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민 해프닝 그리고 목자와 부처의 대화

조회수 2020. 11. 16. 17:2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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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민 해프닝이 떠올린 [그리스인 조르바] 그리고 우리의 마음과 몸과 욕망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돈과 친해본 적이 한번도 없다. 목돈을 벌어본 일은 전혀 없고, 꾸준히 돈을 벌어본 일도 거의 없다. 돈이 싫은 사람은 별로 없고, 나도 그렇다. 아니 대개의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돈을 참 좋아한다. 다만 돈을 벌기 위해 대신 지급해야 하는 ‘(내가 선택하지 않은) 노동’에 관해선 대체로 무관심하거나 어쩌면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돈에 관해서는 나는 어쩌면 비겁하거나 대개는 거기에 (무능력할 만큼) 초연하다.

관습적으로 대한민국에서의 사회적 삶은 돈벌이의 크기와 시간에 비례하는 ‘사회적 깊이’를 가지는 것이기도 해서 나의 삶은 어찌보면 비사회적이거나 반사회적이다. 내가 가장 큰 열등감을 느끼는 순간은 그 사회적 깊이와 책임을 관습적으로 확인하는 자들의 신념을 만날 때다. 가령, 이런 말을 들으면 나는 깊은 열등감을 느낀다: “월급이라는 건 내가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한 사람이 됐다는 증거죠.” 특히 이런 말을 들을 때면 가족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올라 더 괴롭고, 초라하다.

각설하고, 돈과 친하지 않은 나도 물질에 대한 욕망의 맛이 아주 달콤한 건 잘 알고 있다. 거의 모든 온라인 쇼핑몰에서 11월은 특별한 달이다. 소위 ‘빅 세일’이 11월에는 꼭 연례행사로 열리니까. 평소 가지고 싶었던, 하지만 차마 사지 못했던 어떤 물건들, 가령 가전 제품 따위의 물건을 드디어 구입하는 즐거움, 그 달콤함을 나는 몇 번쯤 기억한다. 그 소박한 즐거움은 호화 요트로 세계를 여행하는 행복의 맛과 다를 것 같지 않다. 그건 아주 달콤하다.

나는 뇌 과학자는 아니지만, 인터넷 쇼핑몰에서 정말 사고 싶었던 물건을 장바구니에 몇 달 동안 저장해놨다가 ‘빅 세일’ 기간 동안 드디어 결심한 뒤에 주문 ‘클릭’하는 순간은 마치 달콤한 디저트를 먹을 때 드는 그런 기분(뇌 활동)이 들지 않을까 싶다.

혜민의 웃픈 해프닝

요즘 혜민 스님이 화제(?)다. 나는 그에 관해선 별로 아는 게 없다. 그가 유명인이라는 걸 알고, 그가 스님이라는 것과 한국인이 특히 좋아하는 근사한 학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의 책이 베스트셀러라는 것과 그가 SNS 활동 등 대공중 활동에 열심이라는 걸 안다. 그게 내가 아는 전부고, 나는 그런 영역(?)에 속한 사람에게는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듯 별로 관심이 없다.

그런 나의 레이다에도 혜민이 잡혔다는 건 그 화제의 크기를 말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나는 오늘에서야 그가 한 케이블 방송(TVN의 ‘온앤오프’)에서 자신이 사는 집을 보여줬다가 사람들로부터 지난주 내내 비난을 받았으며, 결국 오늘 활동(사회적 활동? 공개적 활동? 예능 활동?)을 접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혜민을 비난했던 사람들, 혜민에게 실망감을 느낀 사람들이 그에게 원한 건 정말 어떤 거였을까? 사람들은 혜민에게서 자신이 번 모든 돈을 사회에 환원하고, 논란이 된 집을 처분하며, 산속에 들어가 평생 수도하겠다는 등의 ‘반성'(?)이나 ‘참회'(?)를 기대했을까? 잘 모르겠다. 그게 올바른 반성이나 참회의 내용이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혜민의 해명에는 그런 내용은 전혀 없다. 그냥 활동을 접겠다는 말만 단정하고 공손하게 적혀 있다.


사람들은 유명인 ‘혜민’이 좋은 집에 사는 게 배아픈 게 아니라 자신에게 늘 좋은 말씀을 들려주는 ‘부처님 제자’ 혜민 ‘스님’이 ‘남산뷰 럭셔리 하우스’에 사는 걸 받아들이기 힘든 거다. 그리고 그 실망스러운(?) 마음은 상식적으로도 이해할 만하다. 왜냐하면 혜민은 (자연인) 혜민으로 돈을 번 게 아니라 혜민’스님’으로 돈을 벌었으니까.

혜민의 입장(?)에 관해서 잠깐 촌평하면, 그 입장이라는 게 사람들이 자신에게 실망하고, 자신을 비판하는 이유에 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다. 그리고 그건 아주 의도적으로 보인다. 혜민은 글을 쓰는 사람이고, 아주 똑똑한 사람이니까. 그런 차원에서 혜민의 입장문에는 이제 그만 연예인 생활을 접겠다는 연예인의 마인드가 느껴지기는 하지만, 자신에게 기대한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 미안하다는 마음을 전하려는 목적은 느껴지지 않는다. 거기엔 처음부터 아무런 내용이 없으니까.

