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택배기사의 추억

조회수 2020. 10. 26. 09:2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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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택배기사에게 당한 수모, 어느날 새벽에 다시 만난 그 택배기사

첫째의 돌은 집에서 치렀다. 가족 행사인데 누굴 따로 부르기도 애매하여 그냥 집에서 조용히 치르기로 정했다. 거기까진 좋았는데 소소한 준비가 말썽이었다. 돌상에 그렇게 많은 준비가 필요한지 이전까진 미처 몰랐던 것이다. 상보, 화촉, 병풍, 돌잡이 용품부터 시작해서 이것저것.

이왕 집에서 하기로 한 거 용품까지 직접 만들어서 대충하려다가 그건 너무 볼품이 없을 것 같아 고민하고 있었는데, 알아보니 ‘돌잔치 세트’라는 것이 있었다. 전용 병풍부터 전용 상, 각종 음식을 차려서 전시할 수 있는 유기부터 돌잡이 용품 까지, 대략 3만 원에서 10만 원 사이의 금액대에 필요한 물건을 묶어서 빌려주는 업체들이 인터넷에 무수히 많았다.

돌잡이 세트로 나온 상품들 (검색 화면 캡처)

개중 괜찮은 곳을 찾아내어 문의해보니 원하는 금액대의 세트를 시키면 행사 전날 택배를 통해 보내준다고 했다. 그러고선 행사 종료 후 이틀 뒤에 다시 수거해 간다고. 왕복 택배 비용은 모두 대여비에 포함된 상태였다. 나는 감탄했다. ‘세상이 이렇게 좋아졌다니! 이젠 집에서 못 시키는 것이 없구나! 역시 돈이 좋아!!!’

그렇게 주문을 했고, 택배를 받을 날이 되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업체에서 발송했다며 내일이면 도착할 것이라는 문자를 보내주어 이제나저제나 기다리고 있는데, 하루종일 택배가 오지 않는 것이다. 얼른 받아서 물건이 제대로 있는지, 누락된 것은 없는지 확인해봐야 하는데. 그러다 초인종 소리가 울렸고, 반가운 마음에 총알같이 튀어나갔다.

뜻밖의 수모

그런데 문을 열자마자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기사가 들뜬 표정으로 반갑게 인사하는 나에게 선물같은 택배를 건네주는 대신 버럭 소리를 질렀기 때문이다.

“안녕하….”
“아니 이렇게 큰 물건을 시키면 어떡해요! 이거 때문에 오늘 하루종일 물건을 받지도 못하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당연히 나는 황당했다. 기사의 뒤를 흘끗 보니 과연 상자가 크긴 컸다. 보통 이사 업체들이 쓰곤 하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포장 박스 두 개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이렇게 클 줄은 몰랐는데. 아니 그래도 그렇지, 보낸게 내 잘못인가? 내가 알았나? 게다가 나는 배송비까지 냈는데? 이게 자기 일 아닌가?’ 황당함은 가시지 않았다.

“….?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왜 저한테 화를 내세요?”
“아니 이렇게 큰 물건을 택배 규격에도 안 맞는 걸 시키면 어떡하냐고! 내 차에 이거 두 개 넣으면 꽉 차는데! 이거, 이거 때문에 하루 종일 다른 물건 하나도 못 받았고 일 하나도 못했다고! 이거 한 건 해봤자 손에 떨어지는 것도 없는데 누가 책임질 거예요, 이거? 보아하니 이거 반품까지 예약해놓은 것 같은데 난 못 가지러 오니까 그리 알아요! 안 올 거니까 업체한테도 그렇게 전해요!”

그러더니 기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버렸다. 대체 그게 무슨 소리냐고 되물을 시간조차 없었다. 나는 커다란 상자 두 개와 함께 멍하니 닫힌 엘리베이터 문을 바라보다가 업체로 전화했다. 내가 당한 이 수모를 어딘가에 풀어야 했다. ‘뭐야 대체? 자기 차가 작은게 내 탓이야? 내가 알았어? 난 판매하는 물건을 돈 주고 산 것밖에 없는데 왜 내가 이런 소리를 듣고 이런 꼴을 당해야 하지?’

