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로 풀어보는 '긱 이코노미'..빛과 그림자

조회수 2019. 8. 23. 16:3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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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미국의 한 재즈 클럽. 재즈 보컬과 피아노, 베이스로 구성된 트리오 팀이 있다. 새로운 곡을 만들었는데, 트럼펫이 꼭 필요하다. 이 트리오는 팀원을 더 늘리고 싶진 않지만, 신곡을 연주하려면 트럼펫 연주자를 고용해야 한다. 마침 재즈 클럽 사장은 트리오와 분위기가 비슷한 트럼펫 연주자를 알고 있다. 트리오 외에도 많은 재즈 연주팀이 클럽에서 공연을 하기 때문에, 모르는 게 더 이상했다. 사장은 트리오에게 트럼펫 연주자를 소개해줬다.


일시적으로 팀을 구성한 트리오(실제로는 쿼텟이 됐지만)는 신곡 연주를 무사히 마쳤다. 호응도 좋았다. 재즈 사장은 트리오에게 공연비를 지불했다. 트리오는 그중 일부를 트럼펫 연주자에게 줬다. 트리오는 신곡을 연주할 때마다 트럼펫 연주자를 불렀다. 그리고 같은 방식으로 비용을 지불했다. 그렇다고 트럼펫 연주자가 트리오에 합류한 건 아니다. 필요할 때만 연락한 것이다.

재즈 업계에서 트럼펫 연주자를 따로 부르는 명칭이 있다. 바로 '긱(Gig)'이다. 필요에 따라 섭외한 연주자라는 의미다. 임시 고용직이지만, 분명히 경제 활동은 발생했다. 고용주는 트리오다. 노동자는 트럼펫 연주자다. 고용주는 일일이 트럼펫 연주자를 구하러 다니지 않았다. 클럽 사장이 소개(연결) 해준 것이다. 이쯤 되면 어디서 본 고용 구조이지 않은가.

좀 더 이야기를 확장해보면 맞추기 쉽다. 클럽 사장이 보기에 이번 트리오 같은 경우가 더 있을 것 같았다. 부족한 연주자를 임시적으로 채용할 수 있는 판을 만들 수 있는 건 자신이다. 그만큼 연주자 인적 네트워크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연주자 '긱'을 연결해줄 때마다 소개비를 받기로 했다. 단순 고용 구조에서 새로운 경제가 발생했다.

재즈 트리오 입장에서는 직접 찾기 힘든 긱을 소개받을 수 있다. 서비스 이용자 입장이다. 긱은 짧게나마 일자리를 구해 돈을 벌 수 있다. 노동력을 제공하는 입장이다. 클럽 사장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 사업자다. 이게 바로 '긱 경제(Gig Economy)'다.

최근에 우버, 에어비앤비 등으로 유명한 공유 경제와 유사하다. 공유 경제가 자동차와 집 등 수단과 자산에 초점을 맞췄다면, 긱 경제는 노동자, 즉 인력을 보다 강조했다. 물론 우버 등 수많은 공유 경제가 긱 경제와 궤를 같이 한다. 억지로 구분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중요한 건 긱 경제가 발생하는 환경과 영향일 것이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이왕 재즈 클럽을 앞 세운 만큼 계속 재즈 클럽 이야기를 해보자. 1920년대(물론 최근까지도) 재즈 클럽 사장이었다면, 클럽 한쪽 벽에 붙어 있는 게시판을 핵심 플랫폼으로 이용했을 것이다. '7월 30일 저녁 8~10시, 트럼펫 연주자 구함. 사장에게 연락 바람'과 같은 메모가 잔뜩 붙어있을 듯하다. 전화 등장하면서 클럽 사장의 연락처 수첩이 데이터베이스(DB) 역할을 한다.

