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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셔츠 정보 알 수 있을까요?

조회수 2016. 9. 6. 18:1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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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색 셔츠.. 그 어려운 걸 소화해냅니다.

[텍스트 버전]

선생님, 셔츠 정보 알 수 있을까요?


이 남자가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기만 하면

구입 문의가 쇄도했습니다.

발목까지 밑단을 접어 올린 청바지,

시선을 사로잡는 핑크색 스웨이드 로퍼,

정장 위에 걸친 항공 점퍼와 멋진 페도라까지


이 남자의 정체가 궁금합니다.

이 남자는 올해 64세의 여용기 할아버집니다.

직업은 재단사입니다.

재단사니까 이런 감각을 타고난 거냐고요?

아닙니다. 답은 여용기 할아버지의 삶에 있습니다.

"18살 때 고등학교 갈 기회를 놓쳤어요.

어렸을 때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옷도 입고해서

나도 재단 일을 배워보면 좋겠다 생각해서 시작했죠."

- 여용기 님

열여덟 어린 나이에 재단 일을 시작한 그는

스물아홉 살 때 설레는 마음을 안고

'모모양복점'을 개업했습니다.

"하루에 양복을 다섯 벌이나 만들었어요.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즐거웠죠."

- 여용기 님

양복을 만드느라 밤을 꼬박 새울 정도로

그가 만든 양복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9년쯤 지났을까요?

문전성시를 이루던 양복점에

손님이 하나둘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공장에서 찍어낸 값싼 기성복이 퍼지면서

사람들이 맞춤옷을 더 이상 찾지 않았던 겁니다.

결국 양복점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쉬지 않고 일했을 뿐인데...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분노와 적개심으로 가득 찬 그는

다신 재단 일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식당일, 건축현장 일...

양복점을 닫고 그는 생계를 위해

닥치는 대로 일했습니다.

그렇게 29년간 재단 일은

그의 손에서 멀어진 듯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에게 재단사 제의를 받았습니다.

고민이 많이 됐지만 다시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좋아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바지 기장이 하나같이 짧고,

꽉 조이는 정장을 입었더라고요."

그때부터 다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평생 한 번 보지 않던 잡지도 보고

인터넷 검색하면서 트렌드를 분석했습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유행만 좇지는 않았습니다.

유행을 따라가면서도, 편하게 오래 입을 수 있는

양복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내가 안 입으면서 그렇게 입으라고 하면 안 되잖아요.

새로운 것이 있으면 내가 먼저 입어보고."

- 여용기 님

그러면서 자신의 모습도 바뀌었습니다.

아무리 불편해도 그는 더 좋은 옷을 재단하기 위해

먼저 입어보고, 고치고,

그리고 완성되면 사람들에게 내놓습니다.

"인스타그램에 사진 찍어 올리면

하루에도 몇 번씩 옷 어디서 사냐고 연락이 오죠."

- 여용기 님

이제 할아버지는 젊은이들의 유행을 이끌고 있습니다.


할아버지의 패션이 더욱 빛날 수 있는 건

자신의 것을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것을 배워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화해낸

그 멋진 마인드에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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