‘복수’할 곳을 찾아서

하지만 영업시간이 끝난 업체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해당 기사가 소속된 택배 회사 역시 전화를 받지 않았다. 결국 수모는 아무 곳에도 풀지 못했고, 나는 울분을 삭이며 배달된 용품을 정리했다. 마치 한강 변에 멀쩡히 서 있다가 뺨을 맞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아이를 축하하는 날을 앞두고 화를 내기 싫어 대충 마음을 다독이며 잠들 수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다음날 행사는 무사히 치렀다. 이제 애물단지 같은 용품을 얼른 치워버려야 했다. 부피도 어마어마하여 둘 곳도 없고. 하지만 왠지 기사가 떠나며 남긴 말이 마음에 걸렸다. 혹시나 싶어 내가 당했던 일에 관해 하소연도 할 겸 업체에 전화해 보았다. 업체에선 그런 일이 있었느냐며, 수거해가는 기사님은 늘 친절하셔서 전혀 몰랐다고, 자기들이 우리 집 담당 기사와 직접 통화해보겠다고 했다. 물건은 포장해서 집 밖에 놔두어 주면 고맙겠다고.

하지만 물건은 2주가 넘도록 덩그러니 밖에 놓여 있었다. 기사는 여전히 오지 않았다. 커다란 박스 두 개가 집 앞에 있으니 통행에도 방해가 되고, 보기에도 좋지 않았다. 다시금 업체에 전화했다. 업체는 몹시 곤란해하며 말했다.

“아직도 안 가져가셨어요??? 그게, 저희도 이런 경우 처음이라 당황스럽네요. 따로 전화해서 말씀은 드렸는데….아무래도 저희가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겠어요. 퀵으로 예약하든지 해서 처리할게요. 불편 끼쳐서 죄송합니다.”

통화가 있은 후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퀵 기사가 다녀갔다. 현관 앞을 독차지 하던 짐덩어리 두 개가 사라지니 속이 다 시원했다. 이젠 나에게 똥물을 뿌린 택배기사를 어떻게든 응징해야 했다. ‘아니 진짜, 대체 내가 뭘 했다고 나한테 성질을 내?’ 나는 택배 회사에 전화해서 이런 일이 있었다며 말을 했다. 회사 담당자는 몹시 곤란해하며 답했다.

“그게….저희도 몇 번 말씀을 드리고는 하는데, 참…… 근데 워낙 하신다는 분들이 없어서…. 저희도 이 이상 더 강하게 얘기하기가…암튼 말씀은 드려볼게요.”

‘악명’ 높은 택배기사

뭔가 이상한 예감이 들었고 혹시나 싶어 지역의 맘카페에 알아보니 해당 기사는 예전부터 악명 높은 사람이었다. 다른 업체보다 배달이 늦는 것은 기본이고, 초인종도 누르지 않고 현관 앞에 물건을 던져놓고 갈 때가 다반사라고 했다.

언제쯤 오나 궁금해서 현관문을 열어보면 택배 상자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때가 많아 황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했다. 한 지역은 보통 기사 한 명이 담당하기에 비슷한 곳에 사는 회원이 많이 모인 맘카페의 특성상 그런 게시글 밑에는 원성을 토로하는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정말 잘라버렸으면 좋겠어요, 그 사람!!!”

“완전 진상이에요. 너무 싫어요.”

“전 그래서 ㅇㅇ택배에서는 절대 안 시키잖아요.”

“근데 ㅁㅁ택배에서 시켜도 그 아저씨 오던데요?”

“잘려봤자 금방 다시 다른 업체로 옮겨가는 것 같더라고요.”

“사람이 그렇게 없나?”

“일이 힘들긴 힘든가 보네요. 사람을 구하기가 그렇게 힘든가 보면.”

“자기만 힘든가. 우리 다 힘들잖아요. 뭐야 진짜 짜증 나.”

그런 댓글들을 보며 나 역시 OO택배를 이용하는 업체에서는 앞으로 절대 물건을 시키지 않으리라는 결심을 했다. ‘정말로 그래, 자기만 힘들어? 나도 힘들다고! 왜 자기 힘든 걸 고객한테 유세를 부려?’

