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유발 저널리즘? 그러면 돈이 되니까!

조회수 2020. 12. 3. 18:0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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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정의지향' 저널리즘을 포기하면 안 된다..

언론학자로서 연구할 때 가장 많이 인용하는 개념이 ‘갈등유발 저널리즘’이다. 십수 년 전쯤 기자 출신 교수가 쓴 논문에서 처음 접하고 공부했다. 한국의 언론은 물론이고, 상업성과 정파성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면서 특종·속보 경쟁에 여념이 없는 주류언론들의 성향을 잘 설명해 주는 개념으로 와닿았다.

최근 한국사회의 진영 간 대립과 갈등은 점점 더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정파들이 자신들만 선이라는 식으로 극한 대결을 벌이는 상황은 강한 정파성을 개인적으로 표출해 온 입장에서도 불편하게 느껴진다. 더욱더 심각한 문제는 언론의 ‘편향성’이다. 언론이 사실과 분석에 근거해 시시비비를 가리고, 대안을 탐색하기보다는 진영 편들기에 나서면서 갈등을 유발하고, 언론의 사명인 정론직필을 소홀히 하는 모습이다.

거기다 부정확한 정보와 가짜뉴스의 확산은 물론, 가십에 연연하면서도 부끄러움도 개선의 의지도 보이지 않으니 안타깝다. 이러한 보도 행태는 지지하는 진영에 속한 독자·시청자들로부터는 열렬한 응원을 받을 수 있으며, 사안을 단순화하고 흥미 지향으로 묘사하기 때문에 상업성에도 도움이 된다는 안타까운 연구 결과도 제시된 바 있다.

더 쓰라린 점은 기득권 진영 간 갈등의 확대재생산에 가려 ‘전태일 3법(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근로기준법·노동조합법 개정)’, ‘차별금지법’ 같은 노동자들과 서민, 사회적 약자·소수자들의 생활과 직결된 정의롭고 시급한 의제들이 공론화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본질적 문제는 정파성이 아니라 갈등을 유발하면서 동시에 친자본·친엘리트적 관점을 고수하는 ‘반서민적 편향성’에 있다.

출처: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1995, 박광수) 스틸컷. 대우시네마 제공
전태일이 떠난지 50년이지만, 여전히 한 해 산재사망자는 2,000명을 넘는다.

참고로 ‘전태일 3법’의 '근황'은 다음과 같다. 우선 전태일 3법은 아래 세 개의 법을 가리킨다.

1. 근로기준법 제11조 개정
2.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노조법) 제2조 개정
3.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

그리고 해당 법의 주요 쟁점은 다음과 같다.

1. 근로기준법 → 근로기준법 5인 미만 사업장의 600만 노동자들에까지 확대 적용

2. 노조법 → 개인사업자로 분류되는 230만 특수고용·플랫폼노동자의 노동 3권 보장

3. 중대재해법 → 중대 재해 발생 시 원청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의 형사 책임 강화

전태일 3법 중 가장 쟁점 법안은 ‘중대재해법’이다. 중대재해법에 관해 더불어민주당은 갈지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낙연 대표는 당론 채택을 여러 번 공식적인 자리에서 약속했지만, 결국 당론으로 채택하지 못했다.

현재 민주당 주류의 입장은 중대재해법 제정 대신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리고 오늘(12월 3일) 정의당은 민주당과 국민의힘에 중대재해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농성에 돌입했다. (편집자)

언론은 거대 정파와 엘리트 세력 간 갈등의 틀에서 탈피해 코로나 19 이전에도 이미 불평등과 차별이라는 ‘항시적’인 재난 상황에 부닥쳐 있었고, 현재 그 고통이 가중되고 있는 서민의 일상에 주목해야 한다. 엘리트 간 갈등에 편향된 정파성이 아니라 불평등과 차별이라는 서민의 문제들을 공론화하는 정의로운 정파성을 바탕으로 ‘축적된 부정의’를 해소하는 노력에 주력해야 할 때이다.

개인적으로 언론이 ‘정론직필’을 한다면 ‘정파성’을 나쁘다고 보지 않는다. 문제는 ‘어떤 정파성이냐’에 있다. 구태의연하고, 기득권 세력 중심의 선택을 강요하는 정파성이 아닌 서민의 삶의 실질적 개선을 위해 치열하게 파고들고 주장하는 정파성을 제안한다. 이러한 정파성을 편향성과 혼돈되지 않는 ‘정의로운 정파성’으로 명명할 수 있겠다. 거대 정파들의 이전투구에서 한 발 벗어나 서민의 일상 속에 축적된 부정의를 파헤치고 대안을 찾는 작업은 외롭고 힘들 수 있다.

