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끓는 주전자 보고 떠올린 발명 18세기를 뒤흔들다

조회수 2020. 5. 16. 13: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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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산업혁명'은 기술 혁신이라는 놀라운 변화의 힘으로 지구의 풍경을 바꿔놓았다. 애써 혁명이라는 단어를 붙일 만큼 세계사에도 중요한 사건이다.


산업 혁명을 이끈 곳은 영국이었다. 방직 기계가 나타나더니 옷을 만드는 비용은 줄어들었고 품질은 좋아졌다. 기계가 쉼 없이 일하니 대량 생산이 가능했다. 소비자는 저렴한 가격에 좋은 옷을 구입할 수 있게 됐다. 영국의 섬유산업은 크게 성장했다.


공장에도 대량 생산 시스템이 구축되면서 생산성이 높아졌다. 대량으로 생산한 제품을 팔아 부를 축적한 자본가가 생겨났다. 공장 수도 점점 늘어만 갔다.


풍부한 자원과 넉넉한 노동력이 생산력 높은 공장과 만나 시너지가 발생했다. 그야말로 황금기였다.


방직 기계나 공장은 산업혁명 이전에도 있었다. 달라진 점은 하나다. 증기기관이 도입됐다는 것. 증기기관이 도입되기 전과 후로 나눠도 좋을 만큼 다양한 산업들이 증기기관의 등장으로 대전환을 맞이한다.


증기기관 도입은 기계를 이용한 동력을 사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전까지는 사람이나 동물, 물, 바람을 활용해 힘을 만들었다. 지금이야 석탄·석유·천연가스와 같은 화석연료로 기계 동력을 만드는 것이 익숙한 일이지만 당시만 해도 화석연료는 난방을 위해 활용하는 정도였다. 동력을 생산하는데 사용하려는 생각에는 미치지 못했다.

출처: Science Museum, London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

증기기관은 증기의 열에너지를 기계 동력으로 전환하는 기기다. 물 온도가 올라가면 부피가 팽창하는 힘을 이용하는 것인데 주전자 속 물이 끓어오를때 뚜껑이 들썩이는 것을 떠올리면 된다.


증기기관이 나오면서 더는 사람이나 동물이 안간힘을 쓸 필요가 없어졌다. 힘도 세고 빠르고 지치지 않는 기계에 맡기면 됐다.


산업화가 시작된 영국이 세계의 공장이라고 불렸던 이유도 증기기관 때문이다. 대량생산, 대량운송이라는 개념도 이때 생겨났다.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유럽과 미국으로 퍼져나갔고 산업혁명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세상이 열렸다.

출처: Wikipedia
제임스 와트

산업혁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증기기관. 증기기관을 만든 사람은 영국의 기계 제작자이자 발명가인 제임스 와트(James Watt, 1736~1819)다.


제임스 와트는 1736년 스코틀랜드 그리녹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그는 건강하지 못했다. 그래서 정규교육 대신 집에서 어머니가 직접 그를 가르쳤다. 학교 생활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시작하게 된다.


어린 와트의 취미는 장난감을 분해하고 다시 조립하는 것이었다. 나중에는 아버지의 작업장에서 나침반을 만들고 수리하는 일을 즐겼다. 아버지는 목수이자 선장으로 일했다. 기계에 흥미가 있었던 와트는 18살이 되던 해 기계 제작 기술을 배우기 위해 런던으로 떠났다. 그곳에서 기계 제작 훈련을 받는다.


이후 제임스 와트는 기계 제작 공방을 차리고 기압계, 망원경 부품 등 다양한 기계들을 만들었다. 손재주가 있었던 와트의 실력은 글래스고대학교 물리학과 천문학 소속 교수들 귀에도 들어가게 됐다. 글래스고대학은 캠퍼스 내 작업장을 마련해줄 테니 대학에서 사용하는 기계를 수리해달라는 요청을 하게 되고 와트는 이를 수락했다.


그러던 1759년 어느 날 글래스고대학교에서 일하는 친구로부터 작업 의뢰를 하나 받게 된다. 대학 내 비치된 증기기관 모형이 고장 났으니 수리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여기서 잠시 풀고 넘어가야 할 오해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와트가 증기기관을 만든 최초의 발명가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원조는 따로 있다. 증기기관은 그가 태어난 시대에 이미 존재했다.

출처: historycrunch
뉴커먼의 증기기관

최초로 증기기관을 발명한 사람은 영국에서 기술자로 일하던 토마스 뉴커먼(Thomas Newcomen, 1633~1729)이었다. 뉴커먼이 만든 증기기관은 탄광에서 배수용으로 사용됐다. 석탄 채굴 과정에서 탄광 내부에는 지하수가 차올라 석탄 채굴을 방해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수시로 지하수가 흘러나왔고 사람이 일일이 퍼내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다. 뉴커먼은 증기기관을 이용해 물을 퍼내는 기계를 만들어 탄광에 적용했다. 석탄을 태워 물 온도를 높이고 끓을 때 나오는 수증기가 피스톤을 움직이며 기계가 작동했다. 탄광과 가까워 석탄 연료 조달에는 문제가 없었으나 너무 많은 양의 석탄을 소모하는 것은 단점이었다.