그 택배기사의 ‘악명’은 맘카페에서 이미 유명했다.

새벽 2시, 우연히 만난 택배기사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주 늦게 새벽 두 시쯤 귀가한 어느 날이었는데, 빈 자리를 찾아 지하 주차장을 돌다 공동 현관 앞에 임시로 주차된 차량을 발견했다. 작은 세단의 뒷좌석에는 크고 작은 택배 상자들이 가득했다. 보는 순간 나는 그것이 오래전 나에게 성질을 잔뜩 내고 갔던 OO택배 기사의 차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당시 그가 나에게 왜 그렇게 화를 냈는지도. 이렇게 작은 차였다면 돌잡이 세트 상자 두 개면 꽉 찼을 것이다. 그 상자들 때문에 하루종일 일을 못했다는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를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능력이 안 되면 일을 하지를 말던가! 차가 작아서 일하기 힘든 것은 알겠지만, 그건 자기 사정이고!’ 그때 기억이 소환되어 다시금 타오르려던 나의 분노는 공동 현관에서 나오는 기사의 모습을 보고 바람 빠진 풍선처럼 가라앉고 말았는데, 그가 그 시간, 그러니까 새벽 두 시까지 여전히 일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그때 나에게 말했던대로 종일 일하고 있었다. 새벽 2시까지.

그가 말한 하루종일 뼈 빠지게 일한다는 말의 의미를 그때 조금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분노가 조금 가라앉았다. 친절은 체력에서 나온다. 상냥함은 건강에서 나온다. 종일 일해서 지친 사람이 성질을 부린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결과였는지도 모르겠다. 그게 당연하다는 것도 아니고 잘했다는 것도 아니고 그 당시의 불쾌한 기억이 결코 아무렇지 않았던 것도 아니지만, 아마도 지났기 때문에 이렇게 평온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겠지만.

그 ‘악명’ 높은 택배기사는 자신의 말처럼 정말 온종일, 새벽 2시까지 자신의 작은 세단을 이용해 일하고 있었다.

제목을 입력하세요

훗날 [까대기]란 책을 읽으며 그때의 택배기사가 떠올랐다. [까대기]는 이종철이 택배회사에서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만화이다. 제목의 ‘까대기’는 택배 차량이 오면 그 안에 겹겹이 실린 물건을 컨베이어 벨트 등으로 옮기는 작업을 뜻하는 은어다. 이 책을 보면 택배 기사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어려움에 처했는지, 무엇 때문에 힘들어 하는지를 알 수 있다.

택배 기사들이 얼마나 과중한 노동에 시달리는지. 반면에 그에 대한 보상은 얼마나 터무니없이 적은지. 그로 인해 하겠다는 사람이 얼마나 적은지. 일단 하기 시작하면 그만두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오래 전 편의점주 중에 아르바이트 생을 구할 수 없어 부모인가 자식의 상중에도 가게를 열었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택배 기사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해진 시간 안에 택배를 배달해야만 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 벌점 등이 매겨지고, 벌점이 누적되면 보상이 깎이고.

그 이후로 택배 기사들을 보면 괜스레 미안해지곤 했다. 이사를 해서 나에게 성질을 냈던 OO택배의 기사는 더 이상 볼 일이 없었지만, 자주 얼굴을 보며 나름 안면을 익힌 기사들을 보면 안쓰럽고 미안하며 죄스러운 마음이 들곤 했다. 우리집은 엘리베이터가 있지만, 어쨌든 물이나 쌀 등의 무거운 용품을 주문하면 차에서 싣고 내리는 것도 큰일일 테니.

탄산수를 여러 박스 시킨 날 하루는 너무 미안해서 기사에게 많이 시켜서 죄송하단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러자 그는 말했다.

“죄송하긴요. 많이 시키실수록 저는 돈 벌고 좋아요.”

그 말에 왠지 안심이 되었다. 이후로 종종 안부인사를 주고 받게 된 뒤 그와 좀 친해졌다고 생각한 나는 한참 지난 어느 날인가 그에게 웃으며 “내일 투표날인데 투표하실 거죠?” 하고 물었고 그는 대답했다.