언론사 입장에서는 시청률·구독률·광고 등에 대한 염려도 수반될 수 있고, 현장은 다르다는 익숙한 푸념을 낳게 할 수도 있다. 신문 1면을 장식해 오던 거대 담론들과 익숙한 인물들을 대신해 ‘전태일 3법’, ‘차별금지법’ 등 덜 익숙한 노동과 차별의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축적된 부정의에 대한 비판과 대안까지 다루자니 더 많은 준비와 공부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정의’와 ‘정론직필’은 결국 승리해 오지 않았나? ‘정의로운 정파성’ 실천을 통해 노동자와 서민의 숙원인 ‘전태일 3법’도, 차별과 혐오에 반대하는 소수자·약자의 염원인 ‘차별금지법’도 공론장에서 치열하게 논의되고, 실천될 것이라고 믿는다. ‘갈등’과 ‘선정성’이라는 달콤한 유혹과 익숙한 프레임이 아니라 정의로운 ‘정파성’을 지향하면서 덜 익숙한 ‘친서민’, ‘친노동’의 담론을 내세우고, 사회변화를 위해 몸부림치는 언론으로의 변화를 촉구한다. 이를 통해 ‘갈등유발’ 저널리즘의 오명을 벗고 ‘정의지향’ 저널리즘 시대를 열기를 바란다.

서민과 소수자·약자를 위한 ‘정의지향’ 저널리즘의 도래가 언론 스스로의 의지로 추진될 것이라는 희망은 그간 언론의 행태를 감안하면 요원하다. 언론 자체의 성찰과 노력만으로는 어림없다. 시민들의 언론에 대한 감시와 참여가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이유이다. 아울러, 민주주의와 정의를 지키는 언론으로의 변화를 위해 노력해 온 ‘언론인권센터’ 같은 주체적인 시민단체의 역할도 막중하며, 그 역할을 성찰하고, 강화하길 소망한다.

‘차별금지법’ 근황 → 여전히 ‘관심 밖’

지난 대통령 선거기간 중 차별금지법 제정 의지를 밝힌 후보는 심상정 후보가 유일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표 시절이었던 ’17년 2월 13일 한기총 소속 목소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밝혔다.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다른 성적 지향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배제되거나 차별돼서는 안 된다’고 (이미) 규정돼 있으므로, 추가 입법(= 차별금지법)으로 인한 불필요한 논란을 막아야 된다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의 공식 입장”(문재인, 참조: 한겨레)

그리고 대선 토론에서는 (군대 내 동성애 문제라는 맥락에서 질문과 답변이 있었다는 점을 고려해야겠지만,) 홍준표 후보가 “차별금지법이라고… 이게 사실상 ‘동성애 허용법’인데.. 동성애 반대하는 게 분명합니까”라는 한 질문에 “저는 뭐… 동성애 좋아하지 않습니다.”(문재인 당시 대통령 후보)라고 답했다. 그리고 그 답변에 관해 심상정 후보는 이렇게 지적했다.

“동성애는 찬성이나 반대를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성 정체성은 말 그대로 개인의 정체성입니다. 저는 이성애자지만, 성소수자의 인권과 자유는 존중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노무현 정부 때 추진됐던 차별금지법, 계속 공약으로 냈었는데 이제는 후퇴한 문재인 후보에게 매우 유감스럽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심상정, 참조: 허핑턴포스트)

현재 21대 국회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평등법)은 개원 직후인 지난 6월 29일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동료 의원 9인과 대표발의한 상태다. 차별금지법은 17대 국회에선 본회의에 오르지 못하고 폐기됐고, 그나마 18~20대 국회에서는 상임위 문턱도 넘지 못했다. (편집자)

이 글의 필자는 정의철 상지대학교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입니다. 언론인권센터는 언론보도 피해자 상담 및 구조, 정보공개청구, 미디어 이용자 권익 옹호, 언론관계법 개정 활동과 언론인 인권교육, 청소년 및 일반인 미디어 인권교육을 진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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