긱이 일자리를 구하려면 클럽 사장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 트리오(서비스 이용자)에게 직접 연락을 하면 쉽게 풀리겠지만, 인적 네트워크는 클럽 사장이 쥐고 있다. 노동 제공의 주체인 긱의 활동 범위는 제한적이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하지만 지금은 클럽 사장이 플랫폼이 아니다. 모두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서로 매칭할 수 있다. 물론 플랫폼 사업자 영향력이 절대적이긴 하지만, 서비스 이용자는 원하는 긱을 선택할 수 있고, 긱은 자신이 원하는 시간대에 원하는 비용을 받고 일할 수 있다. 구직의 자유도가 극대화한다.

긱 경제는 현 세태와 딱 떨어지는 경제 구조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평생직장 개념이 강했지만, 이제는 희박하다. 1~2년 다니다 회사를 때려치우는 일도 다반사다. 절대 노동 시간이 줄어들면서 '투잡'으로써 긱 경제를 활용하기도 한다. 우버 운전자가 대표적이다. 본업은 따로 있지만 퇴근 후 자신의 소유한 차량과 시간으로 추가 소득을 올리고 싶다. 시간대에 맞춰 원하는 서비스 이용자와 매칭해 임시적으로 고용되면 된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이런한 긱 경제는 노동 유연성이 강한 서구권에서 발전해 지금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에도 확산 중이다. 프리랜서를 위한 백 오피스 솔루션을 제공하는 MBO파트너스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 국가 생산가능인구의 20~30%는 긱 노동자인 것으로 추정된다. 약 1억6200만명이다. 미국에서는 향후 5년간 긱 노동자 수가 연평균 2.6%씩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긱 경제 경제의 가장 큰 장점을 꼽으라면 역시 노동 유연성이다. 자신이 잘하는 분야, 잘하는 분야에서 원하는 시간만 노동하면 된다. 이용자가 원하는 서비스만 제공하면 되니 잔업이나 조직 내 문제 등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 회사에 고용되는 것보다 수익이 적어 보이지만, 그것도 본인이 투자할 수 있는 시간 나름이다. 시간 투자 대비 수익은 증가한다.

도그베케이

이러한 장점 때문에 긱 경제 기반 서비스는 다양화한다. 단순 음식 배달, 승차 공유 플랫폼 외 전문 프리랜서 플랫폼(업워크), 단기 아르바이트 중개 서비스(태스크래빗), 애완견 돌봄 서비스(도그베케이), 재능 거래 플랫폼(벌로컬) 등 영역도 확대되고 있다.

명이 있으면 암도 빼놓을 수 없다. 아직까지 긱 노동자는 비전문적이고 저임금 노동 비중이 절대적이다. 우리나라의 배달 서비스 등이 대표적이다. 긱 노동자들을 위한 사회 안전망 확보도 시급하다. 최근 보험 업계에서 긱 노동자들을 위한 시간당 보험 서비스 개발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다. 이들은 고용된 사람이 아닌, 독립 계약자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보험 상품에 가입해야 한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국가·사회 차원에서 긱 경제가 보편화한 게 아니기 때문에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다. 최근 미국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는 댈러스 연방준비은행 보고서를 인용, "긱 경제가 고용 성장, 임금, 물가 등을 측정하는 데 지장을 주고 있다"고 전했다. 긱 노동자가 일을 하지 않을 때도 실업자로 분류되지 않은 게 가장 큰 원인이다. 일을 하지 않을 때, 긱 노동자가 돈을 벌지 못할 때도 실업자로 잡히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는 실업률 오류를 야기할 수 있다. 임금이 상대적으로 낮아 임금 상승률을 끌어내리는 데도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플랫폼은 양날의 검이다. 광고·영업 등 추가적인 노력을 고려하면 강력한 플랫폼 안에 포함되는 것이 오히려 유리할 수 있다. 전문성 등 경쟁력만 갖추면 다른 플랫폼으로 옮겨 다닐 수도 있다. 반면 플랫폼에 의존할 경우, 과도한 수수료를 감당해야 할 수도 있다. 또 플랫폼 서비스가 쇠락하면 긱 노동자도 피해를 입는다.

테크플러스 에디터 권동준

tech-pl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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