“못해요. 일해야죠.”

나는 당혹스러웠다. 그리고 새삼 깨달았다. 내가 사는 세상과 그가 사는 세상이 같지 않다는 것을. 돈을 번다는 것과 ‘살 만하다’는 것의 의미가 다르다는 것을. 하루종일 노동을 해서 돈을 벌 수는 있지만, 그 삶이 반드시 인간답다고는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군가에겐 ‘투표’라는 당연한 권리가 ‘사치’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 이후로 택배를 시킬 때 나의 마음은 몹시 복잡하다. 택배를 시키지 않으면 그들의 직업이 없어질 것이고, 무작정 많이 시키면 그들은 과로로 고통받을 것이다. 본사와 일대일로 맺는 계약은 얼핏 본인의 능력대로, 그러니까 일하는 만큼 돈을 벌어갈 수 있는 자유로운 구조처럼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분실 혹은 파손되는 상품, 늦어지는 배달, 고객의 갑질이나 진상, 밤늦도록 이어지는 독촉 문자와 전화, 위험한 골목길 운전과 분류 작업에 들어가는 엄청난 시간까지 모두 기사의 몫이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떤 이들은 택배 기사가 물건을 현관 앞에 덜렁 놓기만 하고 간다고, 택배 기사라고 모두 다 못 살고 힘들게 살지 않는다고, 능력 좋은 이들은 한 달에 500~700만 원도 번다며, 초인종 한 번 누를 시간 없이 일하는 이들은 아마 자기보다 더 잘 벌지도 모르겠는데 왜 자기가 그들을 이해해줘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불만을 말하기도 하던데, 아침부터 밤까지 막노동을 한 댓가로 버는 500~700만 원이 많은 돈인지 나는 사실 잘 모르겠다.

새벽 두 시까지 쉬지도 남들 쉬는 날 쉬지도 못하고 일한 대가로 받는 돈 500~700이 과연 많은 것일까? 그렇게 좋은 직업이라면 택배 일을 하려는 사람은 왜 이렇게 적을까? 그렇다면 그렇게 남들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사정이 얼마나 절박한 것일까? 그들은 그 이전에 무슨 일들을 했을까?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방구석에 앉아 글이나 쓰는 나는 육체노동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다.

택배 시키는 자의 ‘최소한의 의무’

물론 이렇게 구구절절 긴 글을 적고 있는 나 역시 그다지 윤리적인 인간은 못된다. 나는 나 하나 편하자고 플라스틱을 사용하는 사람이고, 편의를 위해 택배를 시키는 사람이며, 먹고 싶으면 공장식 축산으로 가공한 동물을 먹는 사람이다. 마트에서는 동물복지란이나 동물복지우유 대신 그냥 저렴한 것을 산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나의 편의를 위해 끊임없이 택배를 시킬 것이다.

사실 아이들 때문에 거동이 자유스럽지 않은 나의 삶은 거의 택배로 이루어져있다. 새벽 배송이나 당일 배송으로 인해 나의 삶은 많이 나아졌다. 아이 이유식도 덕분에 내가 힘들여 하지 않고 매일 아침 전문가가 위생적으로 만든 것을 신선한 상태에서 먹일 수 있었다. 택배로 장도 보고 옷도 사고 안 입는 옷은 팔기도 하고 책도 사보고 그 책을 읽고 쓴 글로 돈도 번다. 고로 택배비가 저렴하면 기쁘고 비싸면 슬프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택배 서비스를 계속 이용할 것이다.

다만.

어쨌든 택배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최소한의 미안한 마음과 죄책감, 그 이면에 누가 어떤 방식으로 고통 받는지에 대해서는 인지하고 있으려고 한다. 내가 받는 택배가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전달이 되는지, 이 과정에서 이들에게 얼마의 금액이 돌아가는지를 알고 있으려고 한다.

그것은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고, 남들 쉴 때 쉬는, 힘들다고는 해도 여러 의미에서 나름 먹고 살만한 내가 갖는 최소한의 의무라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그들이 얼마나 과로하는지 알게 되면서 내가 갖게 되는 죄책감은, 실제로 그렇게 일하는 이들이 겪는 고통이나 괴로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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