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원'한 신부님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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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사람들이 혼란스러울 때마다 특유의 엄격함으로
정의와 원칙을 강조하시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 정수만 전 5·18민주유공자유족회장(한겨레, 16.09.21일자)
1980년 일어난 광주민주화운동,
총을 둔 계엄군들을 앞에 두고도
민주화를 위해 시민들과 함께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무기를 들고 있는 시민들에게 무릎 꿇고 빌었지. 개죽음을 당해서는 안된다고..."
- 조비오 신부 (5·18기념재단, 5·18의 기억과 역사 5 천주교 편 , 성문당, 113쪽)
시민들의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무릎 꿇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으며,
"신부인 나조차도 손에 총이 있으면 쏘고 싶었다."
- 조비오 신부
5·18 진상 규명 국회 청문회에서는
용기 있는 증언을 통해 진실을 알리려고 노력했습니다.
2016년 9월 21일. 시민과 함께했던 조비오 신부가 선종했습니다.
"신부님이 선종하신 뒤 통장 잔고를 보니까
매월 '0원'이 찍혀 있었다."
- 조비오 신부 조카(뉴시스, 16.09.21일자)
그는 나누는 삶을 실천했습니다.
여성정신지체장애인들의 자립을 돕는
'소화자매원'은 그의 헌신으로 27년간 운영됐습니다.
"혹시 남은 재산이 있을 경우에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용해 달라."
- 조비오 신부 유언 中
암세포 때문에 뜻했던 장기 기증은 이루지 못했지만
그는 마지막 길을 떠나면서도
나눔과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그의 빈소에는 조화 대신 쌀 화환이 놓여있습니다.
이 쌀 역시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달될 예정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나눠주고 떠나신 조비오 신부님,
세상 그 누구보다 가볍게 떠났지만
그가 남기고 간 큰 가르침은
그 무엇보다 무겁게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