나는 돈버는 게 좋아요.
나는 내가 번 돈을 나를 위해 쓰는 게 좋아요.
나는 나를 위해 물건을 사는 게 좋아요.
나는 내가 산 물건을 소유하는 게 좋아요.
그건 당신들도 마찬가지 잖아요!
다만 나는 당신들에게 그냥 좋은 말을 해주고 싶을 뿐인데…

(다시 말하지만, 혜민이 이런 말을 했다는 게 아님! 차라리 이런 말을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것임….)

차라리 그런 말이라도 해주었으면 어땠을까. 물론 나는 혜민 씨의 마음이라는 건 쥐뿔도 모르고, 사실 관심도 없다. 그리고 저런 이야기를 했더라도 ‘아, 참 솔직한 친구로구만!’ 이런 생각을 하기는 했을 테지만, 저런 생각을 가진 사람을 스님(?)이라고 여기진 않을 게 분명하다.

혜민이 차라리 스님이라는 껍데기를 던지고, 자신의 욕망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내보여줬더라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이 들긴 하지만, 아무런 의미도 없는 그냥 개인적인 망상에 불과하다. 혜민’스님’이라는 걸 자기 돈벌이의 원재료로 삼았다면, 그 스님의 본질 요소를 버려버리는 일은 자신의 상업적 가치를 버리는 일과 다르지 않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내가 뭘 알겠나. 나까지 나서서 혜민이라는 사람의 마음을 함부로 재단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래도 혜민의 해프닝은 코믹한 것만은 어쩔 수 없다. 참 웃기는 일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파하는 스님이라는 상징권력으로 돈도 벌고 명예도 쌓은 자가 예능 TV 방송에 나와서 ‘남산뷰 하우스’의 엘레강스한 라이프 스타일을 보여주고 대중으로부터 욕을 먹다니. 스님이고 뭐고를 떠나서 자신이 구축한 이미지의 세계가 대중에게 심어놓은 기대감의 풍경이 어떤 건지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이건 위대한 과거의 성취자가 현재의 자신에게 복수하는 ‘위대한 복수’라기보다는 그냥 대공중 감수성의 부재다. 그러니까 자만이고 자뻑이다.

혜민이야 그렇다 치고, ‘온앤오프’ 제작진도 이런 대중의 배신감 내지는 실망감을 예상하지 못했다면, 그것도 참 신기한 노릇이긴 하다. 대중의 감수성을 늘 노심초사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이런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하다니. 안타깝다기보다는 좀 한심해 보인다.


목자와 부처의 대화

혜민의 다소 코믹한 ‘해프닝’은 [그리스인 조르바]를 불러온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다. 거기에는 소설 속 화자가 인용하는 ‘목자와 부처의 대화’가 나온다. 이 대화가 실린 곳은 실은 불교에서 가장 오래된 ‘원시 경전’인 ‘숫타니파타’(Sutta Nipata)다.

나는 내 방으로 들어가 책을 펼쳐 들었다. 부처 생각이 여전히 내 머리에 남아 있었다.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내 마음의 안식과 평화를 가져다주던 부처와 목자의 대화를 읽었다.

목자: 제 식사는 준비되었고 암양의 젖도 짜 두었습니다. 제 집의 대문은 잠겨 있고, 아궁이는 타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늘이여, 마음대로 비를 내려도 좋습니다.

부처: 저에겐 이제 음식이나 젖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바람이 내 처소이며, 불도 꺼졌습니다. 그러니 하늘이여, 마음대로 비를 내려도 좋습니다.

목자: 제게는 황소가 있습니다. 제게는 암소가 있습니다. 제 아버지께 물려받은 목초지도 있고, 제 암소를 모두 거느릴 씨받이 소도 있습니다. 그러니 하늘이여, 마음대로 비를 내려도 좋습니다.

부처: 저에겐 황소도 암소도, 목초지도 없습니다. 저에겐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니 하늘이여, 마음대로 비를 내려도 좋습니다.

목자: 저에겐 말 잘 듣고 부지런한 양치기 여자가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이 여자는 제 아내였습니다. 밤에 아내를 희롱하는 저는 행복합니다. 그러니 하늘이여, 마음대로 비를 뿌려도 좋습니다.

부처: 저에겐 자유롭고 착한 영혼이 있습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제 영혼을 길들여 왔고, 저와 희롱하는 것도 가르쳐 놓았습니다. 그러니 하늘이여, 마음대로 비를 내려도 좋습니다.

그러니까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인 니코스 카잔차키스(1883~1957)의 그 유명한 묘비명은 ‘숫타니파타’의 부처와 목자의 대화에서 비롯한 거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우리 마음은 항상 부처의 자유를 소망하지만, 우리 몸은 항상 목자의 소유에 매여 있다. 혜민이 ‘남산뷰 럭셔리 하우스’에서 산다고 비난하고 실망하는 마음은 우리의 자유에서 온 걸까, 욕망에서 온 걸까. 잘 모르겠다. 다만, 남산뷰 럭셔리 하우스에 살면서 스님으로 행사하며 ‘부처님의 좋은 말씀’을 전하는 건 좀 어색해 보이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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