는 오래전부터 도입과 실패를 반복하던 미래의 기술이었다. 백남준은 궁극적으로 그런 시대가 와야 한다고 본 듯하다. 우리가 스마트폰을 열고 페이스타임을 실행하거나 스카이프, 줌을 켜는 행동은 이미 예견된 미래였다.




3. 글로벌 미디어


작가 조지 오웰은 소설 <1984>를 통해 매스미디어와 원격 통신을 이용한 감시와 통제가 이뤄지는 암울한 미래를 그렸다. 하지만 백남준은 그런 조지 오웰을 향해 "절반만 맞다"라는 말을 던지며 반기를 들었다.


백남준은 끊임없이 예술의 권위를 깨뜨리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이다. 권위가 있는 것에 반대했고 대항했다. 권위를 허물고 궁극적으로 모두가 서로 통할 수 있는 예술을 상상했던 그에게 소통은 당연한 것이었다. 텔레비전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텔레비전을 어떻게 사용하냐에 따라서 충분히 긍정적인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백남준의 위성중계 아트 '랩 어라운드 더 월드(Wrap around the World)'에서는 뉴욕 스튜디오에 있는 가수 데이비드 보위가 도쿄에 있는 피아니스트 류이치 사카모토와 위성을 통해 대화를 나누고 일본어로 채팅하는 모습이 연출됐다.


평소 동양과 서양이 소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영국의 시인 러디어드 키플링 남긴 "동양은 동양이고 서양은 서양일 뿐, 둘은 영원히 만나지 못한다"라는 말이 늘 거슬렸다. 그의 <바이바이 키플링(Bye-Bye Kipling)>은 그렇게 탄생했다. 동양이건 서양이건 미디어를 이용해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출처: Stedelijk Museum Amsterdam
<TV 부처(TV Buddha)>

4. 사용자 창작 콘텐츠(UCC)


<TV 부처(TV Buddha)>는 불상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고 이 모습을 카메라로 가슴 위쪽 부분만 찍어 TV를 통해 보여주는 작품이다. 백남준은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어머니를 따라 종종 절을 찾았고 인생의 은인으로 생각한 존 케이지는 선불교와 동양 사상에 심취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작품을 보면 동양의 종교 지도자가 서양에서 발명된 텔레비전의 만남 정도로 보인다.


작품에서 눈여겨볼 것은 실시간으로 찍어 TV에 내보냈다는 점이다. 불상은 TV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존재가 된다. 측면에서 볼 땐 모르지만 TV를 정면에서 보려 한다면 관객도 TV 화면에 나타난다. 예술은 일방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닫혀있는 환경에서 이뤄지는 매체의 전달 방식은 그에게 매력적이지 않았다. 단순히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소통으로서의 도구로 TV가 활용돼야 한다는 생각에 비춰보면 작품의 제작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영상 산업 종반에는 방송국이나 기업이 아닌 개인이 직접 영상을 제작하는 사용자 창작 콘텐츠(UCC)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견한 듯하다. 비교하자면 TV는 유튜브, 부처는 크리에이터 정도쯤 되겠다. 좋은 장비가 없어도 좋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어도 누구나 영상을 찍어 영상플랫폼에 올릴 수 있는 시대다. 작품에서도 사용된 기기도 단순하다. 카메라와 TV 두 개가 전부다.


그는 앞으로는 전문가가 아니어도 누구나 쉽게 동영상을 만들고 공유할 수 있다고 낙관했다. 누구나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것이 일상이 된 지금 이는 현실이 됐다. 


테크플러스 에디터 나유권

tech-pl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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