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처럼 냄새 맡고 아픔 느끼는 '오감 로봇'

조회수 2019. 9. 2. 15:4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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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체모방기술이란 것이 있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자연에서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기술을 얻는 것이다. 동물과 식물을 가리지 않는데, 특정 생물이 가진 차별화된 요소, 생존 전략 등을 보고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기술을 개발한다.

도꼬마리 열매

예를 들어 '찍찍이(벨크로)'가 있다. 최근 의류와 가방, 신발에 달린 찍찍이는 너무나 쉽게 볼 수 있다. 이 찍찍이는 어디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을까. 바로 국화과의 한해살이 풀 도꼬마리 열매다. 찍찍이는 도꼬마리 열매에 있는 가시가 동물의 털이나 옷에 달라붙는 원리를 파헤쳐 만들었다. 거미줄 구조와 기능을 모방해 리튬이온전지의 전극 소재를 개발하기도 했다. 파리 눈을 구성하는 수백개 눈 결정이 벌집 형태로 구성된 것을 보고 태양 전지 기술 개발에 활용했다.

출처: 정기훈 KAIST 교수
파리 겹눈 구조를 모방한 초박형 카메라 기술

인간이 가진 오감도 생체 모방 기술이 될 수 있다. 인간이 가진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 다섯가지 감각을 인공적으로 구현하면 이 또한 생체 모방 기술이 된다. 최근 국내 연구기관에서 인간 오감을 인공적으로 구현하거나 고도화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화제가 되고 있다.

인공 감각 칩

우선 인공 감각 칩이다. 냄새와 맛을 보는 원리부터 알아보자. 사람의 코 경우 비강 내 후상피를 통해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분자량이 300 이하인 저분자 유기화합물인 냄새 물질이 후상피에 닿으면 후각 수용체 단백질이 발현돼 냄새 분자를 인식한다. 이 화학적 신호는 후신경 세포 끝 후직모에서 전기신호로 뇌에 전달된다.

여기서 후각 수용체 단백질이 일종의 냄새를 맡는 센서다. 이 냄새 센서를 인공적으로 만들면 어떨까.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뇌과학연구소 바이오마이크로시스템 연구단은 국민대 화학과 유연규 교수팀과 함께 인공적으로 냄새를 인식하고 전기신호로 전환할 수 있는 인공 세포막을 개발했다.

출처: KIST
(상) 실리콘 기판에 형성된 직경 8㎛ 홀 어레이 평면 및 단면. (중) 개개의 실리콘 홀 위에 형성된 구형상의 인공세포막 구조물 콘포컬(공초점) 현미경 사진. 위쪽 및 옆쪽에서 본 인공세포막. (하 우측) 인공 세포구조물 크기 분포 그래프

연구팀은 실리콘 기판에 수만개의 미세 구멍을 만들었다. 각 구멍 위에 균일한 3차원 인공 세포 구조물을 제작했다. 이 인공 세포 구조물에 신경전달물질(세로토닌 수용 채널)을 다량 결합한 결과 인간의 신경처럼 신호 전달도 정상적으로 이뤄진다는 것을 파악했다. 단순한 세포 구조물이 아니라 정상적인 세포 기능도 가능하다는 의미다.

연구팀이 개발한 인공 세포막은 막의 안전성이 떨어져 생존 시간이 24시간 정도에 불과했던 기존 인공 세포막 한계를 극복했다. 5일이 지나도 구조물이 변형되지 않고 유지될 정도다. 실리콘 기반이라 일종의 생체 감각을 본뜬 인공 감각칩이라고 할 수 있다.

출처: 코리아타임스

이 인공 세포막을 반도체 소자와 같은 초소형 칩 위에 구현하면 마약 탐지견 수준의 '인공 개코'를 만들 수 있다는 게 연구팀 설명이다. 단순히 후각 센서 뿐만 아니라 미각 센서 등에도 적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아픔을 느끼는 로봇?

유튜브에서 로봇 개발업체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로봇 테스트 상황을 패러디한 영상이 화제가 된 적 있다. 보스타운 다이내믹스(Bosstown Dynamics)라는 가상의 업체가 2족 보행하는 로봇을 때리고 차고, 총으로 쏘면서 폭행하는 영상이다. 실제로는 사람에다가 컴퓨터그래픽(CG)를 입혀 합성한 페이크 동영상이다. 영상 끝에 지속된 폭행으로 '열(?)'받은 로봇이 인간을 발로 차고 총으로 위협한다. 가상의 로봇도 두들겨 맞으면서 고통을 받았던 것일까.

