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쉬'를 숨죽여 보게 하는 세 가지

조회수 2021. 1. 18. 14:3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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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쉬(hush)’는 우리나라 말로 쉿, 숨죽이다, 조용히 등 침묵과 관련된 뜻을 가진다. 실제 드라마에서도 한준혁이 동료 기자에게 “기사를 다 적을 때까지 침묵을 지켜야 한다”며 이 뜻을 내포한 프로젝트 팀을 설립하기도 했다. 그만큼 작품은 어떠한 외압에도 흔들리지 않고 소신 있는 기사를 쓰기 위해 비밀을 유지해야 하는 기자들의 애환을 담담하게 그린다.


다만 ‘기레기’라는 말이 심심찮게 공유되는, 지금의 언론 불신 시대에 기자들의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살 수 있을까 걱정이 컸던 것이 사실이다. 다행히도 이 같은 불안을 조금씩 잠재우며 폭발적인 시청률을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10화까지 묵직한 연출로 고정팬을 확보하고 있다. 과연 무엇이 [허쉬]를 ‘숨죽여’ 볼만하게 하는지 세 가지 요소로 살펴본다.

펜보다 밥을 사수하는 언론인의 이야기

출처: JTBC

“펜은 칼보다 강하지만 밥은 펜보다 강하다.” 인턴 기자 이지수가 면접 때 건넨 소신발언은 [허쉬]가 앞으로 그리고자 하는 메시지를 한 줄로 대변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언론 불신이 팽배한 가운데 정의감 넘치는 기자가 불의에 맞서 세상을 바꾸는 이야기는 ‘리얼’이 아닌 ‘판타지’처럼 들린다. 드라마는 소재가 가지는 불편한 시선을 간과하지 않고 진심과 정성으로 풀어내려고 애쓴다. 한마디로 [허쉬]가 지향하는 바는 [스포트라이트]보다 [미생]에 가깝다. 여느 오피스 드라마처럼 '기자'가 직업인 직장인들의 애환을 담백하고 소소하게 담아내며 공감을 이끌어 내려고 노력한다.


인물들은 매일매일이 기사 때문에 정신이 없고 취재를 하다가 험한 꼴도 당하지만, 소주 한 잔에 오늘의 스트레스를 풀고 내일을 견딘다. 이 과정에서 함께 일을 하는 동료들의 소중함, 일에 대한 책임감, 소중히 지켜야 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부각하며 ‘기자’의 긍지보다 ‘직장인’으로 수고했음을 더 다독인다. 방영 초부터 지금까지 쌓아온 이러한 노력으로 시청자와의 거리감을 좁혀갔고, 비로소 이야기의 공감대가 조금씩 싹트기 시작해 극중 기자들의 활약에 응원을 보내게 되었다.

극의 중심을 잡아주는 베테랑들의 열연

출처: JTBC

[허쉬]는 요즘 드라마답지 않게 중견 배우들이 이야기 중심에 많이 포진되어 연기의 무게감과 완숙미가 돋보인다. 가장 눈에 띄는 배우는 TV 드라마에서 오랜만에 만나는 한준혁 역의 황정민이다. 그는 자신의 기사 때문에 선배 언론인이 자살한 아픔이 있는 인물을 맡아 인턴기자 이지수의 돌직구 멘트를 계기로 다시 펜을 잡는 과정을 인간미 있게 그려낸다. 웃음과 눈물을 오가는 꾸밈없는 생활 밀착형 연기는 단연 돋보인다. 10화에서는 동료들을 배신하고 권력층의 심장부로 들어가는 모습으로 그가 그리는 진짜 그림이 무엇일지 궁금함을 유발한다.


그와 뜻을 같이 하는 소위 ‘허쉬 취재단’의 김원효, 유선도 베테랑의 면모를 보여주며 중심을 잡는다. 매일한국 디지털 뉴스부장 엄성한 역의 박호산은 굵직굵직한 사건들 때문에 이야기가 무거워질 때쯤 적절한 농담과 망가짐으로 활기를 보탠다. 한준혁과 대립각을 세우는 편집국장 나성원 역의 손병호의 존재감도 대단하다.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 뒤로 전체 판을 꿰뚫는 시각은 주인공들의 마음을 철렁이게 하며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매일한국 사장의 충실한 부하로 신문사의 이익을 철저히 따지면서도 그에 반하는 한준혁의 행동을 은근 지지하는 속내는 이 인물이 적인지 아군이지 종잡을 수 없어 드라마의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자신만의 인생을 우려낸 음식과 감동

출처: JTBC

매 에피소드마다 [심야식당]처럼 특정 음식에 얽힌 인물의 사연을 풀어내는 구조로 흘러간다. 2화의 "곰탕"은 자신 때문에 자살한 선배와 함께한 마지막 식사라며 차마 손을 대지 못하는 한준혁의 눈물 어린 모습을 통해 인생의 짠맛을 우려내고, 3화 "육개장"은 죽은 인턴 기자 오수연의 기사에 공감한 젊은이들이 장례식장에 찾아와 끈끈한 연대감을 보여주는 모습에서 감동을 배가한다.


1화부터 ‘밥은 펜보다 강하다’고 호기롭게 말한 만큼 음식과 삶을 연계한 감성 스토리는 진한 여운을 남긴다. 드라마에 소개된 음식 역시 직장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먹거리라는 점에서 공감대의 폭을 넓히는 동시에, 소재가 가지는 거리감을 줄이려는 고심을 드러낸다. 해당 에피소드가 끝나면 드라마에 나온 음식이 무척 먹고 싶은 먹방 효과는 덤이다.

출처: JTBC

다만 아쉬움도 있다. 지금은 많이 개선되었지만 6화 이전까지 극을 이끌어가는 투톱 황정민과 임윤아가 함께하는 과정이 너무 오래 걸렸고, 이 과정에서 황정민에게 불만을 토로하는 임윤아 캐릭터에 공감하는 게 어려웠다. 물론 그의 행동에는 그만한 동기가 있지만, 아픔을 직장 내 선배에게 짜증 섞인 반응으로 표출할 수밖에 없었는지 극의 구성에 아쉬움이 짙게 든다.


음식 이야기도 2화의 곰탕이나 3화의 육개장처럼 인물과 사연이 잘 연결되어 진한 감동을 전하는 에피소드가 있는 반면, 전형적인 신파로 빠질 때도 있다. 소제목에 너무 집착해 이야기를 지엽적으로 이끄는 것처럼 보인다.


다행히도 이 같은 단점은 6화 이후 대부분 상쇄되며, ‘허쉬’ 팀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면서 극의 흐름이 본 궤도에 들어섰다. 진실보다 정치 셈에 함몰된 언론사 내 비리 세력에게 대항하고, 이지수의 말처럼 ‘거짓말하지 않고 밥 먹을 수 있는 직장’, 즉 기자의 소신과 책임감을 시청자에게 잘 전달할 수 있을지 앞으로가 궁금하다.



테일러콘텐츠 에디터. 홍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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