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갇혀 죽어간 사람들

조회수 2019. 4. 15. 19:3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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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동안 사과 한마디 없었습니다.

오늘(4월 15일)은

제암리 학살 사건이 일어난 지

100년이 지난 날입니다.


화성시 제암리에서

3.1만세 운동에 참여한 주민 23명을

일본군이 교회에 모으고

총으로 무차별 사격을 가한 뒤

방화한 사건입니다.


일본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사과한 적이 없습니다.


1982년 9월, 화성시 제암리.

발굴 현장에서는 교회 잔해더미와

뒤엉킨 23인의 유해가 발견되었습니다.


3.1운동에 함께한

제암리 주민들의 유해였습니다.

1919년, 3.1운동은 전국으로 퍼졌고,

제암리에서도 수차례

만세운동을 벌였습니다.


결국 제암리에는

일본군 특수검거반이 들이닥쳤습니다.

"사과를 하겠다"며 주민들을

교회에 모은 일본군.


이들은 주민을 무차별 사살하고

증거 인멸을 위해 마을에 불을 질러

폐허로 만들었습니다.

사건 발생 3일 후,

마을을 찾은 선교사 스코필드 박사가

몰래 찍은 사진으로

일제의 만행이 세상에 공개되었습니다.

국제사회의 질타를 받자

일본군은 황당한 변명을 늘어놓았습니다.


결국 학살의 주범 아리타 중위는

일본군 법정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사건이 종결됩니다.

이후 수십 년이 지난 뒤,

3.1운동 당시 일본군 사령관의

일기가 발견됐습니다.


이 일기를 통해 일본이

사건을 고의로 은폐했다는 의혹이

더욱더 짙어졌습니다.

오늘은 제암리 학살사건이 일어난 지

100년이 되는 날입니다.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

단 한마디의 사과도 하지 않았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영상으로 확인하세요.

✔ 뉴스에는 위아래가 없다, 스브스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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