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도 모른 채 1년 넘게 같이 롤(게임)했던 파트너와 결혼"

조회수 2020. 3. 2. 10:1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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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넘게 게임 같이한 모니터 너머의 파트너에서 이제 부부!!"


김태희(여·32)-이동섭(34) 커플은 지난 2018년 11월 결혼식을 올렸다. 둘은 롤('리그 오브 레*드'의 줄임)이라는 게임 속에서 처음 만나 1년 넘게 호흡을 맞췄다. 첫 만남부터 둘이 결혼하기까지 얘기를 들어봤다.

Q.

처음 어떻게 만났나요?

A.

롤은 5개 포지션(미드, 탑, 정글, 원딜, 서포터)이 정해져 있어요. 그 중에 원딜과 서포터는 함께 움직여야 해요. 제 포지션은 서포터, 남자친구는 원딜이었어요. 서로가 어떻게 움직일지 예상하고 (게임을) 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게임에서 이길 수 없죠.

Q.

오프라인 모임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나요?

A.

1년 넘게 함께 게임을 했지만 얼굴 한번 못봤었어요. 같이 게임하는 사람들이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었기 때문이었죠. 그러다 이를 강점으로 이용해보기로 했어요. 거주하는 지역별로 돌아가며 여행하면 어떻겠냐는 의견이었고 졸지에 전국 투어가 결성됐죠. 여행을 하면서 사진이나 요리 등 각자 게임 외 재능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도 생각했어요.

Q.

게임 속에서 대화만 주고 받다 실제로 본 동섭 씨의 첫 인상은 어땠어요?

A.

오빠는 청주에, 모임 중 2명은 대전에 살고있었어요. 거리가 가깝다 보니 그들끼리 몇번 만나서 밥을 먹기도 했었죠. 그중 한명이 오빠가 배우 유해진 씨를 닮았다고 했어요. 그래서 그런지 저도 모르게 처음 보자마자 '참바다씨'라고 외쳤던 기억이 나요. 


사실 게임하면서부터 호칭은 '동섭이형'이었어요. 남자들이 많은 모임이라 그런지 낯간지러워서 오빠 대신 형이라고 불렀던 거 같아요. 근데 생각 외로 '동섭이형'이라는 표현이 입에 착 감기긴 하더라고요.(하하)

Q.

이후 연애는 어떤 계기로 시작됐나요?

A.

두 번째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2주 정도 지났을 때 일이에요. 오빠가 주말에 저를 보겠다며 청주에서 서울로 올라왔어요. 그날 같이 저녁을 먹는데, 처음으로 게임이 아닌 대화를 했어요. 그런데 대학교 학사 조교를 했던 것을 비롯해 서로 공통점이 많더라고요. 무엇보다 제 말을 귀 기울여 듣는 게 오빠 눈동자에서 읽혔어요. 그동안은 게임 모니터를 쳐다보며 대화하는 게 전부였잖아요.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청주로 내려가는 버스터미널에서 오빠가 '사귀자'고 고백했어요. 또 자기가 (청주에) 도착하기 전까지 답을 달라면서 버스에 올라 타더라고요.

Q.

바로 답을 주셨나요? 단 3번의 만남(두 번의 모임, 첫번째 단 둘이 식사) 이후 고백이라, 당황스럽기도 했을 거 같아요.

A.

바로 답을 못 줬어요. 하지만 그게 단 3번의 만남 때문은 아니에요. 이미 게임 속에서 1년 넘게 만나다 보니 신뢰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었거든요.


그렇게 오빠가 청주에 도착했을때 저는 답변 대신 게임에 접속하라고 했어요. 게임을 하면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하려고 무척이나 애썼던 게 생각나요. 그리고 주말 동안 항상 '형'이라고 불러왔던 사람을 '남자'로 대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겠다고 했어요. 오빠는 자신에 대해서 더 많은 걸 보여주겠다고 했어요. 사귀면서 서로 알아가자고 하더라고요.

Q.

두 분은 게임을 좋아한다는 공통 분모가 있어 대화도 풍부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A.

그게 가장 큰 장점인 거 같아요. 쉽사리 대화가 끊이지 않죠. 또 거의 매일 2시간 정도 함께 전화통화를 하면서 게임을 함께 해요. 그러다 언제부터는 게임을 하지 않더라도 조깅하거나 다른 일을 볼 때도 통화하는 게 일상이 됐어요.


취미가 모두 같은 건 아니에요. 저는 수상레포츠를 좋아하는 데 오빠는 그렇지 않죠. 또 저는 수산물을 좋아하는데, 오빠는 육류를 더 좋아해요. 그런 개인의 취향은 존중하면서, 다른 부분은 서로 조금씩 양보하며 맞춰가고 있어요.

Q.

 '이 사람과 결혼해야지'라는 마음이 드는 순간이 있었나요?

A.

1년 반이라는 연애기간 동안 오빠는 알면 알수록 배울 게 많은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결혼을 결심하게 된 거 같아요.


하나 덧붙이면, 고양이를 좋아하는 모습에 결혼을 더 일찍 결정하게 됐던 거 같아요. 저는 오랫동안 고양이를 키우며 살았어요. 반대로 오빠는 절 만나기 전까지 고양이를 키워본 적이 한 번도 없죠. 그런데 저와 연애를 시작하면서, 오빠가 제 반려묘(마루)를 좋아하게 됐어요. 가끔 마루는 저보다 오빠를 더 따르기도 해요.


사람과 사람은 서로 배려해줘야 하지만, 동물은 조금 달라요. 사람이 먼저 동물에게 배려해줘야 하죠. 저만의 사람을 보는 기준이지만, 동물에게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저 스스로 판단이 서요.



Q.

게임 속 파트너와 결혼까지 하게 됐는데, 주변에서 신기하게 바라보기도 할 거 같아요. 

A.

결혼에 있어서는 인연을 어디서 어떻게 만났는지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고 신뢰할 수 있는 지가 무엇보다 중요한 기준이라고 봐요. 어떻게 만날 인연은 만나게 된다는 말을 믿고 있어서 그런지 저희 만남은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사진=김태희 씨 제공

썸랩 윤정선 에디터

정리 오병훈 인턴 에디터

(sum-lab@naver.com)

※해당 포스트는 러브 스토리 

응모 이벤트를 통해 접수된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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