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 잃은 K-방역, 이제 결단의 순간이다

조회수 2020. 12. 22. 19:39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판데믹에 새로운 해법 제시한 '3T'의 K-방역, 하지만 '경제 걱정'으로 일본 전철을 밟고 있다.

코로나19가 악화일로에 있었다. 감염자는 매일 수백 명 넘게 발생했고 머지않아 천 명이 넘을 게 확실했다. 하지만 정부는 대응 수위를 높이지 못했다. 반대로 외식과 여행 장려 정책을 우직하게 이어나갔다. 행정부 수장의 공식적인 입장은 이러했다. 코로나의 대규모 확산에도 불구하고 일자리나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방역 단계를 올릴 수 없다고. 예상대로 일일 감염자수는 천 명을 넘어섰다.

오해하지마시라. 뜨끔한다면 기분 탓이다. 지난 여름 일본의 얘기니까 말이다. 우리가 비웃어 마지않던. 머잖아 미국이나 유럽의 뒤를 따라 코로나 낭떠러지로 추락할거라 믿어 의심치않던. 저 때 이후로도 일본의 코로나 환자수는 증감을 반복했다. 그리고 현재. 일본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다시 한번 겨울의 파고를 맞이하고 있다. 또 한번 시험대에 서 있는 것이다.

일본이 뭉그적거릴 때 우리나라는 3T(Test: 검사·확진-Trace: 역학·추적-Treat: 격리·치료)로 요약되는 K-방역을 성공시킨 바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방역정책은 어느 모로 보나 한국보다는 일본을 떠올리게 한다. 경제 걱정에 방역 단계를 상향하지 못하고, 대신 시민들의 자발적인 거리두기를 기대하고 있다. 일본이 그동안 밟아왔던 그 모습 그대로.

출처: 보건복지부, K-방역모델을 세계의 표준으로 만들 길잡이 나왔다 (관계부처 합동) 중에서

자기 나라에 맞는 방역 정책

모든 나라는 자기 나라에 맞는 방역 정책을 갖는다. 중국은 인구 천만 명이 넘는 메가시티를 통채로 걸어 잠그는 화끈함을 보여줬고, 서방 국가들은 죽음 앞에서도 프리덤을 외치며 마스크를 벗어던지는 결연함을 보여주었다. 일본은 봉쇄보다 완화라는 고전적인 판데믹 대응 지침을 따랐다. 의료가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만 감염 확산을 컨트롤함으로써 경제 피해를 최소화하고, 백신의 도입을 서둘러 사태를 해결하려는 전략이다. 이러한 정책이 가능했던건 코로나 이전부터 이어져오던 특유의 국민성 때문일 것이다.

마스크와 거리두기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그리고 그 정책의 궁극적인 성공은 현재의 코로나19 폭발을 이전과 마찬가지로 완만하게 막아낼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그후엔 백신이 도입될테니.)

우리는 코로나19에 ‘적극적인 봉쇄’라는 기존의 통념을 뒤집는 최신의 대응 지침을 만들었고, 보란듯이 이를 성공시켰다. 검사, 추적, 치료 및 격리로 이루어지는 3T는 판데믹에 새로운 해법을 제시하였다. 하지만 3T는 환자수를 일정수준 이하로 통제해내야 가능하다는 제한점이 있다. 감염자가 많아지면 역학추적 및 격리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즉, K-방역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마스크와 사회적 거리두기임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방향 잃은 K-방역

하지만 K-방역은 언제부턴가 정체성을 잃은 듯하다. 지금 우리의 코로나 대응은 이제껏 한껏 조롱했던 일본과 별반 차이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경제를 걱정하느라 거리두기의 격상을 망설인다. 신속항원검사를 부랴부랴 공인하였고 일선 의료기관에서 실제로 사용중에 있다. 정확도가 낮아 오히려 방역에 혼란을 부추긴다는 이유로, 코로나 통제불능 국가에서나 사용하는 도구라며 재고의 가치조차 없다고 해 왔던 바로 그 검사법을 말이다.