다시 와트가 수리 요청을 받은 때로 돌아가 보자. 친구가 의뢰했던 것은 다름 아닌 토마스 뉴커먼의 증기기관 모형이었다. 크기는 작았지만 뉴커먼의 증기기관 설계 그대로 제작한 교육용 모형이라 실제와 다를 바 없었다. 어느 순간 기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대학에서 직접 고쳐보려 했으나 실패해 결국 제임스 와트에게까지 오게 됐다.


와트는 친구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때는 몰랐다. 짧은 순간의 선택이 그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꿔 놓을 줄은. 운명과도 같은 만남이었다.


고장 난 증기기관을 유심히 살펴보니 문제점이 보였다. 냉각수가 실린더 벽을 얼리는 바람에 기계가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와트는 뉴커먼이 만든 실제 크기의 증기기관에서는 없던 문제였는데 크기를 축소하는 과정에서 생겼다는 것까지 짚어냈다. 증기기관 모형 수리는 잘 끝마쳤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다른 생각이 맴돌기 시작했다. 뉴커먼의 증기기관 모형을 보기 전까지 증기기관에는 큰 관심이 없었지만, 어느새 그는 달라졌다.


와트의 눈에는 증기기관이 가진 단점들이 자꾸만 밟혔다. 그가 판단하기에 기존 증기기관은 적지 않은 에너지가 낭비되고 있었다. 결국 기계에서 생산하는 증기가 온전히 에너지를 생산하는데 사용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른다.


증기기관을 개선하려는 와트의 연구가 시작됐다. 수증기를 냉각수로 식히다 피스톤까지 차갑게 만들고 수증기 온도 감소로 충분한 에너지를 만들지 못하는 것을 해결하고자 수증기를 빼네 식히는 증기기관을 고안해낸다. 열효율이 낮다는 문제는 응축기를 이용해 해결한다.


와트는 쉽게 만족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하기로 했다면 혹독하게 자신을 몰아붙이는 스타일이었다. 그런 탓에 수면 부족과 우울증으로 고생했다고 전해진다.


증기기관을 발명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남들보다 뛰어난 증기기관을 발명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충분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다. 본인에게는 힘든 과정이었겠으나 그러한 성격은 뛰어난 증기기관을 발명하는 데 힘을 발휘했다.


1765년 와트는 마침내 개선된 증기기관을 완성한다. 응축기를 장착해 열효율은 높아졌고 석탄 소모량도 기존 증기기관의 4분의 1 수준으로 크게 낮췄다. 1769년에는 자신만이 가진 기술력을 담은 특허까지 특허청에 등록했다.


하지만 훌륭한 발명이 나왔지만 이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아무리 대단한 물건이라고 해도 알리지 않으면 그럴 수밖에 없다. 와트는 기계에 관심이 있었고 실력도 좋았지만, 자신이 만든 기계를 시장에 내놓고 팔리도록 하는 것은 잘 모르기도 하거니와 그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증기기관이 팔리지 않아 한동안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돈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측량사와 토목 엔지니어로 일하기도 했지만, 자신이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은 아니었기에 늘 불만족스러웠고 심하게는 좌절감까지 느꼈다.

매튜 볼튼과 제임스 와트

다른 누군가의 조력이 필요했다. 그러다 소개를 통해 주물공장을 운영하던 매튜 볼튼(Matthew Boulton, 1728~1809)을 만나게 된다. 둘은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사람임을 직감했고 동업을 결심한다. 곧 합작투자 계약을 맺는다.


와트와 볼튼의 만남 이후 각자가 잘하는 분야를 맡아서 일하니 사업은 물 흐르듯 흘러간다.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은 1776년 3월 6일 버밍엄에 위치한 탄광과 제철소에 처음으로 설치된다. 증기기관의 생산력은 놀라웠고 소문은 금세 퍼진다. 다른 탄광과 공장에서도 와트의 증기기관을 찾게 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비로소 실용화에 성공하게 된 것이다.


와트와 볼튼은 부와 명예를 거머쥐게 된다. 1800년 와트는 은퇴한다. 관련 특허는 만료됐고 볼튼과의 협력 관계도 끝을 맺는다. 하지만 은퇴 후에도 와트는 발명을 멈추지 않는다. 증기기관만큼 알려지지 않았지만 새로운 발명품을 계속해서 개발했다. 몇몇 중요한 프로젝트에 컨설팅해주기도 했다.


제임스 와트는 증기기관을 실용적인 수준으로 올려놨고 이를 널리 보급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가 만든 증기기관은 방적공장, 탄광, 제철소, 양조장 등에 적용되면서 산업혁명을 견인한다.


조지 스티븐슨이 만든 증기기관차가 말 없이도 철로 위를 달리고 로버트 풀턴이 만든 증기선은 바람 없이도 물 위를 항해하는 이 모든 일도 증기기관이 있기에 가능했다.


테크플러스 에디터 나유권

tech-pl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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