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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의 영원한 레전드를 떠나보내며

'내 뒤에 공은 없다' 김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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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달 전, 페이스북 피드에 이런 글이 올라왔습니다.
영원히 은퇴할 것 같지 않던 K리그의 레전드,
김병지의 은퇴는 이렇게 갑작스럽게 선언되었습니다.

국내외를 가릴 것 없이, 많은 매체가 그의 은퇴 소식을 알렸는데요.

피파 월드컵 공식 계정도 그의 은퇴를 기념하는 트윗을 올렸습니다.

김병지가 의심의 여지 없는 '레전드'라는 사실은
그의 기록을 살펴보면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쌓아올린 기록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이렇듯 최초와 최고라는 꼬리표를 수없이 달고 다녔던 레전드의 은퇴식이 9월 18일, 동해안 더비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김병지에게는 특별한 은퇴식이었다. 울산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해서 마무리도 울산에서 할 수 있게 됐다. 여기에 김병지는 울산에서 활약하다가 포항으로 이적해 동해안 더비를 더 뜨겁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해 이번 은퇴식은 더욱 특별했다.

모두가 함께 한 은퇴식이었다. 울산과 포항 모두에서 뛰었던 김병지이기에 양 팀의 감독은 물론 선수단도 은퇴를 하는 김병지에 축하 인사를 건넸고,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울산의 윤정환 감독과 포항의 최진철 감독 모두 "정말 고생하셨고, 이렇게 오래 뛰실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축하드린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워낙 똑똑하신 분이어서 앞으로의 인생도 좋은 일만 있을 것이다"며 선배의 앞날을 축복했다.

K리그와 그를 사랑하는 많은 팬들이 그의 은퇴식에 참여해주었습니다.

레전드 아버지에게 아들은 얄짤 없군요..^^;;

절대 막을 수 없는 위치로 찼다는..


후배 골키퍼들에게는 살아있는 교과서였던,

김용대는 “20살이 되던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뵀다. 넘지 못 할 벽이었다. 철저한 자기 관리와 기량 유지가 나에게 큰 귀감이 됐다. 나도 후배들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라고 말했다. 선수 김병지는 후배들에게 살아있는 교과서였던 셈이다.

대한민국 40대에게는 희망의 메시지를 주었던,

김병지는 지난 17일 열린 올스타전을 하루 앞두고 "어려운 상황을 이긴 나의 모습이 대한민국의 40대들에게 하나의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도 힘든 것을 딛고 이런 영광을 이뤄냈다는 메시지를 대한민국의 40대들에게 보내고 싶다. 40대 팬들이 나에게 많은 응원을 보내는 만큼 나 역시 40대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역경을 이겨내고 K리그의 역사가 된 김병지는 이미 40대들의 희망이 되기 충분해 보인다.

엘리트 코스를 거치지 않은 많은 이들에게는 용기를 주었던,

이런 김병지의 성공 스토리는 누구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사실 김병지는 프로 무대에 데뷔하는 것도 쉽지 않았던 평범한 이였다. 알로이시오고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에 실패한 김병지는 LG산전에 들어가 용접공으로 시간을 보냈다.

축구선수와 인연이 닿지 않을 것 같던 김병지는 1990년 상무에 입단하며 반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상무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 김병지는 1992년 울산을 이끌던 차범근 감독의 추가 지명으로 프로 입단에 성공했다.

K리그의 레전드를 이제 떠나보냅니다.

그라운드에 모인 팬들은 김병지에게 헹가래를 쳐주며 그를 영원히 기억했다. 항상 밝은 얼굴로 은퇴식을 치르던 김병지도 그제야 은퇴를 실감한 듯 눈가가 촉촉해졌다. 24년 동안 K리그 706경기에 출전해 754실점을 기록한 전설의 골키퍼는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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