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하게 좋은 사람'인 게 분명한 백군기 시장님

조회수 2020. 8. 24. 18:0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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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경실련 발표 '수도권 기초단체장 다주택장 현황'에 대한 백군기 용인시장의 해명(?)
“우리는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이라고 믿는다.” (p. 132)

– 신형철, [정확한 사랑의 실험] (2014. 마음산책)

인간은 복잡하다. 인간의 욕망은 대체로 확장적이니까. 그리고 그 욕망은 대체로 공공의 이익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니까. 그것을 오히려 공공의 선을 파괴하는 쪽으로 운동한다. 왜냐하면 욕망을 충족해줄 수 있는 재화는 늘 한정적이니까. 하지만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인간은 윤리와 도덕을 만들었다. 개인에게 그 윤리와 도덕은 양심이라는 이름으로 각인된다. 그리고 당연히 양심은 개인의 욕망에 대해 억압적이다.

그래서 인간은 복잡하다. 타락하도록 태어났지만, 구원할 수 있도록 길러졌다. 적어도 제도권 교육의 껍데기와 대중문화 장치의 주류적 담론은 그 ‘양심’을 겉으로나마 지지하고 지향한다(이 위대한 속임수가 끝나면, 본격적인 타락의 시대가 찾아온다. 나는 지금이 타락의 시대가 열리는 여명 즈음으로 생각하는 편이다). 

가끔 위대한 예술작품, 가령 ‘기생충’과 같은 작품은 그 양심이 어떻게 파괴되어 왔는지, 어떻게 파괴될 수밖에 없는지, 그리고 어떻게 영원히 파괴된 체로 구조화할 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 섬뜩한 경고는 하지만 다시 말랑말랑한 상품이 되어 유통될 뿐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인간은, 좀 더 정확하게 사회적 자아는 대체로 그 욕망과 양심 사이에 존재한다. 전적으로 개인적인 욕망만을 위해 살 수도 없고, 전적으로 공동체를 위해, 숭고함을 위해 살 수도 없다. 인간은 그 중간에 딱 끼어 있다. 

그래서 인간은 종종 자기 배반적이고, 자기 파괴적이다. 하지만 정확한 말은 아니다. 인간은 자기 충족적인 동시에 자기 파괴적이며, 자기 이행적인 동시에 자기 배반적이다. 그 둘은 엄격하게 말하면 어느 하나가 주체고, 어느 하나가 객체가 아니며, 본질에서 하나다. 우리는 숭고하지만 천박하고, 지리멸렬하지만 위대하다.

플라톤이 주창한 철인 정치의 조건 중에 비혼과 무자식이 있다. 너무 너무 탁월한 지적이라서 뭐라고 달리 할 말이 없다. 인간의 욕망을 마치 숭고한 ‘소망’인 양 변신하게 하는 마법의 단어가 있다. ‘가족’. 가족 앞에서 진보고 보수고 나발이고 간에 모두 무장해제다. 

‘사태’로 표현되는 몇몇 사회적 공론 소재를 통해 나는 그 실체를 아주 극적으로 현실에서 체험했다. 가족이라는 단어 앞에서 모든 비도덕과 몰상식과 자기배반은 ‘넉넉하게 이해할 수 있는 어떤 것’으로 화학 변화했다. 내가 너무도 존경하는 벗들에게서조차 나는 그 자기배반의 언어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사정이 이러니 공동체는 공공의 선을 이행하는 걸 업으로 삼은 자들에 관해서는 다소 그 욕망을 적극적으로 제한하고 억제하는 공적 양심 제도를 만들어 시행한다. 그래야 위대한 속임수가 계속될 수 있으니까.


백군기의 해명은 그냥 어이가 없다. 그 해명을 일단 들어보자.

진심을 다해 어이가 없다.

그는 “40여 녀 간의 군 생활로 4성 장군에 국회의원까지 한 제가 집이 반 채라는 것에 한번도 부끄러운 적이 없지만, 매번 왜곡된 발표, 보도에 의해 저희 부부는 이미 깊은 상처를 받고 있습니다”라고 항변(?)한다. 무엇이 어떻게 왜곡인가. 왜 상처인가. 아는 분 설명 좀 부탁드린다.

그의 항변이 정당하려면, 고위공직자 재산공개제도가 그 공개 대상에서 ‘결혼/재혼하기 전의 배우자 재산은 그 공개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 하지만 당연히 그런 예외 조건은 있었던 적도 없고, 앞으로도 있을 가능성이 없다.

고위공직자 재산공개제도가 배우자의 재산을 공개 대상에 포함하는 취지에 관해서는 ‘복잡하게’ 이해할 필요도 없이, 그냥 ‘단순하게’ 알 수 있다. 가족이니까. 가족이니까 그런 거다. 그 제도의 취지를 완전히 정면에서 무시하고, 전적으로 부정하는 공직자의 언명을 어떻게 받아들어야 할지 난감하다.

그리고 백 시장은 재혼한 아내의 (재혼하기 전에 형성된) 재산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약 10평 내외의 소형 원룸 13개가 있는 1동의 연립주택이 13채로 둔갑한 이 주택은 현재 집사람과 집사람 소생 아들이 각각 2/3, 1/3 공동소유하고 있으며, 장성한 자녀가 사실상 재산권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백군기 시장)

너무 너무 화가 난다. 언제부터 원룸 13채의 연립주택 한 동을 ‘한 채’로 계산했나. 원룸이든 투룸이든 13채를 13채라고 말하는 게 언제부터 “둔갑”인가. 이게 정말 말인가, 막걸린가. 그 원룸 한 채만이라도 소유하고 싶은 사람들이 천지에 널렸다.

서울 용산에 있는 “약 10평 내외의 소형 원룸” 한 채의 재산 가치가 얼마나 되는 지 궁금해서 부동산 어플을 열었다. 백 시장이 말한 “약 10평 내외의 소형 원룸 13개”는 주로 월세일 것으로 추정한다. 그 월세 시가는 다음과 같다. (참고로, 아래 캡처에 담긴 월세 매물은 10평보다 더 작은 월세 매물들도 있다.)

출처: 직방

백 시장은 이런 일이 “용인시장으로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온전히 제가 감내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단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은 여러 채의 집이고, “2008년에 재혼”한 아내의 재산이라서 억울하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잘 모르겠다. 나로선 이런 그의 당당함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다.

그리고 나는 결론을 냈다.

그는 참 ‘복잡하게 좋은 사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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