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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의 시간', 매력적인 소재를 가린 허술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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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리틀빅픽쳐스/넷플릭스

마침내 베일을 벗었다. 코로나19로 인한 개봉 연기와 해외 판권 이슈로 골머리를 앓았던 [사냥의 시간]이 지난 23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다.


[사냥의 시간]은 지옥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려 위험한 계획을 세운 네 친구가 정체불명의 추격자에게 쫓기는 내용의 스릴러다. 파수꾼 윤상현이 9년 만에 내놓은 신작인 데다가, 국내 최초로 베를린 영화제 베를리날레 스페셜 갈라에 초청받아 화제가 됐다. 이제훈과 최우식, 안재홍, 박정민, 박해수로 이어지는 쟁쟁한 출연진도 기대를 한껏 높이기에 충분했다. 

출처리틀빅픽쳐스/넷플릭스

윤상현 감독은 ‘헬조선’이라는 신조어에서 영감을 받아 사냥의 시간을 구상했다고 이야기했다. 근미래 서울에서 펼쳐지는 지옥도는 취업난과 경제 불황 등으로 불안에 떠는 오늘날 청춘에게 어필하는 매력적인 소재이고, 감독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작품 곳곳에서 돋보인다.


[사냥의 시간]은 추격전에 상당히 많은 공을 들였다. 극중 추격전 분량은 무려 100여분에 달한다. 초반부 30분 정도만 간단히 배경과 이들의 범행 동기, 실제 범행에 할애한 이후 ‘추격당하는 자의 공포’에 초점을 두어 장르적인 재미를 챙겼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 작품이 추격 스릴러임에도 속도감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화는 서서히 궁지에 몰리는 상황에서 인물들이 느낄 무기력함과 공포를 섬세하게 묘사했는데, 이는 왠지 불안과 압박감 속에서 살아가는 오늘날 2-30대의 모습과 유사하다.


[사냥의 시간]의 비주얼과 사운드는 상당히 독창적이다. 붉은빛이 강조된 서울의 암울하고 황량한 풍경은 영화의 메시지와 잘 어울릴 뿐만 아니라, [블레이드 러너]나 [터미네이터] 등의 디스토피아 영화 속 도시와 비슷하면서도 차별화된 매력을 선사한다. 힙(HIP)함이 물씬 느껴지는 음악, 리얼함과 긴장감을 극대화하는 음향 효과 역시 [사냥의 시간]만의 개성을 불어넣고 장르적 재미를 배가한다. 

출처리틀빅픽쳐스/넷플릭스

주제가 명확하고 소재가 신선하다. 비주얼과 사운드도 매력적이다. 그런데 이게 전부라는 게 문제다. [사냥의 시간]은 그럴듯하고 화려한 겉치레에 비해 알맹이가 부실하다. ‘스토리가 단순하다’의 문제가 아니다. 간결한 플롯을 가지고도 관객과 평단을 사로잡은 작품은 셀 수 없이 많으니 말이다. [사냥의 시간]이 이러한 작품들과 같은 길을 걷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야기에 개연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제훈을 비롯한 주연배우들이 열연을 펼치긴 했지만, ‘배우가 곧 개연성’이라는 전제는 필연적으로 한계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준석(이제훈 분) 일행의 범행 동기나 한(박해수 분)이 굳이 이들을 한 차례 풀어주고 다시 쫓는 목적에 설득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이외에도 몇몇 장면에서 눈에 띄는 설정 구멍들이 있는데, 단순히 관객의 상상력에 맡긴다고 하기엔 무성의해 보이는 대목이다.


등장인물 묘사도 허술하다. 장호와 기훈, 상수는 준석의 둘도 없는 친구들로 묘사되지만 이들의 우정에 선뜻 공감이 가지 않는다. 듣기 민망한 욕설을 주고받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사이라고 해서 ‘사나이의 우정’이 아니다. 심지어 삼인방의 분량은 심각하게 적은 데다가, 이마저도 도구적으로 소모되니 병풍 취급을 당하는 것처럼 보인다. 메인 극중 빌런인 한은 긴장감을 이끌어야 하는 중요한 역할임에도 냉철한 킬러와 사이코패스 살인마를 오가는 일관성 없는 묘사 때문에 매력이 반감된다. 100분 가까운 추격전 시퀀스에서 10분이라도 할애해 캐릭터를 구축했다면 이렇게 아쉽지는 않았을 테다. 개연성과 캐릭터 묘사가 부족하다 보니, 온전히 하나의 작품이어야 할 [사냥의 시간]이 두 시간짜리 예고편 같다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다. 

출처리틀빅픽쳐스/넷플릭스

그럼에도 [사냥의 시간]은 매력적이다. 영화가 그린 디스토피아적인 서울의 미래는 그럴 듯했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불안함은 현재의 우리에게 충분히 와닿는 문제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같은 느린 호흡의 스릴러에서 느끼는 장르적 재미도 제법 충족시켜준다. 물론 이러한 장점이 빛이 바랠 정도로 내실이 부족하다는 게 아쉽긴 하나, 이 작품이 ‘한국형 디스토피아 영화’의 가능성을 보여준 데서 의의를 찾고 싶다.



테일러콘텐츠 에디터. 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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