이런 일이 실현될 가능성이 열렸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정보통신융합전공 장재은 교수팀이 개발한 '고통을 느끼는 전자 피부'가 로봇에게 적용되면 앞선 영상은 단순히 합성과 조작이 아닌 실제가 될 수 있다.

연구팀은 산화아연 나노와이어 압전과 재백 효과를 이용해 압력과 온도를 동시에 측정할 수 있는 센서를 만들었다. 압전은 특정 물체에 압력을 가할 때 음전하와 양전하가 분리되고, 이때 전하 밀도 차이로 전기 신호가 발생하는 현상을 말한다. 산화아연 나노와이어가 압력을 감지해 전기 신호를 발생시키는데, 이를 통해 촉각을 구현할 수 있다. 자체적으로 전기 신호를 발생시켜 배터리가 필요 없다.

출처: DGIST
촉각의 고통신호 생성을 모방한 인공센서 및 신호처리 기반 인공 고통 신호 생성 모식도

재백 효과는 서로 다른 도체(혹은 반도체)를 양쪽으로 접합했을 때 양 접합 부위 온도가 다르면 도체 사이에 기전력(두 점 간 전류를 흐르게 하는 힘)이 생겨 전류가 흐른다. 온도차에 의해 전압이 발생하고 전류를 흐르게 하는 힘을 열기전력이라고 한다. 이 힘을 이용하면 열에 따른 서로 다른 전기 신호를 발생할 수 있어 온도를 측정할 수 있다. 연구팀은 이 센서를 하나의 구조물에 동시 구현한 것이다.

장재은 교수는 "(연구성과가)나노공학, 전자공학, 로봇공학, 뇌과학 분야 전문가들의 융합 연구 결과로 다양한 감각을 느끼는 전자 피부 및 새로운 인간-기계 상호작용 연구에 적극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AI분야가 발전할수록 위험 요소 중 하나는 로봇의 공격적 성향 제어 여부인데, 로봇도 고통을 느낄 수 있다면 공격 성향을 제어할 수 있는 기술로 확장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센서 성능 비약적으로 높인 인공 피부

촉각 센서 관련 다양한 연구개발(R&D)이 진행되고 있지만, 발목을 잡는 것이 있다. 바로 이력 현상이다. 이력 현상은 촉각 센서에 압력을 주거나 압력을 줬다가 뺄 때 전기 신호 변화에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즉 같은 압력을 가했는데 매번 다른 전기 신호를 내보낼 수 있다는 의미다. 이력 현상이 커지면 압력 센서, 즉 촉각 센서 정확도가 떨어진다.

촉각 센서 기술을 개발하더라도 이력 현상이 크면 실제 적용이 쉽지 않다. 로봇 등에 적용했을 시 신호의 부정확성 때문에 위험도가 커지기 때문이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스티브 박 신소재공학과 교수와 김정 기계공과 교수 연구팀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심주용 박사와 함께 이력 현상을 최소화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압력에 따라 균일한 전기 신호를 보낼 수 있는 촉각 센서 구조를 만든 것이다.

출처: KAIST
고분자 스펀지 주사 전지 현미경 사진과 센서 성능 측정 그래프

연구팀은 우선 같은 크기의 구멍을 가진 고분자 스펀지를 개발했다. 여기에 원료를 가스 형태로 만들어 얇은 막을 입히는 증착 기법을 활용, 폴리피롤이라는 전도성 고분자를 입혔다. 고분자 스펀지와 전도성 고분자가 강하게 합쳐져 센서 이력 현상을 최소화했다.

이를 통해 촉각 센서 민감도, 자극 측정 범위, 반응 속도 등 성능을 한층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스티브 박 교수는 "센서 균일성을 높이면서도 이력 현상을 줄일 수 있는 기술"이라며 "센서 상용화로 가는 핵심 기술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안드로이드 탄생 그날까지

이 모든 게 8월 발표된 기술이다. DGIST 경우 통각을 포함, 거칠기, 부드러움 등과 같은 다양한 촉각을 느낄 수 있는 감각 센서 개발을 추가로 진행하고 있다. 기계학습(머신러닝)과 융합해 사람처럼 느끼는 아바타 시스템을 개발할 계획이다. 3차원(3D) 프린터로 제작한 인공 손가락에 촉각 센서를 장착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인간 혹은 동물의 감각을 모방한 기술은 많지만, 아직까지 적정 수준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앞서 언급한 기술도 오감을 구현하기 위한 소자와 구조, 원리 등 아주 초기 단계 기술이다. 당장은 지속적인 기술 고도화가 필요하다. 이러한 연구개발이 진척되면 인간을 닮은 또는 동물을 닮은 안드로이드가 탄생할지도 모른다.

테크플러스 에디터 권동준

tech-pl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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