나는 이런 정부의 정책 방향이 꼭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여러 분야를 두루 살펴 고심끝에 내린 판단이라고 믿고 있으니까. 하지만 방향성을 잃은듯 보여 그게 걱정이다. 나침반을 잃고 노만 젖는 형상이 될까봐.

의료계 종사자로서 코로나19의 파고가 두려운 건, 감당하지 못할만큼 많은 환자가 생겨 의료가 마비될까봐다. 손쓰지 못하고 환자를 잃게 되는 상황이 올까 무섭다. 실제로 이런 상황이 이미 가시화되고 있고.

일본처럼 완화 정책으로 방향을 잡을거라면, 거기에 맞는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엄밀히 말해 대다수의 코로나 환자는 입원치료가 필요하지 않다. 독감처럼 집에서 약먹고 쉬면 대부분 낫는다. 이들을 입원시키는 건 치료 때문이 아니고, 격리를 통해 전염을 차단하려는 목적이 더 크다. 고로 경증의 환자는 집으로 돌려보내고, 다수의 시설은 중등도 환자로 채우고, 중환자실은 정말로 심각한 환자만 들어가야 한다. 즉, 배치 기준을 바꿔야한다. 지금처럼 확진이 되는 족족 환자를 모조리 입원시켜선 중증환자를 제대로 돌 볼 방법이 없다.

이제 결단의 순간

결국 중요한 건 환자의 심각도를 정확히 평가해내는 것이고, 환자가 심각해졌을 때 이에 맞는 배치 시설을 제공하는 것이다. 트리아제(분류)와 이송 중심의 새로운 의료 정책을 짜야한단 얘기다. 확진자가 집에 있어선 격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위치 추적으로 벌금을 물리든 아니면 격리실이 아닌 구치소에 가두든 새로운 방안이 나와야한다. 어떻게든 병원은 중증 환자 몫으로 남겨야만 하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트리아제 의료진에 전권을 주고, 이 과정에 희생자가 생기면?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이게 가능할 것인가? 당연히 불가능하다. 저런 게 가능했으면 애초에 우리나라 의료에 단점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조금만 아파도 입원부터 하는 병원 중심의 의료 문화를 가졌다. OECD 2배의 환자수와 OECD 2배의 입원일수를 지녔다. 더구나 집으로 분류받은 환자가 사망하면 마녀사냥이 일어날터라 자신있게 트리아제 할 의료진도 없을 것이다. 당장 나라도 환자가 조금만 이상하면 입원장을 발부할 것이다. 코로나 중증을 놓쳐 신문 1면에 내 이름이 오르면 안되니까.

처음에 말했듯이 그 나라는 자기 수준에 맞는 방역 정책을 갖는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 가장 잘 맞는 방역 정책은 무엇인가? 완화책이 요원하다면 우린 어떡해야 하는가? 당연히 이제껏 제일 잘해 온 방식을 취해야한다. 거리두기 단계를 올리고 접촉을 강제로 제한하는 것이다. 3단계든 그걸로도 부족하면 계엄령을 선포하든. 사실 일본도 완화책을 끝까지 성공시킬지 미지수인데, 우리가 굳이 그걸 따라 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우리는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최선을 다하면 되지 않을까? 그 방식의 효과 및 효율에 대해서도 대충 입증이 끝난 마당이니 말이다.

이제 결론이다. 나는 정치하는 분들이 단호하게 결단을 내려주길 바란다. 어떻게든 좋다. 어떤 방식이라도 좋다. 우리 의료인들에게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환자가 주어지길 바란다. 올 겨울 모든 힘을 쥐어짜 최대한의 환자를 품을테니, 어떻게든 손 한번 못 쓰고 환자를 포기하는 일만은 생기지 않게 해주기만을 바라고 있다. 이것은 시민들에게 하는 부탁이기도 하다.



슬로우뉴스 좋으셨나요?

이미지를 클릭 하시면 후원페이지가 열립니다.

이 글을 SNS에 소개해주세요.  
슬로우뉴스에 큰 힘이 됩니다!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