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 여운마저 희미해진 첫사랑 이야기

조회수 2020. 12. 4. 19:1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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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12월 10일 개봉을 앞둔 영화 [조제]는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서 함께 연기를 선보였던 한지민과 남주혁이 다시 한번 호흡을 맞춰 화제를 불러 모은 작품이다. 이누도 잇신 감독의 원작 영화가 워낙 유명한 터라 걱정스러운 반응도 있었으나, [더 테이블] 김종관 감독이 연출을 맡아 한국 버전은 어떤 여운을 남길지 기대감이 앞섰다. 조제의 새로운 이야기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출처: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대학생 영석은 길을 가다 우연히 전동 휠체어에서 넘어진 여자를 돕는다. 짙은 색 후드를 꾹 눌러쓴 그는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다는 듯 이제 됐으니 가라고 말한다. 얄궂게도 망가진 휠체어는 움직이지 않고, 결국 영석의 도움을 받는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고맙다는 말 대신 영석에게 밥을 차려준다. 영석과 조제의 첫 만남이다.


영석은 수업을 같이 듣는 후배와 평범하게 연애 감정을 쌓기도 학교 교수와 부적절한 관계를 갖기도 하지만, 이상하게도 허름한 집에서 할머니와 단둘이 살아가는 조제가 자꾸만 아른거린다. 버려진 서랍장을 주워가려는 할머니를 돕는 김에, 명절 선물로 잘 먹지도 않는 김과 스팸을 받는 김에 등 영석은 여러 이유로 조제를 찾아간다. 만남이 거듭될수록 영석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독특한 취향을 선보이면서도 평범한 물건들을 처음 본다는 듯 신기하게 바라보는 조제에게 빠져든다.

출처: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몸이 불편한 조제는 오로지 할머니가 주워온 책을 통해서만 세상을 볼 수 있다. 책으로 둘러싸인 작고 허름한 집안은 오롯이 그만의 세계다. 조제는 자신의 세계를 두드리는 영석이 불편하고, 타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했다는 점에 상처를 입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조제는 영석을 향한 자신의 마음이 사랑이었음을 깨닫고 그를 자신의 세계로 받아들인다.


낮게 속삭이는 듯한 조제의 목소리처럼, 영화는 원작의 통통 튀는 분위기와는 달리 현실적이고 차분한 톤으로 잔잔하게 흘러간다. 그러나 한지민과 남주혁이 다시 만나 선사하는 케미스트리는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처음 느껴보는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는 한지민의 새로운 면모가 빛나고, 실제로 영석이 되어 조제를 향한 감정에 몰두하는 듯 자연스러운 남주혁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출처: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원작이 2003년 작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조제]는 요즘 정서에 부합하게 원작의 불필요한 묘사와 등장인물의 서사에 상당 부분을 덜어낸 점이 돋보인다. 그러나 남은 여백을 마저 채워 넣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부분들이 아쉽게 느껴진다. 여백이 가장 크게 드러나는 인물은 영석의 교수와 후배다. 교수는 원작에서 츠네오의 침대 파트너 노리코를 각색한 것처럼 보이는데, 원작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굳이 등장해야 할 이유가 보이지 않는다.


츠네오의 여자친구인 카나에는 츠네오가 조제에게 지쳐갈 때 가장 마음을 뒤흔든 인물이다. 그러나 [조제]에서 영석의 후배는 조제와 부딪치는 서사는 물론 츠네오와 재회하는 사건마저 제거되어, 오히려 영석의 행동이 애매모호해지는 결과를 낳는다. 될 대로 되라는 듯 흘러가다가 점차 조제만을 바라보게 된 영석의 감정은 흔들림이 없건만 어쩐지 멀겋기만 하다. 집착에 가까운 말로 영석을 붙잡던 조제가 함께했던 마음만 가지고 살겠다며 떠나보내는 장면은 조제가 이 같은 결정을 내리기까지의 감정선이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두 사람이 추억을 쌓으며 함께 지냈던 겨울 풍경은 아름답고, 자신만의 세상에 갇혀 있던 조제가 마음의 문을 열고 성장하는 홀로서기는 찬란하다. 그러나 감정선의 연결고리가 군데군데 빈 것처럼 느슨해 영화는 흘러갈수록 어긋나고, 조제와 영석 사이에 남은 여운마저도 희미해져 아쉬움이 더욱 진하게 남는다.



테일러콘텐츠 에디터. 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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